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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名夢 님의 서재입니다.

백가제해(百家濟海): 1. 형제의 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드라마

완결

無名夢
작품등록일 :
2017.12.01 22:32
최근연재일 :
2019.04.10 00:13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17,485
추천수 :
114
글자수 :
339,531

작성
18.03.2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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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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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31. 곤지(昆支) 귀국 (2)

DUMMY

칠지도가 모셔진 하내의 왜왕궁 사당 앞에서 곤지왕(昆支王)과 세자 모대(牟大)는 나란히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 후, 눈을 감은 채 잠시 침묵에 잠겨 있다가 서서히 눈을 뜨고 일어섰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겨울 막바지의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음력 정월, 곤지왕은 신료들이 도열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세자에게 왜국의 대리 통치를 맡기고 칠지도가 대표하는 백제 대왕에게 고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왕과 그를 빼닮은 세자가 뒤돌아 도열한 신료들을 보고 서자 우호장 미대(尾代)가 천세를 외치며 의식의 종료를 선언하고 신료들이 따랐다. 그날 저녁, 모대는 곤지왕과 독대했다.


“전하.. 아버님을 다시 봬온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일 떠나신다니 소자 아쉽기 그지없사옵니다.”


왕은 웃으며 답했다.


“두 해 정도 걸릴 것 같구나. 신미를 거쳐 백제국으로 가 대왕 폐하의 조정을 안정시키고 돌아올 것이다. 세자는 과인을 대신하여 직접 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장차 과인의 뒤를 이을 준비를 충실히 하길 바란다.”


“예, 전하. 하지만 신료들은 홀로 떠나신다는 전하의 앞길에 대해 걱정이 많다 들었사옵니다. 웅진성에는 목만치 장군과 축자군 일백 정도 외엔 전하의 편이 되어 줄 세력이 거의 없으나 병관좌평 해구는 군사 2천 이상에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을 장악했고, 거기에 남아 있는 사로군 2천도 전하의 편을 들 것 같지는 않은지라...”


“확실히 백제국에 더 가까운 축자에 있었던 세자가 상황을 자세히 꿰고 있었구나. 과인은 바로 그 세력의 미약함 때문에 걸음을 재촉하려 한다. 해구는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어서 과인이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기 때문이야. 부족한 세력은 뜻있는 신료들과 폐하의 지지, 또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 보충할 것이다. 게다가 군사력과 재력도 벽비리국에 당분간 머물면서 신미의 세력을 최대한 모아 해결해볼 요량이고...”


“그러시군요. 부디 조심하십시오, 전하! 아들로서 아버지께 감히 부탁드리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손사래를 쳤다.


“걱정 말라고 해도 그리 계속 얘기하느냐? 세자는 이제 하내와 왜국의 통치에만 전념해도 할 일이 많을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예... 전하.”


“그리고 세자는 용맹하고 총명하니 다 좋은데 축자에서 민망한 소문이 많이 들려왔지. 여색... 비(妃)에게도 소홀하다지? 흠, 흠! 선대 대왕 폐하께서 어찌 무너지셨는지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또 초향비가 겪은 고통도... 세자가 조카라지만 절대로 닮지 말고 교훈으로 삼아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


고개를 숙이는 모대의 얼굴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아, 예... 전하! 송구하옵니다. 명심하고, 또 조심하겠사옵니다!”


왕은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 그 점만 조심하면 나무랄 데가 없으니 세자의 통치는 걱정하지 않겠다. 다만 조정에서는 응신왕계 신료들, 특히 그들이 주시하고 받드는 성천(星川)왕자를 경계하도록 하라! 과인이 임인년 사변의 공신인 길비상도신이 죽고 그 며느리 치희(稚姬)도 과부가 되어 후궁으로 삼았으며, 치희의 아들 반성과 성천도 과인의 왕자로 입적했거늘 성천이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는 보고가 자주 올라왔지.”


“예, 그를 주시하겠사옵니다.”


“휴, 그래... 밤이 깊었으니 물러가 쉬도록 해라. 오랫동안 못 보겠구나. 부디 건강하고 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를 바란다!”


