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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17,467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작성
17.12.01 22:38
조회
2,189
추천
16
글자
8쪽

1. 두 성(城)

DUMMY

강은 굽이쳐 붉거나 노란빛이 가득한 아차산을 북쪽으로 끼고 서남쪽으로 휘돌아 흘렀다. 북쪽 사람들은 이 강을 아리수라고 불렀고, 남쪽 사람들은 욱리하라고 불렀다. 산의 건너편에는 흙으로 쌓은, 간간이 망루가 세워져 있는 방벽이 강을 따라 길게 흘렀다. 후대 사람들은 이 방벽을 사성(蛇城)이라고 불렀다.


강이 굽이쳐 흐르는 쪽으로 방벽을 따라 서남쪽으로 나아가면, 아마도 이 강이 흐르는 어느 곳에서보다 클 토성 두 곳과 그에 의지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큰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마한(馬韓) 시절부터 500여 년 번성해온 두 성을 통틀어 당대 사람들은 한성(漢城)이라고 기록했다. 두 성의 우두머리 백제왕(伯濟王)은 예전에는 한성만을 다스렸고, 지금은 대륙도 아니고 섬도 아닌 땅덩어리 남쪽, 삼한(三韓) 전체를 대표하니 백제왕(百濟王)이자 진왕(辰王)이라고 부른다. 대륙의 한 역사서는 ‘여러 족속이 바다를 건너(百家濟海)’ 이곳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백제(百濟)라고 부른다고 썼다. 하지만 지금의 백제왕은 이제 두 성을 잃고, 나라를 세웠을 때의 운명을 다시 되새겨야 할 위기에 놓였다.


두 성의 북쪽 욱리하 건너편 아차산 기슭에 있는 산성을 후대의 기록은 아단성(阿旦城)이라고 불렀다. 남쪽으로 욱리하에 흘러드는 작은 강을 안은 광활한 평지를 서쪽으로 내려다보는 이 산과 산성에는 이미 백제가 아니라 고구려의 군병들이 가득한지 오래되었다. 그들은 이제 산의 남쪽 건너편 적들을 내려다보는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을 준비했다. 먼 서역(西域)의 신(神)이자 인간이라고 기록된 이가 태어난 해로부터 475년, 산하에 가을빛이 완연한 음력 9월이었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을 휘날리는 83세의 고구려 태왕 거련(巨璉)은 직접 갑옷을 입은 채 3만의 정예병을 이끌고 욱리하까지 내려와 한성을 눈앞에 두고 아차산과 그 주변에 진을 쳤다. 3만의 대군이 한성에 나타난 것은 100여 년 전 백제 근초고왕이 삼한의 군병을 모아 고구려 평양성을 도모할 때 이후 처음이었다. 철갑기병, 경기병, 중장보병, 경보병, 욱리하를 통한 수상 공격을 염두에 두고 띄운 전선 수십 척까지 고구려군의 위풍당당한 군세는 거련의 부왕(父王) 광개토태왕의 원정군을 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4년 전 항복하여 귀순한 백제인 장수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의 기억과 승려 도림의 첩보를 따라 정교한 공격로를 설정한 고구려군은 한성 동북쪽의 사성을 넘는 데 성공하여 우회로를 따라 북성(北城)과 남성(南城) 주변 마을들을 도륙하고 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북성을 함락시키려는 공격은 6일째 실패하고 있었고, 공격 초기에 백제왕 부여경(夫餘慶)이 남성의 행궁으로 도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포위당한 부여경은 남성에 웅크리고 앉아 버티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었다. 게다가 백제 병관좌평 해구(解仇) 이하 일부 신료들과 상당수의 백성들이 고구려군의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 남쪽으로 도피하는 것도 목격되었다.


공격 7일째 저녁, 욱리하에 면한 한성 북성의 서벽 밑에 대어 놓고 고구려 군선을 감시하던 백제군 조각배에서 횃불이 바람에 성벽 쪽 갈대밭으로 잘못 옮겨 붙는 것이 목격되자 이를 보고받은 거련왕과 장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날 밤이 깊은 시각, 북성 서벽 앞 강변에 도열한 고구려 군선 수십 척에서 일제히 불화살이 수없이 발사되었고 성 안은 곧 화염에 휩싸였다. 때를 맞춰 사성 방면의 고구려군 기병대가 북성 동문과 북문을 돌파했다.


다음날, 북성의 성벽에는 고구려군의 깃발이 나부꼈다. 연기가 높이 솟아오른 성 안의 광경은 성 밖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낙엽들이 쌓여가는 사이로 울긋불긋한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군사들은 전리품을 챙기거나 투항한 포로들을 포박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낙엽처럼 쓰러졌다.


이 날 석양이 질 무렵, 고구려군 선봉장 재증걸루에게 일단의 백제군 병력이 남성을 빠져나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재증걸루에게는 다행이게도, 백제왕 부여경은 그 중에 없었다는 보고였다. 그에게는 부여경을 꼭 직접 만나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그는 갑주를 갖추고 말에 올라 남성으로 진격을 지시했다.


붉은 노을 아래로 한 장수가 얕은 언덕이 솟아 있는 남성의 북문으로 말을 달려 들어왔다. 낙엽에도, 시체에도, 달리는 장수에게도 햇빛이 부딪혀 붉게 감돌았다. 고구려군의 포위망을 어떻게 뚫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탄 말은 숨이 턱에 차 고꾸라지지 않을까 위태로워보였다.


