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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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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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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3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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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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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1. 하내(河內)의 봄에서 한성의 가을까지

DUMMY

왜왕에 즉위한 부여곤, 곧 곤지왕은 안강왕 사후 5년 이상 분열과 혼란을 거듭하여 어지러워진 왜국 조정을 통합하고 자신에게 복속된 소국들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힘썼다. 철권통치와 덕치(德治)를 적절히 오가는 그의 치세는 왜국을 서서히 안정시켰지만, 백제계와 가야계, 원주민 등 소국들과 백성들의 오랜 분열과 반목을 완전히 치유하기는 힘들고 잠복된 수준에서 관리하는 정도였다.


그에게 죽었던 시변왕자(市邊王子)의 두 아들이 사라진 사건은 즉위 직후 곤지왕의 통치에 부담을 주었다. 왕은 시변왕자의 어린 아들들을 궁으로 데려와 키우겠다며 사절을 보냈지만 이미 피신하여 숨은 상태였다. 시변왕자의 사인(舍人)들이 사절들을 사형집행관으로 오인하여 왕자들을 데리고 사라진 것이다. 구(舊) 왜왕실은 이 사건으로 곤지왕의 선의(善意)에 의심을 품었지만 갈등은 그의 위세에 눌려 가려진 채 오랜 세월이 흐르게 될 터였다.


“전하.”


서기 463년 음력 3월, 즉위 후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눈 밑을 비단으로 가린 귤희, 즉 초향비가 왜왕궁 한켠의 칠지도가 모셔진 사당 앞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곤지왕에게 다가와 그를 불렀다.


“....”


고개를 돌려 초향비를 바라본 곤지왕은 너무 놀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를 한참 지켜보던 왕은 환하게 밝아진 표정으로 비로소 말했다.


“방.. 방금, 과인을... 부른 것이오?”


“그렇사옵니다.”


“이게 얼마만인 줄 아시오? 과인의 기억으로는... 반년도 넘은 것 같소!”


“압니다. 소첩이 왜 전하께 그랬는지는 잘 아실 것이고요.”


“그럼... 이제 과인을 용서해주시는 것이오? 고맙소.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소!”


초향비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든 뒤 칠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첩은 제가 가장 증오하는 분을 대신하여 저 칼을 받들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분께 드려서 이 나라의 왕위에 오르시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이제 소첩의 할 일은 다 한 듯하군요. 전하를 이미 용서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전하께선 왜왕위를 포기할 수 있으실까요? 축자섬의 지옥에 대한 기억이 지워질지요? 신소도국의 비밀 마을에 살며 사마(斯麻)를 제 뱃속에 키울 때처럼, 다 잊고 산속에 들어가 평범하게 살 수 있으시겠습니까?”


곤지왕은 불길한 예감을 느낀 듯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그건...”


초향비는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전하께서도 힘드시면 그때를 기억해주십시오. 소첩은 이제 떠나겠습니다. 신소도국의 그 무녀 아이가 한 예언이 떠오르는군요. 초향비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이제 멀리 떠나 다섯 번째 이름을 얻게 되겠지요.”


초향비는 곤지왕에게 절을 하더니 일어서서 뒤돌아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눈에 눈물이 맺힌 왕은 멀어져가는 초향비에게 팔만 뻗어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힘없이 한 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가지 마시오! 가지 마오!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건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구려.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용서하시오. 그대도 나도 그럴 힘이 없음을 알고 있소. 어디로 가는지만, 어떻게 살 건지만 알려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그러고 싶지 않겠지요...’


사흘 후 내관 한 명이 초향비의 부재(不在)를 아뢰었다. 사방으로 그의 행방을 찾도록 명한 곤지왕은 그 이틀 후 드디어 소식을 들었다. 초향비가 몸종과 사인 몇 명만을 데리고 박뢰 근처의 포구에서 배를 탄다는 첩보였다. 왕은 곧바로 홀로 말을 몰고 포구로 달려갔다. 호위 군사들이 뒤늦게 왕을 좇아 포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멀찍이 떨어진 언덕 위에서 초향비가 배에 오르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위장이 물었다.


“전하! 비(妃)전하를 멈춰 세울까요? 당장 내려가겠습니다!”


왕은 단호히 답했다.


“아니다! 쫓지 마라.”


