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장, 말괄량이 프린세스(3)
더 로비스트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국명, 사건등은 현실과 일절 관계없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이는 독자분들의 착각입니다. ^^;;;;
이틀 뒤, 두바이 인근의 한 저택 정문 앞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경비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다가오자 운전을 하고 있던 한국군 복장의 사내가 말했다.
“셰이드 갈라인 님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무전을 통해 사실 유무를 확인한 경비들은 정문을 열었다.
차가 안으로 들어가자 저택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왕궁 부럽지 않은 엄청난 규모에 한 번 놀라고, 수영장, 미니 골프장 등 각종 시설물들에 한 번 더 놀랐다. 운전수 겸 통역병으로 온 분부중대 소대장 최성수 중위는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을 한다.
“정말 으리으리하네. 개인 자산만 34조라더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네.”
확실히 그런 듯하다. 길이 4차선마냥 넓은 데다가 건물은 물론이고 수영장에도 황금으로 칠한 듯 누런빛이 번득였고 크기도 컸다. ‘나 돈 많은 놈이요!’라고 외치는 듯한 그 풍경에 절로 고개가 내저어진다.
광화문에서나 볼 법한 라운드형 분수대를 돌아 저택 입구에 차를 서서히 세웠다.
차 옆으로 터번 없이 칸두라 복장을 한 사십대 초반의 사내가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앗쌀라 무 알라이쿰(안녕하시오)!”
“와 알라이쿰 앗쌀람!”
답을 하는 조중위를 중년 사내가 안으며 한 손으로 등을 두들겼다.
“간만이군! 조중위!”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셰이드 갈라인 부총리님!”
아까와는 달리 영어로 말을 하는 두 사람은 제법 교류가 있었던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그에게서 시선을 뗀 셰이드 갈라인은 강현우를 보며 물었다.
“이 사람인가?”
“특전사 출신으로 얼마 전 있었던 불법 밀매 업자를 사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국적도 다른 병사 일곱을 지휘해 두 개 소대를 섬멸했다던 그 사람이군.”
“그렇습니다, 부총리님!”
굳어 있던 낯이 그제야 조금씩 풀어진다. 딸과 동승하는 사람인만큼 어떤 인물인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름 안심된다며 끄덕이던 그때, 문이 활짝 열리며 아이돌 그룹 블랙잭의 마크가 달린 미니 선풍기를 든 열다섯 살의 귀여운 소녀가-말이 열다섯 살이지 키도 168cm에 이르고 팔다리가 길쭉한 것이 언뜻 보기에는 19세 가량 되어 보이는, 그야말로 자이언트 베이비이다.-달려 나왔다. 그 뒤로 경호원인 듯한 사내들 여섯이 함께 달려 나왔다.
“아빠! 나 늦었어.”
“어차피 자가용기를 타고 갈 건데 뭘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이냐?”
“가서 할 게 많아서 그렇지. 어! 근데 이 사람들 누구야?”
그녀가 조중위와 강현우를 보며 묻는다.
그러자 셰이드 갈라인은 빙그레 웃으며 그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한국군 장교와 특전사 소속 병사로 이번 여행에 동승해 네 경호를 도와주기 위해 왔단다.”
“그럼, 이 사람들이 코리아 사람이라는 거야?”
“그렇지.”
순간 소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어렸을 때부터 KPOP과 드라마에 빠져 한류 매니아가 됐지만 정작 한국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만나 보고 싶어도 안전 문제로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열다섯 살 생일 선물로 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에서 한국 사람과 같이 갈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거기다 모델 못지않은 강현우의 외모는 그녀가 꿈에도 그리던 한국 아이돌을 보는 듯했기에 더더욱 좋았다. 강현우는 노골적인 그녀의 시선 때문에 마치 자신이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기분이라 불쾌했지만 아이돌 박사 박상병을 통해 한류 팬들의 성향이 어떤지 잘 알기에 꾹 참았다.
“나······ 민낯인데······.”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 소녀는 집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가 멍하니 그녀의 뒤를 쳐다보던 그때 셰이드 갈라인이 헛기침을 해 댄다.
