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장, 앙켈(2)
더 로비스트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국명, 사건등은 현실과 일절 관계없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이는 독자분들의 착각입니다. ^^;;;;
필리핀 부르고스, 5시도 안 된 아직 초저녁이건만 이쪽은 유흥가답게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길가에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손길을 보내는 노상 바의 여인들은 뭇 남성의 가슴을 뒤흔든다.
쉬이 발길을 못 떼게 만드는 그들 사이로 강현우가 알렉산더, 레이첼과 헤인스가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여자가 끼어 있어서 그런가? 여종업원의 행동이 조심스럽다. 뭘 주문하겠냐고 묻는 그녀에 강현우가 영어로 말을 하였다.
“푸른 우체부 좀 불러 주십시오!”
놀란 듯 여종업원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 내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우는 푸른 우체부를 불러다고 재차 말한다.
쭈삣 대던 그녀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갔다. 잠시 후, 덩치 큰 한 사내가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건넸다.
“우체부는 왜 찾는 겁니까?”
“파파에게 전해주십시오. 생일날 먹은 케익이 고맙다고!”
“예~에?”
“그렇게 전해주면 알 겁니다.”
좀 전 여종업원과 똑같이 위아래로 훑던 사내는 이내 발걸음을 틀었다. 말없이 지켜보고만 알렉산더가 궁금증이 폭발한 듯 얼른 다가와 묻는다.
“대체 우체부가 뭐야?”
“앙켈의 대리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앙켈에게 전해주는 사람이지.”
“잠깐! 앙켈? 필리핀 어둠의 지배자 앙켈?”
앙켈, 필리핀 범죄의 아버지라고 할 만큼 그의 손이 안 닿는 것이 없다. 만약 벗어난 것이 있다면 그건 필리핀이 아니라고 할 정도니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어둠이 내리면 대통령도 고개를 숙인다는 앙켈을 직접 만나러 가겠다니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미쳤어? 그를 만나겠다고?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 아니라면 그만 둬!”
“알렉산더! 나도 위험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번 일이 ASG의 소행인지, 아니면 단순 납치범의 짓인지 확실한 상황 파악이 중요해! 만약 알아보지도 않고 달려들 경우 자칫 필리핀 반군과 전쟁을 할 수도 있어.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그를 만나야 해!”
자신을 쳐다보는 강현우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본 알렉산더는 난감해졌다.
절대로 포기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뒤에서 아까 왔던 덩치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파파께서 만나시겠답니다.”
“그렇게 하죠!”
자리에서 일어난 강현우를 따라 일행들도 일어섰다.
그걸 본 사내가 손을 내밀어 막아섰다.
“지금 뭐하는 거야?”
“파파께선 이분만 보겠다고 했습니다.”
“미쳤어? 그 위험한 곳에 얘 혼자 보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나서자 강현우가 제지를 한다.
“나 혼자 얼른 다녀올테니 걱정마!”
“야! 강현우!”
“별 일 없을거야!”
염려 말라고 하고는 세웠던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어이없다는 듯 보던 알렉산더는 이내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신다. 레이첼과 헤인스까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묵묵히 지켜보던 사내가 몸을 돌렸다. 길가에 세워둔 봉고차에 타자마자 안대를 건넨다.
강현우는 늘상 했던 것마냥 집어 들어 얼굴에 두른다. 거친 엔진음과 함께 차가 뒤뚱거린다 싶더니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십분 정도 주행을 하던 차가 멈춰서고 누군가가 양팔을 붙들었다. 차 밖으로 내리자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데리고 가던 이들이 발길이 멈추고 떨어진다. 조용하기 그지없는 주위에 머뭇대던 강현우는 손을 들어 안대를 벗어갔다.
답답했던 기분이 조금은 홀가분해진다. 이제 좀 낫다 싶던 그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사내 둘이 시야에 들어왔다. 카림빗 칼과 피리 같은 가늘은 단봉을 든 그들은 금방이라도 핏물을 자아낼 것 같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때의 일을 되풀이하자는 건가?’
레드가 32살 쯤 처음 앙켈을 만났을 때 자격 심사를 빌미로 자신의 부하와 싸우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판박이인 게 아무래도 환영인사 겸 하는 모양이다. 강현우는 더는 말하지 않고 그들 앞에 섰다. 가느다란 쌍단봉을 든 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뭔가를 꺼내 던졌다.
날아드는 것을 받아들고 보니 검은 색 얇은 두 개의 단봉이다. 그것을 강현우는 묘한 시선으로 보았다.