곤지왕은 그저 초향비가 탄 배가 시야에서 작아져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볼 뿐이었다. 궁에 돌아온 그는 초향비가 떠난 빈자리를 채울 왕비의 간택은 영원히 없다고 선포하고 그에 대한 논의를 철저히 금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이 무렵 한성의 개로왕은 왜국에서 도착한 곤지왕의 표문(表文)을 내전(內展)의 책상에 놓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동생 부여곤을 떠나보내기 전 서로 대치하던 그 때와 같았다. 표문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신(臣) 좌현왕 부여곤은 백제국 진왕(辰王)이신 대왕 폐하께 왜국 평정을 완수하고 왜왕위를 접수한 일로 아룁니다. 비바람과 지진, 화산의 울부짖음을 뚫고 맹수와도 같은 다수의 적들을 깨뜨리며 백제의 품에 모여든 백성들을 안아 거두었습니다. 서쪽으로는 축자와 중이의 소국 66국과...’


“크윽,..”


개로왕은 입술을 깨물고 굳게 쥔 주먹을 무릎 위에서 살짝 떨었다.


“필경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갈 거라 생각하여 사당부터 만들려고 했거늘... 이제는 건드리기도 버거운 잠룡(潛龍)이 되어버렸구나!”


왕과 독대한 달솔 해구가 머리를 조아리고 죄를 청했다.


“폐하! 신을 벌하시옵소서! 좌현왕 전하의 원정이 성공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사옵니다! 이는 소신의 불찰이오니...”


“아니다! 묘안이라고 무릎을 친 건 짐이었느니라. 곤이 그놈의 복인지 능력인지 모르겠다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그나마 참람하게 진왕을 칭하지 않고 칠지도를 받들어 고개를 숙인 것만도 다행이라 해야 할는지! 쯧쯧... 이런, 이런!”


“진왕을 칭했다면 정말 큰일이 아니었겠습니까? 다만 표문대로라면 동남방의 안정이 보장된 건 폐하께 좋은 소식일 수도 있다 사료되옵니다. 표문에 사마 왕자님에 대한 내용은 없었는지요? 입적을 거두고 왜국으로 보내라든지 하는 요구 말이옵니다.”


“없었다. 짐이 비록 강요하기는 했다만 이미 약속하여 지킨 일... 요구가 있다 하여 들어주지도 않겠지만 짐이 파기할 생각도 없다. 사마 왕자는 벽비리국에서 잘 자라고 있는가? 귤희의 아들이다. 털끝 하나 다치기만 해도 그대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예, 폐하... 최근까지 들려온 소식으로는 그러하옵니다. 심려 마시옵소서!”


해구는 왕에게 절하고 내전을 나오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구나. 둘이 형제라는 게 새삼 느껴진다. 이게 내가 부여씨를 믿지 않고 해씨 가문을 부흥시키려는 이유지! 그나저나 후환을 없애기는커녕 강적을 하나 더 키운 셈이니 이를 어찌하랴... 일단은 나의 힘과 능력을 더 키우는 게 우선이겠구나.’


이후 개로왕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엽색 행각을 끊고 바둑을 유일한 취미로 삼는 한편 정사(政事)에 골몰하며 부국강병에 힘쓰니 백성들의 칭송을 받기 시작했다.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기 469년, 개로왕은 100년 숙적인데다 그와 곤지왕의 부왕인 비유왕 암살의 배후로도 확인된 고구려에 대한 복수심을 북쪽 국경에 대한 군사 공격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해에 고구려군이 한성의 동남부 내륙, 욱리하 남쪽 지류의 상류까지 내려와 그곳까지 사신을 보낸 사로국과 화친하면서 커다란 비를 세웠기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개로왕은 북방의 성들을 수리하고 목책을 세우게 하는 등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서기 472년, 왕은 그가 직접 통치하는 욱리하 하류 지역의 소국들의 자원과 병력을 총동원했지만 고구려의 압력에 대항하기에 부족함을 느끼고 고구려 서방의 타브가치와 한족(漢族) 혼성 국가 북위(北魏)에 청병사(請兵使)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 해에 병관좌평에 오른 해구는 청병사의 적임자로 거상(巨商)이자 노신(老臣)인 부여례를 추천했다. 그는 비유왕의 사위였고, 왜왕비 부여향의 생부(生父)이기도 했다.


“폐하! 이번 청병은 한성과 백제의 운명을 건 거대한 거래! 공손함을 넘어 비굴함마저 보이는 내용과 어투의 표문을 작성해 북위 황제에게 올리는 까닭은 바로 그 거래를 성공시키기 위함입니다. 관군장군 부마도위 부여례는 큰 상인 출신으로 외교의 경험도 많은 신료로서 청병사에 이만한 적임자가 없을 것이옵니다!”


“짐도 그렇게 생각하오. 관군장군, 경께서는 비록 그 연세에 험한 바닷길과 고구려의 방해를 이겨내야 하겠지만, 백제의 운명을 생각하여 청병사의 소임을 다해주시기 바라오!”


