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화, 김완석(3)
더 로비스트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국명, 사건등은 현실과 일절 관계없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이는 독자분들의 착각입니다. ^^;;;;
“그래서 변한 거냐? 말투도, 행동도...”
“군대에 있으면 누구나 그정도는 변하지 않나?”
“너 정도는 아니거든!”
버럭 소릴 지르던 강동진은 미안했는지 슬쩍 눈치를 본다.
그걸 본 강현우는 괜찮다는 듯 씨익 웃어보인다.
“언제 말할 거냐? 가족들에게 말이야.”
“조만간 해야지. 할 일도 생겼는데...”
“할 일? 그게 뭔데?”
“군수 지원 사업이라고 병참, 정보, 기술지원, 보급, 수송 등 부수적인 군사 용역을 제공하는 회사를 말해!”
“군납 회사를 말하는 거냐?”
“군납 회사 물품을 받아서 파는 기업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은 거겠지.”
“도매 장사, 아니 무역 비슷한 거네. 아버지가 들으면 좋아하시겠어. 툭하면 해외의 일꾼 상사맨이라고 외치곤 하셨으니까!”
“아마도... 그러겠지.”
맞는 소리라며 강현우는 끄덕여간다.
강동진은 잠시 턱을 만지작대다 물었다.
“그 군수 지원 사업 회사 말이야. 나 한자리 줘라!”
“형도 하게?”
“해외를 누빈다는데 멋있고 좋잖아!”
멋타령을 해대는 그에 강현우는 절래절래 내젓는다.
“아직 결정 된 거 아니니까 괜히 잘 다니는 회사 그만 두거나 하지 마!”
“걱정마라! 난 눈앞에 있는 것만 인정하니까 말이야.”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어간다.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있는데 방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문가로 가 자그마한 구멍으로 상대를 확인한 강현우는 안으로 들였다.
“11월이 목전인데 여긴 아직도 이리 덥습니까? 아주 죽겠습니다.”
더워 죽겠다는 듯 손으로 연신 부채질하며 들어오는 이 사람, 다름 아닌 국정원 요원 오태석으로 호텔에 들어온 이후, 이 사람이 주변 일들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필리핀 정부가 대위가 데리고 있던 사람들을 다 잡았다고는 하지만 남은 이들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하기 때문이다.
“현우야! 나 방에 가서 좀 쉴게!”
상대가 국정원 요원이라서 그런가? 강동진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래도 일반인이 국정원 사람을 마주하는 건 좀 그랬나 보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본 오태석은 쇼파에 엉덩이 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일이 좀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복잡하다니?”
“일단, 이것을 보고 말씀 하시죠!”
오태석은 들고 있던 다이어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건 김완석의 진술서로 왜 자신이 붙잡히게 된 것인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잠깐! 대풍무역? 여긴 아버지 회사인데?”
순간 머릿속에 편의점에서 했던 강현철의 말이 메아리치기 시작한다.
아들아! 우리 회사에 김대리라는 사람이 있거든! 싹싹하고 일 잘하고 아주 재주꾼이야. 재주꾼! 근데 말이야. 요새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어. 회사에도 안 나와!
‘혹시 김대리라는 사람이... 김완석이었던가?’
대충 이야기를 끼워 맞춰 보니 얼추 맞는 것 같다.
진술서를 읽은 강현우는 종이를 탁자에 내려놓고 물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아버지가 대풍무역 비자금 문제를 조사하다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군요.”
그렇다.
김완석이 도병철에게 납치당한 이유, 아버지가 그토록 힘들어 했던 이유. 그건 다 대풍무역이 몰래 만들어 놓은 비자금 때문이었다.
발단은 이랬다. 전무가 이십년간 거래한 곳이라며 계약서만 작성해 팩스를 보내라고 일을 시켰었다. 당시 그것을 김완석, 김대리가 담당을 했는데 막상 팩스를 보내고 나니 계약서에 명시 된 회사가 최근 추진 중이던 사업과 연관이 있는 곳이라 추가 계약을 위해 연락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대표 전화가 받질 않자 핸드폰 번호로 했는데 받는 이가 자신은 계약서에 명시 된 회사는 일절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받은 사람이 사는 곳이 이라크가 아닌 사우디 아라비아였으며 주소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인 곳을 적어 놓았다.
이상하다 싶었던 김대리는 부장인 강현철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11년 전, 그 역시 했던 계약이라 걱정이 된 그는 비밀리에 조사에 들어갔다.
