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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37,632
추천수 :
775
글자수 :
553,977

작성
15.04.30 20:34
조회
380
추천
6
글자
19쪽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7)

DUMMY

“거참 이상하네.”


의문에 찬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말러에게 라크가 다가왔다.


“라크, 어제, 이곳에 자리를 잡을 때 말이네. 여기, 이 벽이 이만큼, 높지 않았었나?”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말러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질감에 계속 주위를 돌며 기웃기웃,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게 말러뿐만은 아니었는지 라크도, 예의 그 반질거리는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말고도, 저기 저런 웅덩이도 없었던 거 같고, 저기도 벽이 남아 있었던 거 같은데 어째 휑하고…… 이상하네요.”


역시 의문에 찬 얼굴로, 다가온 라크를 바라보며 서 있는데,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은빛도끼용병대의 부대장, 페페가 까치집이 진 붉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저……, 대장.”


삐쭉거리며 말러의 눈치를 살피던 페페가 라크를 향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 누가 내 검에 손을 댄 거 같아."


"너도?"


놀란 라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머리맡에 놓인 도끼를 바라보던 그도, 같은 의심을 했었다. 용병이라면 누구나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자신의 무기일 터. 그의 두 개의 도끼는 그와 이십여 년을 함께한, 그의 수족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해서 작은 변화도 금방 눈치를 챌 수 있었는데, 잠을 자기 전에 놓아두었던 위치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거기다 매일 같이 날이 서도록 갈아 놓은 도끼의 날에도 무언가 알 수 없는 흠집이 나 있었다.


다행히 잃어버리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냥 조용히 넘기려고 했는데 페페에게서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조용히 넘길 일만은 아닌 듯 했다.

먼산을 바라보며 못들은 척 딴청을 피우고 있던 말러의 표정도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그의 변화를 알아차린 라크가 더욱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무언가, 밤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


페페가 멀리 꺼져가는 모닥불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미리와 아리시아를 가리키며 물었다.


“미리님은 왜 저리 되신 겁니까?”


모포로 몸을 덥고 앉아 있었지만, 미리의 목을 휘감은 하얀 붕대를 모두 숨길 수 없었다. 거기다 하룻밤사이 초췌해진 모습이 무슨 중병에라도 걸린 환자 같아 보였다.


“글쎄?”


고개를 가로 젓는 말러에게 다시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다문 페페의 시선이, 다시 미리에게로 가서 멈췄다. 그런 페페를 바라보던 라크가 커다란 주먹을 들어 그의 머리에 알밤을 쥐어박았다.


“악!”


두손으로 머리를 마구 비비며 도끼눈을 치켜들고서 자신을 노려보는 페페를 향해 라크가 소리쳤다.


“사내자식이…… 임마! 마음에 들면 고백이라도 해봐. 자신 있게!”


잠시 멍한 얼굴로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가 괜히 실없이 헤헤, 웃고 마는 페페를 향해 사뭇, 심각한 얼굴로 말러가 말했다.


"페페. 자네, 내 말을 너무 섭섭하게 듣지는 말게. 미리, 저 아이는 내 딸아이나 다름이 없다네. 내가 시레스에서 쫓겨나듯 나올 때도 나를 믿고 따라 와준 유일한 아이가 저 아이네. 조금…… 사치스러운 면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연약하고 심성 고운 아이라네. 용병인 자네를, 나는 저 아이의 짝으로 맺어주고 싶지 않구만."


페페의 얼굴 위로 금세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 라크가 말러에게로 고개를 돌려 가뜩이나 험상궂은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자작님! 자작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겠지만, 이 녀석도 제법 사내답고. 좋은 녀석입니다. 결코 미리님의 짝으로 부족하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자네는……."


말러의 표정이 굳어지며 자칫, 험악한 분위기로 이어질려는 찰라에, 방금 자신이 누워 잠을 자고 있던 자리에서 리아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내질렀다.


“미리야!”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리시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미리를 발견하고는 다급히 일어나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미리의 품으로 날아가듯 뛰어들어 안겼다.


“미리야. 미안해 내가 아니야. 정말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미리의 몸을 감싸고 있는 담요가 젖어 들만큼, 많은 눈물이 리아나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토해내는 통에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있던 미리가 입을 열었다.


“그만!”


“응?”


미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감동에 젖어 있는데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목소리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울려와 그녀의 감흥을 산산이 부숴놓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겨울 서릿발 같이 차가운 미리의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안 보이…… 세요?”


