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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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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7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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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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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10. 열도(列島)와 군도(群島)

DUMMY

백제와 삼한이 있는 반도(半島)의 동남쪽에는 동북 방향으로 길게 뻗은 섬 여러 개가 이어져 있다. 서기 475년 음력 9월, 가야 연맹의 소국들이 포진한 반도 남해안에서 넓지 않은 해협을 건너 있는 축자(筑紫) 섬과 이곳에서 동쪽으로 아주 좁은 해협을 건너 가장 크게 뻗은 섬 중부까지는 수많은 소국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70여 년 전부터 한 갑자(甲子), 60여 년의 간격을 두고 이들 열도의 작은 나라들에게는 큰 격변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격변은 대개는 가야계(係)이고 현지인이 자립한 경우도 심심찮게 있는 소국들을 아우르려는 강력한 세력이 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들이닥친 사건이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과의 수 차례 대결에서 패배하고 근거지를 아예 옮기려는 삼한백제의 진왕(辰王)과 그의 백성들이었다. 비록 반도에서 패배했을망정 그들의 무력은 이제까지 열도에 존재하며 맹주를 칭했던 어떤 세력보다도 강했다. 게다가 그들은 원주민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그물로 얽어매어 죽이는 잔인함까지 보였다.


축자에서 지금은 왜국의 중심이 되어 있는 큰 섬 중부의 하내(河內)까지 수많은 소국들이 사라지거나 망명자 진왕에게 항복했다. 후대 사가들은 이 왕의 강력함과 잔인함에 신격(神格)을 부여하여 응신(應神)왕이라는 시호를 붙였다.


응신왕은 삼한을 아우르던 진왕의 영향력을 열도에 옮겨와서도 누리고자 하여 서쪽 바다 건너 동진(東晉)과 그 뒤를 이은 송(宋)에 사신을 보내 ‘왜왕 찬(讚)’을 자칭하는 한편, 고구려 사신을 초대해 활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고구려 장수왕은 ‘왜국’이 곧 부왕(父王)이 패퇴시킨 삼한백제가 옮겨간 것임을 알게 되어 부왕의 공적을 새긴 광개토태왕비에 고구려의 남쪽 주적을 ‘왜(倭)’라고 적게 했다. 그런데 응신왕의 다음 왕은 기록에 의하면 초가로 지은 궁에 살며 백성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펴 칭송을 받았다. 후대 사가들은 그에게 인덕(仁德)왕이라는 시호를 붙였다.


응신왕과 인덕왕의 후손들은 선조를 기리는 거대한 능을 만들어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다. 응신왕의 능은 긴 변의 길이가 1리 남짓이나 되는 ‘해자’를 두르고, 뒷면은 둥글게 앞면은 네모로 쌓은 거대하기 짝이 없는 고분이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인덕왕의 능 역시 응신왕의 능보다는 작았지만 역시 낮은 산, 아니 성(城)에 가까웠다. 인덕왕의 생전 검소함과는 지나치게 거리가 먼 능이었다.


전에 없었던 크기의 능을 쌓는 데에는 엄청난 인력과 자원이 소요되었고 하내 주변의 소국들에서는 매일같이 백성들이 징발되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불만은 왜왕 계승을 주장하는 여러 왕족들이나 세력가들에게 나누어 흡수되었다. 그리하여 수년의 대공사를 거쳐 두 능이 완성되었을 즈음 왜국에서는 왕위를 노리는 자들의 음모와 무력 충돌이 난무하고 있었다.


한성이 함락될 즈음의 어느 날, 부여곤(夫餘昆)은 말을 타고 응신왕릉의 동쪽 ‘해자’ 옆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그는 이 고분을 쌓게 한 자들의 어리석음을 곱씹었다. 14년 전 서른다섯 나이였던 자신이 종식시킨 왜국의 혼란이 죽은 선조의 거대한 기념비, 즉 고분으로 나라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망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했다. 왜국의 두 번째 격변은 바로 그가 그런 망상에 휩싸인 자들을 평정하는 과정이었다. 왜왕위에 오른 이후로 그는 자신의 무덤을 시작으로 과하게 큰 능을 쌓지 않는다는 다짐을 신료들에게서 수시로 받았다.


