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무너지는 세상.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아사카와 루이코(朝河涙子)는 이미 우주에 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동족, 지구인들이 아무리 우주를 노려도, 그 칠흑의 공간은 하찮은 인간들의 구애를 처절하게 거부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것이라고 곧 선포할, 지구인과는 또 다른 인류가 그녀의 옆에 있다.
주변을 감싼 영상, 그 속에는 각자의 빛을 뿜어내는 수만 척의 함대가 있다. 그중 가장 작은 점 하나조차도, 별조차 태워버릴 수 있는 화력과 성간을 넘나드는 속도를 이미 가지고 있다.
루이코는 문득 등을 돌렸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그들에게 옥좌라 불리는 곳에 앉은 이. 엄연히 남자지만 마치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그에게 그녀는 새침이 물었다.
“이제 시작이네요... 바라시던 그 전쟁 말이죠...”
남자는 담담히 답했다.
“나도 딱히 바란 건 아니었다만...”
“하지만 당신 덕에, 당신의 이름으로 많이들 죽겠죠. ...안 그래요?”
이는 명백한 비난. 하지만 이제부터 공격을 받을 고향을 생각하면 이 비난은 정당하다.
어느덧 난처한 웃음으로 그가 말했다.
“...미안하다.”
코끝으로 무례하게 웃는 루이코. 하지만 그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사실은 낼 수도 없다.
그녀에겐 빚이 있다. 그것도 상당히 말이다.
난감한 그를 구원하듯 통신이 들어왔다.
그들이 있는 희고 거대한 방. 그 절반을 채우듯 영상이 투영되고, 소녀와 여인의 경계선인 젊디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검은 머리. 그녀도 몹시 아름답다. 물론 그 미모도 그들의 종족적 특성, 그 일부일 뿐이다.
“출정 준비 완료했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그녀는 이어 오른손을 반대쪽 어깨에 붙였다.
끄덕인 남자, 침략자들의 황제가 차분히 명령했다.
“칙명이다. 휘하 모든 함대로, 지구를 침공하라.”
“존명.”
엄청난 무력이 주어졌지만 천진한 미소로 답하는 그녀. 남들이 부르길 여왕 전하가 즐거운 미소로 물었다.
“그런데 역시... 상당히 곤욕이신 모양이군요.”
그 시선이 뚜렷이 루이코를 향했다.
황제는 낮게 혀를 차며,
“앞으로 너 하기에 따라 조금은 달라진다. 그러니 오라비 좀 살려다오. 알았지?”
“글쎄요. 그동안 우릴 애태운 벌이라 생각하고 달게 받으시면요?”
“...너까지 그러기냐.”
“아무튼 가보겠습니다.”
대답대신 그녀의 화면은 짧은 미소로 사라졌다.
“아, 도망갔다...”
탄식이 남은 그 등에 루이코의 시선이 아프게 꽂혔다.
수 분 후, 수만 척의 우주함대가 오로지 한 곳을 향했다.
그들에게도 엄연히 고향땅.
하지만 싸움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던 땅.
이제는 돌아가기 위해 다시 싸워야 하는 땅.
지구로.
서기 2050년 6월. 지구 세계는 변함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이가 차츰 줄고 있다는 것만 빼고선.
풍요롭고 즐거운 미래 세계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여전히 평화와 투쟁, 가난과 풍요, 강자와 약자가 혼재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뿐이다.
희망찬 21세기에 대한 기대도 이미 사라졌다. 오죽하면 세기 중반에 벌써 종말론이 재등장했다.
무언가 바뀌어야 했지만, 결국은 또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모든 이들이 변화의 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 스스로 주도하는 변화였었다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좋았을까?
변화의 첫 징조로 밤하늘의 별은 더욱 많아졌다. 별처럼 보이지만 별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혜성도 아닌 것이, 그 숫자가 너무 많다.
아이들은 갑자기 많아진 별에 탄성을 질렀지만, 어른들은 갑자기 닥쳐온 현실에 탄식을 내질렀다.
우주 저 편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그것도 우주선이다. 하나같이 거대한 것은 물론, 그 숫자는 만 단위를 우습게 넘었다.
그리고 그 경악과 공포를 더욱 확대시킨 것은 은청색의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지상에서 관측한 직경만도 약 100㎞. 그 거대한 크기는, 그 집단의 가장 큰 존재도 왜소해 보이게 하기 충분했다.