“미안하네. 요즘 부쩍 화장에 신경을 써서······.”
“화장을 말입니까?”
“K뷰티가 유행이라고 하더군.”
K팝에, 팬클럽 회장에, 드라마에, K뷰티까지 진정한 한류 광팬인 듯싶다.
이때 조중위가 슬쩍 셰이드 갈라인에게 말을 건넸다.
“부대장님 전해 드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잠시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세.”
“그렇게 하시죠.”
셰이드 갈라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며 손을 문 쪽으로 내민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조중위는 강현우를 보았다.
“자제분이 곧 나올 것이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조중위와 셰이드 갈라인이 집으로 들어가자 근처에 있던 경호원들이 서로를 보며 눈짓을 했다. 그들은 잠시 주변을 살피는가 싶더니 강현우에게 슬금슬금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건넨다.
“네가 소피아(셰이드 갈라인 딸 세이카 미국명)의 경호를 위해 온 한국 사람인가?”
“그런데 무슨 일이지?”
“일은······. 우리도 소피아 님의 경호원이라서 물어본 것이지. 근데 총은 가져왔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치안이 좋다고는 하지만 실정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 말이야.”
서로를 보며 실실대며 웃는 것이 아무래도 그에게 겁을 주려고 한 말인 듯싶다.
비아냥대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저쪽에서 보면 강현우는 굴러들어온 돌이니 딱히 반갑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가 불편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말을 이어 간다.
“총은 이쪽에서 제공한다고 들었는데······.”
“뭘 쓰지?”
“글록17!”
“잘됐군! 내게 보조로 쓰는 글록이 있는데 말이야.”
질문을 한 사내는 뒤춤에서 글록 하나를 꺼내 건넸다.
‘3세대 글록이군.’
90년대 말부터 글록은 트리거가드 전방에 액세서리 레일이 들어갔으며 그립 전방에 울이 추가되었다. 그립 양 측면에 홈까지 있는 걸로 봐서는 3세대 글록이 맞는 듯했다. 권총을 들어 전방을 겨누는 강현우를 본 사내는 씩 웃더니 대뜸 권총을 잡고 빼앗아 버렸다.
“이봐! 경호하겠다는 사람이 총을 그리 쉽게 뺏기면 어떻게 해? 크크크!”
한바탕 웃어젖히는 그들을 보며 콧등을 찌푸리던 강현우는 상대의 손을 비틀어 총을 빼앗았다.
거기에 발목을 후려쳐 바닥에 넘어트린 것은 덤이고 말이다. 그러자 볼썽사납게 나뒹굴던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거야?”
“너야말로 경호원이 총을 뺏기면 어떻게 하나?”
“이······ 자식이!”
소리치거나 말거나 강현우는 총을 귓가로 가져가 슬라이더를 당겼다 밀었다를 반복했다.
그걸 본 주위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는 짓이 글록을 제법 다뤄 본 듯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총 없나?”
딴 총 달라는 말에 땅에서 일어서던 사내의 낯이 싸늘히 굳어진다.
거부한다는 건 총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나워진 눈빛으로 노려보던 그가 물었다.
“무슨 문제 있나?”
“정비 불량! 슬라이더에 먼지가 많은 모양이야.”
“뭐? 내가 얼마나 총 관리를 잘하는데 무슨······. 거기다 말이 경호지, 소피아 님하고 수다나 떨러 온 주제에 무슨 권총 타령이야? 그냥 주는 대로 받아!”
“그래, 난 군인이지. 경호가 뭔지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하지만 목숨이 달린 일이다. 총 간수 하나 못하는 병신 쪼다에게 들을 말은 아닌 듯싶은데······.”
“뭐라고?”
“코헨!”
버럭 소릴 지르던 사내는 뒤에서 다가오는 이를 보곤 자세를 바로 한다. 모양새로 보아 그들의 상관인 듯싶다. 그는 강현우에게서 총을 빼앗아 가볍게 분해한 뒤 슬라이드 안쪽을 살폈다. 그러고는 미간을 좁히더니 코헨에게 슬라이드를 내밀었다. 건네받아 살펴보니 안쪽에 검은 가루들이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사격하면서 발생한 화약 잔여물이 쌓여 생긴 듯하다.