“한성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가? 고구려와의 전황(戰況)이라든지 대왕 폐하의 안위 말일세.”


항상 그를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서른셋 나이의 대사인(大舍人) 금주리(今州利)가 답했다.


“예 전하, 아직 없습니다만...”


거리가 멀고 바다와 산과 강을 건너야 하는 조건 때문에 부여곤에게 항상 매우 늦게 전해지는 한성으로부터의 소식은 대부분 자신의 형 개로왕에 대한 것이었다. 수년 간 개로왕이 낮에는 백성들과 소국들을 동원해 욱리하 남안(南岸)에 사성(蛇城)이라는 긴 방벽을 쌓는 데 전념하고 밤에는 한 승려를 대동하여 바둑놀이에 여념이 없다는 얘기가 계속 들려왔다. 부여곤은 응신왕릉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큰 무덤을 쌓는 것보다야 필요할 수 있는 일이지만... 형님 폐하께서도 이들의 어리석음을 반복 하려는가. 민심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이거늘...’


가장 최근에는 고구려군이 한성 코앞의 아단성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만의 대군을 이끌고 장수왕이 직접 내려왔다는 전언(傳言)에 부여곤은 즉시 축자에 전령을 보내 노장(老將) 목만치로 하여금 군사를 보내도록 명했다. 하지만 당장 출발하여 신속하게 한성까지 갈 수 있는 군사는 1백에 불과했다. 지금 부여곤은 축자군이 대두성에 다다랐다는 소식이 들려온 후 다음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한성이 위태롭다. 만약에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내는, 축자는,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까...’


그는 곧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지금 일이 생기기를 바라고 있는 건가... 대비는 해야겠지만... 훗, 민심이라니... 내가 했던 짓을 또 잊고 이러는 군.’


백제 정로장군 좌현왕 부여곤(百濟 征虜將軍 左賢王 夫餘昆). 18년 전 개로왕이 그에게 내리고 국제적인 승인까지 받아낸 칭호였다. 그로부터 4년 후, 좌현왕으로서 임무를 실행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부여곤을 둘러싼 조건은 최악이었다. 개로왕은 부여곤의 상황과 악조건을 분명히 알고서도 명을 내렸다. ‘수백 년을 떠돈 부여의 영원히 가라앉지 않는 큰 배를 확보한다’는 게 애초에 두 형제가 합의한 대의(大義)였지만 이때에 이르면 부여곤에게 죽음을 명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부여곤이 명을 받들어 수개월의 준비가 끝나고 2백에 불과한 군사를 태운 선단(船團)을 출발시켜 축자 부근 바다까지 나아갔을 때는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그의 군대는 폭풍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축자에 상륙했지만 하내(河內)까지 가는 길은 매우 멀었고, 열도의 수많은 소국들은 그들이 하내의 어느 왕위 계승자를 지지하던지 간에 부여곤의 적이었다. 혹 그들이 부여씨 동족(同族)인 응신왕과 인덕왕의 후손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스스로 변하는 것만이 그가 살아남고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는 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이겼지만 수많은...


여기까지 떠올린 부여곤은 고개를 저었다.


“궁으로 돌아가세.”


부여곤 일행은 인덕왕 때부터 써오던 초가로 된 궁을 향했다. 부여곤의 마음속에는 언젠가부터 ‘속죄(贖罪)’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가 죽인 이들에 대한 속죄이기도 했고, 불행하게 얽혀버린 인연의 한 여인에 대한 속죄이기도 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만든 시초였다.


‘귤희(橘姬), 어디에 있소. 소식이라도 들렸으면 좋으련만..’


초향비(草香妃)로 봉해진 귤희는 부여곤의 왜왕 즉위 직후 조용히 떠났다. 14년 동안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귤희가 하내까지 온 것도, 떠난 것도 부여곤 때문이었다.


