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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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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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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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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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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DUMMY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멀리, 수도 퓨리스의 외성이 내려다보이는 황량한 언덕 위에서, 기절해 있는 마법사 아웬을 어깨 위에 둘러 맨 아리시아가 말러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말러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새하얀 달을 바라보다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선, 르마스를 찾아야겠지요."


잠시 멈칫, 숨을 삼켰던 아리시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시리아를 바라보던 말러가 그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가 가져 간 검은, 카니치트가문에 마지막 남은 의미니까요."


"알고 계신 것보다 더, 위험한 물건입니다."


어렵기 입을 연 아리시아를 잠시 바라보던 말러가 커다란 달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검의 주인인 자신보다 아리시아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졌다.

녹색독사카니, 라는 이름의 검.

감옥 안에서, 지금까지 그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그 원인이 결국에는 검, 녹색독사카니로 귀결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 후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와 그의 가문, 먼 옛날, 라이틴스후작과 아버지, 스말턴 던 카니치트와의 관계. 그리고 스말턴이 죽기 직전까지도 비밀에 붙이고자 했던, 검과 가문과의 얽힌 사연.

그의 아버지는 끝내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죽었지만, 그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는 결론까지 이른 상태였다. 아리시아의 말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물건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신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래도 찾아야지요."


"르마스님은……."


그녀답지 않게,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는 아리시아에게 말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를 의심하고 있는 건 절대 아닙니다."


얼핏, 아리시아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고, 말러는 느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또 한 가지의 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그곳에 잡혀 있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의혹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아리시아가 작은 종이쪽지를 하나 내밀었다. 바로, 하얀 새, 프리나가 가져 온 편지였다.


"르마스님께서 알려주셨어요."


르마스…….


"그를 만나셨습니까?"


말문이 막혀 순간, 입을 다물고만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말러가 어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그러나 그 역시도 다시 고개를 저으며, 아닙니다. 하고 말을 주어 삼켰다. 르마스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특별한 자일지도 몰랐다. 그 실체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왠지, 또한 그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는, 말러님을 배신하진 않을 겁니다."


말을 꺼내면서도, 아리시아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자신이 그를 감싸고 있는건지. 그녀 자신도 세리안을 믿고 있지 않으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꺼내가면서 세리안을 비호하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뭇, 다른 모습의 아리시아를 바라보는 말러의 얼굴에 흥미로운 빛이 스쳐갔다.


"아리시아님만큼, 저도 그를 믿습니다."


아리시아는 이번에도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아리시아에게 말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리시아님께선 어쩌시겠습니까? 지금, 세일루니아는 무척 어수선해 질 듯합니다."


"전, 리비안으로……, 함께 가시겠습니까?"


말러는 고개를 숙이고서 생각에 잠겼다. 아직, 위험은 남아있었다. 리아나와 함께 있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르마스를 찾을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저희도 따라 갈 수있게 해 주십시오."


갑자기 끼어든 라크의 목소리에, 아리시아와 말러의 고개가 함께 돌아갔다. 낡은 천조각을 들고 은빛의 도끼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던 라크가, 그 도끼를 등 뒤에 단단히 꽂아 두고는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희도 메르넨을 찾아야하니까요."


라크가 덥수룩한 수염을 문지르던 손을 멈추고서 아리시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리시아님, 그 자, 뭡니까?”


거대한 주먹을 휘두르던 금발의 남자.

아리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르마스님을 만나게 되면 말씀 드리겠습니다.”


“알고는……, 계신 겁니까?”


“모두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잠시 아리시아를 응시하던 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아리시아의 이어지는 말에 라크가 과장 된 몸짓으로 고개까지 뒤로 크게 젖혀가며 큰소리로 웃었다.


"조금 전에 죽다 살아난 목숨이잖습니까. 이래 뵈도 저흰 용병입니다. 용병."


어느새 다른 용병들 모두 말러와 아리시아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런 용병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말러의 눈과 아리시아의 눈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저도 리비안으로 가겠습니다."





리비안의 마탑 이층에 위치한 대회의실에 붉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 수십 명이 원형의 탁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장에 문이 열리며, 무거운 분위기 속으로 몇 명의 붉은 로브의 마법사들이 더 들어서고, 그들이 자리에 앉자 그들 중,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노마법사가, 자신보다 조금 높은 의자에 앉은, 백발의 노마법사, 마웅 후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후작 각하. 이제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마웅후작이 노마법사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마법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마웅후작을 바라보고 있던 마레드가 그의 눈짓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순간, 어수선하던 장내가 진정되며 자리에 앉은 마법사들의 시선이 마레드에게로 향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영지전은 포이리안 가문에서 일으킨 것이지만, 적들을 이끌고 있는 이는 크록후작 휘하의 기사 리글리오스라는 자입니다. 모두 그의 이름은 들어보셨으라 생각합니다.”


