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인간의 땅. (1)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Ⅰ
아샤르 정부에서 바티칸 시국에 넣은 면담 신청은 역시나 세계의 화제가 되었다.
지난 세월, 세계의 주류가 된 유럽기반 문명의 정신적 틀은 가톨릭이다. 비록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가 갈라져 있긴 하지만 바티칸은 최대 신자와 최대 세력, 그리고 가장 강력한 단일 조직을 가진 세계 최대 종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사상 최대의 세속 국가인 아샤르가 그 경계를 풀 수 있다면 도움이 된다.
당혹했는지 잠시 대답을 미룬 상태였지만, 곧이어 아샤르가 국내 종교 정리에 들어가자 역시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바티칸은 ‘기회가 닿는다면’ 식으로 완곡히 거부해버렸다.
“이건 밉보인 모양인데요.”
총재의 말에 황제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한 쪽을 봐줄 생각은 없다네.”
종교관련 조치는 가두포교금지만이 아니었다. 메가 처치 혹은 템플로 불리는, 거대 종교 세력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알려진 것만으로도 국토의 0.5%에 해당하는 부동산과 상응하는 재력이 있지만, 이미 경전에 없는 외계 문명의 등장으로 교리에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여기에, 아샤르 화폐와 경제체제의 도입은 더 큰 타격이다. 토지의 보유가 극히 제한됨은 물론, 돈의 흐름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앞으로는 교세의 확장은 요원할 것이다.
물론 숫자가 많으니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긴 하다. 하지만 돈이 묶여있으니 장차 세력축소는 기정사실인데다, 그동안 심화된 종교계의 득세에 불만을 품은 이들은 황제 지지파가 되었다.
그렇게 갑론을박은 어디에서나 있었지만...
“군주정은 처음이라 그렇다 해도 이렇게 무례하니... 조만간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무상서 온케르 포로프는, 물론 상서로 뽑힌 만큼 절대 무능하지 않지만 총재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만큼 다소 딱딱한 편이다. 기행을 즐기는 황제에게 상식론을 제시해줄, 그런 시어머니 역할로 고른 인물이다.
온케르가 처음으로 들고 온 문제는 불경죄였다.
그나마 명목상의 군주라도 있었던 일본이나 사실상의 군주정이었던 북한 지역은 좀 낫지만, 군주 지배를 받아본지 100년도 훨씬 넘은 한국이다. 덕분에 아샤르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군주의 신상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것의 무거움을 그만큼은 이해하지 못했다.
“잡혀온 이유가... 허허.”
황제는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온케르는 격노했다.
“생각이 있는 놈들입니까?”
문제의 발단은 황후였다.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은 은막 속의 그녀였던지라, 얼굴이 드러나는 즉시 세계적으로 관심이 또 폭증했고 당연히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다만 입에 오른 방식이 문제였다.
“중대 과실로 판단된 범법자가 200명이 넘습니다. 구류는 해두었고 처벌이 필요합니다.”
외국에서 지껄인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내에서 함부로 낄낄댔다 잡혀온 숫자가 그만큼이었다.
“처벌하기 전에, 잠시 만나볼까?”
몇 시간 후, 많이도 잡혀왔다 생각하며 황제는 내심 쓰게 웃었다.
꿇어앉혀진 그들은 성별도 연령별도 다양하다. 초등학생, 중학생부터 꽤나 노인까지 있었다. 그것도 지역의 편차도 없이 신영토 곳곳에서 잡혀 왔다.
“어디 보자...”
총재와 우현왕, 로제프 비서령이 시립한 가운데 황제가 팔찌를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아내를 갖고 유희거리나 안주로 삼으면 곤란하지? 물론 언론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무릇 언행이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범위까지만 허용되는 것인데...”
모두 하나같이 불안한, 개중 어린 축은 훌쩍이기까지 했다. 돌아보는 황제의 시선을 마주치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내용이 참... 어디 한번 읊어볼까?”
“그만두십시오. 민망합니다.”
총재가 찌푸리며 만류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은 물론 지드팃(로사 기반 네트워크 시스템 : 지구의 인터넷에 상응함) 게시판은 사람들이 다 보는 것이다. 덕분에 그대들을 엄벌하라는 여론이 강하다. 내용이 이러니까.”
황제는 다시 팔찌를 바라보았다. 내용이 가관이다.
“오오... 저런 여자랑 한 번... 내지는... 좋겠다, 두 여자 끼고 매일매일... 여기에 우현왕도 예외는 아니지? 무려 짝가슴이라는 소문이 있군.”
