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장, 앙켈(3)
더 로비스트는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국명, 사건등은 현실과 일절 관계없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이는 독자분들의 착각입니다. ^^;;;;
펼쳐보니 대위의 신상정보와 근거지로 쓰는 곳에 대한 지도들이었다.
파일을 들여다보는 그를 지켜보던 앙켈이 말을 하였다.
“대위, 본명은 더글라스 케인! 미군에 있을 때 나름 유능한 조종사였다고 하더군. 전쟁에도 몇 번 참가했고 말이야. 하지만 아내와의 이혼 이후, 급격히 무너지게 되면서 마약 복용 등 각종 사고를 쳐 불명예제대를 당했다는 군. 제대 후엔 PMC 용병으로 이리저리 떠돌다 5년 전부터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네.”
“마약이라... 제대 당할 만도 합니다. 군인이 그걸 했다는 건 막장까지 갔다는 소리니까요.”
미국 못 지 않게 마약 딜러들이 판을 치는 곳이 다름 아닌 미군이다.
전장에 나서야 하는 공포와 두려움에 그런 것인데 80년대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다며 못 본 척 했지만 90년대 들어서면서 군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자, 펜타곤은 마약 복용을 사용을 금지하며 강력한 제지에 들어갔다.
이때 관련 군 장교는 물론 마약 조직 대부분이 소멸 되었지만 명맥만은 남게 된다.
이후, 마약 딜러들은 생각을 바꾼다. 군대 내 병사들에게 파는 것이 아닌 파병 나간 지역에 판매를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마약 운반도 한다. 군 특성상 물품 검색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군 병사가 파병 국가에서 마약을 팔다 정부군이나, 경찰에게 잡혀 심심찮게 벌어진다.
군대내 마약 문제는 군은 물론이고 미정부 외교상으로도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말없이 자료를 훑어보던 강현우는 시선을 들어 앙켈을 보았다.
“그나저나 생각 외로 그에 대한 자료가 많군요.”
“개차반인 성격이 어디 가겠어? 앞뒤 안 가리고 온갖 사건 사고를 다치는 바람에 ASG 소속 반군들은 물론이고 그에 대해 앙심을 품은 이가 제법 된다네.”
“그렇기도 하겠군요. 마약에 쩔어 있는 놈이니 말입니다.”
그럴 만도 하다며 답을 하던 강현우이 콧등이 찌푸려진다. 지도에 그려진 대위의 활동구역이 하필이면 모로민족해방전선 구역인 민다나오 남부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조직이 와해되었다고 할 만큼 약화 된 모로민족해방전선이지만 그 영향력만큼은 무시 할 수 없다.
정부군들도 그들의 구역만큼은 건들지 않는다고 하니 수장인 르수아리의 입김이 얼마나 쎈지 능히 짐작케 한다.
“혹시 대위를 잡으려면 모로민족해방전선까지 상대해야만 하는 겁니까?”
“그들에 대해선 걱정 말게! 내 말만 들어주면 네가 대위랑 싸우든 말든 신경도 안 쓸테니까 말이야.”
“그게 뭡니까?”
“대위를 죽여주게!”
강현우의 눈이 좁혀 들어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죽일 것인데 꼭 그래달라고 부탁하는 게 수상해서였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앙켈에게 물었다.
“꼭 그래야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대위에게는 앙심을 품은 이들이 많네. 모로민족해방전선도 그 중에 하나이고 말이야.”
“그러니까... 대위를 죽여주면 그들도 가만히 있을 거란 소리입니까?”
“그뿐만이 아니지. 덤으로 현상금까지 얻을 수 있지. 대위를 싫어하는 이중에는 현상금까지 내건 이들도 있지.”
“그러니까... 결론은 현상금을 나눠 갖자는 말씀이십니까?”
“겸사겸사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자네 생각은 어떤가?”
고민 따윈 할 필요 없다는 듯 얼른 답을 해간다.
“저도 좋습니다. 다만 6대4로 하는 것이...”
“4대6!”
“7대3!”
“5대5!”
“8대2!”
“...왜 올리는 것인가?”
“거래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레드에게 배워서 말입니다.”
앙켈은 눈살을 찌푸려간다. 설마하니 그런 것까지 레드가 가르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맘에 안 든 듯 앍는 소리를 하던 그가 말을 하였다.
“6대4, 자네가 6을 먹는 것으로 하지. 아! 정보료가 있군. 그건 어떻게 할건가?”
찌푸려진 콧등을 긁적이던 강현우가 답을 하였다.
“좋습니다. 4대6! 제가 4먹죠!”
“양보해준다니 고맙군.”
승리했다는 기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째려보던 강현우는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대신 민다나오로 들어갈 수 있는 이동수단과 대위를 처치 후, 우리가 타고 나갈 보트를 준비해 주십시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언제 출발하겠나?”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하고 몰래 숨어 들어가야 하니 새벽 1시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시간에 맞춰 준비해두도록 하지.”
그거면 됐다며 강현우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앙켈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접니다. 하샴에게 이리 말해주십시오. 대위가 제거 될테니 걱정 말고 정부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말입니다.”
“정말입니까? 대위가 제거 된다는 게?”
“예! 그것 때문에 내일 새벽에 섬이 좀 시끄러울 겁니다. 그 점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젯거리가 처리 된다는데 그 정도는 못 참겠습니까?”
