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의 메이저리그

하남자의 메이저리그 - 메이저리그 03 -

개막 2연전을 모두 패한 피츠버그는 3차전 선발 베일리 팔터의 7이닝 무실점 호투로 간신히 스윕을 피할 수 있었다.

워렌 감독은 입안이 꺼끌거렸다.

“시작이 좋지 않군.”

헨슨 투수 코치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선발 세 명이 모두 퀄리티 스타트 이상을 해줬습니다.”

퀄리티 스타트.

선발 투수가 6이닝 3실점 이하로 상대 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

선발 투수에게 이 퀄리티 스타트가 중요한 것은 승률 때문이었다.

조금 더 설명하면 선발 투수가 6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냈을 때 기대 승률이 딱 50%였다.

다시 말해 선발 투수가 6이닝 3실점 이하의 피칭을 해내면 그다음부터는 타자와 불펜진의 몫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타선이 문제야.’

워렌 감독은 에드가 타격 코치를 불렀다.

“짐,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짐 에드가 타격 코치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아직 타자들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3연전 내내 피츠버그 타자들의 배트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승리를 거둔 3차전에서도 상대의 실책이 아니었다면, 3점 이상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자네는 조금 더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인가?”

“감독님, 아직 3경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에드가 타격 코치는 타순 변경이나 로스터 교체 같은 방법을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짐, 만약 바꿔야 하는 선수가 있다면 누구라고 생각하나?”

에드가 타격 코치는 잠시 생각한 뒤 감독의 물음에 대답했다.

“굳이 한 명을 바꿔야 한다면 에디일 겁니다.”

에디 카림은 6번 타자로 우익수를 맡고 있었다.

“에디?”

워렌 감독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3연전에서 가장 부진한 선수는 3번 타자로 나섰던 신인 로니 융이었다.

“에디가 나쁘다기보다는 델 바르토의 파워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에드가 타격 코치는 부진한 선수를 빼기보다는 마지막 시범 경기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여줬던 델 바르토를 넣고자 했다.

“음, 델이라. 알겠네.”

워렌 감독은 에드가 코치의 조언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타선에 부족한 것은 파워니까.’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지난 시즌에도 한방을 쳐줄 수 있는 타자가 많지 않았다.

이도현의 타격폼 변화도 팀의 이러한 사정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날 저녁.

피츠버그 파이리츠 선수들은 시카고 원정을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다들 빨리 타자고.”

“그래, 어서 잠이나 좀 자야겠어.”

시카고와 피츠버그는 약 700km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비행시간은 1시간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다.

“잠은 무슨, 그냥 떴다가 바로 내리는 수준이잖아.”

“그러면 차라리 버스가 낫지 않을까?”

중견수 브라이언트의 버스가 낫지 않냐는 말에 유격수 덴 크루즈가 분통을 터트렸다.

“버스는 절대 사양이야!”

그는 마이너리그 시절 버스 멀미로 고생한 경험이 있었기에 버스 여행은 절대 사절이었다.

“알았어.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버스는 안 돼.”

“알았다고.”

피츠버그 선수단은 조금 전 경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윤세호는 이도현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다음 경기는 리글리 필드야.”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는 미국 국립 사적지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야구장이었다.

“첫 경기를 역사적인 장소에서 하게 되었네요.”

시카고 컵스 원정은 윤세호의 첫 메이저리그 등판 경기가 될 예정이었다.

“부모님은 모셨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선발 투수들은 첫 선발 경기에 부모님을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말씀은 드렸는데 TV로 지켜보신다고 하셨어요.”

여행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응원을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프링 캠프 때 빅리그 데뷔가 결정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윤세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이상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제러드의 부상이 아니었다면, 이번 시즌은 마이너리그에서 보냈을 것이다.’

물론 그의 메이저리그 시즌은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메이저리그 시즌은 제러드 존스가 복귀하는 5월에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도현과 윤세호의 화제는 이제 시카고 컵스 쪽으로 넘어갔다.

“세호야. 컵스와 경기할 때는 빠른 주자들을 조심해야 해.”

시카고 컵스는 개막전 상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비교하면 공격과 수비 양쪽 모두 부족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루 능력만큼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스즈키와 밸린저 말이죠?”

시카고 컵스의 2번과 3번 콤비인 스즈키 세이야와 코디 벨린저는 모두 20도루를 가볍게 할 수 있는 주력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말고도 빠른 선수가 많아.”

