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한낮의 저격(1)
더 로비스트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국명, 사건등은 현실과 일절 관계없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이는 독자분들의 착각입니다. ^^;;;;
끼이익! 끼익!
이글이글 타오르는 비행장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내려선다.
얼마 가지 않았건만 바퀴 주위로 녹아내린 고무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지반 열로 데워진 탓에 그런 것이다. 오른편에 내린 비행기는 크게 돌아 맨 왼쪽으로 갔다.
이곳은 VVVIP, 즉 자가용기를 끌고 오는 이들을 위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그곳엔 공항경찰을 비롯해 공항 관계자로 북적였다. 서서히 비행기가 멈춰 서자 사다리차가 황급히 곁으로 다가선다. 모든 것이 완료되자 문이 열리며 검은색 양복을 입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치를 잡기 위해 경호원이 먼저 나온 것이다. 다들 자리를 잡고 나서야 비로소 아비야와 니캡(사우디 여성들의 복장)을 쓴 소피아가 밖으로 나왔다.
“와! 햇살 뜨겁다! 뜨거워!”
그녀가 개구리마냥 양 볼을 부풀리며 불편한 속내를 표현한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계단 위에서 웃으며 뒤를 향해 손짓했다.
“뭐해요? 어서 와요! 어서!”
해맑게 달려가는 소피아 뒤로 강현우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허리를 잡고 나온다.
“에너자이저도 아니고······ 뭔 애가 지치지도 않아!”
오는 내내 랜덤 KPOP 댄스를 같이 춤추자고 난리법석을 떠는 바람에 그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
한국인이니 춤을 잘 출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좀 쉴 만하면 배우 누가 진짜 잘생겼냐, 누구 열애설 났던데 진짜냐며 각종 질문을 던져 댔던 것이다. 힘들어 하는 그와는 달리 소피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신기해하였다.
“이리 봐도 사막! 저리 봐도 사막! 엄청나네!”
강현우는 너희 나라도 사막이 있지 않냐며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소피아가 천방지축이니 이해하라고 비톤이 말했기 때문이다. 힘들어 하는 그를 보며 웃는 경호원들에게 강현우는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기분 나쁘게 왜 실실 쪼개? 설마 지들 귀찮을까 봐 나 전담 마크로 보낸 거 아니야?’
혹시나 싶던 그의 생각은 주위 반응에 더 확실해진다.
한 소리 하려던 그때 귓구멍을 먹먹하게 하는 울림이 들려온다.
“어서 오십시오! 공주님!”
소피아를 에워싼 채 합창하듯 부르짖는 공항 관계자들을 보며 비톤의 낯이 일그러졌다. 이번 여행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것으로 남들은 몰라야 하는 것인데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구는 통에 다 알게 생겼던 것이다. 황급히 먼저 내려간 그가 관계자에게 항의를 했다.
“분명 비공식이라고 했을 텐데? 지금 테러범에게 소피아 님의 행적을 알리고 싶은가? 그런 생각인 건가?”
“그, 그게 아니라······.”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환대를 바라는 게 아니야. 조용히 입 닥치고 제 할 일들 해! 그게 우릴 돕는 거야.”
두 눈을 부라리는 그를 보자 공항 관계자들은 사색이 되었다. 아랍에미리트 왕족과 연줄 좀 만들어 보려다 죽게 생겼기 때문이다. 송사리 떼에 돌을 던진 것마냥 그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웃던 소피아가 강현우에게 가자고 손짓했다.
“비톤 아저씨! 인상 쓰지 마요. 미간에 주름 잡혀요!”
“알았습니다, 아가씨!”
주름이 신경 쓰였던지 비톤은 이마를 만진다.
웃던 소피아는 강현우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한국 사람들은 다들 커요? 아이돌도 그렇고 강현우 오빠도 그렇고 말이에요.”
“아랍에미리트나 여타 다른 국가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큰 사람은 크고, 작은 사람들은 작죠. 다만 평균 키가 오르고 있다고 하니까 작다고는 할 수 없겠죠.”
“평균 키가 오른다라······. 역시 아이돌의 나라답군! 점점 이상적으로 변하고 있어.”