부여례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예, 폐하! 명을 받드옵니다! 소신 이제 많이 늙어 죽을 날이 머지않았사오나, 마지막 임무를 위해 목숨을 걸고 먼 길을 다녀오겠사옵니다.”


왕이 물었다.


“듣기로, 북위의 황제는 즉위한지 한 해밖에 안 된 여섯 살의 어린아이라 하오. 의붓어미인 태후 풍씨(馮氏)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고구려 거련왕과는 가문의 원수라고요?”


“그렇사옵니다, 폐하. 태후 풍씨는 타브가치나 선비족 출신이 아니고 북연(北燕)의 마지막 왕 풍홍(馮弘)의 손녀입니다. 풍홍은 고구려로 망명했다가 푸대접에 실망하여 중원 남쪽 송나라로 망명을 청했는데, 거련왕이 송나라의 인도 요구를 거절하고 풍홍을 데리러 간 송나라 군사들을 격퇴했습니다. 그리고는 풍홍까지 죽여 버렸지요! 비록 서른 네 해나 지난 일이고, 태후 풍씨가 지금은 북위 사람이며 고구려와 화친 관계를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태후의 거련왕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칠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신은 그 점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사옵니다.”


부여례의 백제 사신단은 서쪽 바다를 건너고 태행산(太行山)을 넘어 북위 수도 평성(平城)에 도착, 황제 탁발굉(拓跋宏)과 풍태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개로왕의 표문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부여례는 홀가분하게 귀국했지만 생각보다 고구려의 방해가 적었던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구려는 표문에 대한 답서를 가진 북위 사신단이 육로로 자국 영토를 통과하도록 허락하고는 그들을 억류해버렸다. 장수왕이 표문의 내용을 추궁하고 답서를 빼앗아 읽어본 것은 물론이었다.


개로왕은 이 사건에 더하여 북위 조정의 답서 내용을 전해 듣고 더욱 실망하고 말았다. 고구려 협공(協攻)의 이유를 아직 찾기 힘들고 혹시 나중에 일이 생기면 대처하도록 준비는 해보겠다는 미지근한 답변이었다. 북위 풍태후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긴 일에서 비롯된, 갚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원한보다 분명히 보이는 공존의 현실을 택한 듯했다. 개로왕은 북위에 몇 번의 사신 파견을 더 추진하려다 쓸데없음을 깨닫고 그만두도록 명했다.


이 무렵 도림(道琳)이라는 승려가 한성에 나타났다. 그는 저자거리의 백성들과도 어울리며 고민을 들어주고 지혜를 설파하여 짧은 시간에 명성을 얻었다. 소문을 들은 개로왕은 우울함에 시달리던 터라 도림을 진왕궁으로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짐은 요즘 여러 가지 생각과 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항상 번뇌에 싸여 있소. 선사(禪師)께서는 해답이 있으시오?”


“아미타불...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 뿐, 간단하지요. 잊는 것입니다! 잊으려 노력하면 마음에서 얽힌 연(緣)들이 끊어져 사라지지요... 그러기 위해 소승은 좌선(座禪)을 합니다만, 폐하를 비롯해 속세의 중생들은 마음을 쓰지 않는 간단한 일을 하거나 강산을 거니는 것 만해도 일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지요.”


“바둑은 어떻소? 짐은 마음의 경지가 아직 낮아서인지 바둑을 두면 번뇌에서 잠시 벗어나곤 하오.”


“바둑을 두며 승부에 집착한다면 마음에서 인연을 만들어 얽는 것이니 해탈과는 반대의 길로 가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번뇌에서 벗어나는 정도에는 이를 수 있습니다. 소승도 가끔은 바둑을 두며 마음을 다스리곤 하지요.”


“선사께서도요! 그럼 좌선을 가르쳐주시기 전에 가끔 궁에 오셔서 짐과 바둑을 두시면 어떻소?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말이지요.”


“폐하께서 부족한 소승에게 가르침을 받으신다 하시니 부처님의 뜻에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소승이 드릴 수 있는 것을 부족하든 넘쳐나든 드리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미타불...”


이렇게 하여 도림은 궁에 자주 출입하며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 시간이 지나 도림과 친숙해진 왕은 바둑을 두다가 국정(國政)의 고민거리까지 털어놓고 해답을 구하곤 했다.


“북위의 협조를 구하는 데 실패하고 강대해져가는 고구려를 시원하게 공격하지도 못하다보니 백성들이 왕실을 업신여기는 것 같아 걱정이오.”


