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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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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31
추천수 :
775
글자수 :
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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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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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DUMMY

“이 검만 있으면 아리시아 스승님만큼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요?”


뭉툭하고 커다란, 어딘가 투박하게 보이는 묵 빛의 대검.

손잡이와 검신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마치 하나의 쇳조각을 깎아 만들어 낸 것과 같은 모양의 검이었다. 바로 어둠의 기사들이 들고 다니는 <어둠의 검>이라는 이름의 검.

검날이 서 있지 않은 탓에, 어둠의 오러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자라면 검으로써의 운용이 쉽지 않은 그런 검이었다.


신기한 듯, 두 눈을 반짝이며 검을 내려다보고 있는 리아나에게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은회색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크레이트가 말했다.


“어둠의 기사가 되신 리아나님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어둠의 사제들의 검 중에서도 최상품에, 그것도 4서클의 보호마법과 6서클의 화염마법주문이 깃든 마법의 검이랍니다.”


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서 그 검을 받아들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런 마물쯤은 열 마리가 한 번에 튀어나와도 저 혼자의 힘으로 충분히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곧이어 이어지는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옆으로 기울어지는 그녀의 머리로 무언가가 날아와 부딪쳤다.


으악!

정신을 차리고서 돌아보니 그녀가 있는 곳은 신나게 관도를 달리고 있는 작은 수레 안. 수레 한쪽 모서리에 부딪친 머리를 박박 문지르며 리아나가 주위를 돌아보니, 그녀의 황홀한 꿈을 깨운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저 앞, 마부석에 앉아 사방이 떠나가라 웃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는 아리시아와 마리엔이 같은 자세로 앉아 각자 한 손에 한 권의 책을 들고서 내려다보고 있었고, 미리는 마부석에 앉아 신나게 채찍을 휘둘러 대고 있는 차터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물론 그런 걱정은 하지 않죠. 그런데 차터님은 언제부터 그리 강하셨어요?”


“몽트라므님의 은총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금 이 자리에 까지 올라왔지요.”


말발굽소리와 수레의 바퀴소리가 만들어내는 소음도 거든히 이겨내는 그의 웃음소리가 다시 길게 이어졌다.

차터와 미리가 나누는 대화소리를 잠시 듣고 있다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리아나가 주위로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신전을 나서면서부터 끝없이 펼쳐져 있던 노란색 풀잎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지금은 풀 한 포기 나있지 않은 메마른 땅 위를 수레는 달리고 있었다. 심하게 요동치며 흔들리는 수레의 움직임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아리시아와 마리엔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책 속에 빠져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리아나의 마음 한편에 심한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고개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무릎 위에도 역시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무릎 위에 펼쳐진 책장에는 침에 젖은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어쩐지 목이 마르더라니.

리아나는 책장에 묻은 침을 힘없이 닦아내며 길을 나서기 전, 신전에서의 일을 잠시 떠올렸다.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탁자와 벽면에 그려진 몽트라므의 흉측한 그림들 때문인지, 어딘가 음침한 기운이 도는 대사제의 집무실에서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서있는 리아나를 대사제 라모린은 자신이 지어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인자한 미소를 그린 얼굴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여관을 달려 나와 신전 내 도서관을 물어물어 찾아들어가, 창가 한 편에 기대고 선 채 책을 읽고 있는 아리시아를 발견하자마자, 리아나는 무턱대고 어둠의 기사가 되겠노라고 선언을 해버렸다. 책을 읽고 있던 자세 그대로 고개만 살짝 틀어, 숨을 고르고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던 아리시아는, 그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그녀를 끌고 도서관을 나서더니, 그길로 곧장 이곳, 대사제의 집무실로 그녀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예고도 없이 찾아든 것인데다, 어제 대사제의 성정을 직접 겪어봤던 터라 잔뜩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데, 이 민머리의 노인, 라모린 대사제의 태도가 그 전날과는 백팔십도로 달라져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이 어제 그가 맞나 싶어 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아리시아는 자신의 뒤에 가만히 서서 그런 자신을 내려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잠시 라모린 대사제의 눈치를 보며 말없이 서 있던 리아나가 결국 용기를 내 물었다.


"저, 대사제님, 어둠의 기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어둠의 기사요?"