‘칼리 아르니스 스틱 올리시...’
올리시, 필리핀 무술인 칼리 아르니스에서 쓰는 대나무 라탄으로 만든 단봉이다.
대나무이니 약하지 않겠냐고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라탄은 목공예는 물론 각종 가구에도 쓸만큼 매우 단단하다. 거기다 가볍기까지 해 순간 속도가 시속 260~290km에 이를 정도로 매우 빨라 한 방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뻗게 된다.
거기다 타격기 속에 관절기를 포함한 각종 기법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단순히 막기만 했단 되려 팔이 꺾여 제압당해버린다. 그래서 실전 무술 매니아 또는 특수부대원들이 많이들 배우곤 한다.
시선을 들어 상대를 보던 강현우는 양손에 쥔 스틱을 치켜들었다. 왼손을 내밀고 오른 손은 귀 옆에 둔 그의 자세를 보던 상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칼리 아르니스의 기본 자세를 정확히 취하는 상대방에 놀란 것이다. 그것도 잠시 스틱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다 내리쳐진다. 가볍게 왼손 스틱으로 막아낸 강현우는 오른손 스틱을 휘둘러 공격해갔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공방은 빠르게 이어져 나간다.
타탁! 타타탁! 탁!
머리, 어깨, 양 옆구리 할 것 없이 전후좌우로 공격과 방어기 이어진다.
보는 이가 더 가슴을 졸일 정도로 둘의 싸움은 숨 쉴 틈 없이 몰아쳤다.
공격을 막는 강현우의 왼손 스틱을 상대는 반대 손으로 붙잡고는 스틱을 든 손을 관자놀이를 향해 휘둘러간다. 예상했던지 강현우는 오른손을 들어 상대의 스틱 든 팔목을 손으로 쳐내고는 팔꿈치로는 붙잡고 있는 손을 쳤다. 한순간 상대의 억압에서 벗어난 왼손 스틱은 거칠게 허공을 가르고 내리쳐진다.
타탁!
재빨리 막아서는 상대의 스틱과 맞부딪쳐 튕겨나간다. 이때가 기회라는 듯 팔을 쭉 뻗어 손목을 상대의 팔뚝 위에 걸치면서 스틱을 휘둘러간다. 이에 상대는 팔을 위로 쳐들어 막지만 되려 강현우가 품 안으로 들어가면 팔꿈치로 턱을 후려쳤다.
퍼어억!
돌아가는 머리를 따라 몸이 뒤쪽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름 인정을 뒀는지 상대는 턱을 붙잡고 까딱대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뒤로 물러서는 그를 대신해 이번엔 카림빗 칼을 든 이가 앞으로 나선다.
이번에도 상대가 건네 준 카림빗 칼을 든 강현우는 슬며시 위아래로 훑는다.
사삭!
순간 날아든 칼날에 상체를 뒤로 물려 피해간다.
그런 그를 뒤쫓아 가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음에도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적은 한순간의 틈도 방심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개를 좌우를 까닥이던 강현우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칼을 든 손이 위 아래로 움직인다 싶더니 대뜸 얼굴을 긁어온다.
왼쪽으로 몸을 움직여 피하고는 위로 치켜 올렸다가 사선으로 내리 그었다.
사사삭!
전진했던 상대의 발걸음이 뒤로 물려진다.
뒤따라 가 공격을 하지만 상대가 빈손을 휘둘러 막아간다.
멈칫하는 순간 상대가 얼굴을 긁어왔고 강현우는 맞서갔다.
캉! 크크크크!
맞부딪친 두 칼에서 쇠 긁히는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강현우는 팔 안쪽을 쳐 힘을 못 쓰게 만들고는 카림빛 칼을 빼내었다.
허나, 상대는 예상했던 듯 빈손을 들어 칼을 쥔 손을 밑으로 쳐 내리고는 관자놀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강현우는 뒤로 몸을 빼면서 다가올 것을 대비해 칼을 휘둘렀다. 그걸 본 적은 더는 공격하지 않고 발걸음을 물렸다.
거리를 벌린 채 서로를 보던 둘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섰다. 붙었다 싶자 강현우가 먼저 카림빗 칼을 휘둘러본다. 하지만 상대가 팔을 들어 칼을 든 팔뚝을 막아선다.
이에 강현우는 빈손을 들어 상대의 손을 쳐내자마자 반격이 날아든다.
팍! 파팍! 카캉! 팍!