부여곤이 왜왕궁으로 돌아오자 왜국 출신의 어린 후궁으로서 비어있는 왕비 자리의 일까지 도맡은 동녀군(童女君)이 그에게 고했다.


“전하. 오국(吳國)의 상단이 신미(新彌)와 축자를 거쳐 박뢰(泊瀨)에 도착했습니다. 궁에 필요한 물품을 적어보았사오니 살펴봐주시고 구입을 재가해주시지요.”


“알겠소.”


부여곤은 목간 꾸러미에 쓰인 물품 목록을 살펴보고 군수품 목록을 추가해 적으려다 다시 생각에 잠겼다.


‘오국이라...’


이 시기에 ‘오국’은 처음 듣는 사람들이나 왜국의 일부 신료들까지도 중원의 남조(南朝) 송(宋)나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매우 흔했지만, 사실 건강성(建康城)의 조정이 아니라 송나라의 동쪽 끝 회계(會稽) 지역 앞바다의 군도(群島)를 중심지로 하는 반(半)독립적인 세력들을 뜻했다. 이들은 대대로 해양 생활과 군사의 모든 면에 능한 민족으로 대부분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며, 예전에는 월인(越人)의 피가 섞인 이들이 많았으나 나중에는 석탈해계(係)의 신라인, 그리고 회계 지역으로부터의 직통 항로가 개척되기 시작한 반도 신미(新彌) 지역 백제인들의 비중이 커졌다.


귤희가 부여씨이기는 했지만 신미 지역 출신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부여곤은 오국이 그의 행선지가 아닐까 짐작해보기도 했으나 정작 오국의 상단이나 사절단이 올 때는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귤희가 떠난 이유를 곱씹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오국 사람들이 떠나면 다시 후회하곤 했다. 이번에도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여곤은 여전히 귤희에 대해 묻지 않고 창밖으로 구름에 반쯤 가린 해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국이라 불리는 곳, 아직 많은 이가 시도하지 못하는 직통 항로로 가더라도 열도에서 반도를 들러 서쪽으로 한참을, 반도에서조차 서남쪽으로 며칠은 가야 하는 군도. 짧지만 아가리를 매우 크게 벌린 용과 같은 모양의 전당강(錢塘江) 하구 회계(會稽)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수많은 섬들의 모습은 마치 큰 배들과 같았다. 그 군도의 섬들마다 역시 수십에서 수백 척의 배들이 모여 포구에 웅크리고 있거나 섬 사이를 떠다니는 장관 사이, 한 작은 섬의 언덕에서 백선(苩仙)은 홀로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을 탓하고 있었다.


“가을 날씨 좋네. 구름만 더 없으면 좋을 텐데.”


그는 또 혼잣말을 하고 웃으며 일어서서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아무렴 어때. 바다가 잔잔하니 배들이 잘 다니면 됐지.”


그의 나이 올해 열일곱, 신소도국과 오빠인 백가(苩加)를 떠나 온지도 일곱 해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셈이 빠르고 바다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불과 열 살에 주산군도(舟山群島)로 가는 상단의 배에 무작정 올라탔다. 이제 그는 주산군도를 넘어 오월 지역과 송나라 도성인 건강성의 경제를 주름잡는 월지향(越枳香) 상단의 어엿한 초급 산원(算員)이 되었고, 상단 대목(大牧)인 여인 월지향의 저택에 의탁하고 있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유일한 혈육인 오빠 백가를 일찍 떠나온 그에게 월지향은 스승이면서 대모(代母)나 다름없었다.


저 멀리 섬들 사이로 지나가던 한 무리의 배들 중에서 한 척이 떨어져 나와 백선이 서 있는 매잠도(梅岑島)의 바닷가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매잠도는 군도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 작은 편이었지만 월지향을 비롯해 상단의 높은 직책에 있는 이들의 저택이 있는 섬이었다.