뜻밖의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반문을 던진 대사제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녀의 뒤에 서있는 아리시아에게로 옮겨갔다. 그러나 역시 가만히 서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는 아리시아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의도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다시 되돌아와 리아나를 바라보는 라모린의 미간에 고민이 파고들었다.


“흠, 어디서부터 설명을 드려야할지........”


근심이 담긴 것 같기도 하고, 귀찮음과 난감함이 담긴 것도 같은 복잡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대사제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리아나양이라고 하셨죠? 리아나양은 왜 어둠의 기사가 되려고 하시는 거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리아나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한 기사가 되기 위해서........”


자신 없이, 말끝을 흐리는 리아나에게 시선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대사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아나양은 믿고 있는 신이 있던 가요?”


리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세일루니아왕국에는 어둠의 신전이 없다. 빛의 신전에도 발길 한 번을 주지 않았던 그녀였는데, 하물며 어둠의 신을 믿는다니....... 그런 건, 오늘 아침, 크레이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털끝만큼도 생각해 보지 못 했던 일이었다.


“강한 기사가 되고 싶은 건가요? 강한 기사가 쉽게, 빨리 되고 싶은 건가요?”


계속해서 밀려드는 그의 질문에 리아나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리아나양을 꾸짖으려 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전 리아나양의 그 욕망에 찬사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다만.........”


아직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지만, 그 전에 그가 지어보였던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미소는 아니었다. 그 탓일까? 그래서 이질감은 사라졌다. 그의 웃는 얼굴에 그제서야 대사제다운 위엄이 서렸다.


“간혹, 어둠의 기사가 되고자 하는 사제들 중에서, 욕망과 탐욕을 구분 짓지 못하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반해 어둠의 기사가 되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나곤 한답니다. 물론 리아나양은 그러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괜히 말을 한 번 멈추고서 리아나와 눈을 한 번 마주친 대사제가 예의 그 미소를 머금은 입을 다시 열었다.


“그럼 어둠의 기사가 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둠의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둠의 사제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오랜 시간 견습사제로 수도생활을 거쳐야만 하구요. 신의 목소리를 듣기까지는 꽤 힘든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겁니다. 그러다 신의 선택을 받아 신력이 생겨서 사제가 되면, 수도에 있는 어둠의 대신전에서 오 년마다 열리는 어둠의 기사 선발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선은 어둠의 사제가 되셔야겠지요."


라모린의 설명을 듣고 리아나는 순간 얼이 빠져 버렸다.


'쉽게 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라모린의 시선이 잠시 아리시아에게 머물다가 빠르게 돌아왔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어둠의 견습사제로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신의 말씀을 듣고, 신력을 받는 것은 신께서 선택하실 일,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리아나가 어둠의 신력을 느끼게 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보통 견습사제로 신전에 들이는 나이는 일곱 살 전후의 어린 아이들. 그 보다 나이가 들면 이미 더러워진 이성이 신의 부름을 스스로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린 나이부터 교리를 익히지 않은 자에게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일은 드물었다. 게다가 어둠의 신전에는 아이를 맡기는 부모의 수가 더욱 적으니 어둠의 신전에 견습사제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보통이 고아들이나 가난한 집에서 팔려온 자들이라 그 나이가 더 어렸다.

이제 곧 성인식을 치르게 되는 리아나정도의 아이들은, 보통은 빛의 신전에서조차 견습사제로 드는 일이 드물어서 그냥 일반 신도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이것을 끝으로 그냥 모른 척 할 수만은 없어, 라모린은 자신의 서재에서 책 두 권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어둠의 사제 소베르의 얼굴은 거의 경악에 차 뒤집어질 지경이 되었다. 바로 어제 그녀들에게 소리를 내지르던 어둠의 사제였다.


"우선 이 두 권의 책을 읽어보십시오. 이 책은 어둠의 주신 테하마드님의 기본 교리가 담긴 어둠의 성서이고, 이 책은 그중에서 몽트라므님의 교리가 담긴 기본서 입니다."


겉표지가 닳을 대로 닳아 하얗게 벗겨져 있는 낡은 책들은, 그러나 그 볼품없는 모습과는 달리 어둠의 사제들에게 만큼은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물건이었다. 라모린의 뒤에서 지켜보고 서 있던 어둠의 사제 소베르가 경악하고 있는 이유로, 그 성서가 바로 라모린의 평생 신력이 담긴 그의 성서이기 때문이었다.