팔과 팔, 칼과 칼이 어지러이 뒤섞여간다. 팔 하나, 칼 끝 하나 어긋나는 순간 시뻘건 핏물이 쏟아지겠건만 둘은 꿋꿋하게 공방을 이어나간다. 팔을 쳐들어 공격을 막은 상대는 카림빗 칼로 겨드랑이를 그으려 했다.
강현우는 빈손을 휘둘러 쳐내고는 카림빗 칼이 들린 손목을 꺾어 내저어 잡고 있던 상대의 팔을 떨쳐냈다. 방해물이 없어지자 상대의 목과 복부 위를 긁어댔다. 공격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대도 허공만 갈라간다. 칼이 멈추자 상대방도 두 손을 내리고 얌전히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제야 강현우는 들고 있던 카림빗 칼을 옆으로 내던졌다.
카캉!
바닥에 나뒹구는 칼 위로 기다란 나무판자를 사내들이 들고 와 그의 앞에 놓았다. 마치 장벽을 세워 놓은 듯한 기분이 드는 가운데 의자를 가져와 그의 뒤에 놓았다. 강현우가 의자에 앉자 낯선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남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얇고 기계음이 가득한 게 음성 변조기를 쓴 듯 싶다.
“칼리 아르니스를 아는 가 보군.”
“예! 조금 배웠었습니다.”
“조금 안 것치고는 상당한 움직임을 보이는 군. 연습을 오래한 모양이야.”
“칭찬으로 받아드리겠습니다.”
강현우는 고맙다며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앙켈이 물었다.
“근데 넌 누구지? 케익에 관한 일은 네가 알 수 없는 일인데 말이야.”
“그건 그가 제게 알려줘서 그런 겁니다.”
“그가 말해줬다고?”
“예! 전 레드의 후계자이니까요!”
순간 주위가 정적에 휩싸여간다.
예상치 못한 말에 다들 충격을 먹었던 것이다.
앙켈 역시 그런 듯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고요함마저 느껴지던 그때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이 벌려졌다.
“그는 내게 후계자가 있다고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그럴 겁니다. 측근에게도 후계자 있다는 말만 했을 뿐 누군지는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럼, 더더욱 믿을 수가 없군. 네가 후계자란 증거가 없으니 말이야.”
“증거는 없지만 레드가 앙켈님에 대해 말한 것이 있습니다.”
“그가 나에 대해 말을 했다고?”
“예! 앙켈님은 키스 중독자라고 말입니다.”
주위가 또다시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뜬금없는 그의 말에 다들 당황해서 그런 것이다.
곱게는 죽지 못할 것이라며 다들 혀를 차던 그때 앞에 있던 나무 벽이 치워지며 오십대 가량의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젊었을 적 상당히 미인이었을 듯 싶을 정도로 고운 외모를 갖춘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을 하였다.
“그가 그랬나? 내가 키스 중독자라고 말이야?”
“시작은 앙켈님이 했지만 자신도 불타올랐다고 그러셨습니다. 마음 속 깊이 말입니다.”
“그거 기분 좋군. 그가 그런 말도 할 줄 안다는 것이 말이야.”
제법 맘에 든다는 듯 웃어간다. 옆에 있는 탁자에 있는 과일을 들어 한 입 베어 먹은 그녀는 좀 전과는 달리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 보낸다. 너무도 극명한 변화에 강현우마저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다.
“근데 레드는 어디가고 네가 날 찾아 온 거지?”
“레드님은 저도 어디 있는 지 모릅니다. 연락이 끊긴지 4년 가량 돼서 말입니다.”
“그 말은 그가 죽었다는 소린가? 후계자도 모를 정도면 그럴 듯 싶은데 말이야.”
“워낙 신출귀몰한 분이시라 그렇게 보기도 그렇습니다.”
“하긴 그가 잘 숨긴 하지.”
수긍을 하는 듯 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납득한 것은 아니다. 그의 사라진 이유가 아직 불명확한 상태에서 후계자라는 강현우의 등장은 그 누가 봐도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좁혀진 눈매 사이로 그를 훑던 앙켈이 여기 온 이유에 대해 묻는다.
“ASG 소속 대위라는 자가 어디 있는 지 알 수 있겠습니까?”
“대위 찾는 건 가족 때문인가?”
“알고 계셨습니까?”
“그건 네가 더 잘 알텐데... 내 땅에서 벌어진 일들은 뭐든 다 알고 있다는 걸 말이야.”
피식 웃던 앙켈은 옆에 있는 사내에게서 파일 하나를 받아 건넨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