이어,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몇 개의 통신위성이 제어권을 빼앗겨, 다양한 주파수로 모르스 부호의 통신이 세계 각국에 전달되었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영국 그리니치 기준 표준시로 6월 14일 오전 0시. 알려준 주파수로 그들의 목적을 전 세계에 방송할 것이라고.
세계는 긴장했다. 그들은 무엇일까. 어떤 존재일까. 외계의 존재임은 분명했지만, 그 외에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무지는 공포를 낳지만, 이번의 규모는 전례조차 없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어떤 이는 신에게 기도했고, 어떤 이는 술을 마셨으며, 어떤 이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냈으며 어떤 이는 미리 질겁하고 자살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성적인 이들은 소위 높으신 분들에게 대책과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치계와 종교계는 침묵했고 대신 사이비 종교들의 목소리만 크게 울릴 뿐이었다.
아무리 혼란해도 시간은 간다. 기준 오전 0시. 세상이 침을 삼키고, 가능한 한 모든 방송 장비가 동원되고 전 세계의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 경제인과 저명인사, 그리고 TV와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화면을 주시하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게 각 방송의 정규화면이 꺼지고, 관계자들의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배경으로 급작스럽게 화면이 바뀌었다.
그렇게 세계의 모든 영상매체를 한 사람이 점령했다.
무척 넓고 하얀 장소. 아마 그들의 우주선 내부이리라. 하지만 복잡한 계기와는 인연이 멀다. 오히려 깨끗하고 단정하다.
의자에 앉은 인물이 차츰 클로즈업되고, 이어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이는 20여세 전후, 아니 그보다 더 젊다. 입고 있는 것은 검고 선이 잘 잡힌 옷이다.
군데군데에 그려진 붉은 줄. 그리고 어깨부터 드리워진 똑같이 붉은 천. 복장은 다소 이질적이지만, 뭇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 외모였다.
어깨까지 내려온 단정이 빗은 검은색 머리카락. 약간 회색빛이 섞인 검은 눈. 그리고 하얀 피부. 이목구비는 중앙아시아 쪽에 다소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운 여자로, 비록 평범하게 나타났대도 분명 만인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화면 아래에는 자막이 스쳐지나간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여러 언어로 되어 있다. 이 방송은 통신 위성을 점거하여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다.
고개를 든 그녀는 고운 입술을 열어 말했다.
“안녕하세요. 지구인 여러분. 상당히 당황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이렇게라도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게 웃었다. 방송용의 미소인지, 실제로 그런지는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저는 아샤르(Asyale) 제국(帝國), 삼군사령장관(三軍司令長官)이자 제 3함대 사령관. 원수(元首) 위계와 우현왕(右舷王)의 작위인 세라비 유키나 세이야라고 합니다.”
어딘가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 그녀의 자리와 상황이 아니었다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 아름다운 아가씨다.
“이렇게 오늘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희의 요구를 여러분께 전달하고 그 승인을 얻고자 함입니다. 우선, 여러분은 그 무엇보다 저희의 정체가 궁금하시겠죠. 그래서 자료화면을 준비했습니다.”
다수의 우주선들이 지구로 강하하는 화면이 펼쳐졌다.
“저희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만 년 전, 모종의 사정으로 이 별에 왔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북극에 도시를 건설하고, 지구 전체를 영토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2천년쯤 전, 다시 모종의 사정으로 이 별을 떠났죠. 물론 그리 멀리가진 않았고, 이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얼굴로 화면이 바뀌었다.
“그러니 돌아온 우리들이, 원래 저희 것이었던 이 땅에 다시금 나라를 열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요구사항입니다. 지금부터 잘 들어주세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숨을 고르는 것이 명백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다.
세상을 바꿀 내용이 곧 선언될 것임을 누구나 예감할 수 있었다.
“첫째. 여러분은 저희 아샤르 제국에 지구 내의 일정 영토를 할양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지구 전역은, 직접 지배는 하지 않았으나 엄연히 제국의 영토.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미 국가를 세웠으니 전부는 무리겠죠. 따라서 일부를 요구하니 기꺼이 주시면 감사드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저 없이 무력을 동원할 것입니다. 해당되는 영토가 전부 포함되는 국가는 소멸, 그 정부는 해산하셔야 하고, 일부가 국토에 포함되는 국가 역시 영토 할양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후 그곳은 저희 아샤르의 지상 영토가 됩니다.”