기사 리글리오스.

대대로 훌륭한 기사를 배출해 낸 크록후작가의 방계혈족으로 작위는 자작의 위를 받고 있으나, 그 명성은 이미 세일루니아에서 따를 자가 없는, 기사들 중에 상위 열 명 안에 꼽히는 자였다. 나이는 서른 살 중반으로, 젊은 나이에 오러를 느끼는 경지에 까지 도달했으며, 아직 마스터가 없는 세일루니아에서 마스터에 가장 가까운, 차기 왕궁기사단장의 자리를 이을 기재라고 불리는 자였다.


"그 전에, 마레드 마법사. 모다크와 하바는 어찌 되었소?"


마레드의 설명을 기다리던 마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끼어든, 중간 자리에 앉아있는 노 마법사에게로 향했다. 노마법사는 그 시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레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다크와 하바는 모두 므로도스가의 영지인 리비안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로 바로 크록후작의 군대가 진군해 오고 있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었다. 질문을 던진 소테르라는 이름의 노마법사는 므로도스가의 장로로, 실질적인 하바마을의 주인이기도 했다.

노마법사를 향해 마레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모든 병력을 물리고, 주민들을 대피 시켰습니다. 적들도 하바마을을 지나쳐 진군하고 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마레드의 설명에 소테르마법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끼어들어 미안하오. 회의를 계속 진행하시오.”


마레드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시선을 다시 회의장의 마법사들에게로 돌렸다.


"말씀 드렸다시피 적은 지금, 하바 인근, 도성의 북동쪽, 약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오늘 밤이 지나, 내일 새벽, 다시 출발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마웅 후작의 옆에 앉아있던 긴 수염을 기른 노마법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 적은 얼마나 됩니까?”


그는 마웅후작의 동생인 마로쉘 자작으로, 지금 므로도스가의 화염의 마법사단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며, 마웅후작과 함께 5서클에 들어선 마법사이기도 했다.


“기사 삼백여 명, 병사 만 팔천여 명과 기병 이천여 명, 그리고 포이리안가의 마법사를 태운 마차가 다섯 대로, 마법사의 수는 대략 30여 명쯤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게, 총 이만여 명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진군하는 것으로 확인 되고 있습니다."


"우리군은?"


마로쉘 자작이 다시 물었다.


"네, 화염의 마법사단은 아시는 바와 같이 다섯 개의 부대 모두 빠짐없이 배치되어 있고, 화염의 기사단 200명도 모두 마법사단과 함께 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병사는 일만여 명 가까이 징병 되어 있으며, 그중 궁수만 천 명이 준비된 상태입니다."


마웅을 비롯한 노마법사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므로도스가의 마법사단은 총 다섯 개의 부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1, 2서클 마법사 이십 명이 주를 이루는 이 마법부대가 각각, 다섯 개의 조로 나뉘어 편성된 화염의 마법사단은, 다행스럽게도 지금 리비안에 모두 남아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5서클의 마법사인 마웅 후작과 마법사단의 수장인 마로쉘자작이 함께 있으며 자신과 마리엔을 비롯한 4서클 마법사도 여섯 명이나 존재했다. 마법사가문이다보니 기사들의 실력에는 조금 흠이 있고, 거기다 모두 마법사들의 호위를 서야하므로 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수성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마법단과 천여 명의 궁수들만 있다면 웬만한 적은 방어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300여명의 기사들 중, 마법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 삼십여 명의 기사들이었다.


기사의 실력도 수도, 상대에 비해 부족한 리비안의 성문이 열리게 되면, 그들에게서 마법사들을 지켜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보통 기사 한 명이 10여 명의 일반 병사를 감당한다고 생각하면, 그 중, 크록후작과 셀리오스백작의 정예기사들은 그 두, 세 배의 몫을 해내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마법갑옷을 갖추어 입은 기사들은 다시 그의 서너 배에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마법 갑옷을 입은 열 명의 기사는 능히, 일, 이천 명의 일반병사를 무찌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 자들이 대략 삼십여 명쯤 포진 되어 있었다. 그런 기사들은, 기사로써 맞상대를 해야 하는데, 므로도스가에는 그들을 상대할 실력을 지닌 기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기사들의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군요. 이만이 조금 넘는 병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므로도스가를 상대로 영지전을 벌이기에는 너무 적은 수가 않은가말이요? 아니면 우리 므로도스가문이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 지경에 빠진 겁니까?”