사실 시카고 컵스에서 가장 도루가 많은 것은 앞에 이야기한 두 사람이 아니라 2루수 니코 호너와 중견수 페티 크로우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그들의 OPS가 6할대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도루가 많다고 해도 위협적인 타자가 아니었다.

“지난 시즌 30도루를 넘긴 호너와 크로우를 이야기하시는 거군요.”

이도현이 살짝 말끝을 높였다.

“둘을 잡을 수 있겠어?”

윤세호가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두 사람은 내보내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그는 주자에 신경 쓰기보다는 아예 주자를 내보내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윤세호가 살짝 목에 힘을 주었다.

“그 둘도 잡지 못하면 나머지 타자들을 어떻게 상대하겠어요.”

이도현은 그가 말한 나머지 타자들이 스즈키 세이야와 코디 벨린저 같은 시카고를 대표하는 강타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세호가 머릿속에 그린 나머지 타자들은 후안 소토나 애런 저지 같은 슈퍼스타들이었다.

‘메이저리그 강팀에는 최소한 한두 명씩은 그런 괴물들이 있다.’

그는 그들을 이겨내야만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 *

화요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시카고 컵스와 시즌 4번째 경기에 돌입했다.

기자석의 기자들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피츠버그는 오늘도 시작이 별로인데?”

“어제 이긴 것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은 모양이군.”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지난 시즌 5선발을 맡았던 제이크 우드포드가 2회초 3점을 내주면서 3-1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리는 어때?”

“리?”

“이쪽은 아시아 쪽에도 기사를 넘겨야 해서 말이야.”

“오늘도 별로야.”

이도현은 오늘 경기에서 2타수 무안타로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제 경기에서 2루타 하나 친 게 전부란 말이군.”

이도현은 오늘 경기 포함 4경기에서 17타수 3안타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타율만 따지면 0.176이야.”

물론 시즌 초반이었기에 한 경기 멀티 히트로 타율은 크게 변할 수 있었다.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겠군.”

“기사에 뭐라도 희망을 넣어야 하는 건가?”

“맞아.”

“그러면 장타율 쪽은 어때?”

타율보다는 나았지만, 장타율도 좋다고 말하긴 힘들었다.

“타율이 1할이면 장타율을 봐도······.”

“어느 쪽도 힘들다면 차라리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어때?”

“다른 쪽?”

“세호란 투수가 리 로드하고 같은 팀이었다면서?”

윤세호는 콜업 기자회견 이후 메이저리그 기자들 사이에 이런 선수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온 바 있었다.

“세호는 내일 특별 기사를 낼 거라서.”

“특별 기사?”

“내일 선발이야.”

“오! 벌써 선발 라인업에 든 건가?”

“인터넷에서는 캠 존슨 단장의 도박이라 불리더군.”

인터넷에서 윤세호는 세호가 아닌 캠의 도박 또는 겜블이라 불리고 있었다.

“마이너리그 피칭도 없이 바로 메이저리그 콜업이라는 건 아시아 경력을 인정한다는 건가?”

“그러기에는 아시아 쪽에서도 별반 나오는 게 없어.”

“그러면 특별 기사는?”

제레미 헌터라는 기자가 어깨를 추켜세우며 대답했다.

“시범 경기 피칭을 바탕으로 쓸 생각이야.”

“음, 그러면 거의 소설이겠군.”

“그런데 말이야. 이런 식으로 등판하는 선수가 가끔 성공하기도 하더라고.”

딱!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피츠버그 유격수 덴 크루즈는 여유 있게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했다.

“크루즈의 몸놀림이 가벼워 보이는군.”

“내야 유틸인 마리오까지 영입했으니, 피츠버그 내야진은 괜찮아.”

“문제는 외야인가?”

패트릭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피츠버그 외야는 수비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외야수들의 타격이었다.

“몬데가 좀 올라와야 해.”

피츠버그의 타선을 이끄는 선수는 좌익수 라파엘 몬데였다.

그와 신인 로니 융의 컨디션이 올라온다면 피츠버그 타선도 해볼만 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연전에서 두 사람의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또 정면 타구군. 시카고 타자들의 컨디션이 좋은데?”

“오늘은 우드포드가 구위로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내일이 문제야.”

내일 피츠버그의 선발은 윤세호였다.

동료 기자가 제레미 헌터에게 물었다.

“제레미, 얼마나 보고 있어?”

“뭘?”

“세호 말이야. 컵스 타선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것 같아?”

“대체 선발이니, 5이닝을 버텨주면 대성공 아닌가?”

“너무 기대치가 낮은 것 아니야?”