“흥.”
유키나가 코웃음을 쳤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모욕입니다.”
그동안 그녀에게 쏟아진 시선이 깨끗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정식 통치 이전에야 처벌할 수가 없으니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터. 총재가 물었다.
“어찌 하실 겁니까?”
“법적으로는 어떻게 되지?”
“군주 개인 신상으로 근거 없는 비방과 모욕을 자행한 자에 대해, 불경죄 조항을 적용해 징역으로는 3년에서 10년, 최대로는 국외추방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아샤르 국외추방형은 원래는 사형급의 벌이다. 모든 기억을 삭제당하고 지상으로 추방되는 것이 그 골자로, 사실상 헤매다 죽으라는 법이다.
그동안 갖은 혜택을 받아왔던 문명인이, 질병과 기아가 판치는 미개발지역에 가서 오래 살리는 없다.
물론 지나치게 잔혹해 실행된 예는 거의 없다.
“근거가 없긴 하지.”
황제는 웃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짐은 국사에 바쁘니 매일도 힘들고 황후와 차비는 각각 존중받으니 한 침상에 올라오는 경우는 없어. 명백히 사실무근이라고.”
총재가 말했다.
“그럼 국외추방형을 권고 드립니다. 형식은 좀 달라지지만, 아샤르 시민권을 박탈하고 적절한 외국으로 추방해버리지요. 물론 빈손으로...”
여전한 코웃음으로 우현왕이 말했다.
“저는 좀 더 벌해도 될 것 같은데요.”
“흠...? 어떻게?”
“말과 글이긴 하지만, 저는 대중 앞에서 딱 발가벗겨진 기분입니다.”
“기분은 이해한다.”
“저도 이런데 내궁의 두 분 마마께서는 기분이 어떻겠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군주의 권위 및 두 분의 정서에도 누가 됩니다. 그러니 본보기 삼아, 죄질이 무거운 이는 사형급의 벌을 내리시는 건...”
냉랭한 말에 좌중이 급격히 시끄러워졌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으앙, 엄마...!”
마지막은 가장 어린 중학생의 것이었다.
“어전이다! 조용히!”
로제프 비서령이 고함을 질렀다. 황제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 참, 고함은... 경이 제일 시끄럽군.”
“...죄송합니다.”
허리를 굽힌 비서령에게 황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됐다. 다들 풀어줘라.”
“폐하...?!”
깜짝 놀란 총재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처음이고 아직 잘 몰라서 그러니 그리하는 것이다. 다만 다음에는 법대로 할 터이니 그리 알도록.”
“모욕의 정도가 지나치지 않습니까?”
“그리 심한 악의라기보다, 약간의 질시와 철없음이 불러온 결과이다. 물론 짐도 사람이니 화가 난다만, 이 정도 일로 처음부터 사람을 잡아넣을 수는 없는 거야.”
하지만 우현왕이 말했다.
“몇 명은 가벼운 처벌이라도 내리는 편이 맞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용서하시면...”
“모욕은 짐도 당했지만 황후와 차비도 당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허겁지겁 달려와서 가능하면 용서해달라고 하더군. 짐도 동의했고. 아직 어린애도 있잖아.”
꿇어앉은 자들은 안도와 탄식이 교차했다.
“...황송...하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나? 그나마 제정신이 있던 몇 명이 주춤하며 땅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황제는 다시 쓰게 웃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돌아가는 길. 황제의 옆에 우현왕이 바싹 붙었다.
“뭐가 불만이니? 예상 정도는 했을 텐데.”
“그렇죠. 하지만, 연이은 관대함은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뭇 사람들은 물론, 좀 배웠다는 자문위원회 놈들도 책임질 수 없는 말만 자꾸 늘어놓는데, 저들이야 늘 하던 대로 한다는 거지만, 슬슬 말버릇만은 고칠 필요는 있잖아요?”
“알아. 하지만 이번은 아니야. 저들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주변머리다. 아직 애들이잖아.”
“...쳇... 운 좋은 녀석들이네요. 때렸는데 풀려나고...”
그녀의 투덜거림에 황제가 위로했다.
“참아라. 이보다 더한 일도 장차 있을 건데, 뭘.”
“그래도... 짝가슴은 좀 심하잖아요...?!”
“말 정도로 부끄러워하기는. 처녀라는 증거네.”
잠시 주변을 돌아본 여왕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어 그의 정강이에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아얏...!”
“상관없잖아요...?!”
“...화는 좀 풀렸냐?”