즉 라모린에게 신의 말을 전해 준 성서.

만약 어둠의 신전에서 견습사제로 머물고 있는 자들 중에 그 성서를 받게 된 자가 있다면 지금쯤 수십 번 절을 하고도 감격의 눈물이 멈추지 않을 일이었다. 그 속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기운에 리아나의 손도 저절로 주저하며 그 성서를 쉽게 잡지 못했다.


"아, 이렇게 까지 하지 않으셔도......."


라모린 대사제가 그런 리아나의 청록색 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고작 이 정도라 죄송할 따름이지요."


그러면서 다가가 그녀의 손에 책을 건네준 라모린이 덧붙여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탐욕을 가진 자에게 욕망의 신은 절대로 그의 힘을 전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리아나양의 성공의 끝까지 몽트라므님의 욕망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얻어온 책이었건만, 리아나는 도통 그 교리서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채, 세 장을 넘기기도 전에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리는 눈꺼풀 때문이었다.


"어렵습니까?"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책에서 눈을 뗀 아리시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며 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어렵더군요."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아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세리안을 비롯한 여러 명의 빛의 사제들과 어둠의 사제들을 만났다. 그리고 반신이라는 마족을 만나기도 했다. 신이 내린 힘이 그들의 곁에서 현실로 드러나 보였지만 그럼에도 아리시아는 그것을 인정 할 수가 없었다. 아리시아의 눈이 리아나를 바라본다.

그녀가 어둠의 기사가 될 수 있을까?



그때, 달리던 수레가 멈춰 섰다.

마치 지구의 그리스의 신전의 건축양식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갈색 흙으로 덮인 벌판에서 였다. 말을 멈춰 세운 차터가 마부석에서 뛰어 내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말들이 왜 이리 빨리 지치는 거야.”


괜히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그가 멋쩍은 얼굴로, 말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의 등 뒤로 아리시아의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검을 든 자가 열여섯, 마법사로 보이는 자가 둘에, 이상한 것들이 몇 마리 있군요."


그녀의 말에 놀란 차터가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무슨 말씀이시오?"


그러나 아리시아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무너진 유적의 터 안에서 이십여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숨어있던 곳은 모두 달랐지만 한 곳에 모이니, 아리시아의 말대로 딱 그 만큼의 사람들.

그 중에 마법사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들 앞에 갈색 털을 바짝 일으켜 새운, 거대한 늑대모양의 동물 다섯 마리가 자줏빛 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다란 입을 벌름거리며 아리시아 일행을 향해 으르렁, 대고 있었다. 앞으로 걸어 나온 사람들 중, 고급스러운 푸른색 가죽 정장을 차려입은 갈색 콧수염의 남자가 한 가득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차터를 향해 말했다.


“늦었군요. 차터님.”


“이분들은 누구시죠?”


미리의 고개가 차터에게로 향했다. 미리와 눈이 마주친 그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흠흠, 하고 괜한 헛기침을 해 대고는, 수레에서 말 한 마리를 끌어내며 콧수염의 남자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당신과 나와의 볼일은 끝 난 것으로 믿겠소.”


콧수염을 매만지며 중년의 남자가 점잖게 웃었다.


“물론이지요.”


그의 말을 끝으로 고개를 끄덕인 차터가 미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 듣기로 그대들이 세일루니아에서 도망친 현상범이라 하더이다.”


미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제대로 당했네요.”


뒤를 돌아보며 한 말이었지만, 뒤쪽의 풍경을 바라본 미리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만 번졌다. 리아나는 고개를 숙이고서 생각에 잠겨 있었고, 마리엔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으며. 그나마 아리시아만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자신과 차터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은 공평하지요. 잘못을 저지르셨으면 죄 값을 받으면 될 일. 도망쳐서는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습니다. 죄 값을 모두 치르고 난 후에는 새사람이 되십시오. 몽트라므님의 은총이 그대들의 욕망의 끝에 함께 하길 빌겠소.”


오히려 그녀들에게 훈계의 한 마디를 내 뱉은 차터가 누구랄 것도 없이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작게 숙여 보이고는 말 위로 올랐다.

그 때, 그들이 방금 지나온 벌판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일며 한 마리의 말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차터님!”


어둠의 기사 크레이트가 자신의 갈색 말의 박차를 가해 그들의 곁으로 달려왔다.


