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그들의 봄. (2)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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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2051년 7월 19일. 베라 아샤르의 정식 강하에 이어 남은 7개 공중도시가 모두 강하했다.
9월에는 북한 지역의 7개 신도시가 완성되어 주민 수용을 시작, 2천만에 달하는 인구가 모두 들어왔다.
대신 기존의 도시들은 폐쇄되었지만, 아직 수백이 넘는 구 일본과 한국의 도시는 손도 대지 못했다. 물리적, 정신적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당분간 문제겠지. 아무리 낡은 집도 추억은 깃들게 마련이니...”
황제의 말에 이영은 고개를 끄덕여 동감했다.
“저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차츰 나아질 거야. 짐이 북쪽의 개발을 서두르는 것도,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그 포석인 셈이지.”
일본 열도와 남한 부분은 이미 개발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던 곳이다. 아무리 주거 개선을 한다고 해도 정든 집이 밀리는 것을 싫어하는 이도 많다. 때문에 행정단위마다 대대적인 투표를 붙여, 주민의 찬성이 많은 지역부터 공중도시 제작에 들어간다.
제작이 완료되면 다들 공중도시로 이동, 이후 문화재를 이동하고 구 도시를 철거한 후 통합한 행정구역에 도시를 강하시키는 작업으로 들어간다.
같은 면적이라면 공중도시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는 기존의 3배를 넘는다. 계산상으로는 신도시 60개면 기존 2억 인구 전부를 우습게 수용한다. 덕분에 기존 도시의 상당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구 한반도, 지금의 황령만 하더라도 훌륭한 건축물과 도시들은 많다. 하지만 아샤르의 눈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국토의 유기성을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이다. 때문에 이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리하고 보존할 것이다.
“가장 낙후된 북한 및 만주 지역에 설치된 신도시. 헐벗고 굶주렸던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과 같겠지. 그리고 이를 보는 뭇 사람들에게는...”
“저런 놈들도 저런 데서 사는데 나는...? 그런 질투 내지는 조급함을 불러 일으켜 향후 개발을 용인하게 한다... 라는 거죠?”
“그런 셈이지.”
서로가 의견을 내놓고 동의와 반론을 받는 이 시간은 귀중하다.
물론 이영이 지구인의 대표이자 표준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대화는 황제 스스로도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이자 이영에게는 공부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도시화는 작은 사회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도 된다. 관습과 정에 밀려 법과 규칙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지. 소위 시골의 정도 좋지만, 억울한 범죄를 예방하고 조직에 의한 개인의 노예화를 막아야 해. 이번에 전국적으로 국민 등록이 완료되었고... 여파는 들었지?”
“네... 이 문명시대에도 그렇게나 인권 사각지대가 많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죠.”
제대로 된 호적에도 올라있지 않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5만 명 이상 나왔다. 강제노동이나 인신매매였다.
지역 경찰과 유지가 결탁하여 이를 용인하거나, 동네 자치 사회에서 사형(私刑)으로 사회를 유지한 경우도 적지 않게 적발되었다.
“맞아. 마냥 인심 좋아 보이는 곳의 사실은 썩은 부분. 그걸 미풍양속 운운으로는 용납하지 않겠다. 그러니 인간을, 서로의 눈을 모은다. 그리고 남은 지역을 정비할 거야. 이후 섞이고 섞여 장차 한 나라, 한 민족이 되겠지. 대략 30년 후에는 큰 틀의 변혁은 끝난다. 그 뒤로는 세세한 관리의 문제이니... 짐도 그 때가 되면 다리를 뻗고 좀 쉴 수 있겠지.”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불로장생이라도 과로에는 버틸 수가 없잖아요.”
“오호, 생각해주는 거냐?”
“뭡니까. 그 불신, 아니죠. 장난거리를 찾으시는 듯한 그 눈빛은...”
이영은 내심 실소했다. 남매가 쌍으로 장난꾸러기니, 내 앞길도 몹시 고단하게 생겼다.
“아무튼, 최고 지위가 너무 부지런하면 밑의 사람들이 죽어나겠죠. 뭐든지 급해서 좋은 것은 없습니다. 돌아갈 때는 돌아가십시오.”
“오냐.”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도 훈련이 있지...? 고생하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생은 분명 고생이지만 꽤나 달콤한 시간 역시 기다리고 있다.
이영은 부쩍 들뜨는 기분을 억눌렀다.
피망을 송송 썰어 넣고 채 썬 양파를 곁들여 볶아낸다. 쇠고기도 채를 썰어 넣고 물엿과 설탕을 조금. 그 다음 간장과 참기름에 재운 떡을 프라이팬에 넣고 센 불에 볶아내어 마무리를 한다.
“이게... 뭐야?”
“간장 떡볶이요. 매운 건 싫어하시잖아요?”
앞치마를 푼 이영은 자랑스레 웃었다.
유키나는 신기한 듯 냄새에 빠져들었다.
“흐음... 이거, 식재료는 우리 쪽인 거 같은데...”
“맞아요. 하지만 제 맛이 날 겁니다.”
