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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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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1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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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1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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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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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6. 곰나루에 모여 논하다 (1)

DUMMY

신소도국에서 웅진성(熊津城)으로 통하는 길목에는 작은 강이 흐르는 둘레로 사방에 높지 않은 봉우리들이 여럿 늘어섰고 대두성(大豆城)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산성(山城)들이 봉우리 정상마다 둘러섰다. 이 성들의 존재는 산길로 말을 달리는 신소도국 별장 백가와 별군에게는 안도감을 주지만 적이 들어온다면 사방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게 할 터였다.


한성 함락 사흘 후, 십여 기(騎)의 기병을 포함해 백여 명 쯤 되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대두성 남문을 나와 남동쪽의 웅진성을 향하고 있었다. 이들의 갑옷과 차림은 백제국이나 마한 소국들과는 확연히 달랐고 동남쪽 바다 건너 섬들의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이들을 이끄는 백발이 성성한 장수의 입성은 백제군 장수의 그것이었다. 그는 대두성 남쪽 산길에 흙먼지를 일으키는 백가와 80명 별군의 모습이 멀리 보이자 그쪽으로 병사들을 몰기 시작했다.


대두성의 동남쪽, 백강(白江)이 서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방향을 트는 강변의 야트막한 동산에는 흙을 찌고 다져서 쌓은 성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한성의 두 성과 마찬가지로 수백 년이 넘은 이 성은 곰나루성, 즉 웅진성이라고 불렸다. 이 성은 본래 수백 년간 마한, 나아가 삼한을 대표하는 진왕(辰王)이 있는 도성이었다. 시조 온조왕 시절부터 초기 100여 년 동안을 빼면, 백제국 왕성인 한성이 삼한 전체의 도성 노릇을 한 지는 불과 7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옛날에 진왕은 삼한의 왕을 칭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마한을 제외하고 진한 소국들을 병합한 사로국(斯盧國) 즉 신라, 그리고 변한 소국들이 발전한 가야 연맹은 삼한 소국들과 별개의 독립국으로 처신했다.


웅진성 내의 언덕에는 삼한 소국의 우두머리인 신지(臣智)의 거처로서는 좀 크지만 진왕의 궁으로서는 많이 작은 궁실(宮室)이 있었다. 신지의 거처는 물론 한성백제의 왕이나 진왕의 궁궐 또한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하지 않게’ 짓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삼한의 오랜 전통이었다.


70여 년 전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원정군이 백제와 삼한, 가야를 휩쓸어 끝끝내 패배시킨 뒤로 웅진성의 진왕은 바다 건너 동남쪽의 섬들로 도주했고 왜국(倭國)이라는 이름으로 열도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여씨 가문인 진왕실의 일부가 마한 최대의 소국인 한성의 백제국을 다스리던 해씨 가문 대신 왕권을 차지했고, 나아가 한성을 도성으로 하는 새로운 진왕실의 탄생을 알렸다. 개로왕 부여경은 그 네 번째 진왕이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삼한의 도성이 아니게 된 웅진성의 진왕궁은 70여 년 전부터 비어 있었지만, 한성에서 진왕의 명을 받고 내려온 신료가 마한의 수십 개 소국에서 올라온 신지 또는 읍차(邑借)들을 모아 회맹(會盟)을 주관하거나 긴급 사안에 대한 회합을 소집하는 데 쓰였다.


서기 475년 음력 9월 한성이 고구려군에 함락당한 지 사흘 후, 웅진성 진왕궁 구석의 큰 초가건물에는 고구려의 침공 대비책을 논의하는 신지-읍차 회합이 열리고 있었다. 이 건물에는 타원형의 목재 앉을자리가 층층이 둘러쳐져 있고 가지각색의 마한 소국 우두머리들이 모여 갑론을박을 벌이는 중이었다. 신지, 읍차 또는 그 대리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중구난방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가 쉰 쯤 되어 보이는 풍채 좋은 한 사람이 일어서서 목청을 높여 주의를 끌기 시작했다.


“여러분!”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 사람은 웅진성 근처 비미국(卑彌國)의 신지 연신(燕信)이오! 그동안 지켜져 온 마한 신지-읍차 회합의 순서를 따라, 이번 회합의 좌장을 맡았소이다. 각국에서 직접 오신 신지, 읍차도 계시겠지만, 이번 회의가 긴급히 소집된 까닭에 대신 명을 받아 온 마한 각국의 벼슬아치들도 있을 것이오. 사안이 더없이 중대하니,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거리낌 없이 논의해주시오!”


