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왕이 세자에게 여색 빈(嬪)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세자빈을 뜻하는 것 같은데요 비(妃)나 세자비라고 해야합니다 저 시대에 세자빈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래 세자의 정실 부인은 세자비라고 했습니다
중국과 류큐 왕국 충렬왕 이후의 고려 왕실 이왕가로 전락한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세자의 정실 부인을 세자비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고려 사절요 고려사 동국 통감 순종실록 부록의 기록을 보면 세자의 정실 부인을 세자비라고 불렀습니다
세자빈이라는 명칭이 생긴건 공양왕 3년 입니다 도평의사사에서 앞으로 국왕의 정배만을 비라 하고 세자의 정배는 빈(嬪)이라 칭하자고 하면서 세자빈이라는 용어가 탄생했습니다 조선에서도 세자의 정실 부인을 세자빈이라고 불렀지요 당연하지만 중국 일본 류큐왕국에서는 세자의 정실 부인을 계속 세자비라고 불렀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사 봉증제도 공양왕 3년
예로부터 천자(天子)의 배필은 후(后)가 되고 제후(諸侯)의 배필은 비(妃)가 되며 천자의 딸은 공주(公主)라 이르고 제후의 딸은 옹주(翁主)라 하여 상하(上下)의 예법을 문란하지 않게 하는 것은 그것으로 명분을 정하고 신분을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하 생략)
금후로는 엄격한 규정을 두어 국왕의 정배(正配)는 비라 칭하고 책봉하여 금인(金印)을 주고, 세자의 정배는 빈(嬪)이라 칭하고 책봉하여 은인(銀印)을 주며, 왕자들의 정배는 옹주(翁主)라 하고 국왕의 딸은 궁주(宮主)라 칭하여 모두 은인을 주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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