31화 : 전장에서 흐르는 핏빛 발라드(5)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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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후의 몸이 쏜살같이 튀어져 나갔다. 쌍검은 목을 방어하며, 그의 미간을 향해 검을 찔렀다. 순간 그의 몸이 흐릿해졌다.
쌍검의 이생물체는 어느새 비수 모양 이능력이 자신의 목에 닿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그가 자신의 검을 통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쌍검의 표정이 변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상체를 옆으로 움직이며, 오른손의 검을 쳐올렸다.
분명 눈앞에 생명체가 있는 게 확실한데. 형체가 흐릿해진다. 공간이 왜곡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야를 교란시키거나 환영을 보여주는 이능력이 아니라는 것쯤은 한눈에 파악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디로 움직이나 예측했다. 그래, 예측이다. 쌍검의 이생물체나 이지후처럼 최상위급을 뛰어 넘는 속도의 소유자들끼리는 서로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눈으로 쫓을 수 없다.
호흡과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기공의 흐름, 자세, 주로 쓰는 기술 등을 찰나도 안 되는 순간에 파악해 상대방이 무엇을 할지 예측해야 한다.
쌍검의 이생물체는 이지후가 자신의 오른쪽으로 돌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래서 그곳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 촤악!
갈비뼈가 있는 부근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갑옷인지 피부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 떨어져 나간 자리였다. 이지후의 갈퀴 모양 이능력이 정확하게 그곳을 긁고 지나갔다.
쌍검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분명이 움직임을 예측했다고 생각했으니까! 다시 쌍검이 검을 휘둘렀으나 그는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해냈다. 풍압으로 인해 그의 이마가 찢어졌다.
이미 간격에서 벗어난 이지후가 입을 열었다.
“연기가 대단해. 아카데미 주연상 감이야. 이생물체라 후보에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네.”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뒤를 따라 흙먼지와 아지랑이가 흩날렸다.
쌍검의 가슴팍까지 파고든 이지후가 양손을 번갈아 찔렀다. 쌍검은 몸을 돌리며 그의 허리를 벴다. 이번 전투에서 쌍검이 가장 애용한 기술이며, 효과 역시 대단했었다. 내로라하는 이능력자들을 모두 한 번 이상 벴었다.
이지후는 쌍검과 반대 방향으로 돌며 회피했다. 그리고는 곧장 허리를 숙이고 파고들더니 쌍검의 왼쪽 허벅지를 오른발로 찼다.
- 텅!
쌍검은 몸이 휘청였으나 검을 뻗었다. 이지후는 다섯 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피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처음에는 힘든 척 연기를 하더니, 이번에는 멀쩡한 척 연기를 하네.”
쌍검은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금 전, 김명경과 진명, 정현석이 쌍검에게 쉽게 당한 이유는 쌍검이 기력이 다 떨어진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강철 종족은 전사의 종족. 언제나 정면으로, 전력으로 대적한다. 지친 척, 힘든 척하며 상대를 속이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쌍검이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못 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김명경마저 당할 정도였다.
지금 쌍검의 무릎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 끝 역시.
이지후는 그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방금 전의 공방으로 실제 쌍검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다.
쌍검은 분노한 듯, 기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부터 이지후를 향해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은 이지후의 몸을 세차게 훑고 지나갔다.
이지후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아무리 힘이 떨어졌어도 엠페러급... 하지만 지금이라면 내 능력을 모두 발동해서 시간을 끌 수 있다.’
쌍검에게로 뛰어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 전에 윤성윤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쌍검의 이생물체와 1:1 대결을 하게 무대를 마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일격을 준비하라고 전달했다.
윤성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쌍검의 상태가 심각해도 1:1이라니... 지원 없이 그게 가능한가? 무슨 생각이냐 이지후...’
의문을 품은 것과는 다르게 윤성윤은 알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의 분석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믿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윤성윤을 제외하고 쌍검을 맞상대할 수 있는 이능력자들이 모두 부상을 당해 잠시간은 전투를 치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쌍검을 도맡아 상대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백 단위의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이지후가 소리쳤다.
“명경, 바람이 불면 태산이 움직인다.”
치료를 위해 실려 나가던 김명경이 정신을 차렸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힘겹게 발산했다.
“여기... 남겠어요.”