제레미 헌터는 윤세호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캠 존슨 단장이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결국에는 대체 선발에 불과하다.’

그는 윤세호가 올라올 때가 되어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상의 메이저리그 팬들도 그와 생각이 같았다.

- 내일 드디어 겜블이 마운드에 올라오는군.

- 탈탈 털리고 내려가겠지.

- 그냥 오티즈를 올리라고.

- 맞아, 오티즈가 훨씬 나을 거야.

피츠버그 팬덤조차 윤세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 겜블이 성공하면, 구단주는 지갑을 닫게 될 거야.

- 빌어먹을, 그렇게 되면 아시아에서 또 싼 선수를 사 오겠지.

- 내년에 새로운 FA계약은커녕 몬데도 잡지 못할 것 같아.

- 올해 마리오를 잡은 게 이상한 거야.

- 이 팀은 왜 돈이 없을까?

피츠버그 팬들은 윤세호가 성공할 경우, 캠 존슨 단장과 밥 너팅 구단주가 더욱 돈을 쓰지 않을까 걱정했다.

윤세호는 팬들과 기자들의 이런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오직 시카고 컵스 타자들을 분석하는데 전념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좋아.’

시카고 컵스 타자들은 대부분 강하게 공을 때리고자 하고 있었다.

‘아마도 배럴 타구 이론 때문이겠지.’

그가 미간을 좁힌 순간이었다.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해?”

윤세호에게 말을 건 선수는 어제 선발로 나서서 애리조나 타선을 봉쇄한 베일리 팔터였다.

“컵스 타자들을 어떻게 막을지 생각하고 있었어.”

팔터가 씽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타자들이 노리는 반대 방향으로 던지라고.”

타자들이 노리는 반대 코스에 공을 던져라.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이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윤세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타자가 어떤 코스를 노리는지 어떻게 알아?”

팔터가 그의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세호도 고교 때는 배터 박스에 들어갔을 것 아니야? 타자들도 우리하고 마찬가지라고.”

“우리하고 마찬가지라고?”

“그들도 나름의 분석과 수 싸움을 한다고.”

타자들이 자신이 좋아하거나 강점 있는 코스를 노리는 게 아니라 투수의 투구를 분석해 가장 안타가 될 확률이 높은 공을 노린다는 이야기였다.

“흠, 때로는 역으로 승부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

팔터가 오른손을 위로 올렸다.

“야구는 포커와 같다고, 상대의 패를 읽으면 이기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지는 거야. 물론 패하고 상관없는 카드를 쥔 친구들도 있지.”

윤세호가 살짝 말끝을 높였다.

“폴처럼?”

폴 스킨스는 알고도 공략이 힘든 패스트볼을 던졌다.

“애런 저지 말이야. 괴물 같은 친구지. 그 친구는 포커판을 엎어 버린다고.”

애런 저지는 지난 시즌 말 그대로 미친 시즌을 보낸 바 있었다.

“베일리, 지난 시즌 저지에게 홈런을 맞았던가?”

“홈런 없이 2루타 2방.”

“실점 없이 넘어가진 않았겠군.”

팔터가 오른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래서 난 양키스전이 가장 싫어.”

현재 메이저리그는 과거와 달리 모든 팀이 한 번씩은 맞붙게 되어 있었다.

“이번 시즌에는 양키스와 언제 붙더라······.”

팔터는 이미 날짜를 확인한 상태였다.

“6월 3일이야.”

“6월 3일?”

“부상 없이 로테이션을 돌면 딱 3차전에 내가 걸려.”

“그럼 난 만나지 않겠군.”

팔터는 윤세호의 말에 눈썹을 세웠다.

“왜?”

“그때 난 빅리그에 없을 테니까.”

윤세호는 어디까지나 제러드 존스의 대체 선발이었다.

팔터가 눈썹을 내리며 물었다.

“6월까지는 제러드가 돌아온다는 말인가?”

“5월초에는 돌아온다고 했어.”

“으음······.”

“괜찮아. 제러드 덕분에 빅리그에 올라와 봤으니까.”

팔터가 윤세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세호,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제러드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면 가을에 다시 올라올 수 있을 테니까.”

4월에 성적을 내면 확장 로스터 때는 확실히 올라올 수 있었다.

“일단 내일 경기부터 잘 던져야지.”

윤세호는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리면서 베일러 팔터의 말을 곱씹었다.

‘타자가 노리는 공과 내가 던지고자 하는 공. 그 둘이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수 싸움이란 말이군.’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종종 잊어버리는 내용이었다.

[권도혁]

?

[musado01..]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