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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17,486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작성
17.12.12 00:04
조회
745
추천
4
글자
7쪽

5. 너는 누구냐

DUMMY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한낮의 햇빛이 내려쬐는 가운데 백가는 홀로 넋을 잃은 표정으로 솟대광장에서 1리 밖 산속의 냇가 바위에 앉아 있었다.


백가와 달온은 소꿉친구였다. 밝게 웃으며 물장난을 치던 기억, 무예훈련을 같이 받던 기억, 달온이 천녀가 되어서도 시간만 나면 만나 웃던 기억을 떠올렸다. 백가의 기억은 전날 저녁 둘의 대화에까지 미쳤다. 달온의 애틋한 눈빛이 아른거렸다.


“그래야 내가 너와...”


백가는 새삼 달온에 대한 감정을 생각했다. 별장이고 백제고 천군이고 간에 둘만 떠나 살자는 달온의 소원을 떠올렸다.


‘내가... 달온과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평범하게...’


상상 속에서 백가는 아무도 없는 산속의 초가에서 달온과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소원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안다. 달온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백가는 생각했다.


‘아니지, 그것도 아니야. 완전히 다른 분 아닌가. 하늘이 내려 보낸... 원래부터 그런 소원은 없었던 거다.’


해가 기울고, 바람이 불고, 석양이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백가는 여전히 같은 표정과 자세로 냇가 바위에 앉아있었다. 솟대광장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별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별장! 별장~!”


백가는 돌아보지 않았다.


“별장~!”


백가는 비로소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달온과 함께 백가의 소꿉친구인 별군 9인대 대장 협승(協承)이었다.


“어... 어! 승아. 무슨 일이야?”


협승이 백가를 응시하며 소식을 전했다.


“곰나루.. 웅진성에서 신지-읍차 회합이 소집되었다! 소문으로는... 한성이...”


“한성이?”


“한성이... 함락되었다고도 하고... 아무튼, 백제국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위기 상황인 건 확실해! 그리고, 달온... 아니... 새 천군님께서, 별장을 부르시네!”


백가는 조금 놀라는 듯했다.


“뭐? 무슨 일로...”


협승이 말했다.


“아무래도... 별장을 신지-읍차 회합에 보내시려는 것 같아!”


백가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네.”


백가와 협승은 곧바로 솟대광장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석양이 좀더 짙게 드리울 즈음이었다. 천군이 기도를 드리는, 솟대광장 동쪽 가장 큰 초가 장막 안에는 나무토막으로 된 의자들이 원형으로 늘어섰고, 천군 달온을 중심으로 작은천군 세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작은천군 노루가 달온에게 고했다.


“천군님, 일단 말금 천군님을 천계로 보내드리는 일부터 빨리 진행하도록 하시지요.”


달온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합시다. 우리나라의 옛 천도굿을 본받아 성대히 준비해주십시오.”


노루와 다래는 달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천군님!”


작은천군 봄낮은 꼿꼿이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조용히 미동도 없다. 달온은 봄낮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다음 얘기를 꺼냈다.


“천계의 일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세상일을 논할 차례입니다. 작은천군님들께서는 나가시고 별장을 들여 주시지요.”


“예.”


노루와 다래부터 나가고 봄낮도 나가려는 찰나 달온이 그를 불렀다.


“봄낮님!”


봄낮은 멈춰섰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달온은 신내림 받은 때의 무표정하고 냉정한 눈빛을 띤 채 물었다.


“혹, 떠나시려는 겁니까?”


봄낮은 대답하지 않았다. 분노가 내비치는 표정에 주먹 쥔 팔이 살짝 떨렸다. 달온은 말을 이었다.


“작은천군이 신소도국에서 스스로 떠나면, 마한 땅의 다른 별읍에 가더라도 으뜸의 자리에 오를 수 없고 평범한 무녀로 살아야 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봄낮님은 이 신소도국에서 천군 자리에 오를 충분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봄낮님과 같은 훌륭한 작은천군이 필요하고요. 떠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봄낮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천군님.”


달온은 봄낮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는 정말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천군께서 신내림을 받는 순간에도요. 무려 하늘의 명을 직접 받는 모습을 봤는 데도요... 그렇다면 저는 떠나는 게 맞겠지요. 별읍에도 가지 않을 겁니다. 어디로 갈지, 무녀 노릇을 할지, 그만 둘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봄낮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제가 백제국의 왕실, 부여씨 혈통이라는 건 아실 겁니다. 결국 제가 신내림을 받았는데도 세속의 사람일 뿐이고, 천계의 명을 받을 자가 아니라는 것... 그걸 알게 된 거겠죠...”


봄낮은 바로 장막 입구에 드리운 거적을 들추고 나갔다.


달온은 눈을 감고 봄낮의 얘기를 듣다가 봄낮이 나가자 눈을 떴다. 그 순간, 달온과 봄낮은 서로 열두 띠 해가 한 번 돌고 나서야 다시 만나게 될 것임을 알았다. 봄낮은 남쪽으로 향할 것이다. 둘이 다시 만날 때 적으로 맞설지, 아님 친구로 만날지는 희미해 보여 알 수 없었다.


백가는 장막 입구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다가 봄낮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봄낮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말, 떠나려는 것인가...’


입구를 지키던 천녀가 고했다.


“별장님, 들어가시지요.”


해가 산으로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호롱불이 켜진 천군 장막 안에는 달온과 백가가 마주 보고 앉았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달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웅진성에서 신지-읍차 회합이 소집되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본래 신소도국의 세상일은 천군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 게다가 군사적인 일이니 별장님께서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백가는 대답 없이 달온의 표정을 살폈다. 달온의 표정은 이윽고 누그러졌고 입가에는 살짝 미소마저 띠었다. 백가는 이런 달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달온, 너인 거냐? 아니, 다른 분인 겁니까.’


달온이 물었다.


“답을 주시지요...”


백가는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아! 예, 달... 아니 천군님. 가야지요.. 가겠습니다!”


“작은천군 노루님이 제 예언을 별장님께 전할 것이니, 회합에서 그대로 말씀해 주시지요.”


“예언을... 받으셨군요. 예... 그렇게 하지요.”


백가가 고개를 숙여 답하고 일어서서 뒤돌아 나가려는 찰나였다. 달온이 말했다.


“기회는.”


백가는 당황하여 다시 달온의 표정을 살폈다.


“예?”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별장님의 선택에 달려있지요. 하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그대로 될 겁니다.”


백가의 머릿속에는 달온의 천군 등극 전날 그를 바라보는 표정과 둘만의 평화로운 삶을 사는 그의 상상이 다시 빠르게 스쳤다.


‘설마... 아직, 너와 내가 바라던... 그런 삶을 살 수 있단 말이냐. 아니면... 지금처럼 천군으로 모시고 난 별장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달온은 다시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대답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셔도 하늘은 허락하십니다.”


백가는 대답 없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 뒤돌아 나갔다. 달온은 조금 그늘진 얼굴로 미소를 띤 채 백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이미 하나를 선택하셨지만 말이지요.’


작가의말

* 신지(臣智), 읍차(邑借): 삼한(三韓) 시대 소국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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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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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열도(列島)와 군도(群島) 17.12.29 408 2 14쪽
9 9. 탈취(奪取) 17.12.26 419 2 12쪽
8 8. 마주침 17.12.22 530 3 9쪽
7 7. 곰나루에 모여 논하다 (2) 17.12.19 540 3 9쪽
6 6. 곰나루에 모여 논하다 (1) 17.12.15 590 3 10쪽
» 5. 너는 누구냐 17.12.12 746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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