“자, 자네, 아침 일찍 블리터로 떠난다고 하지 않았나?”


차터의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긴 몸짓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주위를 둘러보던 크레이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곧 떠날 겁니다. 그 전에.........”


크레이트의 시선이 잠시 리아나에게 옮겨갔다. 떠나기 전에 리아나에게 전하려던 말이 있었는데, 오전 일찍 차터가 그녀들을 데리고 신전의 외성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들고, 그녀를 찾아 달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차터님은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수레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크레이트가 물었다. 그러나 차터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크레이트가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차터님!”


“자넨 좀 빠져주게. 이들은 세일루니아에서 도망친 범죄자들이야.”


그의 설명에 잠시 아리시아와 리아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크레이트가 구겨지는 얼굴을 겨우 바로하고서 다시 차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이분들을 저 자들에게 넘기려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범죄자라니까?”


그때, 다시 콧수염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두 분, 어둠의 기사님들께서는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이분들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크레이트의 날이 선 질문에 콧수염의 남자가 조금은 성의 없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아펠렉 상단의 상단주 코럭이라고 합니다.”


신전에서 북동쪽으로 하루거리에 위치해있는 도시 헤르난을 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상단은, 주로 세일루니아의 국경을 넘어 무역을 하는 상단이었다.

그러다보니 세일루니아의 정세에 제법 밝은 편이었는데, 그들이 헤르난으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들린 욕망의 신 몽트라므의 신전에서 우연히 아리시아 일행을 만난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습이 많이 변해 제대로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붉은색 로브를 입은 붉은 머리의 여인 마리엔만은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세일루니아의 마법가문 포이리안 백작가에서 그녀의 목에 건 상금이 무려 5000골드. 그 돈은 자신들과 같은 작은 상단의 일 년치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 여인들은 내 손님이요. 그러니 물러들 가시오.”


제법 당당하고 호기롭게 크레이트가 그들을 꾸짖었지만, 코럭은 털끝만큼의 동요도 없이 고개를 내 저을 뿐 조금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둠의 기사 크레이트님. 크레이트님께서 잘 모르시고 이들을 감씨고 계십니다만, 이 여인들은 세일루니아에서 중범죄를 저지르고 제국으로 도망을 쳐온 자들입니다. 그 죄 값을 치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신을 따르는 사제의 도리가 아닐까요?”


“자네도 들었지? 이들은 세일루니아에서 도망을 친, 범죄자들이네. 쓸데없는 동정은 욕망의 신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시네. 우린 그냥 돌아 가세나.”


차터가 말에 올라 그의 곁으로 다가가며 다그쳤다. 그런 차터의 손을 뿌리치며 그가 소리쳤다.


“욕망의 신을 따르는 사제가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차터의 눈이 매섭게 일그러졌다.


“지금 내 믿음을 모독하는 건가? 그대도 듣지 않았는가? 그들이 범죄자들이라고, 내가 지금 이 여인들을 상단에 넘기는 일이 어둠의 신의 교리에 어긋나는 일인가?"


크레이트가가 조용하지만,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크레이트의 대답에 차터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시 크레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분들을 신전으로 모신 것은 저의 의지. 제가 이분들을 보호하는 것이 어둠의 신의 교리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겠지요."


차터가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아니네."


역시 크레이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은 색 검을 집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신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는 없겠군요."


말에서 내려 선 차터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오고 곧, 그의 손에도 검은색 검이 들렸다. 그때,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는 차터의 발걸음을 앳된 여인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저........”


묵빛의 검을 치켜들고서 제법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며 서 있던 두 사람의 고개가 함께 돌아갔다. 마차에 비스듬히 앉아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리아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제가 납치를 좀 당해 봐서 아는데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요.......”


수레에서 뛰어내려 걸어 나오는 리아나의 앞을 막아선 크레이트가 아리시아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를 내 질렀다.


“오해는 무슨 오햅니까? 저런 사기꾼하고 같이 다니니까 이런 일이 발생한 거 아닙니까?”


“예?”


뭐라는 거야?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통에 놀란 리아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다가오는 크레이트를 빤히 쳐다본다.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점점 작아져만 가는 아펠렉 상단의 상단주 코럭이 그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보시오. 우리가 그걸 따지며 기다려 줄 시간이 없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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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5) +1 15.05.15 401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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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9) +1 15.05.02 386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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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6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8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5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2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0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7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2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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