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인간의 땅. (2)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Ⅱ
뭇 사람들은 물론 시행자들에게도 의외로, 신체제는 신속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난항이 예상되던 경제체제가 그 필두였다.
지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서민층은 하루하루 먹고 살며 허덕이던 이들이다. 자고 나면 돈 걱정, 미래 걱정이던 삶이다.
그런 이들에게, 신민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큰 매력이었고, 기존보다 훨씬 저렴하거나 심지어는 공짜인 공공비용과 생활비용은 아예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그에 비한다면, 그저 열심히 공부해 직업을 갖고 성실하고 오래 일하면, 그만큼 많이 벌고 많이 쓸 수 있다는 경제계급이나, 기존의 돈이 아샤르 통화인 젠으로 바뀌며 그것이 가상화폐라든지 하는 문제는 사소했다.
반면 가장 손해를 본 계층은, 대규모의 사업을 가지고 있던 재벌과 부유층이었다.
아무리 지구에서 중요한, 그리고 첨단 산업이었다 해도, 아샤르의 눈으로 보자면 그저 가내수공업 레벨, 혹은 그 이하이다. 때문에 재벌 및 자본력이 독점하던 대부분의 산업은 빠르게 그 효용을 잃었다.
그렇게 되자 기존 사업을 포기하는 자가 속출했고, 국가는 이를 흡수하고 일부 인원을 관리와 행정으로 재고용했다. 눈에 찰 정도로 고급인력은 손에 꼽으니 대량실직은 필연이지만, 어차피 아샤르의 기존 시민 대부분이 백수다. 혼돈은 길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로사의 방대한 자료처리와 꼼꼼한 행정처리가 덧붙여져, 아비에르가 예측했던 것처럼 변혁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황제에게 쏟아지는, 특히 자문위원회의 불만은 여전히 많았다.
자문위원회 대부분은 구체제의 정치가, 경제인, 지식인 계층이다. 즉, 많은 것을 빼앗긴 이들이니 반발 역시 이들의 몫이었다.
권력은 정치가의 손을 떠났다. 부호들의 남은 재산이 많다 해도 경제계급으로 한도가 묶였고, 모았던 땅은 모두 국유지로 변경되었다. 지식인? 수십만 년의 격차는 간단히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 땅을 잃은 이들의 탄식과 원성은 드높았다. 이 역시 황제의 몫이었다.
“기본소득에 경제계급, 다 좋다 이겁니다. 하지만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 놀고먹는 이만 바글거리면요? 꼭 필요한 일조차 손이 모자란다면 사회에 구멍이 생기는 겁니다.”
“그대들이 걱정하는 문제는 이미 다 고려된 것이다. 하지만 다 해결했으며, 그 실증으로 아샤르가 있어.”
답하면서도 황제는 내심 불편했다. 그들의 걱정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순수한 세상 걱정, 나라 걱정은 아니잖은가.
“앞으로 경제계급이 완전히 정착하면, 마냥 놀고먹는 것보다는 무언가 일을 찾으려 할 것이며 사회에 기여하는 영역도 늘어날 거야. 그것 역시 경제계급 상승에 영향을 미치니까, 우리의 기존 신민들도 다들 뭔가 하기는 하려고 한다고. 직접 돈이 벌리지는 않지만, 사회봉사나 취미로 하되 그것이 경력으로 인정받아 최종적으로는 돈을 벌게 된다고. 놀아도 된다는 제도가 아냐. 그대들의 걱정대로라면 우린 진즉에 드러누운 돼지가 되었을 터. 하지만 아니잖나?”
살짝 코웃음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문제를 말하고 싶으면 아샤르가,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왔는지 공부를 좀 해 두길 바란다.”
다음 시빗거리를 열심히 찾는 이들. 그들을 보며 황제는 웃음 역시 참고 있었다.
그래. 더 덤벼봐라. 그럴수록 내가 좋다.