미리가 손으로 가리키는 것은 그녀의 목과 어깨를 지나 허리를 감고 있는 붕대들. 담요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온통 하얀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아…… 미, 미안…….”


무언가 다른 분위기. 너무나 무서운 꿈 때문에 생각 없이 달려든 것이었는데…… 그래도……. 평소 같았으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무슨 일이냐? 걱정을 해주었을 미리가 지금은 너무나 차갑게 느껴져 그녀는 급히 미리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미안해, 밤새 꿈에서……."


“꿈이라구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으세요. 이제부터 어리광은 여기서 멈추세요. 검술을 관두겠다느니, 힘들다느니, 그딴 소리는 지나가는 개한테나 줘버리란 말이예요. 이제 누구도 아가씨를 지켜주지 않아요. 죽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강해지도록 노력하세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아나를 향해 미리가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내 말 알아들었어요?”


“응? 아, 알았어.”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지며 리아나가 겨우 대답했다.


“알기는 개뿔. 아아, 다 귀찮아, 이만 가보세요. 피곤하니까.”


리아나를 밀쳐내고서 자리에 누워버리는 미리의 등을, 여전히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리아나가 붉은 입술이 새하얘지도록 깨물며 힘없이 일어섰다. 급기야 그렁하게 고여있던 눈물을 아래로 떨구며 뒤돌아 멀어져가는 리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시리아가 미리의 어깨 너머로 무언가를 건넸다.


“이거 어디서 구할 수 있죠?”


모포를 둘둘 말고서 누운 미리가 고개만 돌려 그것을 바라본다. 이제는 부서져버린, 푸른색 목걸이와 붉은 팔찌를 들고서 아리시아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양미간을 구기며 미리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거, 세리안님만이 고칠 수 있어요.”


퉁명스럽게 되돌아오는 대답에, 아리시아가 타이르듯 말했다.


“그럼 연기라도 해요. 예전처럼.”


결국, 다시 자리를 박차고 벌떡, 몸을 일으키며 미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게 되면 왜 그딴 걸 차고 다니겠습니까? 귀찮게 스리.”


괜히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는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있는 미리에게 아리시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계속 이대로 지내야하나요?”


저 멀리 멍하게 앉아있는 마리엔의 곁으로 다가가 쭈그려 앉은 채로, 머리를 무릎사이에 처박고서 울고 있는 리아나를 잠시 바라보던 미리가 칫, 하고 혀를 차고는 아리시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리오에게 남은 게 하나 있을려나? 없으면 뭐, 세리안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러고 살아야지요. 그렇다고 마도왕국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아리시아는 들고 있던 목걸이와 팔찌를 내려놓고서 조용히 말했다.


“하는 수 없군요. 앞으로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 리오라는 분이 계시는 곳은 알고 있나요?”


미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세리안님께서 아벨 산맥으로 가라고 하셨다면, 그 근처 은신처에 있겠지요. 가는 길은 제가 알고 있어요. 다만 문젠 그 산맥을 통하는 길이 무척 험난하다는 겁니다. 말러자작이나 용병들이야 어떻게 되겠지만, 저 애들……, 지금 저 상태로는 분명 큰 짐만 될 거예요.”


미리의 고개가 다시 리아나와 마리엔에게로 향했다.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두 사람의 그림은, 정말이지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린 모습이어서, 그 처량함에 저절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저 두 분은 일단 제가 어떻게 해보죠.”


자리에서 일어나, 마리엔에게로 걸어가는 아리시아를,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던 미리가 담요를 머리끝까지 끌러 올려 덮고는 그 자리에 도로 몸을 뉘었다.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리아나와, 멍하니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마리엔의 앞으로 아리시아가 다가왔다. 이제는 일반 여행자들이 입는 얇은 셔츠에 가죽으로 된 바지를 입고서 헝클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앉아있던 마리엔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 아리시아를 피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마리엔의 손을 붙잡은 아리시아가 자신의 품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대뜸, 마리엔의 앞으로 내밀었다. 손을 빼내고 달아나려던 그녀가 책을 내려다보고는 그 자리에 멈춘다.

므로도스가의 가보인 8서클 마법서.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마리엔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제 므로도스가문을 이을 분은 마리엔님 밖에는 없으니 이건 마리엔님께 드리겠어요."