“불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불사(佛寺)를 크게 중창하여 부처님의 뜻을 더 널리 보이기도 하지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폐하의 왕궁을 크게 중수하여 나라를 생각하는 크기를 키워 보이신다면 백성들은 저절로 왕실을 우러러볼 것입니다.”


왕은 도림의 말을 따라 왕궁을 중수했다. 부족한 재정과 인력을 대느라 성의 백성들과 주변 소국에 협조를 구하기보다는 강압적으로 동원하여 돌관(突貫)작업을 강행했다.


또 하루는 왕이 도림과 바둑을 두다 고구려의 침공을 우려하며 말했다.


“고구려의 침공이야말로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짐과 신료들의 번뇌를 더하는 마구니나 다를 바가 없소.”


“마구니나 다를 바 없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마구니지요! 소승은 군인도 신료도 아니니 아뢰기 조심스럽습니다만... 한성의 방위가 염려되신다면 동쪽 욱리하 남쪽 연안에 긴 둑을 건설하심이 어떨는지요? 둑이 있어 홍수도 막고 사이사이에 망루를 세우면 침공에 대비한 훌륭한 방벽이 되지요.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미타불...”


이리하여 한성 북성의 동쪽 욱리하 남쪽 연안을 따라 사성(蛇城)이 건설되었다. 밤낮없이 공사가 계속되고 품삯도 뜸히 주는 동원체제가 이어지니 백성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으나 이를 모르는 사람은 개로왕뿐이었다.


서기 475년 여름이 되었다. 하루는 도림이 개로왕을 알현하여 바둑을 한 판 두고 궁을 나서는 길이었다. 저자거리에서 백성들이 떠도는 이야기를 전하여 말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러니까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아 글쎄, 왕이 도미라는 신하와 내기를 했는데, 미인으로 유명한 도미의 부인이 왕의 수청을 들까, 안 들까 이런 내기였다는 거지. 도미부인이 결국 수청을 들긴 들었는데 그게 직접 든 게 아니었다는 게야!”


“에? 그럼 누구야 그게, 왕을 속였다고?”


“몸종을 대신 들였다더구만. 왕이 화가 잔뜩 나서는 다시 찾아가서 수청을 들라 명했데!”


“허, 그런데?”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잠깐 목욕을 하러 나가겠다고... 그러더니 방문을 닫고는 그길로 도망쳤다고 하더구만...”


“아무리 옛날이야기지만... 왕을 그렇게 속였다니 대단하구먼. 왕이 무작정 신하의 아내더러 수청을 들라 하다니... 그냥 겁탈 아니야? 천하에 나쁜 놈이었구먼...”


“쉿! 옛날 오래 전 ‘개루왕’ 때 이야기라지만... 조심하게. 금상폐하를 말하는 건 줄 알고 잡아갈 수도 있으니! 금상폐하께서 ‘근개루왕’이라 불리기도 한다지 않는가?”


“십여 년 전에 저 비슷한 소문이 돌았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


도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장터로 갔다. 한 연희(演戱)패가 마당극을 하고 있었다. 왕의 의관을 갖춘 자가 외쳤다.


“도미 네 이놈! 감히 짐을 속이다니... 이것만해도 대역죄로다! 거기다 부인을 도망치게 만들어? 여봐라! 저놈의 눈을 뽑아버리고 내던져버려라!”


“우우...”


“에라 이 나쁜 놈!”


주변에서 마당극을 보던 백성들이 왕 역의 배우에게 하나같이 야유를 보냈다. 극이 계속되었다.


“예, 폐하!”


신하의 복장을 한 이가 도미 역할을 맡은 이의 눈에 손을 가져가는 시늉을 할 때였다. 왕 역할을 하던 이가 턱을 까딱거리며 신호를 보냈다. 연희패 전체가 순식간에 분장을 벗더니 쏜살같이 도망갔다. 잠시 후 병졸들이 달려와 그들을 쫓았다.


“워... 진짜 금상... 폐하 얘긴가? 옛날이야기 좀 보여주는데 잡으러들 다니는 것 좀 봐!”


“그렇게 백성들을 부려먹더니 저런 짓까지 했다고? 그게 왕이냐?”


백성들이 속닥거렸다.


도림이 그가 머무는 성 안의 절에 돌아왔을 때였다. 동자승 한 명이 도림에게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큰스님, 요즘 성에 떠도는 옛날이야기 들으셨는지요? 도미부인 이야기라고...”


도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시구나... 그럼 전 해우소에 잠깐... 헤헤...”


동자승이 자리를 뜨자 홀로 남은 도림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내가 퍼뜨린 이야기가 다 퍼졌구나... 다 되었다! 돌아갈 때가 되었어.’