연신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옆에 앉은 한 백제 신료를 보고 말했다. 험악해 보이는 얼굴에 키 크고 당당한 체격을 가진 그는 연신과 비슷한 연배인 듯 했다.


“먼저, 작금에 백제국에 닥친 상황을 방금 전 당도하신 백제국 달솔 진남(眞男) 장군께서 말씀해주시겠소.”


진남은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분노와 슬픔이 같이 어린,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좌중을 돌아보며 입을 떼었다.


“이틀 전... 백제국의 왕도 한성이...”


좌중은 진남을 응시했다.


“한성이... 고구려군에... 함락되었습니다!”


연신은 고개를 떨어뜨렸고 좌중은 삼삼오오 서로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진남이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삼한의 진왕, 백제 대왕 폐하께옵서, 고구려의 괴수 거련에게 잡혀... 붕어(崩御)하셨소이다... 어흑흑흑...”


연신은 한숨을 쉬고 좌중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다. 누군가 외쳤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누군가가 외쳤다.


“다시 생각해봐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냉정한 표정으로 조용히 있던 키 작고 고집 센 얼굴의 노인이 이렇게 외치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연신이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읍차님?”


그가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이 사람은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의 읍차 국융(國融)이오! 북쪽 한성에 가까운 소국의 우두머리로서 한 말씀 드리겠소이다. 왕도 한성이 함락되었으니, 백제를 섬겨온 우리 자리모로국은 강대한 고구려의 칼끝에 바로 놓이게 되었습니다! 백제군의 주력이 이미 괴멸되었고, 진왕께서도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계속 백제를 섬기고 돕는다면 멸망의 지름길을 뚫는 거나 다름없다는 걸 알 것이오!”


모두 국융을 주시했다.


“만에 하나 하늘이 도와 잘 되어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전쟁에 앞날을 알 수 없겠지요! 지금까지는 백제국을 맹주로 섬겨 이익을 얻고 의를 쌓아왔을지 모르나, 이제 우리들이 살기 위해서는 맹주를 바꾸어 고구려를 섬...”


국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솔 진남이 갑자기 칼을 뽑아 바닥에 꽂으며 외쳤다.


“뭐라! 너희 소국들이... 감히 백제 대왕 폐하와 진왕실의 성은을 거역하고 박적(狛狄)의 졸개가 되자는 말을 대놓고 지껄이는 것이냐!”


좌중은 진남의 서슬 퍼런 반응에 놀라 서로 쳐다보며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국융 만이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진남을 쏘아보며 말했다.


“성은이라 하셨소이까? 진왕께서... 이제 가셨으니 그대의 선왕께서... 지난 20년 동안, 고구려를 치겠다고 욱리하와 백강 곁에 있는 수많은 소국에서 마음대로 걷어간 물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잴 수 없고, 시도 때도 없이 데려가 혹사당하던지 아님...”


국융은 입술을 잠시 깨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죽어간 백성들이 몇이나 되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오!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알지 않소이까? 무려 백 년 넘게, 더러는 수백 년도 넘게 백제를 섬겨왔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충분하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소?”


좌중은 웅성이며 상당수는 진남을 노려보고, 일부는 서로 쳐다보았다. 진남은 기막힌 표정으로 주위를 노려보며 외쳤다.


“백제국 병관좌평 해구 각하 이하, 남아 있는 백제 군병들과 수많은 백성들이 이곳 웅진성으로 오고 있소이다! 당신들이 고구려에 붙을 작정이라면, 여기 이 진남의 목부터 베고 이곳으로 오는 백성들도 싹 다아 죽이시오!”


“진남 장군, 고정하시지요.”


지금까지 말없이 지켜보던 한 사람이 진남을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40대 쯤 되어 보이고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졌으며 굳게 다문 입술이 그의 신중한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도 욱리하와 백강 곁 소국에서 온 분들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오지 못한, 사호강(沙湖江) 곁 신미(新彌) 스무 나라 우두머리들, 그리고 서쪽 바다 건너 우현왕(右賢王) 부여기(夫餘紀) 전하 이하 오월(吳越) 백제인의 대표로 온 벽비리국(辟卑離國) 신지 건무장군(建武將軍) 부여루(夫餘婁)요!”


좌중의 시선이 조용히 부여루에게 쏠렸다.