이어 뱉어지는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둘째. 아샤르는 더 이상의 영토를 여러분들에게 요구하지는 않지만, 위성 궤도 이상 고도의 우주공간을 포함한 모든 천체는 아샤르 제국의 영토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것이 아닌 그 어떤 물체도 우주에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인공위성 역시 파괴될 것이며, 이후 어떤 발사체도 우주를 향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대신 제국이 통신 및 기상 위성을 발사하며 기본적으로는 무상임대, 혹은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녀는 살짝 웃었다.
“우리 기술력이니 품질은 보장하지요. 그리고, 하늘 정도를 바라보는데 돈을 내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그녀는 웃자고 한 말인지 모르지만, 아마 웃는 이는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으리라.
“셋째. 우리는 앞으로 여러분과 동등한 외교적 지위로 공존할 것입니다. 다만 아국의 황제께서는 이제부터 지구 성왕(星王)의 칭호를 가지시며, 그것으로 이후 혹시라도 우리 이외의 지구 외적 생명체와의 접촉할 경우, 아샤르는 인류를 대표하여 전쟁 결정권과 외교권을 독점합니다.
넷째. 여러분들의 공통 기구인 유엔, 국제연합의 아샤르 가입 허가 및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요구합니다. 이사국을 신설하기보다는 기존의 국가가 하나 내려오는 쪽이 저희는 좋겠지만, 그 방식의 결정은 여러분들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다섯째. 만약 범지구적인 문제를 야기한다고 볼 사안의 경우, 지구 성왕의 이름으로 제국은 지구 제국(諸國)에 그 시정을 요구하고 감독할 권한을 가집니다.
여섯째. 지구는 모든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를 폐기합니다. 이후 보유 혹은 제작하려는 모든 시도는 저희가 철저하게 배제합니다. 물론 대체 기술은 무상 혹은 저렴한 유상으로 제공하도록 하죠. 품질은 보장하고 또한 무공해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대략적인 요구는 전해드렸으니...”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제 영토 할양 지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북아시아 지방의 지도가 화면에 떠올랐고, 이어 한 지역이 반짝거렸다.
“우선 일본 열도 전역입니다. 과거 타국과 영유권 분쟁이 있는 곳도 모두 포함하여 받을 겁니다.”
그녀는 장난이 들킨 직후의 아이처럼 웃었다.
“이미 탄식이 들리는 것 같군요. 하지만 여러분의 의사표시는 저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두세요. 이어서 요하(遼河) 이동의 전 만주지역 및 한반도 전역, 레나 강(江)이남 및 이동의 지역입니다. 부랴트 공화국, 자바이칼스키, 아무르 및 하바롭스크의 일부도 포함됩니다.”
북으로는 레나 강 이남에, 서로는 바이칼 호, 동으로는 그대로 일직선으로 이어 사할린에 이르는 지역이 반짝거렸다.
“따라서 일본열도와 한반도의 모든 정부가 해체되며, 러시아와 중국도 꽤 주셔야겠네요. 기왕이면 기분 좋게 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명백한 도발이다. 아름다운 외모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웃음에도 얄미움을 느끼고 있으리라.
“이 모든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표식 역시 필요합니다만, 여러분들은 국가가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공통의 의지를 모으기가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의지를 모아 받아들이시겠다면, 정해드린 기일까지 국제연합 건물의 최상층에 백기를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의지가 모아지지 않았다면, ...그렇죠. 분명 수용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가 나오겠죠. 수용하지 않는다면 저희가 무력으로 굴복시키겠습니다. ...수용하는 국가는 국가원수의 거처 혹은 가장 큰 정부 건물에 적절한 크기의 백기를 걸어주시면, 저희 명예를 걸고 해당 영역은 침공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그 이후 도발이 있다면 강력하게 보복하겠으니, 항복은 부디 진심을 담아서 해 주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기일은...”
그녀는 손가락을 꼽았다.
“지구 시간으로 6월 21일 오전 0시. 앞으로 7일이군요. 그때까지 좋은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다시 얄미울 정도로 천연스레 웃었다.
“물론 받아들이시기 힘드실 테지만, 기억해 두세요. 최악의 경우, 우리가 이 별의 표면을 불바다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부디 헛된 기대는 하지 마세요. 우리는 수백 년 정도는 자연 복구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들어 올려졌다.
“여러분의 현명하고 빠른 판단을 돕기 위해, 지금부터 저희 무력을 조금만 선보이겠습니다.”
