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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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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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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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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3. 때를 기다리다

DUMMY

비상 조정회의 겸 소국 회합의 결정에 따라, 웅진성에 터를 잡은 백제 조정은 대두성에서 백성 구휼과 보살핌에 여념이 없는 신소도국 천군 달온에게 개로왕 천도제의 제사장이 될 것을 요구했다.


달온은 이를 수락했다. 단 계시를 받았다며 ‘하늘의 뜻’에 따른 조건을 내걸었다. 개로왕과 왕족들뿐만 아니라 고구려 침공으로 죽은 모든 이들의 천도제를 지내자는 것이다. 조정 수뇌부 신료들은 대부분 나라의 아래위는 가려야 하지 않느냐며 뜨악한 반응을 보였지만, 새 진왕에 추대된 문주 왕자가 뜻밖에 흔쾌히 조건을 받아들이고 모든 백성들을 위한 제의(祭儀)를 거행하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달온은 백가를 비롯한 신소도국 별군과 천녀들을 남겨둔 채 작은천군 다래만 대동하고 웅진성으로 와 천도제를 이끌었다. 대두성과 그 주변으로 이주한 한성 백성들의 죽은 가족들을 기리는 제사부터 치르느라 달온이 웅진성으로 올 때까지 백제국 천도제는 일곱 날이나 미뤄졌다.


하지만 일단 천도제가 시작되자 웅진성과 그 부근의 백성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특히 진왕 즉위를 앞둔 문주 왕자가 ‘죽은 모두의 천도제’를 적극 지원했음이 알려져 그의 인기가 치솟았다. 여기에는 그의 늠름하고 잘생긴 외모도 한몫했다. 병관좌평 해구는 자신이 백제의 실질적인 권력을 움켜쥐는 데 문주 왕자를 활용할 의외의 요소를 목도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천도제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모두의 눈이 달온과 문주에게 쏠렸다. 이 제의가 끝나면 문주 왕자의 진왕 즉위식 준비에 들어갈 터였다. 제사장 달온이 계시라도 받아 문주 왕자에게 천명을 고한다면 문주의 권위는 굳건해질 게 분명했다. 그런데 달온이 천도제의 마지막 굿 춤사위를 끝낸 후 계시를 받는 듯 무아(無我)의 표정을 짓고 문주를 가리키려 손을 내밀 즈음 갑자기 그의 손끝이 해구와 신료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려졌다. 해구는 가슴이 철렁했고 달온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놀라웠다.


“인장(印章)이 없구나!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니, 그대들의 우두머리는 그대들이 정할 따름이다!”


주변에는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해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니 진왕의 인이 없다는 걸 어떻게... 무당 치고는 용하기가 그지없군.’


해구의 머릿속에서는 놀라워하는 가운데에서도 빠른 계산이 이루어졌다.


‘흠... 이왕 이렇게 된 거...’


해구는 문주 왕자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상좌평 문주 왕자 전하--, 소신에게 죄를 물으십시오! 진왕의 인을 따로 수송하다 탈취 당했사옵니다!”


문주 왕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제사장의 저 말씀이 사실이란 말이오? 누구의 소행인지는 모르오?”


해구가 답했다.


“예 전하, 안타깝게도 그렇사옵니다! 백방으로 찾고 있사옵고, 소신, 이 일에 더하여 한성을 함락당한 일과 선왕 폐하를 지키지 못한 죄를 같이 청하오니 오늘 부로 병관좌평 직을 사직하고자 하옵니다!”


문주 왕자가 잠시 고뇌하더니 입을 열었다.


“흠... 진왕은 백제의 백성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 그까짓 도장 하나가 있고 없고 한 게 무슨 대수겠소. 없으면 다시 만들면 그뿐. 그대는 엄연히 한성에서 백성들을 피난시키고 백제국의 종사를 보존하려 노력한 유능한 충신! 사직하시더라도 과인이 대왕위에 오른 다음에 그만두도록 하시오... 그렇더라도 낙향하시라는 말이 아니오. 병관좌평보다 지위는 낮지만 한성 백성들이 모여 있는 대두성의 성주로 보낼 것이외다!”