“제 군호(軍號)와 이름으로 아실 수 있겠지만, 신미 나라의 신지들에게는 백제국 진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소이다. 붕어하신 대왕 폐하께서는 18년 전 저에게 건무장군이라는 군호를 직접 내리셨고, 우현왕 전하와 함께 서쪽 바다 건너 송(宋)나라에 알려 공인을 받아주시기도 하였소. 욱리하와 백강 곁의 소국들이 백제국을 거슬러 고구려 편에 서고자 한다면 막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신미 여러 나라와 우현왕 전하께서는 당연히 동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필요하면 당신들과... 칼을 겨눠야겠지요!”


국융이 다시 쏘아붙였다.


“쳇! 부여씨의 피라... 한성에서 멀어 착취를 당할 일도 없고... 팔은 안으로 굽으니 그대로 팔짱을 끼고, 강 건너 불구경해오다가 우리에게 칼을 뽑겠다? 어디 한 번 해보시지요!”


좌중은 다시 웅성이고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마한 소국 우두머리들의 입장은 백제와 고구려 편, 완전히 둘로 갈렸다. 연신은 한숨만 쉬었다.


“허어... 이것 참...”


그 때 회의장의 문이 열렸다. 수비병이 외쳤다.


“납시오--”


좌중의 눈이 문으로 쏠렸다. 하얀 갑옷을 입은 청년 한 명과 머리와 수염이 새하얀 나이든 장수 한 명이 입장했다.


작가의말

<주석>

* 백강(白江): 백제에서 금강을 부르던 명칭

 

*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하지 않다: 儉而不陋 華而不侈,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 조에서 온조왕의 궁궐 묘사

 

* 사호강(沙湖江): 영산강의 옛 명칭

 

* 우현왕(右賢王): 본래 좌현왕(左賢王)과 함께 흉노왕 선우(單于) 아래의 분봉왕(分封王)을 이르는 말인데 <송서(宋書)>에 기록된 457년 개로왕(부여경)의 국서에 개로왕이 좌현왕 부여곤과 함께 부여기를 우현왕으로 봉하고 송 황제의 승인을 요청하는 내용이 있으며, 여기서는 우현왕을 서쪽의 중국 방면, 좌현왕을 동쪽의 왜국 방면을 담당하는 제후로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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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 동성왕 즉위 (1부 완결) 19.04.10 170 3 16쪽
61 61. 전환(轉換)의 해 (2) 19.04.03 98 1 22쪽
60 60. 전환(轉換)의 해 (1) 19.03.27 95 1 14쪽
59 59. 상봉(相逢) 19.03.20 62 1 12쪽
58 58. 일식(日蝕)과 참새 19.03.13 107 1 15쪽
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56 56. 두 번째 사신단 19.02.27 89 1 17쪽
55 55. 백강격변(白江激變) (3) 19.02.20 118 1 11쪽
54 54. 백강격변(白江激變) (2) 19.01.30 85 1 14쪽
53 53. 백강격변(白江激變) (1) 18.12.26 107 1 14쪽
52 52. 강좌일변(江左一變) (3) 18.12.19 89 1 17쪽
51 51. 강좌일변(江左一變) (2) 18.12.12 109 1 16쪽
50 50. 강좌일변(江左一變) (1) 18.12.05 113 1 13쪽
49 49. 미대(尾代)의 전쟁 18.11.28 153 1 16쪽
48 48. 기생반(紀生磐) 19금 18.11.21 64 1 10쪽
47 47. 문주왕 붕(崩) 18.11.14 138 1 14쪽
46 46. 모반(謨反)의 기운 18.07.17 188 1 11쪽
45 45. 새로운 국면 18.07.10 234 1 15쪽
44 44. 회생 18.07.03 135 1 13쪽
43 43. 꼬리를 적시다(濡其尾) 18.06.26 134 1 11쪽
42 42. 추격 저지 18.06.19 13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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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승낙의 조건 18.04.03 159 1 11쪽
32 32. 웅진성의 술렁임 18.03.30 220 1 10쪽
31 31. 곤지(昆支) 귀국 (2) +2 18.03.27 268 2 12쪽
30 30. 곤지(昆支) 귀국 (1) 18.03.23 183 1 10쪽
29 29. 해구(解仇) 복귀 18.03.20 242 1 13쪽
28 28. 신미(新彌)의 이무기 두 마리 18.03.16 228 1 14쪽
27 27. 서쪽 바다의 방벽 18.03.13 196 1 11쪽
26 26. 백강의 풍랑 18.03.09 20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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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서신(書信)과 속도전 18.02.27 207 1 11쪽
22 22. 다섯 번째 이름 18.02.16 19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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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너는 누구냐 17.12.12 746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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