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장, 끊어진 영상 전화(1)-수정완료
더 로비스트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국명, 사건등은 현실과 일절 관계없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이는 독자분들의 착각입니다. ^^;;;;
PMC의 영입 제안도 받고 제법 능력이 되는 모양이야.
영어로 된 문장을 읽은 강현우는 콧등을 찡그렸다.
“PMC에서 연락한 건 어떻게 알고...”
말을 멈춘 그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면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했지만 이내 곧 그게 착각임을 알았다. 상단 부분에 카메라 및 통화중 녹음을 나타내는 아이콘이 떠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누군가 핸드폰을 이용해 강현우를 도청 및 영상 녹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의가 부족해. 그래선 이 험한 세상에서 살기 힘들거야!
훈시하는 듯한 보이지만 은근 비꼬고 있는 것이 장난을 치는 것 같다.
순간 울컥했던지 강현우는 한껏 좁혀진 눈매로 모니터를 째려본다.
“정체도 숨긴 채 그러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모장에 글이 써지기 시작한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강현우!
마치 눈앞에서 마주하고 대화를 하듯 말을 하는 게 도청하고 있는 건 확실한 듯 싶다.
물끄러미 메모장을 보던 강현우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려갔다.
“그래서 뭘 원하는 거지? 리비아탄!”
그 전에 대답부터 하지! 레드의 이메일 어떻게 아는 거지?
메시지를 읽은 그는 슬며시 끄덕였다.
“당연히 알지. 왜냐면 내가 레드의 후계자니까...”
메모장에 글이 안 써진 것 뿐인데 화면이 멈춘 듯 보인다. 대화를 하듯 주고받다 보니 그런 것처럼 느낀 모양이다. 이젠 고요함마저 느껴지던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액정에 리비아탄이라고 쓰여 있는 걸로 봐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물론 목소리는 음성 변조기로 감췄지만 말이다.
“레드의 후계자라고? 네가?”
“안 그랬다면 네 존재는 물론이고 레드의 이메일을 어떻게 알고 있겠어?”
“그걸론 부족해! 네가 레드의 후계자라는 것 말이야.”
“그럼, 헌터와 엘리스에 대해서도 말할까? 아니, 네 별명이 오줌싸개라는 걸 말하면 납득을 할지도 모르겠군.”
“...지금 뭐라고 했지?”
“네 어릴 적 별명이 오줌싸개라고 레드가 말해줬다고!”
순간 버럭 소릴 지르던 강현우는 아차 싶었다. 오줌싸개 별명은 리비아탄의 역린이나 다름없어 전에도 이 별명 한 번 썼다가 1년 동안 온갖 시달림을 당했었다. 얼마나 그랬으면 엘리스가 다 학을 뗐을까? 조용해진 핸드폰에 절로 식은땀이 나오던 그때 리비아탄이 물었다.
“그 별명 레드가 알려줬다고?”
“어...어! 그가 가르쳐줬어.”
“좋아! 네가 레드의 후계자라는 거 인정할게! 대신 그 별명! 다시는 꺼내지만 그랬다간 내가 어찌 돌변할지 나도 모르니까 말이야.”
갑자기 수긍을 하는 그에 강현우는 당황해하였다. 별명 하나 안다고 이리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이 별명을 아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레드 혼자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즉, 레드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다는 소리다. 속사정을 모르는 그로서는 알았다고 답을 하고는 얼른 화두를 바꿨다. 괜히 또 레드를 들먹었다가 그가 돌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 앨리스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겠지?”
“그걸 왜 묻는 거지? 그녀가 네 존재를 알면 안 되나?”
“안 되기 보다... 그녀는 아마 모를 거야. 내 존재를...”
“후계자인 널 앨리스가 모른다고?”
“내가 알기론 레드님이 언급 한 번 했다고 하는데... 그 분 성격상 제대로 알려 줄 리 만무하거든!”
“하긴 레드라면 ‘나 후계자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끝내겠지.”
같은 생각이라는 듯 리비아탄은 동의를 표한다.
“지금이라도 너에 대해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고 싶어도 연락처를 몰라! 레드님이 그랬거든! 내가 널 후계자로 내세우지 않고 사라지면 그땐 조직을 의심하라고 말이야.”