기존 작물은 농업을 포기한 농민들 때문에 반 토막이 났고, 무역망도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해 수입 작물은 거의 없었다. 평범한 나라라면 고사 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먹는 식재료는 한정되어 있다. 때문에 침공 초반부터 아샤르의 농업 플랜트는 바삐 돌아갔다. 쌀과 밀, 콩과 옥수수는 그들도 먹으니 아무 문제없고 해초류와 산나물, 담배와 인삼 등의 특이작물의 경우도 충분히 고려되었다.
상공업과 마찬가지로 농업도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민들이 대폭 감소한 반면 1인당 경작 면적은 그만큼 늘어났다. 자동화 역시 빠르게 이루어져, 농사일은 수월해지고 당장 필요한 생산량은 대부분 유지되었다.
세상은 지금도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고, 이제는 이렇게 식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영이 쓴 식재료 중 중 양파와 피망과 쇠고기는 아샤르제다. 배양시키는 주제에 고기에 마블링을 넣는 이들 기술은 알아줘야 했다. 맛도 전혀 처지지 않는 덕분에 만족스러운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여왕은 영자력 훈련뿐만 아니라, 관료 사회에 필요한 공부(요령)도 틈틈이 가르쳐 주었다. 이 특별 과외의 장은 바로 그의 집이었다.
베라 황궁에서 멀지 않은 10층 건물의 7층이 그의 거처다. 주인인 그는 문으로 들어왔지만, 들키면 안 되는 객인 그녀는 창문으로 들어와야 했다.
“고생했어. 잘 먹을게.”
그녀는 항상 그렇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번이고 느끼지만 연인보다는 애완견일까.
살짝 섭섭한 그는 또한 체념도 했다. 아마 그녀의 마음도 애매할 것이다.
변화 차원에서 어설픈 연애 놀음을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그 스스로 생각해도 이건 격차가 너무 난다.
그는 어디까지나 지상인, 그것도 전향자에 불과한 이다. 물론 현존하는 황족 네 명과 골고루 인연이 있는 조금은 특별한 일반인이지만, 현재 여왕을 가시권에 둔 유일한 남자이기도 하다.
이 일이 알려지면 분명 전국의 탄식과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굉장한 미남은 아니지만 괜찮은 마스크라 그는 자부하고 있지만, 아예 격이 다른 그녀는 지금도 갖은 구애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 신년 연휴 이후, 궁내성에 우연히 심부름을 간 그는, 건물 앞마당에 산처럼 쌓인 우편물의 덩어리에 기겁하고 말았다.
“우와...! 이게 뭡니까?”
“뭐긴 뭐겠나.”
궁내성 말단 관료(女)가 한숨을 쉬었다.
“두 분 폐하와 우현왕 전하께로... 국내외에서 들어온 구애편지와 선물들이야.”
“...그게 이만큼이나 된단 말입니까?”
“이건 약과야. 지난 10일간 쌓인 분량일 뿐이지. 이제부터 받는 분량은, 창고가 아니라 모조리 소각장을 써야 할 판이니까.”
황제는 적지 않게 매체에 노출되어 그 앞으로 된 우편물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우현왕. 황후는 아무래도 유부녀니 가장 적었다. 또한 지배 초창기 입을 잘못 놀렸다 혼쭐이 난 사례가 있어 세리사에게 장난질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황제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아니고 6명의 후궁 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전 세계의 괴짜들이 달려들어, 개방적인 문화권에서는 무려 누드 사진을 보낸 여자들도 제법 있었다.
미혼 여성인 유키나는 값을 매길 수가 없을 정도로 가치가 높아, 그야말로 인간의 모습을 한 복권이라 할 만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말이지 이렇게 안 어울리는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니 덥석 말해놓은 그녀가 나중에 혹시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 역시 마침 마음의 약점을 우연히 파고든 것 정도에 불과하다 생각할 수 있고...
그런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기에, 언젠가 밖에서 만났을 때 용기를 내어 슬쩍 물어봤었다.
“...혹시, 후회는 안하십니까? 조금이나마 고려하는 상대가 이 모양 이 꼴이라서...”
다행히 여왕은 태연히 답했다.
“발전의 여지가 없다면 애당초 팽개쳤어.”
“저기... 내적인 여지는 발전이 있을지 몰라도... 아무래도 겉보기에도 너무 쳐져서...”
“네가 어때서...?”
“아, 네...”
그녀의 눈이 높지 않음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가.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녀는 조금 멍한 표정이 되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쌓인 게 있다 보면 또 모르는데... 막상 남에게 들키거나 밝혀야 할 그 때도 여전히 바보라면 내가 난처해.”
“그런데... 힘은 몰라도 생각하는 머리는 타고 나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두 분을 따라가긴 힘들잖아요.”
“그건 차비마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 안에는 마마 본인의 생각 이상으로, 오라버니를 낚아챈 강력한 점이 있어. ...그런 걸 좀 닮으라는 거야.”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내가 차비마마를 만난 초창기에도, 그 분을 바보 취급을 한 적은 없어. 외모나 머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진짜 강한 매력은 안에 있는 법이지. 나 역시 네게 그걸 본 거고... 물론...”
