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전패의 이능력자(5)
당연히 본 작품에 등장하는 단체나 인물들은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시합 날이 밝았다. 연수 누나가 오늘 시합에서 이기면 자기가 맛있는 걸 해주겠단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진정이 되는 듯 싶었다.
얼마 전부터 나의 오리지널 기공 운용법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주일 전에 있었던 전투에서는 이생물체에게 제대로 된 일격을 먹였다.
분명히 성과는 있었고, 나의 도박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 이겨야만 의미가 있다. 오늘 진다면 나에게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지원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능력 관련 시설 사용, 의료 지원, 연구 자료 제공 등과 같은...
시합장으로 들어가자 지름이 20m 정도인 원형 경기장과 대전 상대가 보였다.
상대는 학년 랭킹 200위권의 김진원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456위. 최하위다. 내게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경기장 가운데로 걸어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여! 이지후, 오늘 지면 전투 요원은 물 건너가는 거라며?”
“알면서 묻지 마라.”
“내 손으로 널 보낼 수 있어서 영광이네.”
나는 말없이 뒤돌아섰다. 속으로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성윤이랑 현준이가 그러더라고. 널 오늘 보내버리면 앞으로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진원이는 성윤이와 현준이 그룹에 끼고 싶어서 안달이 난 녀석 중 하나였다.
고개를 들어 2층의 관람석을 잠시 쳐다봤다. 날 경멸어린 시선으로 내려 보는 성윤이의 얼굴이 보였다. 저 녀석은 도대체 왜 이리 날 싫어하는지... 그 옆의 현준이야 성윤이 따라 하는 걸 테고.
대결 시작 전에는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이름 이지후, 주공격 이능력은 기공형 이능력인 무형의 날이며, 등급은 D+, 그 외 주이능력은 이동형 이능력인 변덕을 부리는 발걸음이고 등급은 C-입니다.”
“이름 강진원, 주공격 이능력은 기공과 방출형 이능력의 혼합인 폭발하는 주먹이며, 등급은 B+, 그 외 주이능력은 방어형 이능력인 돌처럼 단단한 피부고 등급은 B입니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심장은 마치 채에 난타당하는 드럼처럼 울렸고, 다리는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렸다. 경기장은 작은 상자처럼 좁게 느껴졌고, 상대방의 덩치는 이전보다 배는 크게 보였다.
솔직히 무서웠다. 내가 했던 노력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거 같아서.
마른 침을 억지로 삼켰다.
진원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내 얼굴로 주먹을 날린다. 고개를 틀어 피하자 복부로 주먹이 한 방 더 날아온다. 그 주먹에는 부글부글 끓는 듯한 이능력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옆으로 뛰며 그 마저도 피해냈다.
- 퍼벙!
그의 주먹이 폭발을 일으켰다. 범위가 꽤 넓은 공격인지라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고, 옆구리는 그을렸다. 다행하게도 큰 상처는 아니었다.
이게 저 녀석의 능력이었다. 주먹을 피했다 하더라도 바로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멀찍이 피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능력에 당하고 만다.
다시 녀석이 다가왔다. 나에게 폭발의 기운이 담긴 주먹을 뻗는다.
몸의 전신으로 이능력의 기공이 담긴 선을 연결시켰다. 찌릿하는 느낌이 완전하게 연결됐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 복부를 비수 모양 이능력으로 찌른 후 옆으로 빠져나왔다.
내 손을 바라봤다. 손이 저렸다. 내 공격은 전혀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진원이의 돌처럼 단단한 피부는 이름 그대로의 기술이었다. 전신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이능력을 발동한 후, 다시 이능력의 기공으로 피부를 덮어 강화하는 능력이었다. 세세하게 컨트롤 할 필요가 없기에 편한 능력이었다. 다만 몸놀림이 둔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내 공격력으로는 뚫기 힘든 능력이다. 폭발하는 주먹 역시 내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능력이었고. 여러모로 나랑 상성이 안 좋은 녀석.
다시 손의 이능력을 갈퀴 모양으로 바꾸어 네 번에 걸쳐 그의 몸을 긁어냈지만 마치 새끼 고양이가 할퀸 정도의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주먹을 피해냈으나 폭발에 휘말려 다리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누구는 맞아도 끄떡없는데, 나는 피했는데도 다치고... 참 불공평하다.
지금 이 상태로는 답이 없다. 출력을 더 높이는 수밖에.
새로운 기공 운용법이 있기에 가능은 했다. 다만 아직 완벽하게 완성된 것이 아니라 뇌가 타버릴 듯 아프다는 것과 체력이 급격하게 소모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부작용을 고려할 상황은 아니었다. 내게 선택권이란 것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핫!”
기합을 넣고 출력을 높인다. 순간 온몸이 저렸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진원이가 주먹에 폭발의 기운을 넣으면 재빠르게 도망쳤고, 보통 주먹을 내면 카운터를 치는 방식으로 시합을 풀어갔다.
- 쩌적!
나의 찌르기가 진원이의 명치에 열 번쯤 들어갔을 때였다. 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세하지만 그의 돌처럼 단단한 피부에 선이 그어졌다.
진원이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믿기지 않나보다.
“어... 어떻게?”
“왜 무섭냐?”
“의외라서 조금 당황한 것뿐이야. 그리고 지금 네가 나한테 무섭다고 할 처지가 아닐 텐데.”
진원이의 말 대로였다. 나는 그의 공격을 단 한 번도 맞지 않았지만 폭발 능력에 영향을 받아 허리와 다리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 이 어색한 느낌은 뭐지? 저 녀석... 내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어.