“혼자 뭘 하고 서 있어? 대목님께서 돌아오신다! 포구로 가자고, 빨리.”


30대의 행수 양무(楊茂)가 백선을 불러 재촉했다.


“예, 행수 어른--”


백선은 짐꾼 여럿이 따르는 행수 일행을 향해 뛰었다. 그들이 포구에 도착했을 때 배는 이미 닻을 내리고 있었다. 선원들과 짐꾼들이 한참 배에 실린 봇짐들을 나른 뒤에야 대목 월지향이 포구의 나무 부두에 발을 디뎠다. 양무와 백선은 월지향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월지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의 여인인 월지향이 군도에 나타나기 전 그의 과거는 백제 출신이라는 것 외에 그가 항상 눈 밑 얼굴을 감싸고 있는 비단에 싸여 있는 듯이 가려져 있었다. 13년 전 홀연히 나타난 그는 불과 수 년 만에 지역 일대를 주름잡고 건강성의 송나라 신료들과 백성들이 크게 의존하는 상단을 일궈냈다. 막강한 정보력과 빠른 결단력, 그리고 해안 지역의 다양한 족속들을 하나로 이끌어내는 포용력이 지금의 번영을 만들어내었다.


“단양(丹陽)의 포구에서 곧장 장강(長江)을 따라 내려와 바다로 나오신 겁니까?”


양무가 월지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양 행수.”


“무언가 일이 생긴 모양이군요.”


양무는 월지향의 눈 밑 얼굴을 가린 비단의 색을 보고 물었다. 월지향은 항상 청록색과 노란색 두 색으로 손익이나 정세의 양호한 정도를 표시했다. 지금 그는 노란색의 비단을 쓰고 있었다.


“건강성의 송나라 조정에 또 사건이 생긴 것인지요?”


이번에는 백선이 물었다. 월지향은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다, 선아. 건강성이야 여전하지. 대장군 소도성(蕭道成)의 장악력이 약해지지도 않았고, 은행(恩幸)들의 줄서기도 여전하니 당분간 해 온대로 거래를 해도 될 듯하구나. 문제는 집아관(集雅館) 쪽이다. 본국의 일이 걱정 되는구나. 고구려가 한성을 3만의 대군으로 들이치고 있다고 한다!”


집아관은 건강성의 백제 사신관이다. 18년 전 백제에서 부여기가 우현왕의 소임을 맡아 온 뒤로는 우현왕 이하 소수의 백제 신료가 아예 상주(常駐)하는 공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월지향이 전한 소식을 듣고 백선과 양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선이 너의 오라버니, 별장 백가에게서는 무슨 소식이 없느냐? 당항(黨項)이나 법성포(法聖浦) 쪽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월지향이 백선에게 물었다.


“예, 아직... 없습니다..”


백선은 대답하며 어두운 눈빛으로 동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양무와 월지향의 눈도 같은 쪽을 향했다.


‘아아, 전쟁이라니. 오라버니는 아무 일이 없을까... 천군님은.. 달온 언니는..’


갈매기 소리와 파도 소리가 매잠도의 포구에 간간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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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 전환(轉換)의 해 (1) 19.03.27 95 1 14쪽
59 59. 상봉(相逢) 19.03.20 62 1 12쪽
58 58. 일식(日蝕)과 참새 19.03.13 107 1 15쪽
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56 56. 두 번째 사신단 19.02.27 89 1 17쪽
55 55. 백강격변(白江激變) (3) 19.02.20 118 1 11쪽
54 54. 백강격변(白江激變) (2) 19.01.30 85 1 14쪽
53 53. 백강격변(白江激變) (1) 18.12.26 108 1 14쪽
52 52. 강좌일변(江左一變) (3) 18.12.19 89 1 17쪽
51 51. 강좌일변(江左一變) (2) 18.12.12 109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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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9. 미대(尾代)의 전쟁 18.11.28 153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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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때를 기다리다 18.01.09 2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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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열도(列島)와 군도(群島) 17.12.29 409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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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너는 누구냐 17.12.12 746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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