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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17,508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작성
18.04.24 00:05
조회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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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37. 흑룡(黑龍) 출현

DUMMY

뜨거운 햇빛이 내려쬐는 가운데, 절벽 아래 백강을 바라보는 정지산(艇止山) 정상의 평지에 조성된 기우제 제단 앞 양 옆에 부여곤을 필두로 한 신료들이 늘어선 지 한 식경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문주왕의 행차나 해구의 당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부여곤은 기우제의 개시 선언을 준비하기 위해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순간 그는 여럿의 발자국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양 옆의 신료들 대열 맨 끝의 한솔, 나솔급 신료들 몇몇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어 연신(燕信)을 비롯하여 몇 명의 달솔, 덕솔, 은솔급 신료들도 대열을 이탈해 부여곤을 향했다. 기우제 참석자들은 비무장이어야 했지만 그들은 저마다 품에서 단도(短刀)를 꺼내들었다. 대열 맨 앞의 좌평급 신료들은 이들의 독기어린 표정을 보고 겁에 질려 자신의 보호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이탈자들의 눈은 모두 부여곤을 노려보고 있었다. 부여곤은 비무장 상태로 심호흡을 한 후 입을 굳게 다물고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다만 그의 얼굴은 서글픈 마음을 비추었다. 뒤는 제단과 절벽, 앞은 단도를 꼭 쥔 이탈자들이 가로막았다. 암살자들의 손은 떨리고 있었으나 눈의 독기는 점점 짙어졌다.


제단의 입구에 설치된 작은 홍문(虹門) 밖의 상황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웅진성 남문에서 나온 장수 한 명이 소리치는 것을 시작으로, 홍문을 향한 길 양 옆의 군사들이 모두 칼이나 창을 들고 목만치, 백가, 해례곤과 그들을 따르는 병사 수십 명에게 달려 왔다.


“왕명이다! 대역죄인 부여곤과 그의 일당들을 척결하라--!”


“와아--”


병사들의 목표가 된 세 사람은 칼을 뽑고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제히 기합을 지르며 공격자들의 칼을 받아냈다.


“이야앗-”


세 사람이 각자 몇 차례 칼을 휘두르자 공격하던 병사들이 대여섯 명씩 상처를 입고 쓰러지거나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 뒤에서 몇 배가 되는 수의 병사들이 쉴 세 없이 세 사람에게 들이닥쳐 왔다.


어느새 기우제 제단의 아수라장을 말없이 지켜보던 해가 어디선가 나타난 구름에 가리기 시작했다. 낮게 깔린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가자 웅진성의 궁 안에서 문주왕에게 부여곤의 역모 혐의를 고변하던 해구는 잠시 고개를 들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비가... 지금... ?’


부여곤이 거하던 목만치의 집에 병사들을 보내 찾아낸 독약병 두 개와 신미 지역으로 달리다 습격당한 전령이 가지고 있던 목만치의 군사 원조 요청 서신을 앞에 놓고, 부여곤 척살 명령을 내렸던 문주왕과 주변의 궁인, 내관들도 흐려져 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크흠!”


해구는 헛기침을 하며 억지로 고개를 내려 문주왕과 증거물들에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문주왕도 정신을 차리듯 해구를 보았다.


“폐하! 이렇듯 명명백백한 역모의 증거들이 있으니 부여곤 일당의 작위와 직위를 박탈하고 하루빨리 척결하라는 왕명은 매우 지당하고 현명하신 판단이었다고 사료되옵니다!”


“하지만... 짐이 조금 성급한 명을 내린 건 아닌지... 추포하여 국문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것이야말로 대역죄인 부여곤 일당이 바라던 상황이옵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역도의 무리가 모여 대적하기 힘든 규모로 불어났을지도 모르옵니다! 여기까지 들리지 않사옵니까? 제단의 싸움소리 말이옵니다. 폐하의 군사들 수가 압도적인데도 쉬이 제압당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옵니다!”


“음...”


문주왕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크윽!”


그 시각 제단. 암살자들의 단도 중 한 자루가 덜덜 떨리며 부여곤의 배에 꽂혔다. 무엇인가에 취하기라도 한 듯 흥분한 얼굴을 한 암살자들의 난자(亂刺)가 시작되었다. 자신의 몸 곳곳에서 뿜어 나오는 피를 보며 고통에 찬 얼굴을 한 부여곤의 머릿속에는 옛 기억들이 다시 스쳐지나갔다. 귤희, 개로왕, 도피, 사마의 탄생, 사신(死神)을 자처한 왜국 원정대, 왜왕 즉위, 떠나는 귤희, 왜국 통치, 귀국, 사마와의 재회, 웅진 복귀...


광기어린 칼부림이 잦아들 즈음 부여곤은 쓰러져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눈이 감겨가는 그의 머릿속, 혹은 마음속에 두 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축자에서 절멸(絶滅)의 원칙에 반대하며 경고하던 귤희의 모습, 그리고 영아 살해라는 자신의 명을 억지로 따른 후 속죄하겠다며 스스로 습격자의 칼에 찔린 백궁의 모습이었다. 부여곤은 눈을 감은 채 고통 속에서도 입가를 올리며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했다.


“귤희... 내... 내가... 말을 듣지 않고... 저지른... 이제.. 속죄를... 백궁... 자네를... 따라가게... 되는...”