그 말을 들은 치유 이능력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복부에서는 검은 기운이 들끓는 중이었다. 피가 콸콸콸 흘렀다. 치유 이능력자들이 이동 중에도 이능력을 쏟아 부었지만 검은 기운은 쉽게 제압되지 않았다.
김명경이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지후는 죽음의 신을 향해 달려갔다.
첫 번째 검이 그의 가슴팍을 그었고, 이어서 두 번째 검이 횡으로 선을 그렸다. 아무리 속도가 떨어졌다 하나 웬만한 최상위 이능력자들은 제대로 반응조차 못할 정도의 빠르기.
하지만 그는 가슴을 틀고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모두 피해냈다. 세 번째 공격은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지나갔다.
이지후는 쌍검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비수 모양 이능력을 올려쳤다. 네 번째 검격이 그의 손목을 갈랐다. 그는 손을 회수하는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쌍검의 측면을 잡은 이지후. 허리를 후려찼다.
- 퍽! 빠드득!
금속이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더 부드러운 무언가가 타격을 받은 소리가 났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렸다.
쌍검의 다섯 번째 공격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비수 모양 이능력이 갈퀴 모양으로 바뀐다. 그걸 광속의 검에 걸더니 옆으로 흘려낸다.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는 것으로 간격을 좁힌다.
- 텅!
이지후의 왼발 올려차기가 쌍검의 턱에 적중했다.
- 촤아악!
여섯 번째 검에 의해 방어구의 가슴부근과 근육이 찢어졌다. 붉은 피가 회색빛 대기를 채색한다.
- 쿵!
동시에 이지후의 오른발 차기가 쌍검의 목을 때렸다. 쌍검은 휘청거리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와 함께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이 이지후에게로 쏟아졌다.
“저게... 김명경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이지후야?”
“레벨 7 중에서는 최약체라고 했잖아. 레벨 6한테도 질 거라고 들었는데...”
“움직임이 보이질 않아.”
“빛이다. 전장의 광명이야...”
쌍검의 몸이 마치 화살처럼 튀어져나갔다. 왼손의 검이 이지후의 이마를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오른손의 검.
이지후가 왼손의 검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트느라 속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진다거나, 옆으로 뛰면 바로 오른손의 검이 그의 허리를 베리라.
쌍검은 자신이 있었다. 이지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서 준비한 공격이니까!
왼손의 검이 확실하게 이마를 찔렀다. 예상대로 목을 틀며 피했다. 그래서 허리를 벴는데 감촉이 없다.
몸에서 발산되는 아지랑이 때문에 이지후가 마치 안개처럼 보였다.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검을 통과했다. 갑옷이 떨어져나간 허벅지에 비수모양 이능력을 찔러 넣었다.
쌍검의 허벅지에서 검은 피가 분출됐다. 동시에 이지후의 허리에서도 피가 흘렀다. 서로 공격을 주고받은 것!
윤성윤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곁으로 돌아온 하혜영이 깜짝 놀란 눈을 했다.
“야, 저거 이지후 맞아? 아무리 쌍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도 그렇지. 지금 분명 쌍검의 속도를 능가했어! 그리고 공격력도 상당히...”
윤성윤은 계속해서 몸에 기공을 축적하며, 활을 조준하고 있었다.
“지금 저건 단순히 속도만 능가한 게 아니야.”
“뭐? 설마...”
“그래, 초단거리지만 순간이동능력이 결합됐어.”
원래 알고 있던 김명경을 제외하고는 이지후의 능력을 한눈에 파악한 사람은 이 전장에서 윤성윤밖에 없었다.
하혜영이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저 속도에 순간이동능력을 결합하면 몸에 부하가 얼마나 걸린다는 거야? 쟤 가뜩이나 신체능력도 달리면서...”
“분명 출력을 한계 이상으로 쥐어 짜내는 기술이겠지. 생명력을 갉아먹는 수준일걸?”
“크... 왜 만들어도 그런 기술만.”
“그것이 재능의 한계.”
말을 마친 윤성윤의 눈이 번뜩였다. 이지후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끊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이 다하는 순간이 윤성윤이 나설 차례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호흡을 고르는데, 하혜영이 말했다.
