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어디서 배웠나?(1)
더 로비스트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국명, 사건등은 현실과 일절 관계없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이는 독자분들의 착각입니다. ^^;;;;
다음 날 아침.
텅 빈 연방장을 강현우가 달리고 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턱 밑까지 차오른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그는 벌써 2시간째 부대 연병장을 달리고 있었다.
딱히 이유는 없다. 맘이 좀 답답하다 싶을 뿐. 아니, 어쩌면 갑자기 찾아온 휴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곤란해 이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 아침에 전투를 벌인 후, 참고조사라며 오후 한나절을 보내더니 오늘은 또 쉬란다.
전투로 인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가 발병될까 염려된다면서 말이다. 허나, 그건 일반 사람들에 한해서고 강현우의 경우 레드의 기억 때문인지 딱히 힘들거나 그런 건 없다.
어쨌든 갑작스런 휴식에 좀이 쑤신 강현우는 아침 식사 후, 연병장을 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만 뛰려는지 멈춰 선 그는 제자리 뛰기를 하며 숨을 골랐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싶자 품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부소대장인 최하사의 것으로 그가 집에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빌린 것이었다. 외국에 파병할 때 간부들은 군폰 개통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하지만 일반 사병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인터넷을 터치해 들어가 주소를 치고 실행했다.
홈 카트 숍(Home Kart Shop)]
언뜻 보기에는 일반 쇼핑몰로 보이지만 실상은 범죄자들이 애용하는 이메일 사이트다.
그렇다고 모양새만 그런 것은 아니다. 상품을 골라 결제하면 물품이 배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용하는 이는 극소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결제 창에 들어가 2차 로그인을 하게 되면 이메일 사이트로 화면이 바뀌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로그인을 한 뒤에야 사용이 가능하다.
메일들을 살펴보던 강현우의 시선을 유독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Set up 5가 보낸 엘리스란 제목의 메일이었다. 엘리스는 전생 레드의 최측근으로 돈, 집 등 모든 자산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인맥까지 관리하는 일종의 집사이다.
즉, 그녀를 얻으면 레드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 그녀가 보낸 메일인 만큼 매우 중요한 것임이 분명하건만 정작 강현우는 아이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 엘리스가 이곳에 메일을 보낼 때 제목에는 보낸 이를, 보낸 이에는 메일의 내용을 쓰기 때문이었다.
“Set up 5라······.”
언뜻 보면 5번 계획을 준비한다는 말 같지만 실상은 ‘끝을 준비한다.’라는 뜻이었다. 5를 뒤집으면 오메가(Ω)와 비슷하고 오메가는 그리스어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모든 라인을 닫고 음지에 숨어 들어갔다는 엘리스의 메시지이다.
물론 그녀가 숨었다고 해서 연락을 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깔아 둔 비상 호출 프로토콜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엘리스와 대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돈이나 각종 부동산 등도 이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걸 사용하면 엘리스나 레드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기 쉽다는 것이다. 바드가 적과 한 편인 이상 더더욱 그렇다. 사이트에서 로그인한 그는 FBI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FBI WANTED
현상범 수배명단으로 현재 유명한 범죄자들의 신상명세서가 있다. 그들의 내력을 공개한 것은 현재 FBI 자체 수사력으로는 전 세계를 상대로 날뛰는 범죄자를 막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을 잡아오길 바란 적은 없다. 그들도 못하는 걸 다른 이가 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조그만 단서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리스트를 훑어보던 강현우는 찡그려진 콧등을 긁적였다.
“아직도 명단에 있군. 3년이나 지났는데 내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쉬이 납득이 되질 않았다. 분명 앨리스는 3년 전, 모든 사업을 접고 안전을 위해 음지로 파고 든 상태다. 무주공산이 된 만큼 상대 조직이나, 관련 범죄자가 레드가 했던 사업을 집어먹기 위해 설칠 것이 분명하다. 즉, 좋든 싫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려지게 된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FBI 수배 명단에는 여전히 그의 이름이 박혀 있다. 마치 살아 있다는 걸 확신하듯 말이다.
“정보가 부족해! 난감하군.”
핸드폰을 닫은 그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은 참 맑고 푸른데 도통 풀리는 일이 없다. 그래도 계속 보고 있노라니 기분은 한결 가벼워진다. 꽉 막힌 변소 같은 머릿속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나저나 레드의 기억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군.”
사실 강현우가 이메일을 찾아본 것은 레드 사망 이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도 있지만 자신의 기억 자체가 진실인지 확인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한숨과 함께 시선을 밑으로 내린 그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호접지몽이든 뭐든 받아들이자! 레드도 나고, 강현우도 나니까 말이야. 그러니 지금은 강현우로 살자. 훗날 못다 한 레드의 삶을 살기 전까지는 말이야. 전과 달리 지금은 내게 주어진 시간도 많으니 말이야.”
그랬다. 육십 대 레드가 아닌 지금은 이십 대 초반의 강현우다. 주어진 시간은 많다. 로그의 감시하는 눈길도 없다. 그러니 최대한 준비하려고 한다. 자신을 죽인 바드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며, 로그를 안다는 가죽 장갑의 사내가 누군지 차근차근 알아볼 생각이다. 다시 킹 레드의 이름으로 살기 전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조직을 다시 부활시킬 생각은 없다. 형제 같던 마피아 두목 프랑크와의 연계를 단숨에 끊어 버리고 주요 인사들은 물론 자금 압박까지 단박에 처리했던 만큼 조직 내 끄나풀들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둘 때 새로운 조직을 꾸려 상대하는 것이 더 승산이 높았다.