“아바스! 여분의 글록 하나 가져와!”
“알겠습니다.”
새 총을 가져오게 한 그가 강현우에게 악수를 건넸다.
“도르 비톤이다. 경호팀장이지. 부하들이 장난이 심해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게! 총은 새로 준비해 줄 테니 염려 말고······.”
“딱히 화난 건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그렇다면 한마디 더하지. 여기 있는 모두 군생활을 십년 이상은 한 사람들이야. 한마디로 자네에겐 선배라고 할 수 있지. 급하게 합류한 만큼 많은 건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주게!”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전 경호가 뭔지 모릅니다. 하지만 목숨이 달린 만큼 최대한 도울 테니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전우로서 봐 주시기 바랍니다.”
비톤은 넙죽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전 일로 적개심을 가지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그건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다. 비톤은 아바스가 가져온 새 총을 직접 확인한 뒤, 강현우에게 건넸다.
“자네는 여행 동안 소피아 님의 곁에 있도록 하게. 경호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가 동승한 이유가 한국 사람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니 옆에서 가볍게 대화를 하면서 기분을 맞춰 드리게! 그게 우리한테도 도움이 되니 말이야.”
변덕이 죽 끓듯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녀 때문에 혼쭐이 난 경험이 많은 그였기에 강현우에게 대인마크를 시킨 것이다. 그 역시 잘 모르는 경호 일에 나서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듯싶어 그러겠다고 하였다. 물론 뒷일은 어찌 될지 모른 채 말이다. 이때 소피아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준비 끝! 출발!”
한 팔을 쳐들고 씩씩하게 외치는 것이 여장부가 따로 없다.
비톤은 귀여워 보였던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불편해도 당분간만 소피아 님에게 경어를 써 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속닥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갸웃대던 소피아가 말했다.
“근데 이름이 뭐야?”
“저 말입니까? 강현우입니다!”
“가앙 혀~언 우?”
“편하게 미스터 강이라고 부르십시오!”
“싫어! 제대로 부를래! 강히~연우! 깡현누! 강현우! 이번엔 제대로 불렀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말을 듣고서야 소피아의 얼굴이 펴진다.
상당히 고집이 센 것이 요 며칠 힘이 좀 들 것 같다.
문이 열리며 조중위와 셰이드 갈라인이 밖으로 나섰다.
면담을 요청하기에 이야기가 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부대장님께 그렇게 한다고 전해 드리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이는 조중위를 뒤로 한 채 셰이드 갈라인이 소피아를 안아 든다.
그녀는 아버지 앞이라 그런지 아까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열다섯의 소녀로 돌아간다.
“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예! 아빠!”
꽃이 피듯 활짝 웃어 보이던 그녀가 몸을 돌려 왼손을 치켜든다.
“출바아~알!”
발걸음도 당당하게 내딛는 소피아를 쫓아 경호원이 움직였다.
강현우 역시 조중위에게 경례를 하고는 그들을 따라갔다.
딸을 태운 차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셰이드 갈라인이 말했다.
“참! 진짜 쥬비앙 알렉산더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현재 인터폴과 공조 아래 추적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쥬비앙의 사주를 받고 불법 무기를 밀매하는 일에 우리 쪽 정부 관계자 알리 사이드가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고 붙잡았네. 내어 줄 테니 그를 통해 알렉산더의 행방을 알아보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중동 지방의 기류가 좋지 않아! 가짜긴 해도 무기 밀매업자가 사살되면 무기 시장이 움츠러들기 마련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전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네. 구매자가 있으니 판매자가 활동하는 법! 물밑에서 누군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걸 알아내야 하네.”
“알겠습니다. 조사 경과가 들어오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부탁하네.”
조중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돌린다.
차에 올라타는 그를 보며 셰이드 갈라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냐? 중동 지방을 흔들려는 자는?”
셰이드 갈라인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내뱉는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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