로우킥을 받아준 황제는 쿡쿡 웃었다.
이미 어이없다는 듯 웃던 여왕은 이번에는 그의 팔짱을 끼었다.
“참, 사서 고생이세요.”
“즐겁게 하는 일인데, 뭘.”
그의 낮은 웃음이 회랑에 흘렀다.
정무궁으로 귀환한 그들에게, 가디언즈 한국지부장 장헌창이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공언대로 감시나 추적은 하지 않았지만 출입국 과정에서 드러난 행적이었다.
보고를 받아든 황제는, 이어 열심히 아샤르어와 씨름 중이던 이영을 불러들였다.
“결국 가셨군요... 무사하실까 모르겠습니다.”
황제가 반문했다.
“고작 말만 전하는데도 목숨의 위협까지 느껴야 할 정도로... 그 정도로 가디언즈는 딱딱한 조직인가?”
“사태가 사태입니다. 형님과 제 관계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고... 아마 배반 의혹에 심문도 받으실 겁니다.”
“하지만 너를 믿고 출국한 거겠지. 사람 사이에 쌓은 신뢰만 믿고 움직인다는 것, 그것도 쉽지 않는 용기다. ...의외로 인재일지도 모르겠다.”
“제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분 중 하나입니다.”
“그래? 그러면... 만약 수틀리면 짐이 그를 받아주마.”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만... 형님은 장사나 할 줄 알지, 정치엔 별로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건 아닐 걸. 유키나도 녀석에 대해 괜찮은 평가를 내렸거든.”
“땀내가 풀풀 나는 우정도 쓸 만하더군요.”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만약 가디언즈가 그를 버린다면, 결국 그 정도 조직밖에 안 되는 겁니다.”
“자, 거기까지 하고... 기다려보자꾸나. 우현왕은 사령본부 일이 있지? 고생해라.”
“네.”
그녀가 물러가자 이영도 같이 물러가려고 했지만, 그를 붙든 황제가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네? 어찌 되었다니요?”
“유키나 녀석, 저번에 나갔다 온 이후로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이 오라비는 알 수 있지. ...무슨 일이 있었어?”
“별로... 고작 같이 밥을 먹고, 잠깐 실수해서 작은 물건을 하나 뜯긴 정도입니다.”
“그게 오른손 중지에 찬 그 반지야?”
고작 금도금한 싸구려다. 뭐가 문제일까.
“그런데요?”
“남에게 뭘 사내라고 하고... 또 그걸 차고 있다니 별 일이군. 아하...”
황제는 짓궂게 웃었다.
“조금 더 다가간 거냐?”
“넘겨짚지 마십시오. 들어오기 전에 저도 봤습니다만, 손을 들어 보이시면서 소위 썩은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지금 약지에 끼신 것은 훨씬 고급이잖아요.”
그날 이후 그녀는 약속대로 똑같은 반지를 끼고 있다.
“받은 거라서 한번은 차주는 거지만 고작 이게 뭐냐, 그렇게 그 초라함을 강조하시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저 같은 가난뱅이는 그게 한계라고요.”
“가난은 무슨. 무려 한정판 바이크를 갖고 있던 녀석인데...?”
“물론 저희 집은 부자 맞습니다. 현금만 1,000억대가 넘었고 부동산은 그 세 배쯤... 그래도 그건 아버지 돈이지 제 돈은 아니죠. 아직 집에도 못 가봤고...”
“어째서 찾지 않았지? 집에서 걱정 안하시냐?”
“사실, 아버지와 저는 좀 안 맞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버셨고 아버지는 건물 임대에 ...술... 집 운영으로 돈을 버셨죠. 조상 욕이 되겠지만, 그 덕인지는 몰라도 다들 좀 졸부근성이시라...”
“흠... 이유는 기질이 맞지 않은, 그것뿐이냐.”
“아닙니다. 그래도 유일한 아들이니 기본적인 귀여움은 받았습니다. 돈도 좀 얻어 썼고... 하지만 아시죠? 이번에 시행되는 정책. 저희 집은 어떨게 될까요.”
“당연히 안 좋겠지.”
“네. 부동산은 대부분 뺏겨버렸고, 저희 부모님 두 분의 경제계급을 합쳐봤자 가용현금도 그다지...”
정상적인 기업 활동도 아니고, 자본으로 자본을 불리던 이에게 재산 리미트가 걸린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돌아가면 맞아죽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계인 따까리 노릇도 부족해, 집이 쫄딱 망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부모가 찾으려 했다면 벌써 연락이라도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의 부모들이 아샤르 관청이나 황궁에 ‘내 아들 어디 있소’ 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뭐, 어머니는 찾으려 했겠지만 워낙 아버지에게 쥐여 사니, 호통이라도 떨어졌다면 움츠러드셨을 거다.