“전하--! 이 죄인 죽어 마땅하오나 하해와 같은 성은을 입었으니 전하와 백제를 몸 바쳐 받들겠나이다--!”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던 해구가 납작 엎드려 살살 비는 장면을 보는 국융이나 연신 등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사로군을 이끄는 버르치는 무표정하게 사태를 관찰했다. 해구의 양아들 해성의 눈빛은 냉온탕을 오가며 요동쳤지만, 작은 조카 해례곤은 이런 해구의 행보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다만 해구의 계산된 몰락에 깔린 속셈을 눈치 챈 목만치와 부여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해구가 위기를 모면하고 물러나자 문주가 달온에게 말했다.


“정말 하늘이 내린 천군님이 맞으신 가 봅니다. 과인이 대왕위에 오르면 백제국의 국무(國巫)를 맡길 의향이 있는데 어떻소이까?”


달온이 고개를 슬쩍 숙이며 답했다.


“저는 하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할 뿐. 지금은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아무리 왕자님께서 청하시는 일이라도 다른 일을 맡을 수는 없겠습니다. 저는 대두성의 일을 좀 더 도운 후에 신소도국 천군의 본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으로 천도제의 모든 순서가 끝났으니 곧바로 길을 떠나겠습니다.”


문주가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하... 그렇다면 할 수 없구려. 국무의 자리는 달온 제사장을 위해 비워놓겠소이다. 혹 계시를 받거든 언제든지 돌아오시길 바라오.”


달온은 제사장의 관을 벗고는 작은천군 다래와 함께 제단에서 총총히 사라졌다. 그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자신이 웅진성에 오기 전 별장 백가에게 털어놓았던 원래의 계시를 떠올렸다.


“앞으로 네 해 동안, 하늘의 뜻을 받지 못한 자들이 백제와 삼한을 다스릴 것이니... 때를 기다려라!”


“그렇다면 하늘의 뜻은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백가는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그 때 달온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말씀이 없으셨으니까요.”


不知天意, 但待歸時... ‘하늘의 뜻은 알지 못하나, 다만 돌아갈 때를 기다리겠다.’


멀리 왜국의 하내(河內), 부여곤은 이제 도착한 목만치의 서신에 대해 이 여덟 글자만을 답장으로 쓰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노장 목만치에게서 한성 함락 소식과 형 개로왕의 부고(訃告)를 전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 진왕실의 최고 증표인 진왕의 인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놀랍고도 두렵고 중대한 소식이었으므로 좌현왕으로서 어떤 조치든지 취해야 했다. 그는 왜국의 신료들을 불러 명했다.


“왜왕궁 안에 사당을 만들어 선대 백제 대왕 폐하를 기리고, 왜국과 가야, 신미로 연결된 모든 정보망을 동원하여 벌어지는 사태를 신속히 보고하라! 축자에 있는 모대(牟大) 왕자와 백발(白髮) 왕자 또한 추도제를 지내고 사당을 만들라 명을 전하라.”


부여곤은 풀려진 보자기 위에 놓인 진왕의 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목만치는 서신에서 하늘의 뜻이 부여곤에게 있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 왜국을 다스리는 좌현왕인 부여곤이 진왕의 인을 얻었으므로, 그가 왜국을 넘어 백제와 마한 소국의 대권을 쥐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하내에서 새 진왕(辰王)에 즉위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해씨와 진씨 등 한성의 주요 귀족들이 웅진성으로 남하했고 문주 왕자와 사로국이 1만 대군으로 지원했다는 소식 또한 들려온 터였다. 문주가 새 진왕에 올랐음을 주장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대로 부여곤이 진왕을 칭한다면 백제가 둘로 쪼개지고 충돌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내전이 벌어진다면 부여곤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부여곤이 빠른 시일 안에 날아가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멀리 넓게 퍼져 있는 그의 세력을 생각하면 그보다 먼저 단단히 뭉치게 될 문주와 해구의 세력을 군사적으로 압도할 수도 없었다.


‘일단 문주의 진왕 즉위를 놓아두고, 조용히 준비하며 돌아갈 시간을 벌어야겠군. 여기엔 보탤 말도 없겠어. 내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지.’