마레드가 의문을 품고 있는 마로쉘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기다 그들도 센틀러 대마법사님의 장례로 인해, 우리 가문의 마법사들이 모두 리비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벌인 일이니,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생각이 있거나, 아니면, 영지전을 빌미로 우리를 고립시켜놓고서 따로 무언가 일을 벌일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서 생각에 잠겼다.


이만의 병사가 쳐들어온다 한들, 성을 넘지 못하면 모두 화살받이로 죽게 될 것이다. 거기다 므로도스가문의 백여 명의 마법사가 일제히 쏘아대는 마법이 그들을 불태울 것이다. 거기다 리비안의 외성에 방어마법이 발동되면 그것만으로도 거의 완벽한 방비가 이루어진다. 7서클 이상의 마법사도 그것을 부수어 낼만한 마법을 발현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성문만 잘 보호하며 수성을 한다면 이만이 아니라, 그 서너 배의 병사들을 몰고 온다고 해도 리비안의 성내로는 한발자국도 들어서지 못한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일단은 여러 우방들에게 협조공문은 보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너무 늦게 눈치를 챈 탓에 다른 우방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래도 바메스쪽은 늦게라도 도움을 주십사, 먼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마웅후작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바메스는 오랜 왕가파의 한 일원이며 지금의 왕궁기사단장을 배출한 베론후작의 영지로, 대대로 유능한 기사가 많이 배출 된 곳이기도 했다. 사실 리비안의 므로도스가와 바메스의 베론후작가, 그리고 수도의 왕가가 서로 삼각형태를 이루며, 왕가와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인데, 왕가가 사실상 무너져 거의 무정부상태에 이르러 그 도움은 받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 외에 별다른 친분이 없는 므로도스가문으로서는 딱히 도움을 청할 만한 곳도 바메스 외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설혹 지금 바메스에서 병사들을 보내준다고 해도,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이라, 그것도 사실 큰 힘이 되지 못했다.


“후작님…….”


그때, 회의장 문을 박차며 낭패한 얼굴의 마법사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카리첼 마법사님.”


마레드의 오랜 벗이자, 뛰어난 마법사인 그는, 좀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그의 다급한 모습에 마법사들의 눈에 의문이 차올랐다.


“몇 시간 전에, 협상을 위해 적의 진지로 떠났던 팔론 마법사님과 기사분들이 모두 돌아가신 채로 수레에 실려 왔습니다.”


몇 명의 마법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모두 돌아가셨단 말인가?”


놀란 마레드가 존대마저 빼뜨린 채,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렇습니다. 호위로 따랐던 병사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직 단 한 차례의 교전도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신자격으로 찾아 간 자들을 죽여 보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해볼 작정인가?”


주먹을 세차게 감아쥐며 마법사들 모두 분노에 몸을 떨었다.





임시로 지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제법 화려한 문양으로 수놓아진 모포에, 온갖 장신구들과 가구들이 멋들어지게 들어차 있는 막사 안에서 두 명의 사내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중, 은빛 갑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붉은 와인을 마시고 있는 남자에게, 날카로운 인상의 푸른색 로브를 입고서 선, 중년의 마법사가 책망하듯이 말을 꺼냈다.


“리글리오스경, 벌써부터 그들을 자극할 필요가 있겠소?”


그러나 은빛 갑옷을 입은 금발의 청년은, 어딘가 권태로움이 잔뜩 묻은 푸른색 눈으로 중년인을 돌아보며 심드렁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어차피 시작된 거, 뭘 재고 있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적이 방심할수록 우리에게 유리한 건 사실 아닙니까?”


건장한 체격의 기사, 리글리오스에게서 다시 코웃음이 흘러나왔다.


“유리하면 얼마나 유리하고, 불리하면 또 얼마나 불리하겠습니까? 걱정 마시고 돌아가셔서 잠이나 푹 주무십시오. 헤르킬 마법사님.”


포이리안가의 마법사 헤르킬은 붉어지는 얼굴로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다가 간신히 참아내고는, 긴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경께서 성문을 연다하니 그리 되겠지요. 그러나 지금 리비안에는 므로도스가의 백여 명의 마법사가 모두 모여 있소. 신중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술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마셔버린 리글리오스가 고개를 들었다.


“다섯 시간. 그 안에 마웅후작의 목을 따고 리비안의 마탑을 포이리안가에 드리겠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저긴 므로도스가문이 700년을 지키고 선 땅입니다."


