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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17,484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작성
17.12.22 00:04
조회
529
추천
3
글자
9쪽

8. 마주침

DUMMY

한성이 함락된 날로부터 나흘이 흘렀다. 어느 개천가를 따라 수백의 백제 군병들을 필두로 피난하는 백성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갑옷을 입고 말에 탄 채 맨 앞에서 행렬을 이끄는 쉰둘 나이의 백제국 병관좌평 해구(解仇)를 비롯하여 살아남은 중신들, 군사들과 족히 수만 명은 되는 백성들은 대부분 지치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구려군의 추격이 없다는 점이 확인 된 후 행렬의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불타는 한성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더 이상 뒤로 보이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웅진성의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와 옛 목지국(目支國) 근처에서 신소도국의 하얀 군복을 입은 군사 81기(騎)가 말을 달렸다. 선두에서 달리는 백가와 협승을 비롯해 신소도국 별군(別軍) 병사들은 각자 모두 기병과 보병부터 전령과 간자(間者)에 이르기까지 모든 병과(兵科)에 대한 교육을 받고 일정한 고급 수준을 넘어야 했다. 이것이 그들이 81명의 적은 숫자로 신소도국 방위를 책임지는 비결이었다. 이제 그들은 마한을 대표하는 최대 소국이자 진왕실을 담당하는 백제국의 군사와 백성을 인도해야 한다.


한편 느릿한 행렬을 이끌며 터벅터벅 걷는 말에 탄 병관좌평 해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개로왕의 붕어(崩御)는 이미 첩보를 통해 들은 바이고 달솔 진남을 앞서 웅진성으로 보내어 신지-읍차 회합에 그 소식을 전하게 했다. 왕후와 태자를 비롯한 왕족과 중신들의 처형 소식 역시 조만간 듣게 될 터였다. 부여씨의 백제국이 존망의 위기를 맞았고 황망히 도주하는 게 사실이었지만 해(解)씨 가문을 생각하면 어떤 기회가 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불과 70여 년 전까지 백제왕은 해씨 가문에서 배출되었음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웅진성의 회합보다도 개로왕에게 강요하다시피 하여 받아냈고 피난 행렬과 달솔 진남에 따로 앞서 보낸 아주 귀중한 물건이 무사히 웅진성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때 여러 가지 책략과 계획을 골똘히 생각하던 해구의 옆에서 호위 장수가 손을 들고 말고삐를 당겨 행렬을 멈추게 했다.


“워~”


해구도 말을 멈추게 했고, 이윽고 이를 따라 군사와 백성들의 긴 행렬도 멈췄다. 해구가 물었다.


“무엇인가?”


장수가 해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예, 좌평 각하! 저쪽을 보시지요.”


멀리 남쪽에서 흙먼지가 일며 일단의 군사들이 말을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해구는 앞쪽을 주시했다.


“뭔가, 설마 고구려군인가?”


장수가 답했다.


“아닌 듯합니다. 고구려군의 복색은 아닌데 처음 보는 복장인지라...”


미지의 군사들은 백제군에게 접근했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해구는 장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해구를 중심으로 장수와 군사들이 각기 활 또는 창과 방패, 칼을 들고 해구를 둘러싼 후 순식간에 방어 대형을 갖췄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신소도국 별군을 이끄는 백가는 백제군을 알아봤다. 그는 백제군의 방어 대형이 신속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역시, 고구려와 숫하게 싸워 온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군.’


별군들은 백제군의 코앞에 다가서서야 말고삐를 당겼다. 작은 하얀 깃발을 등 뒤에 꽂은 백가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해구를 주시했다. 해구의 호위 군사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해구가 호통을 쳤다.


“이놈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백가는 말에 탄 채 해구에게 정중히 목례하고 물었다.


“혹시 백제국의 병관좌평, 해구 각하이신지요?”


해구는 움찔하며 답했다.


“그렇네만...”


백가는 다시 해구에게 목례했다. 이번에는 다른 별군 병사들도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소장, 신소도국의 별장 백가라 하옵니다!”


해구는 여전히 탐탁찮은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가? 여긴 어쩐 일인고?”


백가가 고개를 숙인 채로 답했다.


“소장, 각하와 백제의 군병 및 백성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우선, 한성이 함락되고 진왕 폐하께옵서 붕어하신 것에 비통함을 금할 수 없사옵니다!”


백가 옆에서 협승이 말을 이었다.


“이에, 백강과 사호강 곁 마한의 소국들은 모든 힘을 모아 백제국을 돕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소장, 신소도국 병대(丙隊) 대장 협승이라 하옵니다!”


백가가 다시 말했다.


“소장, 좌평 각하와 백성들을 모시는 길잡이가 되겠사옵니다!”


해구의 호위 장수가 여전히 전투준비 태세를 유지한 채 물었다.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소?”


백가가 비단에 쓰인 서신을 꺼내 해구에게 받들어 내밀었다.


“웅진성에 와계신 백제국 달솔 진남 장군의 서신입니다! 읽어보시지요.”


해구는 서신을 전달받아 펴보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흠... 달솔의 필체는 맞구먼. 수결(手決)도 놓여 있고.”