“그럼, 하샴이 나오는 걸로 알고 정부 측에 연락 넣겠습니다. 참! 대위를 없앤 이는 강현우라는 자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협상 테이블이 다시 열린 것이니 나중에 보면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끊는 앙켈에게 한 사내가 물었다.
“그가 레드의 후계자라는 거 믿으십니까?”
슬쩍 시선을 돌려 보던 앙켈은 굳게 다문 입술을 벌렸다.
“아까 미키를 상대로 카림빗 칼을 들고 싸울 때 한 동작들 말이야. 아버지와 판박이야! 당연한 일이지! 레드가 아버지에게 칼리 아르니스를 배웠으니 후계자 또한 같을 수밖에...”
“그 말씀은 그가 레드의 후계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군요. 어쩐지... 하샴을 정부 협상 테이블로 끌어드리는 일을 넘기시기에 왜 그러시나 싶었더니 다 나름 이유가 있으셨군요.”
“그런 것도 있지만... 눈빛! 그가 가진 눈빛이 맘에 들더군.”
그랬다. 레드의 후계자, 무술 실력 다 좋았지만 특히 맘에 들었던 건 진실 되면서도 강렬한, 공포나 두려움 따윈 일절 그의 눈빛이었다. 과거 레드를 처음 봤을 때 봤던 것과 꼭 닮은 그 눈빛이 너무 좋았다.
그가 앞으로 어찌 성장해 나갈지 지켜보고픈 맘이 들도록 말이다.
“어쨌든 선물 하나를 줬으니 어찌 쓸 지는 그가 알아서 할 일이지.”
앙켈의 변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일이 강현우에게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
차르르륵!
찰칵!
빈공이 치는 소리와 함께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허나, 손 하나가 관자놀이에 얹어진 S&W M64의 총열을 툭 쳐 빙그르르 돌린다.
권총 총열이 멈추자, 대위가 의자에 앉아 병맥주를 들어 입에 댔다.
“언제 온다고 했지?”
“내...내일 아침입니다.”
“그래?”
대위는 의자에 앉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도병철을 보았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굴은 얻어맞았는지 푸르죽죽하니 퉁퉁 부어있다. 관자놀이에 권총을 댄 채 공포에 질려 침을 질질 흘려대는 그를 보며 웃던 대위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왼쪽 구석에 양팔과 양발목을 묶인 채 앉아있던 김완석과 강동진은 그와 시선을 마주치곤 흠칫댔다. 혹시나 도병철처럼 머리에 권총을 두고 러시안 룰렛을 시킬까봐 두려워 그런 것이다. 이때 방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대위님!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의 하샴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늙은이에게서 메시지가? 뭐라고 하는데?”
“그만 성스러운 땅을 더럽히고 나가라고 합니다.”
“성스러운 땅? 크크크! 지들이 이곳에서 죽인 사람이 몇이고, 쫓아낸 이들은 얼마나 되는데 그딴 소리를 해?”
비아냥대는 대위에 과거 모로이슬람해방전선에서 있었던 사내는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대로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은 모로민족해방전선과 함께 민다나오에서 반군 활동을 하면서 약 15만명이 죽었고, 이 땅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간 이들이 무려 200만 명에 이른다.
테러를 할 때마다 자행되는 정부군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살길을 찾아 떠난 것이었다. 대위는 병맥주를 들어 마셨다.
“크윽! 늙은이에게 가서 전해! 한 번만 더 그랬다간 내가 헬기 몰고 가서 뒤엎어버린다고 말이야. 힘도 없는 인간들이 누구더러 나가라 말라 지랄이야? 내 말 알겠어?”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참! 저녁 12시쯤 물건 받으러 오랍니다.”
“저녁 12시에?”
“생각보다 식료품이 빨리 왔다고 합니다.”
대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반군들 눈치 보느라 새벽 4~5시쯤에나 보트를 몰고 가곤 했는데 오늘 따라 시간이 너무 빠르다. 불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식료품을 포기할 수 없어 알겠다며 답을 하였다.
이때 총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 미간을 좁히던 대위는 병맥주를 의자 밑에 두고는 도병철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웅성거린다 싶더니 돌연 총소리가 들려왔다.
타~앙!
“으아아악!”
타탕!
총소리 멎자 문이 열리고 피범벅이 된 대위가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들린 잘려진 손목을 옆으로 내던진 그는 의자에 털썩 앉아갔다.
“후~우! 새끼! 남의 물건은 왜 손을 대고 지랄이야?”
병맥주를 들어 입에 대던 그는 이내 찡그리고 만다. 입가에 묻은 핏물 때문에 마신 술에서 비린내가 났기 때문이다. 바닥에 뱉어낸 대위는 병맥주를 내던졌다.
쨍그랑!
코앞에서 산산조각이 난 병에 김완석과 강동진은 몸을 움츠린다.
그걸 본 대위는 한 손에 든 총을 치켜들며 말을 하였다.
“잊지 마! 돈이 안 들어오면 그땐 네가 저 꼴이 될 거야!”
바닥에 나뒹구는 조각난 팔을 가리키며 도병철에게 말을 하였다.
물론 남은 두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꼬...꼭 돈이 들어올 겁니다.”
“명심해!”
총신으로 도병철의 얼굴을 툭툭 치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닫고 나가자 바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도병철에서 흘러나왔다.
‘박실장! 개새끼! 나중에 한국에 가면 아주 그냥 사지를 칼로 포를 떠주마! 빌어먹을! 저 개새끼와 같이 말이야!’
살기를 가득 담아 말이다.
즐겁게 읽으셨나요?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