두 달에 걸친 조사 결과 계약서에 명시 된 회사는 대풍무역과 190건이 넘는 추가 계약을 맺었으며 이십년에 걸쳐 6200억이라는 돈이 그쪽으로 흘러 들어갔음을 알 게 되었다. 그제야 그 회사가 대풍무역의 비자금이 모이는 일종의 금고였음을 알 게 된 두 사람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상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평판도 좋고 일처리가 확실했던 사람임만큼 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무에게 이걸 말하자마자 김대리의 필리핀 출장이 결정 되더니 세부에 온 지 불과 세 시간만에 도병철에게 납치를 당하고 말았다.
즉, 상무 역시 비자금과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강현우가 물었다.
“비자금 금고라는 그 회사 조사는 했습니까?”
“알아보니 페이퍼 컴퍼니입니다. 그것도 조세회피처(tax heaven: 조세회피지역, 세금을 피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함) 인 파나마에 위치해 있고 말입니다.”
“그곳이라면 자금 추적이 어려워서 장부가 있지 않는 한 처벌하기 힘들텐데요.”
“그나마 다행히 아버님이신 강현철 부장님이 장부를 가지고 있어서 비자금 형성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김완석씨가 그러더군요.”
“그거 다행이군요. 그게 없었다면 납치극의 진범을 찾기 힘들 테니 말입니다.”
“저 역시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인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간다.
곁에서 지켜보던 강현우가 물었다.
“그럼, 한국에 들어가면 아버님께 장부를 검찰에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그건 잠시 보류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궁금하다는 듯 오태석을 쳐다본다.
“진술서 작성 후, 들은 이야기지만 비자금 문제에 서울 삼대 폭력조직 중 하나인 칠성파가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폭력조직이 말입니까?”
“예! 비자금으로 투입된 자금 중에 정체가 불명확 것이 있는데 그게 다 칠성파가 관리하는 회사들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불법 자금 세탁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정황상 그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관자놀이가 지끈 거리며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회사는 물론이고 폭력조직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김완석씨가 구출 됐다는 사실이 한국에 알려지면 제 아버지는 위험해지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정부에서 이번 일에 대해 정보 공유 및 유출을 금지 시킨 상태입니다. 추가 피해가 없도록 말입니다.”
“그것만 믿고 있기에는 불안 요소가 많습니다. 혹시 칠성파에 대한 수배나 압수 수색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겁니까?”
“저도 그 말을 해봤지만 벌집을 헤집을 수 없다며 이대로가 좋겠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빨리 귀국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말이군요.”
“장부와 증인이 있는 만큼 그들을 처벌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십시오.”
오태석은 그러겠다고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나, 막상 나가려니 뭔가 걸렸던지 걸음을 멈추고 만다.
“참!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필리핀 정부에서 반군 죽인 걸 무마해준 겁니까?”
“제가 설명할 상황이 아닌 듯 싶습니다만...”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런 것 하나 알아오지 못한다고 위에서 하도 찍어 눌러 대서요.”
알려 줄 수 없냐며 오태석이 두 손을 모아 빈다. 콧등을 긁적이던 강현우는 말해주겠다고 답을 하였다. 어차피 내일 오후 기자 회견이 열리면 알 게 될 것인데 굳이 감출 필요는 없는 듯해서 그랬다.
“필리핀 정부 협상 테이블에 하샴을 데려다 놓았을 뿐입니다.”
“잠깐만요! 하샴이면...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의 수장을 말하는 겁니까?”
“예! 그 사람이 맞습니다.”
맞다는 말에 오태석은 혀를 내둘러간다. 모로민족해방전선의 르수아리의 군세가 약화되면서 현재 필리핀 이슬람 반군은 수장은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의 하샴이다. 그런 사람을 일반인, 그것도 타국 사람이 정부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지원 세력이 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반군 특성상 자신들이 내건 조건을 수락하면 모를까 그냥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협상이 틀어지면 테러 행위로 곧바로 태세를 바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걸 강현우가 했다고 한다.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다 없어진다.
‘대체 이 사람 정체가 뭐야? 뭔데 하샴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에 강현우가 한 마디 한다.
“안 가십니까?”
“가긴 가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사정이 있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가르쳐 드린다고 해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저 이외에는...”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재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그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될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근데... 협상은 잘 됐습니까?”
“내일 오후에 기자회견 한다고 하니 대충 어떨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맞다! 이거 언제까지 숨겨야 합니까? 기자 회견 전까지만 감추면 됩니까?”
“혹시 모르니 그때까지만 정보 제한 걸어두십시오.”
“그렇게 하죠. 그나저나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정보 얻었다며 오태석은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한다. 하긴 필리핀 정세가 바뀔지 모르는 판국에서 이것이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것이리라. 희희낙락대는 그를 내보내고 홀로 남은 강현우는 가방에 옷을 챙기다 말고 잠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 일 없어야 할텐데...”
자꾸만 느껴지는 불길함에 콧등은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마치 앞으로의 일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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