며칠 후 도림은 갓을 쓰고 얼굴을 가리며 장터 쪽을 지나고 있었다. 며칠 전 봤던 연희패의 마당극이 결말 부분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눈먼 도미와 도미부인은 둘만 고구려의 산산(蒜山)으로 도망쳐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백년해로하며 살았답니다!”


“와아--”


마당극을 본 백성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도림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그날 저녁 사성의 성벽 밑 욱리하 남쪽 연안, 예전 부여향이 살던 초가 근처의 컴컴한 나루터에 갓을 쓴 도림이 나타났다. 그는 혼자 작은 조각배를 타고는 노를 저어 북쪽 연안에 다다랐다. 한 여인이 배에서 내리는 도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림을 보자 그 여인이 말했다.


“스님, 할 일을 다 하신 모양입니다. 성공이군요! 다행입니다. 감사하고요...”


“그렇습니다. 얼마 안 있어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태왕 폐하의 대군이 이곳으로 진군해올 겁니다. 소승도 합류할 것이니, 보살님께서도 같이 하셔서 백잔(百殘)왕의 최후를 함께 보심이 어떨지요?”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정도면 열 네 해 전 일의 복수로 충분합니다. 업을 더 쌓기 전에 이곳을 뜨려고 합지요. 저 멀리 북쪽의 산마늘(蒜) 많은 산속에 들어가 조용히 살고자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살펴 가시지요. 훗날 뵐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참, 보살님께 큰 도움을 받고도 존함을 듣지 못했는데...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지만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슬이라고 합니다. 귤희 부인마님의 몸종이었고요...”


“아미타불...”


도림과 서로 합장 인사를 한 슬이는 바로 몸을 돌려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도림은 멀어지는 그를 지켜봤다. 그믐달의 약한 달빛만이 그들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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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 경각(頃刻) 18.05.15 154 1 11쪽
37 37. 흑룡(黑龍) 출현 18.04.24 181 1 9쪽
36 36. 불길한 기회 18.04.21 170 1 8쪽
35 35. 배신 혹은 충성 18.04.17 175 2 12쪽
34 34. 당부 18.04.13 161 1 11쪽
33 33. 승낙의 조건 18.04.03 159 1 11쪽
32 32. 웅진성의 술렁임 18.03.30 221 1 10쪽
31 31. 곤지(昆支) 귀국 (2) +2 18.03.27 268 2 12쪽
30 30. 곤지(昆支) 귀국 (1) 18.03.23 183 1 10쪽
29 29. 해구(解仇) 복귀 18.03.20 242 1 13쪽
28 28. 신미(新彌)의 이무기 두 마리 18.03.16 228 1 14쪽
27 27. 서쪽 바다의 방벽 18.03.13 196 1 11쪽
26 26. 백강의 풍랑 18.03.09 206 1 14쪽
25 25. 강좌(江左)의 정쟁(政爭) 18.03.06 216 1 10쪽
24 24. 집아관 살인 사건 18.03.02 218 1 12쪽
23 23. 서신(書信)과 속도전 18.02.27 207 1 11쪽
22 22. 다섯 번째 이름 18.02.16 190 1 12쪽
» 21. 하내(河內)의 봄에서 한성의 가을까지 18.02.13 223 1 19쪽
20 20. 13년 전: 곤지왕(昆支王) 즉위 18.02.09 253 1 14쪽
19 19. 13년 전: 지옥원정대 18.02.06 192 1 12쪽
18 18. 13년 전: 섬왕자 (嶋君) 18.02.02 264 2 13쪽
17 17. 14년 전: 도피와 음모 18.01.30 239 1 13쪽
16 16. 14년 전: 애증(愛憎)의 후폭풍 18.01.26 255 1 9쪽
15 15. 14년 전: 도미부인 (2) 19금 18.01.23 143 3 12쪽
14 14. 14년 전: 도미부인 (1) 19금 18.01.19 167 2 11쪽
13 13. 때를 기다리다 18.01.09 275 1 10쪽
12 12. 협박과 환대 18.01.05 327 2 11쪽
11 11. 피난과 질책 18.01.02 343 1 12쪽
10 10. 열도(列島)와 군도(群島) 17.12.29 408 2 14쪽
9 9. 탈취(奪取) 17.12.26 420 2 12쪽
8 8. 마주침 17.12.22 530 3 9쪽
7 7. 곰나루에 모여 논하다 (2) 17.12.19 541 3 9쪽
6 6. 곰나루에 모여 논하다 (1) 17.12.15 591 3 10쪽
5 5. 너는 누구냐 17.12.12 746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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