그때 부여곤의 얼굴에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암살자들의 땀이 아니라 분명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었다. 떨어지는 물은 두 방울, 네 방울, 여러 방울로 불어나더니 빗줄기가 되기 시작했다. 암살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하늘을 쳐다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진 부여곤은 눈을 감고 편안한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소나기를 내리는 하늘과 숨이 끊어진 부여곤을 번갈아보던 암살자들은 피 묻은 단도를 부여 쥐고 떨던 손은 물론 온몸을 떨며 뒷걸음치다 정신없이 제단에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홍문 밖의 세 사람은 가뭄 끝에 별안간 소낙비가 오는 상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들을 따르던 병사들은 이미 거의 전멸했다. 백가는 소도검법(蘇塗劍法)으로, 해례곤은 한성 시절의 금군(禁軍)에서 단련된 검술로, 목만치는 가야와 왜국에서 널리 쓰이던 강철검으로 그들을 역도로 규정한 장수와 병사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각자 시차만 있을 뿐 한계가 다가옴을 느꼈다.


“윽...”


옆구리에 치명상을 입은 목만치는 칼이 느려지며 합이 거듭될수록 작은 상처도 늘어났다. 한 병사의 칼이 목만치의 목을 향해 휘둘러질 그 때 해례곤의 칼이 막아서서 튕겨낸 후 병사의 허벅지에 꽂혔다.


“으악!”


해례곤은 칼을 다시 뽑고 병사가 나가떨어지자 목만치를 부축했다. 하지만 목만치는 고개를 저었다.


“어서 피할... 길을 찾게... 나는... 이제 가도 되지만, 자네들은... 이 나라의... 미래야...”


땀과 빗물에 흠뻑 젖은 채 정신없이 칼을 휘둘러 병사들의 공격을 격퇴하던 백가는, 관복에 피를 묻힌 채 단도를 들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홍문을 빠져나와 도망가는 일군의 무리들을 보았다.


“전하! 전하는...”


목만치를 부축하고 본능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추가 공격을 막아내던 해례곤도 백가의 목소리를 듣고 홍문 쪽을 바라보았다. 목만치는 두 사람에게 외쳤다.


“어서들 전하를 모시게! 여긴 내가 막아낼 것이야, 이야아--”


목만치는 해례곤의 팔을 뿌리치고 일어서서 앞에서 공격해오는 병사의 배에 칼을 꽂아 넣었다. 찌른 칼을 뽑으려 할 때 다른 병사가 창을 찔러왔다. 목만치는 온힘을 다해 창날을 피하고는 창 자루를 붙잡아 빼앗고는 병사를 발로 차 나뒹굴게 했다.


“어서--!”


백가와 해례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홍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쫒아가는 병사들을 창을 꼬나 쥔 목만치가 막아섰다.


“크윽... 자, 네놈들은... 이 늙은이를 쓰러뜨려야... 저 신성한 제단으로... 향할 수 있을 꺼다... 흐흐흐... 이야아--!”


목만치, 그리고 그와 대치한 병사들은 서로 동시에 맞불을 놓듯 소리치며 격투에 돌입했다.


홍문 안 제단은 빗물에 휩쓸리며 적막에 싸였다. 부여곤의 시신만이 외롭게 놓여있을 뿐이었다. 백가와 해례곤이 달려와 오열했다.


“전하--! 으흑흑...”


백가가 눈가에서 눈물과 빗물을 훔쳐내며 말했다.


“이미 훙서하셨지만... 시간이 없네... 우린 쫓기고 있어... 어서 모셔가세!”


“흑흑... 예... 은솔님.”


백가가 부여곤의 시신을 업고 경사가 낮고 나무가 많은 구릉 능선 속으로 뛰기 시작했다. 해례곤은 칼을 들고 뒤와 주위를 경계하며 뒤를 따랐다.


“크헉!”


목만치의 배에 다시 칼이 꽂혔다. 그는 이번에는 가망이 없는 치명상을 입었음을 직감했다.


“전하! 이제 전하를... 우호장... 백궁을... 따라가옵니다...”


비틀거리며 혼잣말을 하던 목만치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외쳤기 때문에 공격하던 병사들은 잠시 놀랐다.


“백제국 만세! 좌현왕 부여곤 전하 천세! 왜국 곤지왕 천세!”


목만치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병사들은 경계하며 다가가 그의 숨이 끊어졌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비로소 홍문으로 진입한 병사들은 부여곤의 시신이 사라진 것만 발견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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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 동성왕 즉위 (1부 완결) 19.04.10 170 3 16쪽
61 61. 전환(轉換)의 해 (2) 19.04.03 98 1 22쪽
60 60. 전환(轉換)의 해 (1) 19.03.27 95 1 14쪽
59 59. 상봉(相逢) 19.03.20 62 1 12쪽
58 58. 일식(日蝕)과 참새 19.03.13 107 1 15쪽
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56 56. 두 번째 사신단 19.02.27 89 1 17쪽
55 55. 백강격변(白江激變) (3) 19.02.20 118 1 11쪽
54 54. 백강격변(白江激變) (2) 19.01.30 85 1 14쪽
53 53. 백강격변(白江激變) (1) 18.12.26 108 1 14쪽
52 52. 강좌일변(江左一變) (3) 18.12.19 89 1 17쪽
51 51. 강좌일변(江左一變) (2) 18.12.12 109 1 16쪽
50 50. 강좌일변(江左一變) (1) 18.12.05 11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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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승낙의 조건 18.04.03 159 1 11쪽
32 32. 웅진성의 술렁임 18.03.30 221 1 10쪽
31 31. 곤지(昆支) 귀국 (2) +2 18.03.27 26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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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다섯 번째 이름 18.02.16 190 1 12쪽
21 21. 하내(河內)의 봄에서 한성의 가을까지 18.02.13 223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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