소매로 대충 눈가를 닦은 마리엔이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려다가 썩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바닥에,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이제 전 끝났어요. 말도 할 수 없고, 아무런 힘도 없어요. 차라리 날 버리세요.


“그럼 므로도스가는 끝이 나요.”


- 그럼 저보고 어쩌란 말이죠. 이지경에 어쩌란 말이에요.


“방법은 찾으면 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 제발 날 죽여주세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마리엔이 마법서를 강하게 움켜쥔다.


“나는 스승님의 말씀에 따라 그분의 마법과 가보를 므로도스가에 전해야만 해요. 그게 제 임무이니까요.”


임무라고?


잠시 그런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서 있던 마리엔이 눈물을 훔치며 다시 막대기를 들어 무언가를 적었다.


- 이게 내 대답이에요.


손에 든 막대기를 내팽개친 마리엔이 끅끅, 하는 소리를 질러대며 마법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 때.


“에라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걸쭉한 목소리.

아리시아는 물론이고, 미친 사람처럼 책을 찢으며 소리를 질러대던 마리엔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괜히 꺽꺽 거리며 울고 있던 리아나의 고개마저도 저절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어디서 꺾어왔는지 모를 노란색 들꽃을 들고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페페와 그의 앞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미리가 있었다.


“에라이, 지금이 사랑타령이나하고 자빠져 있을 때냐."


주위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집어든 미리가 그것을 힘껏 내던지며 소리쳤다. 세차게 바람을 가르며, 무언가가 쌩, 하고 날아가 페페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페페의 귓불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저 만치 날아가 바닥에 꽂힌 것은 다름 아닌 식칼.

툭.

페페의 손에 들려 있던 노란 들꽃이 바닥으로 떨어져 바람에 흩날렸다.


"하나같이 등신들만 모여 가지고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짝사랑하던 여인에게서 원 없이 듣게 된 페페의 굳게 다문 두 입술이 울먹울먹, 실룩거렸다.


“꺼져버려!"


"흑."


입술 사이를 비집고서 새어나오는 울음을, 급히 들어 올린 두 손을 들어 막아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내자식이 질질 짜기나 하고."


마지막으로 이어진, 비수 같은 말에 결국 페페의 의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라크를 향해 달려가는, 서른한 살, 은빛도끼용병대의 부대장의 입에서 절규와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자앙."


이 경악스러운 광경에, 말러와 용병들은 물론 마법서를 찢어발기며 애절함에 빠져 있어야만 했던 마리엔마저도 손을 멈추고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을 뿌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페페에게서 시선을 돌린 라크가 말러를 향해 말했다.


“저 분이 싫은 소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심성 고운 미리님이 맞습니까?”


역시, 멍하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고개만 돌린 말러가 한동안 그 상태로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다가 간신이 턱을 움직였다.


"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머저리 같은 놈들. 당장 꺼져.”


지금은, 포라드백작의 거처가 되어버린, 옛, 마웅후작의 집무실 안에서 포라드백작의 한탄 섞인 한숨이 세어나오고 있었다.

책상 위에 잔뜩 쌓여있던 책들이 날아가고 그 책에 얻어맞고 쓰러진 마법사들이 땅바닥을 기다시피 문밖으로 사라지고나서도 포라드 백작의 거친 숨소리는 잦아들 줄을 몰랐다.

벌써 열흘이 지났다. 마탑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므로도스가의 8서클 마법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마웅후작은 살려뒀어야만 했을까? 아니면 정말 그 마리엔이란 아이가 가져간 것일까?

그러나 마리엔을 찾아간 자들에게서는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땅이 울릴 듯, 세차게 책상을 내리친 포라드백작이 진열장에 놓인 와인을 꺼내 벌컥벌컥 병나발을 불었다. 그리고는 반쯤 남은 와인병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비산하는 유리 파편을 바라보며 의자에 털썩, 몸을 던진 포라드 백작이 쿡쿡, 쑤셔오는 머리를 짚으며 되뇌었다.


“시간이 없다.”


이제는 곧 수도로 떠나야만 했다. 아무리 왕궁마법사단의 반 이상을 포섭한 상태라고는 해도, 이토록 오래 비워두기에는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적어도 크록후작이나 그 병신 같은 왕자가 왕권을 휘어잡기 전에 먼저 왕궁마법사단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다 우연히 머문 그의 시선에 붉은 와인에 젖은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책들 중에 한 권의 책이 들어왔다.

비산하며 뿌려진 와인이 잔뜩 묻어있는 마법서들.