손가락이 딱 하고 퉁겨지는 순간, 화면이 외부로 바뀌고 그들의 함대 일부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못해도 열 척 이상. 그 함수(艦首)는 모두 지구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발사.”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그와 동시에 빛을 머금고 있던 함수 부분이 다수의 섬광을 뿜었다.
이어 순식간에 지구의 일부분에서도 빛이 솟았다. 바다의 한 구역이었으며, 빛은 순간 번쩍였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이것만으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녀가 말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확인된 무인도 하나를 날려버렸습니다. 피해는 직접 확인하십시오. 앞으로 이 회선은 질문 및 회답 회선으로 열어두겠습니다. 제가 직접 대답하지는 않지만, 되도록 친절하게 답변드릴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느덧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가 선언했다.
“그 어떤 교섭도, 그 어떤 협상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부디 최선의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안녕히.”
약 20분에 걸친 통신이 끊어지고, 비로소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와 나, 우리. ...그 모두가 같은 감정에 물들었다.
경악. 공포. 그리고 당혹감이었다.
난리가 났다는 표현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방송이 끝난 후 상공의 외계함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지상은 분주함을 넘어 아예 들끓었다.
각 방송사는 진지한 문의전화부터 철없는 장난전화, 사이비 종교의 홍보에 이르기까지 불이 날 지경이었고, 이미 비상에 돌입했던 군은 연달아 마른 침을 삼켰다.
정치 지도자들은 지켜오던 권좌를 잃을까 두려웠으며, 근엄한 종교 지도자들은 대답하지 않은 신에 의문을 품는 자들에게 시달리거나, 아니면 최후까지 열성적인 신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치안이었다. 특히, 점유 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이 갑자기 나빠졌다. 평화스러웠던 곳일수록 더해서, 결국 시내에 군대가 보이는 경우가 생겼다.
점유 선언 지역이 아닌 곳이라도 문제는 심각했다. 미국과 러시아 등의 우주를 노릴 수 있던 국가는, 이제 더 이상의 진출이 막힌다는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와 같이 원자력 발전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에너지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모자란 것은 그들이 제공한다 했지만 신뢰할 수 없다.
각국의 수뇌들도 핫라인을 동원해 외교적 눈치를 보고, 자국의 치안과 군대도 급히 점검하기 바빴다.
6월 16일을 기해, 국제연합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었고, 각국에서 파견한 대표들이 밤을 새워 모여들었다.
불안과 노호성이 본회의장을 쩌렁 울렸다.
“이대로 독립 포기 선언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전력을 모으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핵무기 페기가 조건이니, 그건 저들에게도 경계할만한 것은 아닌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주에 있는 저들입니다. 공격할 수 있는 발사체가 많지 않습니다.”
“기습 공격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 큰 것은 어떻게 됩니까? 못해도 직경만 60마일이 넘어가는데... 저런 걸 핵무기로 부술 수 있을까요?”
“그 전에...”
마침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만약 우리가 싸우겠다면, 같이 싸워줄 수 있는 나라는 있는 겁니까?”
즉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숲에 들어가기 전에 모피의 값을 계산하는 것이 사람이다. 특히 철저한 이익주의인 국제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차츰 나빠지는 자원수급에, 50년 넘게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상황. 그리고 무한경쟁체제에 익숙한 그들이다. 지구급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협조심은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었다.
문제는 상대가 보여준 화력이었다. 그 중 극히 일부를 투사했음이 분명하지만, 남태평양의 430여 미터 크기였던 섬이 하나 통째로 증발했다.
위력 자체도 강하려니와 명백히 광학 병기다. 회피하거나 방어할 수단은 전혀 없다.
“왜 이런 사태를 미리 말하지 않은 겁니까? 대비할 시간이 그렇지 않아도 촉박한데, 이걸 기밀로 숨겨요? 제 정신입니까?”
미국 대표, 국무장관 로버트 J 뉴튼은 혹독한 비난에 시달렸지만 나름의 항변도 잊지 않았다.
“이미 동맹국 일부에는 전했습니다만, 우리들도 너무 충격이었다는 사실은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요?”
누군가 소리치자 누군가가 더 크게 외쳤다.
“8일전, 항모 전단 하나가 괴멸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단 하나의 적에게요...!!”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의 비명이 터졌다.
“어느 전단이...?”