“그게 아니라······.”
그는 뭐든지 아이돌로 귀결 짓는 그녀의 말에 반론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비톤이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봐도 말을 듣지 않을 듯싶어 그냥 한숨만 푹 내쉰다.
“아가씨! 어디 가시겠습니까?”
“일단은······ 쇼핑! 리야드에 KPOP 전문 가게가 생겼다고 해서 말이야.”
아주 그냥 기승전 KPOP이다. 그래도 땡볕 아래인 비행장보다는 쇼핑몰이 시원할 것 같아 일단 가자고 했다. 이것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일 줄은 모르고 말이다.
****
“후~우!”
소총과 탄약 등 무기가 잔뜩 실린 트럭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던 알렉산더의 호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보스! 하샨입니다. 갈라인의 딸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들어왔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어?”
“현재 리야드로 가고 있습니다.”
“곧바로 가지!”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땅바닥에 내던진 알렉산더는 헤인스를 불렀다.
“갈라인의 딸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왔다.”
“어디 있다고 합니까?”
“리야드! 아마도 쇼핑을 하려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부하들에게 탄약 내리라고 하고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돌아서려던 헤인스가 멈칫한다.
알렉산더가 손을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시간 없다. 그냥 트럭까지 줘! 이번에 한해 특별 서비스라고 말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차례 끄덕이던 헤인스가 트럭으로 간다. 뒤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는 게 공짜로 차량을 준 다는 것에 기뻐서 그런 모양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사우디에 왔다라······. 거, 재미있게 됐군.”
피식 웃던 그의 옆에 헤인스가 타자 멈춰 있던 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
산이 움직인다. 쇼핑백과 박스로 이루어진 그것은 위태롭게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다 아찔하던 그때, 허공 위로 뭔가가 날아들었다.
휘이~익!
쇼핑백이 허공을 가로질러 산 위에 안착했다.
한 차례 휘청이던 박스 더미 옆으로 강현우의 고개가 보인다.
“그······ 그만 사라니까······.”
그가 짜증을 토해 보지만 당사자인 소피아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 쇼핑하느라 정신이 팔린 것도 있지만 뒤편에서 보고 있는 비톤 때문에 차마 큰 소리로 말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쇼핑몰에 온 지 1시간 만에 가게 하나 거덜 낼 정도로 격정적으로 쇼핑을 한 소피아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쇼핑몰을 나섰다.
“오늘 하루도 알차네!”
콧노래를 흥얼대는 그녀와는 달리 강현우는 낑낑대며 쇼핑백과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다.
보다 못한 비톤이 뒤편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물품을 옮기라고 손짓을 하였다. 놀리는 것도 그쯤하면 됐다 싶었기 때문이다. 짐 덩어리에서 겨우 해방된 강현우는 뻐근한 어깨와 뒷목을 만지작댔다.
“어! 언니!”
누군가 싶어 시선을 돌린 강현우는 검은색 이비야, 니캡을 쓴 여인을 보았다. 볼륨감이란 단어가 절로 나올 정도로 상당히 육감적인 몸매를 갖춘 그녀는 절색이었다.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의 옆으로 비톤이 다가섰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첫째 공주 아미타 알 수다이르네. 그만 쳐다보게!”
그의 말에 강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랍권이 대체로 그렇지만 여성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실례이다. 상대가 사우디 왕가의 출신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그가 귀여웠던지 수다이르 공주는 피식 웃었다. 물론 니캡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언니! 여긴 무슨 일로 왔어?”
“방학 중에 집에 돌아왔다가 네가 온다는 소릴 듣고 와 봤지.”
“역시 언니라니까!”
그녀는 친언니를 만난 듯 옆구리를 안으며 좋아라 한다. 수다이르 공주 역시 그녀의 뺨을 매만지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다섯 살 때 처음 만난 후로, 일 년에 석 달 가량은 서로의 집에 머물며 지낼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그녀들인지라 더 애틋한 모양이다.
“근데 이분은 누구야? 못 보던 분인데?”
수다이르 공주가 강현우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분은 한국군 소속인 이름이······ 깡편······.”
“한국 특전사 병장 강현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발음이 안 좋은 소피아를 대신해 강현우가 직접 자신을 소개한다.