백 명을 상대로 매일같이 싸우는 황제. 하지만 슬슬 그의 편도 생기고 있었다. 바로 일련의 정책의 수혜자들이고, 또한 절대 다수였다.
구세대 정치가와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자문위원회는, 아직 열리지 않은 의회를 대신해 민중을 대변하는 존재. 미지의 외계인 국가와 그 황제에 대한, 힘없는 민중들을 위한 최소한의 방패였어야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 슬슬 입장이 역전되고 있다. 자문위원회는 구체제 및 예전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해버리게 되었고, 반대로 황제는 변혁의 기수이자 서민의, 국민의 편처럼 차츰 비취지게 되었다.
그렇게 민중으로부터 외면 받아 힘과 세력을 잃은 자문위원회는, 장차 고립되어 소멸되며 대신 진정한 민중의 대표, 바로 의회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황제가 노린 바다. 일부러 자문위원회를 기존의 기득권 및 지식층으로 채워 둔다. 그리고 이들과 싸워 이겨내면, 그 자체로 변혁에 필요한 명분과 방침을 공식적으로 얻게 된다.
구체제의 청산, 그리고 신체제의 정립. 자문위원회는 그를 동시에 해결하는 아주 좋은 도구인 셈이다.
물론 머리가 돌아가는 놈들은 슬슬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황제를 견제하기 위한 기관이자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는 장이 아닌, 매일같이 싸움을 걸다 매번 두들겨 맞는 동네북 처지로 차츰 전락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자기가 그저 잘난 줄 안다. 뿌리박힌 민중괄시와 엘리트 의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매번 덤벼온다.
그와 관련되어, 황제를 격노하게 만든 사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일어났다.
2051년 3월 1일을 기해 전국적인 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신영토를 포괄하는 최초의 의회인 셈이다.
아샤르 의회는 하원과 상원으로 나뉘어져, 상원은 세습하는 작위 귀족과 황제가 임명하는 일대작위귀족으로 구성된다. 시대에 따라 증감은 있지만 총수는 50명을 넘지 않았다.
하원은 국민이 선출하여 그동안은 총 100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 지역에서 90명, 한반도에서 70명, 그리고 타 제후국에서 각 10명이 배정되어 모두 300명으로 늘어났다.
첫 통합의회 선출인지라 치열한 관심을 받은 것은 물론, 특히 과거 정치권에 있던 인물들은 잃은 지위를 찾을 절호의 기회로 판단해 대거 뛰어들었다. 이는 자문위원회의 인사도 상당히 포함되었다.
하지만 선거 초반부터 그들은 당혹해하고 말았다.
“유세 금지요?”
선거관리 책임을 맡은 내무승(內務承) 토사르는, 아귀 같은 이들을 앵무새처럼 상대하느라 매일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네. 모든 선거인 자료는 지정된 지드팃 영역에 올리면 되는 거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투표할 겁니다.”
“그걸 누가 찾아봐요?”
“공고는 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누가 찾아본다는 겁니까?”
“이상하네요. 여러분들은 기존에 민의에 의해 뽑힌 적이 있을 겁니다. 이제껏 지지해준 유권자들이 많을 텐데, 그 민의의 관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유권자들이 그 정도 수고도 하지 않을 바보로 보이세요? 그럼 그런 이들에게 이제껏 뽑힌 여러분은 대체 뭡니까.”
아샤르인들은 직설적이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여기서 이러시기보다는, 돌아가셔서 지드팃에 올릴 자기소개를 좀 더 충실히 하시는 편이 당선에 도움이 될 겁니다.”
토사르 내무승은 내심 굉장히 투덜댔다.