“그 말은 레드도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것을 예상했다는 소리군.”
“내 생각에 그런 것으로 보여!”
“거! 재미있군. 천하의 레드가 예상했음에도 막지 못하고 모습을 감췄다?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군, 그래!”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것마냥 목소리에 기쁨이 넘쳐난다.
이제 좀 시선을 돌리겠구나 싶어 다행이다 싶던 강현우의 머릿속에 문든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맞다! 혹시 펠트라는 조직 알아?”
“펠트? 처음 듣는 이름인데? 왜? 문젯거리야?”
“레드를 찾고 있는 조직이라고 해서 말이야.”
“그래? 내가 한 번 알아봐주지!”
“정말이야?”
“레드만큼이나 너도 제법 흥미가 끌려서 말이야.”
일만 시켰다하면 돈부터 밝히던 리비아탄이 오늘은 무슨 일인지 순순히 그렇겠다고 답을 한다. 근데 강현우는 그의 호의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확인한다고 괜히 물어봤다 심기를 건드리는 날엔 골치 아프기 때문이었다.
“그럼, 펠트 알아보고 연락 줘!”
“그렇게 하지.”
통화를 끊은 강현우는 손에 쥔 핸드폰을 보았다.
‘그나마 한 가지 조각은 얻은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있어선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곧 그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 게 하는 일이 생겨났다.
***
“아자! 필리핀에서의 세번째 밤! 불태우자!”
필리핀에 온지도 사흘째, 나흘이면(주말 껴서 오일 휴가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강동진은 이곳의 밤문화를 깨우치겠노라 큰 소리로 외쳐댄다. 남들에게는 미친 놈 소리 듣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어쨌든 포부도 당당하게 어두워진 세부의 밤거리를 걸어가던 것도 잠시 이내 축 늘어져 버린다. 믿었던 업체에게 뒤통수 맞아 그런 것이다. 나름 유흥문화도 맡아서 해주겠다고 해놓고선 연락처란 다 막고 잠잠 무소식이다.
이래서 초보의 여행기란 항상 고달픔이란 단어로 장식이 되나 보다.
결국 되든 안 되든 혼자 해보겠다고 나서긴 했는데 어딜 가야하는 지 도통 모르겠다.
눈앞에 술집이 있긴 한데 가격은 얼마인지, 뭘 어떻게 마시는 건지, 여자는 또 어떻게 꼬셔야하는 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맘 같아선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싶은데 이놈의 나라는 그 흔한 PC방도 없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며 보는데 한 여성이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 120! 120!”
“뭐라고 하는 하나도 모르겠네.”
숫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가격인 것 같은데 무슨 가격인지 모르겠다.
말로 안 되겠던지 갑자기 팔을 잡고 끌고 가려고 한다. 덜컥 겁이 난 강동진은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아무리 술도 좋지만 필리핀 치안이 불안한 건 다 아는 사실인지라 괜히 따라갔다 무슨 일 당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백수마냥 주위를 돌아다니던 중 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목이나 축이러 가자!”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그에 대해 파악을 다했다는 듯 한국어로 응수한다.
“어써 오쎄요!”
“어? 한국말?”
“입짱료! 입짱료!”
반가워서 한 마디 했더니 곧장 명세서가 날아든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이곳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라 조용히 넘어간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맥주 하나를 시켜놓고 앉아있자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그만 쳐다본다.
야릇한 시선을 주는 것이 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누가 들으면 자뻑, 비호감이라고 할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단단히 분위기에 취했나 보다. 맥주를 들어 두어 모금 먹고 있자니 한 여자가 그의 앞에 앉아 양팔을 괴고 쳐다본다.
아까 주위를 둘러 볼 때 나름 이쁘다고 평가했던 그녀인지라 가슴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해댄다.
‘힘내자! 강동진! 모솔(모태솔로) 벗어나자!’
은연중에 컴밍 아웃까지 해대던 그는 슬쩍 그녀에게 메뉴판을 내민다.
마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시켜보라는 뜻. 이런 경험이 많은 지 받자마자 맥주를 가리킨다.