수다이르 공주 역시 직접 자신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인사를 하였다.
“국왕 살만 빈 압둘라 알사우즈의 첫째 딸 수다이르라고 해요. 반가워요.”
인사를 나누는 둘을 지켜보던 소피아가 슬쩍 끼어든다.
“어때? 잘생겼지?”
“그래, 잘생겼다. 근데 한국 군인이 왜 너랑 같이 있는 거니?”
“언니도 알다시피 내가 KPOP 광팬이면서도 아직 한국에 못 가 봤잖아! 그래서 아빠에게 경호원이라도 한국 사람으로 해 달라고 난리를 쳤더니 한국 파병군 중에 한 명 뽑아서 이번 여행에 특별히 동승시켜 주셨어.”
“아무리 그래도 파병 군인을 경호원으로 뽑으면 어떻게 하니?”
“생일 선물로 그런 건데······.”
소피아는 생일 선물인데 어떠냐며 양 볼을 부풀린다.
한숨을 내쉬던 수다이르 공주가 차분하게 설명한다.
“소피아! 파병 군인은 나라를 도와주기 위해 오신 분들이야. 손님이라는 소리지! 그런 분들을 개인 용도로 이렇게 막 부리면 안 돼! 아버지가 이번처럼 또 군인을 보내 주시면 싫다고 말씀드려! 내 말 알겠니?”
“응! 알았어!”
소피아는 잘 알았다며 끄덕인다.
그걸 보며 웃던 수다이르 공주가 강현우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애가 어려서 이런 일을 저질렀네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아닙니다. 제 조국인 한국을 좋아한다는데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미······안해요!”
눈치를 살피던 소피아가 사과를 한다. 강현우는 괜찮다며 미소로 답한다.
이때 경호원인 듯싶은 사람이 다가와 수다이르 공주에게 말을 건넨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근처 카페를 가리켰다.
“주변 눈치도 있으니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렇게 해! 언니!”
팔짱을 끼고 걷는 두 사람을 쫓아 그가 막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왼편에 있던 경호원 하나가 휘청였다.
타아아~앙!
자신이 뿜어낸 시뻘건 핏물 위로 경호원은 드러누웠다.
곧이어 오른쪽에 있던 노인이 가슴을 붉게 물들인 채 쓰러진다.
“꺄아~아!”
“저······ 저격이다!”
“살려 줘!”
삽시간에 주위는 온통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속에서 놀라 어쩔 줄 모르는 그녀들을 강현우가 뒤에서 안아 돌려 세웠다.
“저격수입니다. 허리를 숙이십시오!”
“저······ 저격수요?”
“이럴 시간 없습니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비톤! 데려가십시오! 전 스나이퍼를 처리하러 가겠습니다.”
“조심해!”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비톤은 두 사람을 데리고 나무와 동상이 있는 뒤편으로 갔다.
뒤춤에서 글록을 뽑아 든 강현우는 총알이 날아오는 곳을 향해 갈지자로 뛰었다.
파팍!
그가 스쳐 지나간 상점 가게 앞에 놓인 화분이 부셔져 나간다.
하지만 강현우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작정 뛰기만 한다.
“으윽!”
“엄마······ 악!”
“크아악!”
비명과 함께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핏물 위에 쓰러진다. 거리로 나서던 중년의 사내도 상반신이 붉게 물든다. 대부분 강현우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인 걸로 봐서는 그를 죽이려다 실패한 걸로 보인다.
팍!
“크윽!”
또 한 번의 저격이 날아들자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름 피한다고 몸을 틀었는데 팔뚝에 총을 맞은 것이었다.
화끈거리는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 가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힘차게 땅을 굴렀다.
쏟아지는 총알 세례를 뚫고 카페 왼편 골목으로 들어간 그는 자신의 팔을 살폈다. 피부에 상처가 난 것으로 보아 다행히 스쳐 지나간 모양이다. 잠시 거친 숨을 달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아! 하아! 이 위인가?”
스나이퍼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3층 건물 옥상을 보던 그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서서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있는 힘껏 문을 발로 차 버렸다.
쾅!
즐겁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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