너희들은 제발 떨어져라. 과거에 자기를 뽑아준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도 없는 녀석들이 무슨...!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동안 이런 녀석들에게 통치를 당한 지상인들이 가련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전 국토를 통틀어 200석이라 훨씬 줄어든 자리. 때문에 자기들끼리의 치열한 신경전은 멈추지 않았고, 지정한 법을 대놓고 어겨 아예 자격을 박탈당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이들의 악다구니를 상대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반면 바뀐 세상에서, 돈 없이도 자격 조건만 갖추면 의회에 들어갈 수 있음에 별의별 사람들도 선거에 뛰어들었다. 심한 경우엔 한 선거구에 수십 명의 후보가 난립하는 경우도 있었다.
치열한 선거전이 마무리되었다. 총 200명의 지상인 출신 하원 의원이 탄생했고, 겸직은 금지되지 않았던지라 자문위원회 출신도 62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의원들 대다수가 정치 경험이 있는 이. 반대로 전혀 상관없었던, 혹시나 싶어서 후보로 올라왔다 당선된 운 좋은 자도 몇 있었다.
이런 자들에 대해서는, 아깝게 떨어진 이들이 몰래 찾아가 과장과 협박을 섞어 사퇴를 종용하는 경우가 있었고, 설마 될지 몰랐던 이들의 상당수는 자진사퇴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문제가 되었다. 성은희라는 남한 출신의, 올해 서른 살의 여자였다.
문제는 그녀의 알려진 전직이었다.
“...룸싸롱 출신이라고? 윤락녀란 말이야?”
“별 게 다 올라오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표를 준 거야?”
지드팃에는 아주 간단하게 약력을 기술했고, 그녀의 지역구에서는 34명의 후보가 난립한 덕에 1등과 꼴찌의 표 차이는 1천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일단 1등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가장 젊은, 그것도 여자인지라 뒷조사가 벌어졌고 신상은 금방 드러났다. 새로 뽑힌 지상인 출신 하원의원들은 이에 기겁했다.
“그럼 우리는 텐프로랑 같이 의원이 되었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국민의 대표인데...!”
“이건 의회 품격 문제 아니오?”
그런데 그 품격이란 것도 사실상 기대에 어긋났다.
“아니, 의정 활동을 하려면 활동비가... 그리고 기타 대우가 이게 뭡니까?”
따라붙은 의정비와 비서관, 차량에 익숙해져 있던 그들에게, 아샤르 의회에서 제공하는 의원대우는 형편없었다. 자문위원회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해도, 사무보좌로 론비샤 하나가 따라붙을 뿐이었다.
항의를 받은 내무상서 온케르는 눈살을 찌푸렸다.
“의정활동비는 사용 후 내역을 파악해서 정부에서 지급합니다. 뭔가 문제라도?”
가상화폐인지라 돈의 흐름은 모두 알 수 있다. 덕분에 낭패한 이들이 좀, 너무 많았다.
“아니, 아샤르에는 인간관계의 윤활유... 라는 개념은 없는 겁니까?”
“고급 식당에서 필요도 없이 식사를 하거나, 술집에서 여자 젖가슴을 만지며 낄낄대는 것 말입니까?”
당혹스런 시선을 즐겁게 받으며 온케르는 빈정댔다.
“그렇게 안하고는 정치가 안 되었나 보죠? 그러니 저희에게 나라를 빼앗겼죠.”
“그거, 너무...! ...말씀이...”
“앞으로 그런 악습은 전부 사라집니다. 애당초 아샤르 하원의원들은 전부 지하철이나 자기 차량을 타고 다녀요. 연료비는 공짜니까요. 게다가 자료는 로사가 수집해주고 사무는 성실한 론비샤가 다 해 줍니다.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하십니까?”
“그럼 하원의원은 무료봉사입니까?”
“경제계급이 꽤 뛰잖아요. 국가지급 금액이 상승합니다. 무료가 아니잖아요. 정치 참여는 특권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시던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사퇴하세요. 여러분 말고도 할 사람은 많으니까요.”
온케르의 보고를 들은 황제는 박장대소했다.
“거 말 잘 했네. 듣고 속이 시원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네들이야 속이 뒤집어졌겠지만.”
“...그보다도 소문의 그 여자... 혹시 아십니까?”