“예, 전하!”


다음날 곤지왕은 하인과 병사 십여 명만을 대동하고 박뢰(泊瀨) 근처의 포구까지 나온 모대 왕자의 배웅을 받으며 배에 올랐다. 곤지왕의 일행은 축자섬에서 백발(白髮) 왕자를 보고 며칠 머무른 후, 금관가야의 포구를 거쳐 반도의 서남쪽 땅끝의 해양 소국 구해국(狗奚國)을 통해 신미 지역에 상륙했다. 이 때부터 곤지왕은 왜왕이 아닌 백제 좌현왕 부여곤으로 불리며 벽비리국으로 북상했다. 그는 전령을 보내지 않고 직접 가져가겠다고 한, 문주왕에게 올리는 표문(表文)과 보자기에 싸인 작은 나무상자 하나를 줄곧 지니고 다녔다.


서기 477년 음력 2월, 벽비리국의 남쪽 길에는 말에 탄 신지 부여루와 부여고 부자, 그리고 사마 왕자가 부여곤 일행을 마중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마 왕자의 말이 부여루 부자의 말들보다 조금씩 빨리 걷더니 급기야는 앞으로 나서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부여루와 부여고도 순간 놀라 말을 빨리 달렸다.


“왕자님! ... 이럇!”


그들은 사마를 따라 달리며 생각했다.


‘각라도에서 태어난 이후 처음 친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니 무척 설레는 모양이야. 하긴 얼마나 기쁘겠는가...’


‘풋. 매사 신중한 척을 하더니 이런 때는 서두르는 게 코흘리개 같잖아!’


앞서서 달리던 사마는 어떤 행렬이 앞에 보이자 말을 멈추게 했다. 행렬의 선두에 선 부여곤은 헐떡거리는 말에 올라 있는, 키 크고 호리호리한,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는 한 어린 남자를 발견하고 주시하며 다가갔다. 소년을 본 부여곤은 단박에 얼굴을 알아보고는 움찔했다. 그의 기억 속 귤희의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사마가 부여곤에게 예를 표하며 물었다.


“혹시... 좌현왕 전하... 아니신지요?”


부여곤이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그렇소만...”


부여곤을 마주 본 사마의 얼굴이 환해지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전하! 소자... 사마이옵니다! 각라도 태생의...”


부여곤은 잠시 사마를 쳐다보고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소자’라니... 왕자는 선왕 폐하의 아들이니 과인의 조카가 아니던가?”


사마가 개로왕의 아들로 입적되어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마는 부여곤의 반응에 뜻밖이라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예... 아버... 아니... 숙부...님.”


부여곤이 약간의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사마 왕자. 과인은 왕자의 숙부다. 듣던 대로 많이 자랐구나.”


시무룩한 표정의 사마 곁으로 부여루 부자가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부여곤을 보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얼마 만에 뵈옵는지요?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


부여곤이 파안대소하며 답했다.


“장군께서는 열네 해 전이나 다름이 없구려. 늠름하게 자란 아드님도 계시고.”


부여고가 인사말을 올렸다.


“처음 뵙사옵니다. 저는 부여고라 합니다, 전하!”


부여루가 말을 덧붙였다.


“제 아들놈입니다. 사마 왕자님과 동갑이지요! 누추한 집입니다만 어서 제 사가로 가시지요. 별채에 전하께서 머무실 곳을 마련해놓았사옵니다.”


부여곤은 뒤돌아 앞서가는 부여루를 따르기 시작하며 말했다.


“장군께서 열네 해 전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또 신세를 지게 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전하. 저야말로 금의환향하시는 전하를 더 성대하게 모시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입니다!”


부여고는 이들의 뒤를 따라 나란히 말을 타고 가고 있던 사마에게 말했다.


“내가 전하의 자식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껏 내 실력을 뽐내며 전장을 누볐을 텐데! 왜왕의 대리 통치를 한다는 모대 왕자님도 부럽고...”


사마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네가 부럽다. 출중한 능력도, 아버지, 어머니를 제대로 부르는 것도...”