나름 자신을 위해주는 거라 강동진은 생각했지만 실상은 처음부터 무리하게 비싼 걸 시키면 갈까봐 그런 것이었다. 이렇듯 혼자만의 나래를 펼치며 그녀와 같이 있은 지 대략 삼십 분 가량 되었을까? 헌팅에 성공했다는 기쁨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강동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것도 영상 통화로 말이다.
“어? 형!”
“하하하! 그래, 형이다. 잘 지냈어?”
“아버지랑 한 잔 하고 들어가는 중이지. 근데 거기 어디야? 술집 같은데?”
“세부 바에 왔다. 그것도 여성이랑 같이!”
여자랑 있다는 말에 강현우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호~오! 출세했네. 형이 여자랑 같이 있고...”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너, 나 모솔이라고 놀려? 놀리냐고?”
“형... 모솔이었어?”
“...”
멍하니 쳐다보던 강동진은 슬쩍 화면을 여자에게로 돌린다.
한 마디로 먼 산 보기 스킬을 시전하는 중인 것이다.
“비겁하게 피하는 거야?”
“내가 언제 피한다고 그래?”
“지금 화면 돌렸...”
쾅!
테이블이 발에 차여 옆으로 튕겨나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도 떨어졌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드니 웬 필리핀 남성 둘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와 꽂힌다.
쿠당탕!
“끼아아아!”
바닥에 나뒹구는 그에 놀란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시끄럽다는 듯 한 사내가 그녀를 뒤로 밀친다. 그 과정에서 손이 가슴을 만졌고 화가 난 여자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옆에 있던 사내마저 그녀에게 시선을 뺏기자 강동진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사내들은 영어로 저 놈 잡으라고 소리치며 달려간다.
난장판이 된 가게로 한 사내가 걸어 들어오더니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들어 전원을 껐다.
그리고는 사라진 강동진과 사내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바 뒷문을 통해 골목으로 들어간 강동진은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미친 듯이 달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까 오고간 덕에 조금이나마 길이 익숙하다는 것이다.
‘여기다!’
골목을 꺾기 무섭게 강동진은 가게 문 틈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주위가 워낙 어두운 탓에 그리 깊이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잘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일까? 쫓아오던 사내들은 그의 앞을 지나쳐 갔다.
잠시 숨을 고르던 강동진은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쓰고는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다행이 그들은 없는 듯 싶어 고개를 푹 숙인 채 큰 도로로 갔다. 그쪽에 경찰서도 있고 해서 안전할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큰 도로로 나서기 무섭게 택시를 탄 그는 숙소로 가자고 하였다.
“이제 살았다.”
뒷좌석에 누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까 쫓아오던 사내들에게 놀라서 그런지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마도 충격을 받아서 그런 모양이다. 죽은 듯 누워 있은 지 10분 되었을까?
한 호텔 앞에 차가 멈춰 섰고 강동진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정문 앞에서서 아직도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는데 돌연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한국말로 말이다.
“강동진씨!”
“예~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데 커다란 주먹 하나가 날아든다.
젖혀지는 고개 위로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이내 흰자위를 드러낸다.
엉덩이를 위로 쳐든 채 엎어진 그를 보던 사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주위의 시선에 웃어 보인다.
“친구입니다. 한국인 친구!”
한쪽 팔을 목 뒤로 두른 그는 강동진은 데리고 도로에 주차 된 차로 갔다.
차에 태운 사내는 뒤춤에서 핸드폰을 꺼내 뒷면을 보았다.
그러자 투명한 케이스 사이로 호텔 문양이 찍힌 카드 키가 보였다.
“이 사람아! 카드 키는 따로 챙겼어야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차에 올라타간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 작가의말
이 글은 3권까지 쓰여져 있는 글이어서 시놉이 바뀌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몇몇 분들이 너무 작위적인 스토리 전개(재벌과의 연관되는 부분)라 하시니
그 부분을 도려내고 스토리의 진행을 빨리 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ㅜㅜ;;;
한 권 반이 넘는 분량이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ㅜㅜ;;;
아무튼 수정완료입니다. ^^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