신료들이 물러가자 부여곤은 목만치에게 보낼 여덟 글자 답장에 그대로 수결을 놓고는 전령을 불러 보내게 했다. 긴장이 풀린 부여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개로왕의 죽음이 불러온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모든 비극과 악전고투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과 눈빛을 읽어낸 대사인 금주리는 오늘도 계속하던 기록자의 임무를 잠시 쉬어야 할 때임을 느꼈다.


“전하, 소신 잠시 물러나겠사옵니다.”


부여곤은 여느 때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러난 금주리는 왜왕실의 서가가 있는 작은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서가 한 구석에서 목간 뭉치들을 꺼내 하나씩 펼치며 읽기 시작했다. 이들 목간에는 그가 13년 전 만나 주군으로 섬기기 시작한 때부터 듣고 목격하며 꼼꼼히 기록한 부여곤의 인생이 펼쳐져 있었다. 부여곤이 한성에 있던 시절부터 개로왕과 초향비에 얽힌 사연들, 도왜(渡倭)와 악전고투 과정에서 부여곤을 따르며 죽거나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그 가운데 작은 섬에서 태어난 한 사내아이, ‘섬왕자(嶋君)’...


서가에서 목간을 읽는 금주리와 대전의 창밖을 바라보는 부여곤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같은 상념이 스쳐지나갔다. 혹시, 이 이상한 운명의 얽힘이 그 아이, 태어나자마자 신미 지역으로 돌려보냈던 ‘섬왕자’에게 하늘의 뜻이 향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또한 너무나 희미한 느낌일 뿐이었다.


‘이제 열다섯이 되었겠군...’


부여곤은 갓 태어난 때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섬왕자를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그 아이가 태어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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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 동성왕 즉위 (1부 완결) 19.04.10 170 3 16쪽
61 61. 전환(轉換)의 해 (2) 19.04.03 98 1 22쪽
60 60. 전환(轉換)의 해 (1) 19.03.27 95 1 14쪽
59 59. 상봉(相逢) 19.03.20 62 1 12쪽
58 58. 일식(日蝕)과 참새 19.03.13 107 1 15쪽
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56 56. 두 번째 사신단 19.02.27 89 1 17쪽
55 55. 백강격변(白江激變) (3) 19.02.20 1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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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 백강격변(白江激變) (1) 18.12.26 107 1 14쪽
52 52. 강좌일변(江左一變) (3) 18.12.19 89 1 17쪽
51 51. 강좌일변(江左一變) (2) 18.12.12 109 1 16쪽
50 50. 강좌일변(江左一變) (1) 18.12.05 113 1 13쪽
49 49. 미대(尾代)의 전쟁 18.11.28 153 1 16쪽
48 48. 기생반(紀生磐) 19금 18.11.21 6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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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 당부 18.04.13 161 1 11쪽
33 33. 승낙의 조건 18.04.03 158 1 11쪽
32 32. 웅진성의 술렁임 18.03.30 220 1 10쪽
31 31. 곤지(昆支) 귀국 (2) +2 18.03.27 267 2 12쪽
30 30. 곤지(昆支) 귀국 (1) 18.03.23 182 1 10쪽
29 29. 해구(解仇) 복귀 18.03.20 242 1 13쪽
28 28. 신미(新彌)의 이무기 두 마리 18.03.16 228 1 14쪽
27 27. 서쪽 바다의 방벽 18.03.13 196 1 11쪽
26 26. 백강의 풍랑 18.03.09 205 1 14쪽
25 25. 강좌(江左)의 정쟁(政爭) 18.03.06 216 1 10쪽
24 24. 집아관 살인 사건 18.03.02 218 1 12쪽
23 23. 서신(書信)과 속도전 18.02.27 207 1 11쪽
22 22. 다섯 번째 이름 18.02.16 190 1 12쪽
21 21. 하내(河內)의 봄에서 한성의 가을까지 18.02.13 222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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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14년 전: 도미부인 (2) 19금 18.01.23 14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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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피난과 질책 18.01.02 34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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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탈취(奪取) 17.12.26 41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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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너는 누구냐 17.12.12 745 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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