어느 정도 맘을 굳힌 그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스트레칭을 하였다.
일단, 자신부터 단련을 해야 훗날 그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갑작스런 전투로 인해 긴장된 몸을 풀기 위해 그런 것도 있고 말이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스트레칭을 한 강현우는 복싱 자세를 잡았다.
우선, 앞으로 가볍게 왼손으로 잽을 날려 본다. 서너 번 정도 반복한 다음엔 스트레이트를 섞어 본다. 그렇게 대여섯 번 하고는 훅과 어퍼컷도 같이 써서 연습을 한다.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때리는 지점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잽인데도 조금 위로 날리거나, 아래로, 좌측으로, 우측으로 원래의 자리와는 어긋나게 날린다. 그건 스트레이트나 훅, 어퍼컷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키와 몸집이 제각각이고, 대부분 움직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조금씩 다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복싱 훈련을 십오 분쯤 했을까?
돌연 잽을 날리던 팔이 꺾이며 팔꿈치로 허공을 친다. 한순간에 2연타를 날린 것이다.
이 수법은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와 연방보안국이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실전 격투술인 시스테마에서 쓰는 것이다. 여타 다른 무술 및 실전 격투술과 마찬가지로 시스테마 역시 생물학적인 인체의 약점을 활용해 공격하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쾌속의 연타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연타라고 하면 두 주먹을 가지고 교차로 빠르게 가격하는 것을 말하는데 시스테마는 팔 하나로 최대 6연타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앞서 한 주먹으로 턱을 강타한 후, 2차로 뻗었던 팔을 접으면서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가격, 3차는 접었던 팔을 몸 바깥쪽으로 뻗으면서 손등으로 관자놀이를, 마지막으로 4차는 휘둘렀던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가 내리찍는 식이다.
즉, 주먹과 팔꿈치를 오가면서 연속해서 상대를 가격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버벅댈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주먹 한 번 내지를 때 2연타, 3연타가 가능하다.
여기에 반대 손까지 가세할 경우 무한 연타가 가능해진다. 이처럼 시스테마는 파괴력도 무섭지만 한순간에 적을 제압하는 능력 또한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팔꿈치 공격이 끝이 아닌 듯 강현우는 반대쪽 주먹을 치켜든다 싶더니 두 팔을 빠르게 교차를 시키며 허공에 수영(手影)을 그려 낸다.
언뜻 봐도 중국 무술 같아 보이는 그것은 상당 부분 영춘권과 닮아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무에타이의 팔꿈치 공격, 태권도의 발차기, 가라테의 수도 등 갖가지 공격 기법이 들어있다. 이건 그가 레드로 활동할 당시 여러 가지 무술들을 섞어 독자적으로 만든 것으로 이 세상에서는 그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강현우로 환생했을 때 의외로 몸이 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을 하곤 했는데 전생의 기억 때문인지 하루가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삼십 분쯤 혼자서 무술 영화를 찍고 있는데 돌연 등 뒤에 한기가 느껴진다. 순간 그의 몸이 틀어지며 뒤로 주먹을 날리는가 싶더니 그가 팔꿈치를 연이어 날리기 시작한다.
파팍!
뒤이어 발차기를 꽂아 넣으려던 강현우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후임병이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상대가 특전사 소속 중사였기 때문이었다.군대에서 상급자를 구타하는 것은 하극상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주먹이 맵네!”
“죄송합니다.”
“사과는 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둘이 한 판 어때?”
“예~에? 그거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련 한 겜 하자 이 말이지.”
숯검댕이 눈썹에 사각턱을 가진, 누가 봐도 호전적인 인상의 고중사는 발걸음을 물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섰다. 그런 그가 상당히 무례하게 느껴졌지만 어쩌겠는가? 군대에선 계급이 깡패인 걸 말이다. 강현우는 어쩔 수 없이 두 팔을 들어 준비 자세를 하고는 상대를 보았다. 입가에 그려진 미소 위로 보이는 싸늘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니 레드의 기억 속 한 인물이 떠오른다.
‘안톤! 싸움 중독증 환자! 그가 생각나는군.’
그랬다. 고중사에게서 안톤의 싸움꾼 기질이 엿보였다. 굳이 그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승리에 대한 엄청난 갈망이라고 할까? 십여 명에게 얻어맞아 반죽음 상태임에도 상대의 코를 물고 늘어져 끝내 승리를 얻어 냈던 이가 안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고중사도 상당한 독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건 특수부대원들의 고유한 특징이니 말이다. 길게 끌어 봐야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강현우는 가볍게 잽을 날려본다.
한마디로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툭! 툭!
고중사도 그걸 아는지 슬쩍 상체를 물려 몸을 피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하는 건 싫은지 왼발로 상대의 허벅지를 노린다. 강현우도 간단히 발걸음을 옮겨 공격에서 벗어났다. 이 일로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고중사는 상당히 지기 싫어하는 싸움꾼에다 당하면 꼭 갚아 주는 성격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듯 싸움은 공방 한 번에도 상대의 성격이나 기질을 능히 짐작케 한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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