리글리오스의 양미간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마법사, 마법사, 뭐 대단한 자들이라고, 죄다……."


"그들을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거기다 그곳에는 그 문제의 여인이 있소."


빈 술잔에 와인을 따르던 리글리오스의 눈에 순간 생기가 돌아왔다.


“그 설원의 마검사인가 하는 여인 말입니까?”


“몇 번을 말씀드리오만 그녀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그거 하나가 마음에 듭니다.”


“내 충고를 잊지 마십시오.”


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는 헤르킬의 뒤로, 음산하기까지 한 리글리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헤르킬은 그저 고개만 내저으며 막사를 빠져나왔다.


“정말 보고 싶군. 설원의 마검사.”





“말도 안 돼…….”


그 시각, 또 다른 덩치의 사내, 라크가 흙이 잔득 묻은 모포를 향해 몸을 날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야하는 거 아닙니까? 대장?”


붉은 가죽 갑옷을 입은 사내 역시 흙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연신 물병을 들이키고 있었고, 다른 용병들 모두 거의 반쯤 드러눕다시피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하루 종일 한 번을 쉬지 않고 걷는 거냐.”


떼 국물이 잔뜩 흐르는 얼굴을 모포에 문질러대며 라크가 말했다.


“이건 분명히 우리가 지쳐 제풀에 나가떨어지길 바라고서 이러는 걸 겁니다.”


붉은 머리의 용병 페페가 저 멀리 외따로 떨어져있는 커다란 바위에 기대고 앉아 희미한 달빛에 마법서를 비춰 읽고 있는 아리시아를 향해 한껏 눈을 흘기며 말했다.


“메르넨 이후로 저런 독한 여자가 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회색빛으로 변한 로브를 벗어 탈탈 털어내며 마법사 빌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수도에서 약 백여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벌판이었다. 수도를 떠나 한나절, 그들은 줄 곳, 걸음을 멈추지 않고 행군을 이어온 끝에 겨우 이곳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이미 머리 위로는 어제 보았던 달이 커다랗게 떠 있었다.


“내일도 이러면 전 못합니다. 못해요.”


물병을 집어 던진 붉은 머리의 용병 페페가 벌러덩 드러누우며 소리쳤다.


“억울하면 니가 나가라, 어찌 됐든, 메르넨을 데려간 그 무식한 놈을 찾으려면 아리시아님을 쫓아다니는 수밖에 없어.”


“확실히, 아리시아님은 뭔가 알고 있는 눈치죠?”


로브를 다시 입고서 다가 온 마법사 빌이 라크의 귀가에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그 아웬인가, 어원인가 하는 놈한테 그, 이동마법스크롤이나 잔득 만들어 달라고 해서 오면, 쉽게 올 거 같구만. 빌 너 빨리 마법 좀 익혀라.”


그때, 금빛 머리에 한껏, 물을 쏟아 부으며 말러가 다가왔다.


“자작님. 아리시아님께서는 대체 왜 저리 서두르시는 겁니까?”


“모르지. 나야 딸을 보러가는 거니까, 상관없지만 자네들은 지금이라도 돌아가.”


“진짜, 우리가 떨어져 나가길 기다리는 건가?”


마법사 빌의 고개가 의문스러움에 저절로 갸웃거렸다.

그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따가운 눈초리를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도통 표정을 읽을 길이 없는 아리시아가 순간, 멈칫, 책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잔뜩 튀어나온 입으로 욕을 퍼부어대던 용병들이 일순간 입을 다물었다. 멀리, 아리시아에게만 보이는 지평선너머로부터 흙먼지가 일며 일단의, 사람을 태운 말들이 거센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인원은 다섯 명.

어둠을 뚫고 달려와 빠르게 용병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자리 옆을 지나쳐가는 말들을 바라보던 아리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붉은 로브를 입은 그들의 등에는 교차되어 놓여 진 두 개의 마법지팡이가 그려져 있었다. 므로도스가의 마법사들. 아리시아의 시선이, 조금 전, 그들이 지나온 저 멀리 지평선 너머, 리비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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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5) 19.03.27 56 1 15쪽
66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4) 19.03.25 10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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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5) +1 15.05.15 401 7 17쪽
60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15.05.13 476 1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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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7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3 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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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9) +1 15.05.02 386 5 19쪽
54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8) 15.05.01 449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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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15.04.26 416 10 21쪽
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5 9 19쪽
»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5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8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5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2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0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7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49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2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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