해구는 전군에 명했다.


“거두어라!”


장수와 병사들은 일제히 전투준비 태세를 풀었다.


해구는 백가와 별군을 잠시 주시하고는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


“고맙구먼. 그런데 이게 다인가?”


백가는 고개를 들고 반문했다.


“예?”


해구는 한숨을 쉬고는 호통을 쳤다.


“후... 나를 비롯해 백제국의 대소 신료와 장수들, 군사와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지 않는가? 처음 보는 소국의 이름도 없는 장수를 보내 맞이하게 하다니... 그것도 백 명도 안 되는 병사들을 딸려 보내서... 이게 무슨 경우인가 말이야!”


백가는 말을 참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옆의 협승은 분노에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백가는 협승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당장 칼이라도 뽑을 기세였던 협승은 이를 가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백가는 다시 해구에게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급히 오느라 많은 병사들을 대동하지 못했사옵니다.”


해구의 찌푸린 얼굴은 약간 풀어졌지만 어디 잘하나 보자는 느낌의 눈빛과 입술 모양은 여전했다.


“그래, 어떻게 할 요량인가?”


“소장의 짧은 생각을 진남 장군께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하셔서 말씀드립니다. 우선, 백제국 백성들의 행렬이 매우 느려 피난에 애를 먹었으리라 사료됩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일단 이곳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대두성(大豆城)과 그 주변의 산성들로 피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두성과 그 주변 산성들의 촘촘한 분포로 인한 견고한 방어망의 명성은 해구도 익히 들어왔던 터였다. 방어할 군사도 많지 않은 형편에서는 대두성 근처의 많은 요새들로 백성들을 분산해 수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다. 해구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흠, 뭐,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백가가 말을 이었다.


“병관좌평 각하께서는 한성에서 온 병사들만 이끌고 웅진성으로 향하시면 되옵니다. 머지않아 사로국의 구원군 1만이 도착할 것이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해구가 말했다.


“그건 진남 장군의 서신에도 쓰여 있는 내용일세. 자네는 백성들을 이끌고 따로 서쪽으로 가면 되겠군.”


백가가 답하며 목례했다.


“예, 좌평 각하. 그럼 소장, 곧장 뒤쪽의 백성 행렬로 가 대열을 정비하겠습니다. 무사히 웅진성으로 향하시길 비옵니다!”


해구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백가는 병사 여덟 명을 이끌고 백제군을 우회하여 뒤쪽으로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협승과 다른 9인대장들 역시 각자의 부대를 이끌고 백성들 행렬의 사방으로 달려가 인도하기 시작했다. 백가의 을대(乙隊)와 정(丁), 무(戊), 기(己)대의 네 부대는 백성 행렬의 맨 뒤로 달려가 혹시 모를 고구려군 추격대의 출몰에 대비했다. 경(庚), 신(申), 임(任), 계(癸)대의 네 부대는 각 두 부대씩 행렬의 좌우(左右)를 맡았다. 협승의 병(丙)대는 행렬의 앞에서 이끌었다. 신소도국의 갑대(甲隊)는 천군과 작은천군, 천녀로 이루어진 부대로 신소도국 소도가 위협을 받지 않는 한 평소에는 소집되지 않았다.


백가의 을대 및 다른 세 9인대는 노인과 어린아이, 여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맨 뒤로 처져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가운데로 이동시키며, 행렬 맨 앞의 젊은이와 장년 위주 대열을 나누어 그 앞뒤로 배치하도록 인도했다. 해구와 병사들은 아직 떠나지 않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해구가 혼잣말을 했다.


“흠... 어린 녀석이 제법이군. 생각보다 쓸 만하겠어. 2백의 군사를 저리 보내 지원케 하라!”


장수가 맞장구를 쳤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하명하신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해구가 입꼬리를 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쓸 만하다는 건 내 편이 될 때에 그렇다는 얘기지. 저렇게 대열 위치를 바꿀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자를 저렇게까지 배려하겠다는 것인가? 스스로 강해지지 못하는 자들은 보호해주는 것만도 감사할 일인데 저럴 필요가... 쯧. 백가라고 했나. 저 녀석이 내 편이 되기는 쉽지 않겠군. 자, 가세! 웅진성까지. 전속력으로!”


“예! 출발한다~”


말을 달리는 해구와 장수들을 필두로 백제국 병사들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사방에 날려 시야가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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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 동성왕 즉위 (1부 완결) 19.04.10 170 3 16쪽
61 61. 전환(轉換)의 해 (2) 19.04.03 98 1 22쪽
60 60. 전환(轉換)의 해 (1) 19.03.27 95 1 14쪽
59 59. 상봉(相逢) 19.03.20 62 1 12쪽
58 58. 일식(日蝕)과 참새 19.03.13 107 1 15쪽
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56 56. 두 번째 사신단 19.02.27 89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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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웅진성의 술렁임 18.03.30 220 1 10쪽
31 31. 곤지(昆支) 귀국 (2) +2 18.03.27 26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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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서신(書信)과 속도전 18.02.27 207 1 11쪽
22 22. 다섯 번째 이름 18.02.16 19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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