분명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왜 이런 느낌이 스쳐지나간 걸까?
확인을 해야만 했다. 다시 이전에 때렸던 곳을 갈퀴 모양 이능력으로 긁어냈다. 그가 처음으로 팔을 들어 막아냈다.
그렇구나. 내 공격을 의식하기 시작했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두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눈을 감은 연수 누나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지르는 명경이가 보였다. 그 옆에는 동현이와 재성이가 앉아 있고.
더 이상 진원이가 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온몸의 세포가 활성화 되는 느낌이 들었고, 오감이 힘을 모아 내가 서 있어야 할 곳과 서 있으면 안 될 곳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가 한 발 내딛으며 주먹을 뻗었다. 이렇게 되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안전하지 않다. 여기서 옆으로 두 발 뛰어야 한다.
이렇게 명확하게 인지가 됐다.
새로 이능력이 발현된 것은 아니었다.
패배와 패배로 축적한 경험과 여태까지 한 대결 내용을 모두 암기한 내 노력이 합쳐져 마치 선지자의 가르침처럼 변했다.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일깨워주었다.
손에 기공을 흘려보내 비수 모양 이능력을 더욱 강하게 분출시켰다. 팔의 근육이 찢어지려 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이길 수 있어!”
그에게 뛰어들었다. 복부를 향해 손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가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하려 했다. 예상 범위 안의 움직임이다. 여기서 내가 할 행동은...
- 퍽!
그의 얼굴로 정확하게 내 오른발 상단 발차기가 들어갔다.
“큭!”
전진밖에 모르던 그가 뒤로 물러섰다. 침을 뱉는데, 붉은 것이 섞여있었다.
그가 말했다.
“제법이네. 조금 하네, 조금 해.”
“세 걸음 뛴 후, 주먹을 올려친다.”
“뭐라고?”
듣지 못 한 것 같았다. 작은 소리로 말했으니 당연한 일.
그는 내 말대로 세 걸음 뛴 후, 주먹을 올려쳤고, 나는 가뿐하게 피해냈다. 다음 공격은 왼손에 폭발의 이능력을 실어 내 복부를 치는 것일 테다.
이번에도 예상대로였다.
모든 공격을 피해낸 후, 그의 명치에 두 번을 더 가격했다. 그러자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당황으로 물든 그의 얼굴도 함께.
그가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돼...”
다음 일격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팔에 기공을 모으며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윽...”
신체가 이능력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휘청였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찌직,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길, 조금만 버텨주라고. 단 한 번이면 돼.”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허리를 폈다. 그러자 다리에서 피가 콸콸콸 쏟아져 내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의 길이 이어졌다.
“단 한 번만 버텨달라고.”
진원이를 똑바로 쳐다봤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남은 건 기세 싸움이다. 허세라고 표현해도 할 말은 없고.
그의 복부를 향해 손을 겨누었다. 마치 예리한 검을 든 것처럼.
“솔직히 말해서 이게 마지막 공격일 거 같네. 내 몸이 더 이상 버텨주지 못 할 거 같거든.”
“이정도면 너 치고는 잘 한 거다.”
“아직 진다는 말은 안 했는데, 난 이길 생각이라고.”
“흥! 무리다.”
“복부 조심해라. 네 돌처럼 단단한 피부가 으깨지는 모습 보기 싫으면.”
“허... 허세는...”
공격할 곳을 예고하는 것은 참으로 멍청한 짓이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기회가 단 한 번뿐이기에.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그의 폭발의 주먹을 옆으로 뛰어 피한 다음 다시 달려들어 예고대로 그의 복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보인다. 공격이 진짜로 복부로 올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을 향할 것인지 판단을 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나는 정말로 공격을 한 번밖에 못 할 것이며, 상처가 난 그의 복부가 아닌 다른 곳은 쳐봤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무조건 온 힘을 다해 복부를 찔러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다음 번도 없고.
복부 공격을 예고한 것은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한 포석.
내 손이 그의 몸통에 거의 다다른 순간 나는 어깨를 틀며 발을 차는 동작을 보여줬다. 그러자 복부를 감싸고 있던 그의 팔이 얼굴로 움직였다.
예전처럼 내 공격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면 이런 조약한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심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법이다.
발은 차지 않는다. 그대로 손을 찌른다.
단 한 번의 기회를 거머쥐기 위해 내가 여태까지 했던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는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
나는 시합이 끝나자 치유 이능력으로 응급처치만 대충 받았다. 관계자들이 안정을 취하고 검사를 해야 된다고 했으나 무시했다.
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해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그래서 선생님의 연구실로 달려갔다. 연구실의 문이 반쯤 열려 있어, 나는 활짝 열며 외쳤다.
“선생님, 이겼어요! 저 대단하죠. 칭찬해주세요.”
예상과 달리 나를 반겨준 것은 선생님의 칭찬이 아니었다.
천장에 목을 매달은 채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과 코를 찌르는 악취였다.
머리가 이능력을 사용할 때보다 더 아픈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선생님을 만져봤다.
“선생님... 저 이제 전패의 이능력자에서 벗어났어요. 평소처럼 그 따뜻한 손으로 제 손을 붙잡아주셔야죠. 칭찬해주셔야죠. 약속했잖아요.”
선생님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데 왜 이리 손이 차가워요...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요...”
눈물이 흘렀다.
“칭찬 안 해주셔도 좋으니까 말 좀 해보세요.”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 대한 사랑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6화까지 갈 줄이야...
나는 분량조절도 못 하는 바보 ㅜㅜ
아... 지금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박명수의 ‘바보가 바보에게’네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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