“윤성윤... 기회 절대로 놓치지 마. 저 바보 같은 녀석이 무리해서 만든 거니까.”
윤성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집중력이 한층 높아졌다. 자존심 때문에, 이미나의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이지후의 희생...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쌍검의 스무 번째, 스물한 번째 공격이 연달아 이지후의 볼을 찢었다. 그도 쌍검의 가슴팍을 긁어놓았다.
둘은 그렇게 계속 공격을 주고받았으나 쌍검은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 못 했고, 그 역시 초반과는 달리 큰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스물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격. 이지후는 양손의 비수 모양 이능력을 엇갈려서 막아냈다.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힘을 흘렸다. 그 때, 휘청거리는 다리. 입술을 꽉 깨물고 버텨냈다.
‘단 한 번만 실수해도 그대로 죽는 거다.’
다리 근육이 찢어지려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솔직히 무서워...’
그의 비기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것의 2단계에는 부작용이 하나 더 있었다. 감각이 예민해지는 만큼 통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는 것.
‘괴로워. 아파...’
이제는 고작 상처에 바람이 닿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았다. 그 탓에 입술이 새하얘졌다. 이마에서는 격하게 움직여 난 뜨거운 땀과 고통 때문에 흐르는 식은땀이 뒤섞였다. 눈앞이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더 버텨야 해. 그래야 명경이랑 성윤이의 준비가 끝나. 나는 할 수 있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으아아아!”
기꺼이 두 개의 검날을 받아낸다.
김명경은 검은 기운이 몸을 잠식하고 있는 탓에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서 있었다. 왼손을 뻗어 쌍검의 이생물체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오른손을 허리 뒤로 당겨 붕권의 자세를 취했다.
그녀가 몸에 이능력의 기공을 강하게 돌리자 다시 상처가 터져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를 치료하던 유일신교 소속의 여성 이능력자가 꺄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다른 치유 이능력자가 그녀를 제지했다.
“김명경 씨, 제발 이능력을 거두세요. 지금은 상처 치료에 집중하시라고요.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당신이 아무리 강한 이능력자라도 더 이상 무리하면 여기서 죽어요.”
그녀는 고통 때문에 이빨 자국이 생길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이 작전의 핵심은 이지후도 아니고, 윤성윤도 아니에요. 바로 저라고요. 제가 여기서 저 살자고 물러나면... 이 작전은 끝이에요.”
“그래도 다른 사람이 대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지후가 언제 나가떨어질지는 제가 가장 잘 알아요. 항상 함께 했으니까... 그 타이밍에 제가 들어가야 돼요.”
“하지만 저렇게 잘 싸우고 있는데, 지후 씨가 이길 수도 있잖아요.”
“저도 그걸 바래요.”
그녀가 잠시 눈을 감았다. 땀과 섞인 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내려온 후, 턱 아래로 떨어지자 눈을 번쩍 떴다.
“이지후에게는 제가 필요해요. 지금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죽을 만큼의 고통을 참으며, 피를 뒤집어쓰면서도 애초에 실패할 것을 알면서... 그러니까 저 바보 같은 놈한테는 제가 필요한 거예요.”
그녀의 몸에 기공이 축적될수록 대기가 더 강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 만큼의 피를 흘렸다.
그러자 그녀를 치료하던 유일신교의 여성 이능력자가 눈물을 떨어트렸다. 피눈물이었다. 눈물에 피의 농도가 진해지는 만큼 치유의 효과가 강해지는 이능력. 그 대가는 자신의 수명이다.
“명경 씨, 제가 어떻게든 치료해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 대신 저 악마를 처치해주세요. 저 악마에게 저랑 친한 사람이 열 명도 넘게 죽었어요. 저는 저 악마에게 복수할 능력이 없으니까 이렇게 치료를 하는 것으로 힘을 보탤게요.”
더 이상 대답할 여유가 없는 김명경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모두를 위해서... 꼭 부탁드려요. 다 끝내고 다시 저에게 걸어오시는 거예요. 꼭이에요... 걸어서 오셔야 해요.”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원래 이번 에피소드는 5화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한 화 더 추가되는 상황이 발생했네요 ㅎㅎㅎ;;
요즘 정말 아쉬운 게, 날씨가 쌀쌀해져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기 힘든 계절이 됐다는 거예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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