“제 7함대랍니다. 요코스카의 CVN 76... 로널드 레이건과 이지스 순양함 및 구축함 대부분이 전멸... 살아 돌아온 건 USS 머스틴 외 5척 뿐이랍니다. ”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 7함대는 계속 전력이 증강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기존의 제럴드 R 포드급에 덧붙여 퇴역직전의 레이건 호를 끌어와, 2척의 항모와 90척 가까운 함정을 갖고 있던, 사실상 세계 최강의 항모전단이다.
밝혀진 사정은 단순하고 심각했다. 단 한 척의 적이 일본 해구 상공에 나타나 5일간 머물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7함대 대부분의 수상함대 전력이 이동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관찰하던 마지막 날, 뜻하지 않게 교전이 벌어졌고, 30분도 안 되는 교전의 결과는 극히 처참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지구 최강의 항모전단이 전력을 동원하고도 단 하나의 적에게 궤멸당했다. 이것은 충격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게다가 저들에겐 비슷해 보이는, 아니 완전한 동형의 것이 못해도 수백 척이 있다. 그 한 척당 항모전단 하나를 우습게 상대한다면, 아마 지구 전체 전력을 모아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항복입니까?”
비탄이 쏟아졌지만 몇몇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지금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할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나라를 넘길 생각이 없습니다.”
“원자력 포기요? 그럼 우리더러 죽으라는 겁니까?”
“우주는요? 앞으로 개발은 영영 막히는 겁니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염원들. 기존의 국제우주정거장도, 없는 돈을 쪼개 쏘아 올렸던 여러 시설물들도 그들의 도착 직후 그 거대한 구체 안으로 나포되었다.
수십 년간 공을 들여 키운 딸을 채어간 것보다 더욱 울화통이 터진다. 도둑놈이 따로 없지 않은가?
“미래를 위해서도 우주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들의 말도 다 믿을 수 없고요.”
“우리는 싸우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주전론이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자신하지 못했다. 사실 그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상대는 강력하고 통일되어 있는 반면, 그들은 미약하고 방침 하나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할 만큼 분열되어 있다.
약소국들은 사실상 항전을 포기했다. 이제는 강대국들의 결정이 남아 있다. 서로가 낭패한 얼굴로 눈치를 살피면서, 제발 이 악몽이 꿈이기를, 아니면 무슨 영화처럼 누군가 나타나서 구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홍수를 만난 개미집처럼 분주한 지구와는 달리, 우주는 평온했고 느긋했으며 미묘한 흥분과 고양감이 지배했다.
애당초 시작하게 될 전쟁이지만, 수집한 정보로 상대의 전력은 잘 알고 있다. ...간단하게 때려 부수고, 이제 드디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다.
슬퍼하는 이는 루이코 하나 뿐이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죽겠지. 그리고 그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린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바로 그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결정을 내렸다. 뭇 정치가가 그렇듯 자신의 동족,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정치란 건 그런 거다. 루이코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했지만 그래도 그게 쉽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도 합병 대상이니 아마 싸우겠지. 자신이 아는 누군가도 죽을지 모른다.
격조를 중시한 화려하고 넓은 방. 그리고 단 두 사람. 공간낭비다.
이 우주에 지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라고 누군가 이야기했지만, 닥쳐올 핏빛 미래를 생각하면 그런 낭비도 괜찮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밉상스럽고 고압적인 연설이었어.”
침략자의 황제, 그가 조금 키득거렸다.
“그래도 백기는 좀 너무했나. 기왕이면 꽃다발을 건다든가, 항복이 아니라 환영. 그런 형식이 좋았을까.”
“하지만 포장에 불과해요.”
“네 말대로야. 이제 와서 변명은 하지 않겠어. ...하지만 가능한 한 피를 덜 흘리마. ...알겠지?”
아무 힘도 없는 그녀는 그저 힘없이 끄덕일 뿐. 대신 한 가지 다짐을 다시 마음속에 되새긴다.
...고향이 불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지.
아버지, 어머니. 살아있어 줘요. 저도 반드시 살아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빨리 이 싸움이 끝나서, 부디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때 이전처럼 말이에요.
...그렇다. 그 때였다.
알아왔던 세상이 무너진 것은.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지도는 뱉으라는 땅의 대략적인 구역... 많이도 요구한다.
< 다음 화 예고 >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쌓아나간 젊은이들의 작지만 깊은 우정,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관계, 미래, 모든 것을 비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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