부여경, 곧 개로왕(蓋鹵王)은 갑옷을 갖춰 입고 오른손에 칼을 든 채 행궁 대전 앞 공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행궁에는 아무도 없었다. 왕의 얼굴과 눈빛은 날카로웠고, 체구는 크지는 않지만 단단했다. 하지만 겉으로 단단한 모습은 무너진 속을 감출 뿐이었다. 낮은 하늘을 바라보는 듯했지만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폐하, 폐하---!”


장수가 달려 들어와 외치며 고삐를 당겼다. 말은 고꾸라질 듯했으나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장수는 굴러 떨어지는 듯 말에서 내려 개로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장수의 얼굴에는 칼자국이 여럿 있었고 다리는 절고 있었다. 어깨와 허벅지에도 자상(刺傷)이 선명했다. 해는 져가고, 고구려군은 다가오고, 다친 장수는 다급했고, 슬픈 왕은 두려웠다. 모든 것이 위태로웠다.


장수는 울먹이며 왕을 불렀다.


“폐하!”


개로왕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말은 없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장수는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폐하~ 하... 흑...”


왕은 비로소 장수를 응시하면서 입을 깨물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소용이 없었단 말이지... 결국은 이렇게 되는가... 큭... 큭...”


장수는 고개를 들고 다급한 목소리로 고했다.


“모두, 모두.. 왕후 전하도, 태자 전하도 잡히셨습니다! 폐하... 어라하! 어서 이곳을 나가시어 사직을 보존하소서!”


왕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하늘을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떨구고 웃었다.


“큭... 흐흐흐... 그래 나가야지! 속고, 패배하고, 모두 넘겨주고... 이런 바보 같은 자가 또 있을까? 하늘이 버린 자... 흐흐... 죽지도 못하고 도망을 쳐야 한다... 엉?”


장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왕은 계속 웃더니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으아아아---”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해는 져가고, 고구려군은 다가오고, 다친 장수는 다급했고, 슬픈 왕은 망연자실했다. 모든 것이 위태로웠다. 부여경이 백제 왕위에 오른 해로부터 스무 해, 서기 475년 음력 9월이었다.


해가 넘어가고 붉은 빛도 희미해져갈 즈음, 재증걸루의 선봉 경기병 부대가 남성의 북문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는 본래 백제인. 백제를 떠난 지 14년도 넘었건만 남성의 구조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재증걸루는 기병들에게 명해 개로왕을 찾게 했다.


“이 길로 가면 행궁이다! 너희들은 행궁으로 가 왕을 찾아라!”


그는 또 다른 기병들에게도 명했다.


“너희들은 남문으로 곧장 가라. 이 길이다!”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진 후 재증걸루와 기병대는 왕이 성을 빠져나갔음을 알았다. 하지만 재증걸루는 그가 어디로 갔을지 짐작하고 있었다.

2012-11-04 14.01.12.jpg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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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28 kk****
    작성일
    17.12.02 09:38
    No. 1

    본문에 왕후 마마 태자 마마 부분을 전하로 수정하셔야 합니다 마마(媽媽)라는 궁중 용어는 삼국시대에 없던 존칭입니다 마마가 우리나라 왕조에서 궁중용어가 된건 고려말 원간섭기떄 고려 왕실에 시집온 몽골 공주들이 전파시킨 용어로 알고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왕태후와 왕후에게 무슨 존칭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전하라고 했을것 같습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의 기록을 보면 원 간섭기 이전의 고려에서는 임금에게만 폐하라고 했고 왕태후와 왕후에게는 전하라는 존칭을 사용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無名夢
    작성일
    17.12.03 11:54
    No. 2

    지적 감사드리고, 수정하였습니다. 마마가 호칭으로서 어감이 좀더 맞는 느낌은 듭니다만, 고대의 호칭이 아니니 다른 호칭으로 마땅한 것도 없는 듯하여 말씀대로 전하로 고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한.여울
    작성일
    18.01.26 01:06
    No. 3

    부럽네요 글도 잘쓰시고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 無名夢
    작성일
    18.01.26 11:57
    No. 4

    과찬이십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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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 동성왕 즉위 (1부 완결) 19.04.10 169 3 16쪽
61 61. 전환(轉換)의 해 (2) 19.04.03 97 1 22쪽
60 60. 전환(轉換)의 해 (1) 19.03.27 94 1 14쪽
59 59. 상봉(相逢) 19.03.20 61 1 12쪽
58 58. 일식(日蝕)과 참새 19.03.13 106 1 15쪽
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56 56. 두 번째 사신단 19.02.27 88 1 17쪽
55 55. 백강격변(白江激變) (3) 19.02.20 117 1 11쪽
54 54. 백강격변(白江激變) (2) 19.01.30 84 1 14쪽
53 53. 백강격변(白江激變) (1) 18.12.26 107 1 14쪽
52 52. 강좌일변(江左一變) (3) 18.12.19 89 1 17쪽
51 51. 강좌일변(江左一變) (2) 18.12.12 109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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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승낙의 조건 18.04.03 158 1 11쪽
32 32. 웅진성의 술렁임 18.03.30 22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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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해구(解仇) 복귀 18.03.20 24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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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서쪽 바다의 방벽 18.03.13 19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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