“소문의...? 아, 술집 여자 출신?”
“네. 말이 많아요. 이미 지드팃에 그녀의 자격 유무를 묻는 의견도 올라와, 또 적지 않은 찬성표도 얻었고...”
“그래도 정당한 절차에 의해 뽑혔잖은가?”
“하지만 품격 운운하면서 불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황제는 급격하게 웃음기를 거두었다.
“인물됨은 어떻던가? 만나봤나?”
“아직... 하지만 조만간 등원할 터이니 알 수 있겠죠.”
“그래. ...좀 시끄러워지겠다.”
황제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3월 8일 정오로 시행된 의회 개원식 및 황제접견에서, 아침 일찍 의사당에 출석한 성은희는 무려 10명이 넘는 하원의원들에게 시비가 걸렸다.
대놓고 앞을 막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는 컸다.
“나랏일이 장난인줄 아느냐?!”
“무슨 생각으로 나온 거야?!”
“혹시 선거 비리는 없었나? 이거 다시 살펴봐야 해!”
출신을 생각하면, 그 비리라는 것이 금전거래를 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노골적인 비난. 하지만 몹시 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우현왕과 비서령을 대동한 황제의 입장에, 다수의 우렁찬 인사가 본회의장에 울렸다.
의장석 위 옥좌에 높이 앉은 황제는 손을 저었다.
“환영한다. 국민에 의해 뽑힌 그대들이, 장차 충실히 민의를 대변할 것을 기대한다.”
슬쩍 시선이 돌려졌다.
“그런데 듣자니, 벌써부터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 하나 있던데, 누구더라?”
로제프 비서령이 허리를 숙였다.
“황령 제 7-2 선거구 당선인 성은희...입니다.”
이 선거구는 부산에 위치했다.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가 있나? 누가 말해봐라.”
“아뢰옵니다.”
일어나 말한 자는 바로 옆 선거구였던, 제 7-3 선거구에서 올라온 하원의원 심정호였다. 60대 초반의 그는 예전엔 3선 의원이었다.
“출신이 너무 엉망입니다.”
황제는 쉬이 긍정했다.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술 팔고 몸 팔던 여자가 의원이랍시고 올라오는 것. 그건 격이 너무 맞지 않겠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의견은?”
당파를 초월해 그의 동료도 적지 않았다. 지지의견이 쏟아졌고 황제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일어나보라.”
그녀가 일어나자 낮은 탄식이 흘렀다. 소문은 과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잘 안 보인다. 짐 앞으로 와보라.”
화면으로 확대해도 되는데 굳이 부른다. 이상하게 황제가 호사를 부린다 싶었지만, 천천히 걸어와 단상 아래 선 그녀는 궤례로 인사를 했다.
“‘하원의원’ 성은희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웅성임과 불편한 헛기침이 장내에 뱉어졌다.
하지만 황제는 묘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소문대로 미모는 되는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래. 그럼 그동안 돈 많이 벌었겠네?”
무척 노골적이면서도 일견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황제가 묻는데 답하지 않을 수는 없다.
“네. 남들보다야...”
“그럼 그걸로 편안하게 조용히 살면 되지. 굳이 이렇게 얼굴 팔아 욕을 먹을 이유가 있는가?”
“...하면 안 되는 건가요?”
꽤나 당돌하다 느낄 정도로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물론 등원하기 전에도, 등원해서도 그렇게 말하는 이는 많았습니다만... 정말 하면 안 되는 건가요?”
“혹시 바닥 출신이라는 것을 앞세워, 뭔가 관심이라도 받고 싶었느냐?”
“말씀하신대로 저는... 바닥 출신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거의 없어요. 그래도... 조금은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저 같은 사람도 정치 참여를 할 수 있고... 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아샤르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는 평등하다지요?”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나아질지 몰라도... 아직까지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은 많습니다. 물론 떳떳치 못한 직업이고 좋아서 뛰어든 이도 많습니다만, 청산하고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어째서냐?”