부여고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응수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왕자님? 태자 전하와 좌현왕 전하 다음의 대왕위 계승 후보께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니... 게다가 저를요? 영광입니다요! 큭큭...”


사마는 눈가를 찌푸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부여루의 자택에 들어선 부여곤은 부여루의 부인과 사마 왕자의 유모 쇠나리의 인사를 받고 환영연에 참석했다. 그의 거처는 사마 와 쇠나리가 있는 별채에 정해졌다.


사흘 후 오후, 사마는 부여곤이 자신을 따로 부른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방으로 가려던 중이었다. 유모 쇠나리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가는 길에 서 있었다.


“왕자님, 잠시만...”


사마는 쇠나리를 쳐다보았다. 어머니처럼 의지하던 터라 다정한 눈빛이었다.


“예, 유모.”


쇠나리는 헝겊에 싸인 조그만 종이 하나를 사마에게 건넸다.


“이것이 무엇인지요?”


“후... 13년 전이었습니다. 왕자님의 친어머님께서 아주 잠시 벽비리국에 몰래 들르신 적이 있었지요...”


“네?”


“왕자님께서는 기억을 못하시지만... 부여향 마님께서는 두 살의 왕자님을 안으신 채로 한참을 계셨지요... 떠나시는 날 이것을 주셨습니다. 언젠가 좌현왕 전하께서 이곳에 오시거든 왕자님의 손으로 드리시라고요.”


‘어머니께서...’


사마는 쇠나리에게서 종이를 받으며 잠시 상념에 잠겼다. 쇠나리는 자리를 떴고 사마는 부여곤의 방 앞으로 가 고했다.


“전하, 사마이옵니다.”


“들거라.”


사마가 방 안에 들었을 때 부여곤은 책상 위에 펼쳐진 고급의 비단에 붓으로 무언가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고, 비단 옆에는 보자기로 싸인 나무 상자가 있었다. 부여곤은 사마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마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지만 가끔씩 눈을 들어 부여곤을 힐끗거렸다. 이윽고 부여곤이 입을 열었다.


“섭섭했느냐? 과인이 너무 데면데면하게 굴어서...”


사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여곤은 미소를 지었다.


“엄연히 존재하는 진왕실의 규율에 따라, 사마 너는 선왕 폐하의 왕자여야 하니 그리 대하는 것이다. 너와 과인 둘만 있을 때는 아버지라 불러도 좋다! 단 둘만 있을 때라고 했다. 이 자리에 부여루 장군, 부여고, 또는 심지어 쇠나리만 같이 있더라도 과인은 너의 숙부인 것이다.”


사마는 화색이 돈 얼굴로 고개를 들어 부여곤을 바라보았다.


“정...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전하! 아버님!”


부여곤의 책상 위에 펼쳐진 비단이 눈에 들어온 사마가 물었다.


“아버님, 이 비단에는... 어떤 문서를 쓰실 것인지요? 대왕 폐하께 올릴 표문입니까?”


부여곤은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 올릴 표문은 이미 써서 가져왔다. 이것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문서가 될 것이고, 이 보자기와 함께 너와 건무장군에게 맡기려고 한다. 때가 되면 과인이 이르는 곳으로 반드시 전달해야 할 테지! 아직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느니라.”


“예, 아버님. 그렇게만 알고 있겠사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모 쇠나리가 전하께 드리라 하셨습니다. 13년 전에 몰래 이곳에 들르셨던 어머니께서 드리라고 하셨답니다.”


종이를 받은 부여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향비가...”


부여곤이 헝겊을 펼쳐 꺼낸 종이에는 ‘융(隆)’자만 써져 있었다. 잠시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이던 부여곤은 뭔가 깨달은 듯 미소를 지었다.


“융... 하하하, 이것은 네 어머니가 너의 정식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아무래도 백제국의 재건과 융성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는 듯하구나. 네 이름은 이제부터 ‘부여융’이니라!”


“어머니께서 제 이름을... 기꺼이 이름을 받자옵니다! 어머니께 감사함을 전할 길이 없어 아쉬울 뿐이옵니다. 어디에 계실지요? 얼굴도 제대로 기억할 수 없는 나이였던 지라...”