그녀는 검지와 엄지를 아주 조금 떼어 모아보였다.
“어디까지나 요만큼...”
“하하. ...고작...?”
“다른 사람들은 이렇지.”
가볍게 웃은 그녀는 손가락을 완전히 붙였다. 그리고 다시 꽤 떼며 놀라운 제안도 해 준다.
“요만큼 올라오면... 입술 정도는 원할 때 허락해줄게. 어때, 고마운 일 아니니?”
“고마워 죽겠네요, 아주...”
그는 내심 투지를 불태웠다. 떡밥이 이렇게 크니,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그 레벨은 도달하고 말 테다!
물론 이렇게 차츰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 정도로, 그는 상대에 비해서 그리 어른은 아니었다.
“괜찮네.”
포크로 떡을 찍어 입에 넣은 그녀가 말했다.
“그렇죠?”
모처럼 승리감과 자부심이 들었지만...
“하지만 조금 짜...”
제길, 역시 빈말은 없는 여자다.
“...실패인가요?”
주눅 든 질문에 옅은 웃음이 돌아온다.
“그다지... 사실 의외야. 요리도 할 줄 아네?”
“자취생활 1년은 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거라...”
“으흥...”
그녀는 아쉬운 패배감을 얼굴에 드리웠다.
“갚아주려면 나 자신도 뭔가 만들어야 할 판이지만, 솜씨도 엉망이고 무엇보다 왕궁을 뒤집긴 싫어.”
“그러지 마십시오. 살 떨립니다.”
만약 그녀가 앞치마를 입고 왕궁 주방을 차지한다면, 다음 날 어느 황색 언론에 ‘여왕의 도시락을 받아 처먹을 빌어먹을 개자식이 대체 어디의 누구냐?’ 라는 분노 충만한 기사가 반드시 뜰 거다.
“아무튼, 이걸로 점수 좀 벌었나요?”
그녀는 잠시, 하지만 깊게 고민했다.
“좋아. 10점 추가해줄게. 지금까지는 10점이었어. 그리고... 지난번 말한 요만큼은... 고작 30점. 후하지?”
아하, 지금껏 그 밑에서 구르며 죽을 똥을 싼 것도, 모두 합쳐 고작 10점짜리였단 말이지.
그럼 저 입술을 획득할 30점의 커트라인은 대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생각하면 뭔가의 게임 퀘스트 같기도 하다. 하기야 그녀에게도 묘하게 아슬아슬한 게임이려나.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깎이는 건 있나요?”
“바보짓 하나에 1점씩.”
“...이제껏 깎인 점수는...?”
“그 때 이후... 내가 너를 바보라 부른 적이 몇 번 있었나 생각해 봐.”
“그야 무지하게 많았었던...”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잃어버렸던 점수에 아쉬움을 표하다, 순간 스친 생각에 그는 외쳤다.
“잠시만요, 그럼 당신이 깎고 싶은 만큼 깎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이건 너무 불리한 승부잖아요.”
“그런가?”
묘하게 능청을 떠는 모습이 얄미운 그가 투덜댔다.
“...뺨 더 맞더라도 그 때 그냥 갈 걸 그랬습니다. 그럼 이 고생 안 해도 되는 건데...”
“...바보.”
“아. 1점 잃었다...”
조금은 의도적인 침울함이지만 풀죽은 그를 향해, 식탁을 넘어온 그녀의 얼굴과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어랍쇼...?”
무슨 선심이야. 하지만 눈앞의 눈매가 웃었다.
“이런 느낌이야. 도전할 목표점을 제시해줬으니... 분발해야지?”
이런 여우...!
하지만... 장난기가 가득담긴, 웃는 이 모습은 여왕이고 뭐고...
아아, 이러면 안 된다 싶었지만 무척 매력적인 여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언제까지 장난에 마냥 당해주기는 좀...
“엉겁결에 뭐가 지나갔나... 잘 모르겠는데... 한 번 더 가르쳐주실 수 없나요?”
“바보...!”
괜히 맞장난을 쳤다가 또 잃었다.
만회하려면 내일도 죽자고 뛰어야겠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통수를 긁었다.
인생의 봄날은 잡힐 듯 말 듯 저 멀리서 손짓한다.
...좀 기다려줄 생각은 없는 걸까.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초반부에는 이후의 도시 및 농촌 변화를 조금 서술한 셈이고, 통제사회이기도 하지만 큰 사회를 지향하는 이들의 방침의 논리적 근거도 밝힙니다. 그것은 작은 사회의 지양이죠. 그리고 후반의 닭살씬은 너무나도 끈질긴 아레아 지지파에 대한 정면 반격입니다. (작가는 작중 세계의 신이거든요, 포기하시지요? 에헤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독자를 향한 메세지이기도 함... ㅠㅠ 일요일, 그것도 마누라 친정간 틈 아니면 쓸 시간이 없는 데다가 지금 중요한 씬을 몇 번이고 날리고 다시 쓰는지... 진도가 안나가서 그럽니다. 잉 ㅋ 담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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