“이권을 쥐고 있던 이들이 폭력과 협박으로 놓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신상을 밝히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다른 일로 바쁘시리라 생각하지만, 이 점을 개선해 보고자 선거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운 좋게 당선되면 의회에서 말씀드릴 수 있잖아요. 아니라도 손해는 없고요.”
그녀는 표정을 보여주기 싫은 듯 조금 고개를 숙였다.
“저는 가난한 집 출신입니다. 먹고 살려고 화류계로 뛰어들었고... 다행인지는 몰라도 성공했어요. 하지만... 이 나이에 중병에 시달리고 수술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다른 이의 같은 처지는 막고 싶습니다.”
“...너, 가족은 있느냐.”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리고 어머니가 편애를 좀 덜했으면... 그런 생각은 항상 품고 살았습니다.”
“가족들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연락 자체가 끊어진지 제법입니다... 하기야 몸 파는 딸, 술집 누나는 집안의 수치이고...”
“그래? 보통은 집안에 숨기지 않나?”
“오던 손님 중 하나가... 알고 보니 동생의 친한 친구더군요. 입소문이란 것이 무섭기도 하고...”
사실이라면 참... 몇 사람이 혀를 내둘렀다.
“가족이 보고 싶지 않으냐?”
“어디 있는지만 알아도... 만족하겠습니다.”
아주 옅은 물기가 눈가에 맺히지만, 그녀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는 무례는 범하지 않았다.
황제가 혀를 찼다.
“그래. 신상은 그 정도로 하고... 그대가 당선된 사실 자체를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짐도 그렇고...”
“혹시나 싶었어요. 정말... 과거 무엇을 했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적어내면 되는 건지... 그래서 해 봤는데, 저도 놀랄 정도로 이렇게 뽑혀서...”
“하지만 이를 어쩐다. 그대의 출신을 들고 사람들이 난리다. 의회는 신성한 민의를 대표하는 곳이지.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필요한 법을 만들어 짐에게 재가를 얻거나 수정할 점을 묻는, 그런 중요한 곳인데...”
아샤르 의회에게 단독 입법권은 없다. 상원이 거부하면 끝. 상원에서 통과되어 황제가 거부할 경우도 마찬가지라, 일반적인 의회보다는 권한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해서 황제에게 지지를 표하거나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민의대변기관의 역할가치는 나름 충분하다.
“신제국 초대 통합의회에, 하필 일자무식의 윤락녀 출신이 들어온다. 다들 질겁할 만하지? 일단 하나 묻자.”
“말씀하세요.”
황제는 조금 웃었다.
“앞으로 하원에서 뭘 할 생각이냐. 그대처럼 무식하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는 사람이...?”
“...말씀대로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배워보고...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혹시... 저는 자격이 부족할까요?”
“이번 선거는 처음이라 아무래도 부실한 면이 없지 않았다. 호기심이나 무관심으로 대충 받은 표도 적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동료들과의 융화가 문제겠지. 그러니 그대를 이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황제권으로 그대를 하원의원에서 해임한다. 동료들의 뜻이기도 하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황제의 선언에 약간의 환호성이 울렸다.
성은희는 고개를 숙였고 입술을 깨물었다.
신세계. 그것은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흠 없는 이가 주변에 넘칠 그에게 나 같은 것은...
“다들 조용히 하라.”
황제는 자신의 팔찌를 조작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자, 산업구조 개편은 이런 방식으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굳이 사람 손이 필요없는 자동화영역이 늘어나지만, 또한 당장은 직업을 포기하는 이도 생기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억지로 일하는 이는 사회공헌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이들 방식이죠.
그리고 제국의회... 이 건은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례에서 약간 모티브를... 물론 진행은 다르지만요. 그녀에 대해 황제는 어떻게 처신할까요? 그에 대해 잘 알고 계실 독자분들은 아마 쉽게 예상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엉뚱하긴 할 거에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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