사마와 부여곤의 눈에는 그리움과 함께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부여곤이 슬픔을 추스르며 말했다.


“과인도 언제나 초향비가 있는 곳을 알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그만 건너가 보아도 된다. 과인은 이 문서를 쓰는 데 집중하고 싶으니... 완성이 되거든 너와 건무장군을 따로 부르도록 하마.”


“예, 전하. 그럼 소자 물러가겠사옵니다.”


사마는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 방을 나갔다. 부여곤은 한숨을 쉬고 비단을 보더니 옆의 보자기를 풀어 나무상자를 꺼냈다. 곧 그는 나무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그것은 제법 큰 인장(印章)이었고, 진왕지인(辰王之印)이라는 네 글자가 유려한 서체로 새겨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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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8 kk****
    작성일
    18.04.03 11:11
    No. 1

    곤지왕이 세자에게 여색 빈(嬪)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세자빈을 뜻하는 것 같은데요 비(妃)나 세자비라고 해야합니다 저 시대에 세자빈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래 세자의 정실 부인은 세자비라고 했습니다

    중국과 류큐 왕국 충렬왕 이후의 고려 왕실 이왕가로 전락한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세자의 정실 부인을 세자비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고려 사절요 고려사 동국 통감 순종실록 부록의 기록을 보면 세자의 정실 부인을 세자비라고 불렀습니다

    세자빈이라는 명칭이 생긴건 공양왕 3년 입니다 도평의사사에서 앞으로 국왕의 정배만을 비라 하고 세자의 정배는 빈(嬪)이라 칭하자고 하면서 세자빈이라는 용어가 탄생했습니다 조선에서도 세자의 정실 부인을 세자빈이라고 불렀지요 당연하지만 중국 일본 류큐왕국에서는 세자의 정실 부인을 계속 세자비라고 불렀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사 봉증제도 공양왕 3년

    예로부터 천자(天子)의 배필은 후(后)가 되고 제후(諸侯)의 배필은 비(妃)가 되며 천자의 딸은 공주(公主)라 이르고 제후의 딸은 옹주(翁主)라 하여 상하(上下)의 예법을 문란하지 않게 하는 것은 그것으로 명분을 정하고 신분을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하 생략)

    금후로는 엄격한 규정을 두어 국왕의 정배(正配)는 비라 칭하고 책봉하여 금인(金印)을 주고, 세자의 정배는 빈(嬪)이라 칭하고 책봉하여 은인(銀印)을 주며, 왕자들의 정배는 옹주(翁主)라 하고 국왕의 딸은 궁주(宮主)라 칭하여 모두 은인을 주도록 하십시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73601&cid=49630&categoryId=49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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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8 無名夢
    작성일
    18.04.03 21:52
    No. 2

    또 오류가 있었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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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 동성왕 즉위 (1부 완결) 19.04.10 170 3 16쪽
61 61. 전환(轉換)의 해 (2) 19.04.03 98 1 22쪽
60 60. 전환(轉換)의 해 (1) 19.03.27 95 1 14쪽
59 59. 상봉(相逢) 19.03.20 62 1 12쪽
58 58. 일식(日蝕)과 참새 19.03.13 107 1 15쪽
57 57. 탈환(奪還) 19.03.06 99 1 12쪽
56 56. 두 번째 사신단 19.02.27 89 1 17쪽
55 55. 백강격변(白江激變) (3) 19.02.20 118 1 11쪽
54 54. 백강격변(白江激變) (2) 19.01.30 85 1 14쪽
53 53. 백강격변(白江激變) (1) 18.12.26 107 1 14쪽
52 52. 강좌일변(江左一變) (3) 18.12.19 89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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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웅진성의 술렁임 18.03.30 220 1 10쪽
» 31. 곤지(昆支) 귀국 (2) +2 18.03.27 268 2 12쪽
30 30. 곤지(昆支) 귀국 (1) 18.03.23 182 1 10쪽
29 29. 해구(解仇) 복귀 18.03.20 242 1 13쪽
28 28. 신미(新彌)의 이무기 두 마리 18.03.16 22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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