그러나 그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붉은 와인이 스며든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그 책만은 깨끗했다.

보존마법?

그러나 그 책은, 마법서라기보다는 그저 대충 종이를 엮어서 만든, 그냥 연습장같은 모양새. 그것도 마치 마법을 처음 배우는 돈 없는 마법사들이나 들고 다닐 법한 조잡한 모양새를 띤 책이었다.

저런 허접한 책에 왜 보존마법을 걸어두었을까?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뒹굴고 있는 책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두 눈이, 벽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마법석만큼이나 커졌다.


"이건……."


겉표지와는 다르게 정교한 필체로 기술 된, 6서클의 마법사인 자신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신비한 마법이론들이 나열되어 있는 책.


"찾았다."


이렇게 숨겨 뒀을 줄이야.

수백 년을 이어온 가보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라니.

고급 가죽으로 겉표지를 두른, 무언가 그럴싸한 모습을 상상했지, 누가 이런 조잡한 일반 종이 뭉치일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정말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다.

혹시나 진본이 아닌 필사본이 아닐까 의심해 보았지만 정교한 필체로 정성스럽게 쓰여 있는 글씨체와 마법진들을 보고 있자면 결코 필사본일리는 없었다.


"정말 영특한 자들이로군."


그의 입에서 허탈하게 쏟아져 나온 웃음이 어느새 광기에 찬 기쁨의 웃음으로 변해 집무실 안을 가득 매웠다.


“찾았다. 찾았어.”


대륙에 존재하는 단 세 권뿐인 8클레스 마법서. 그 중에서도 유일한 화염마법계열의 마법서가 손안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제 우리 포이리안가문이 대륙 제일의 마법가문이 될 것이다."


그의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긴 웃음소리가 리비안의 마탑을 뒤흔들 듯, 울려 퍼졌다.






툭.

모닥불 앞에 앉아 멍하니 타오르는 불꽂을 바라보며 앉았있던 마리엔의 옆에 무언가가 날아와 떨어진다.

한 권의 책.

그것을 바라보던 마리엔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옆에 선 이에게 눈을 흘긴다. 그리고는 떨어진 책을 들어 그것을 모닥불 안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재로 변해 사라지는 책.

그 책이 완전히 모습을 지웠을 때 다시 툭, 마리엔의 옆에 떨어지는 한 권의 책.

다시 마리엔이 고개를 든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아리시아를 노려보다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마법서는 계속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집어든 책을 모닥불을 향해 던지려는 마리엔의 옆에 툭, 툭, 툭. 책들이 쌓여갔다. 모두 같은 8클레스 마법서였다. 이제는 도저히 희귀하다고 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린 므로도스가의 가보.

마리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급히 막대기 하나를 들어 바닥에 마구 무언가를 적는다.


- 이 귀한 걸 이렇게 계속 만들어 내면 어떡해요.


“왜요. 걱정 되나요? 이 마법서, 그렇게 귀한 것이 아니예요.”


적어도 센틀러는 아리시아 자신의 목숨과 이 가보를 정말이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꾸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리시아에게 마리엔은 눈을 흘기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리시아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칠 수 있어요. 말도 하게 될 겁니다. 아니 말을 하지 못해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노력하세요. 마리엔, 당신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므로도스가는 사라지지 않아요."


다시 책을 집어 던지려는 마리엔의 손을 아리시아가 붙잡았다.


"도와 드리겠어요. 므로도스가문이 일어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매섭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마리엔의 얼굴에서 독기가 사라지고 곧, 힘없이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다. 그런 마리엔의 손을 놓고서 아리시아는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옆에 쌓여있는 8클레스 마법서를 하나 집어 들었다.

언제나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앉아 첫 장을 펼쳐 읽기 시작하는 아리시아의 옆얼굴을, 눈물이 고인 눈으로 바라보던 마리엔이 손에 들고 있던 마법서 마저 힘없이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모닥불로 고개를 돌렸다.

타닥, 타닥, 불씨를 휘날리며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마리엔의 옆에서 아리시아의 책 읽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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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1 보뇨보노
    작성일
    15.04.30 21:05
    No. 1

    8서클 책이 저기있다는 설정이 앞에 있었나요? 대충봐서 못본건지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5.05.01 01:12
    No. 2

    몰라요. 아마도..8클래스 마법서 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확실한건
    아리시아가 주인공이라 이기기는 어렵다는 것 정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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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6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8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5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2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0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7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2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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