“비서관이 아무나 하냐. 그러니 출세는 출세인데. 네게 주어진 독특한 특권에... 차비와 친구라고 하면 뭔가 면죄부가 되지 않을까?”
황제는 몹시 짓궂게 웃었다.
“여차하면 귀족이나 황족도 노릴 수 있고...”
“말도 안 되죠. 폐하께서 저희 집만 봐주시려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셨을 겁니다만, 그렇게 해 주실 리가 없잖아요. 그건 우현왕 전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황제는 소리 내어 웃었다.
“너도 드디어 우리들을 조금 파악하기 시작했구나. 바보는 벗어나기 시작한 것 같으니 칭찬해 줘야겠는걸.”
“사실, 그게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굶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역시 지금은 좀 애매해서...”
“허나, 짐이야 장인을 때려죽인 후레자식이긴 하지만, 신하마저 그리 되는 것을 용납하긴 좀 그렇지? 영원히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슬슬 다녀와 봐.” ”
“...그리하겠습니다.”
슬슬 때가 되긴 했다.
황제의 관대함이 담긴, 불경죄에 대한 이번 조치에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본인을 포함해서 아내들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웃으며 방면해 버린 것이다.
이 인물이 이제껏 겪어왔던, 그저 콧대 높은 통치자가 아니란 인식을 주는 데는 기대 이상으로 유효했다.
“물론 죄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니 모두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법의 숙지를 위해, 교육방송은 잘 봐주시는 것도.”
이어 내무성은 경찰조직 개편에 들어갔다.
지금껏 각국의 경찰 조직은 규모 자체는 유지한 채로 내무성에 흡수되었고, 아직 아샤르 법에 익숙하지 못한 그들은 여러 경우를 일일이 로사에 접속, 위법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했다.
음성으로 한 질문도 로사는 분석하여 무리 없이 답을 내어준다. 그나마 로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혼란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이것을 다시 개편해서 아샤르 식, 즉 순찰 및 검거는 군용 알로프에 비견되는 자동화경찰이, 사람은 조직 관리와 실제 수사로 나뉘는 체제가 된다.
아직 자동화경찰의 숫자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곧 빠르게 충원될 것이다. 반대로 인력의 감원도 필수적이다.
자동화경찰은 뇌물도 항의도, 심지어는 경찰에 대한 폭력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졸지에 경범죄로 유치장에 잡혀 들어온 이가 폭증했다. 대부분 훈방으로 끝났지만 불편하다는 의견이 매우 많았다.
“이건... 인간미가 너무 떨어지는 사회 아닌가요?”
“뇌물로 음주운전이나 폭행을 모면하는 것이나, 술 먹고 정당한 공권력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과연 인간미란 말이냐? 아무래도 인간미의 정의가 좀 다른가보다.”
자문위원회에서의 황제의 답변은 그러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아무리 잘 짜여 있다 해도, 조직 내에서 인간이란 일종의 부품 아닙니까?”
“그건 지난 세월 동안 그 안에서 살아온, 우리 아샤르 국민에 대한 모욕일세. 또한 인간미를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그런 것 말고도 엄청나게 많아. 남을 돕고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기쁘게 선보이는 것... 그런 것이 대표적이겠지만... 물론 서로 불편한 점은 있겠지만 이렇듯 담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다만...”
황제는 어이없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좀 더 진지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으면 하네. 말했지?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싫어합니다... 라는 이야기로는 안 통한다고. 자문위원회도 앞으로는 좀 더 제대된 이야기를 갖고 와서 열도록. 짐이 귀찮다고 피하지는 않겠지만, 쓸데없는 이야기를 갖고 온다면 다른 일에 쓸 시간이 부족해.”
여전히 불만 가득한 장내를 둘러보며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오늘도 길어지겠군.
그가 범용한 인물이었다면 벌써 호통을 치며 권위로 누르고도 남았을 터.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유혹을 잘 참고 있었다.
사실은 즐겁기도 했다.
이곳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그 어떤 강대한 무기와 능력이 난무하던 곳보다도 진정 보람 있는 전장이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이 시대에도 키보드 워리어는 당연히 있고, 하지만 한번은 쿨하게 방면.
그러나 그도 빡이 도는 사태가 하나 벌어지는데...
내일‘쯤’ 뵙겠습니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