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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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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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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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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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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DUMMY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어둠 속. 의식의 저편, 아리시아의 귓가로 한 쌍의 남녀가 나누는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 주은이 깨어났다구요?


- 진, 여긴 통제구역이라고 말했을 텐데? 경비대, 뭐하는 거야!


- 죽고 싶지 않으면 모두 비켜요. 아예 이곳을 부숴버릴지도 모르니까.


- 진!


- 이것 봐요, 닥터 피센. 결정이야 당신들 몫이니 누굴 사이보그로 만들던 죽이던 상관 할 건 아니지만, 일단 당신들이 나를 살려내 이모양으로 만들어 놨으니 그 책임도 당신들에게 있어요. 비켜요 그녀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니.


- …….


- 깨어났다면서요? 왜 그대로죠?


- 그게, 깨어났다기 보다는, 갑자기 그녀의 아슈타에서 전기신호가 전해져 왔네.


- 무슨 소리죠?


- 그러니까……. 어제 지진으로 기지 내 동력이 모자라 이곳에 전기를 차단시켰었는데, 원상복구를 시키는 과정에서 아슈타로부터 전기신호가 들어왔어.


- 그러니까 단지 하루 동안 전기를 끊어놓은 것뿐인데 이제 와서 아슈타가 깨어났단 말인가요? 일 년이 넘었잖아요?


- 정확히 437일 째야. 하여간 아직 의식이 돌아온 건 아니니까 이제 나가주게. 그녀가 깨어나면 내가 알려주지.


- 주은, 잘 들어, 리차드가 죽었다. 너 때문에, 고작 너 따위를 살리기 위해 죽었어.


- 그만하라니까, 진!


- 그 빚, 니가 모두 갚아야 할 거야. 어쩌면, 차라리 이대로 누워 영영 깨어나지 않는 게 너 한에게도 좋을지 몰라. 주은…….






- 스승님…….


리차드가 나 때문에……?


- 스승님?


"어째서……?"


"으악!"


갑자기 몸을 일으킨 아리시아로 인해 그녀의 옆에 앉아있던 리아나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뒹굴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르고, 그제서야 아리시아의 눈에 주위의 풍경이 들어왔다. 온통 노란색 풀잎들로 뒤덮인 벌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역시나 노란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무그늘 아래 아리시아는 앉아있었다. 그녀를 주위에 두고, 미리와 마리엔이 서 있고, 조금 전 뒤로 나뒹굴었던 리아나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가오고 있었다.


"왜?"


아리시아의 심각한 표정에 리아나와 미리가 동시에 물었다.


"스승님?"


"웬,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를 하십니까?"


자신도 모르게 아리시아의 입에서는 영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실수였지만, 그녀는 지금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겨를 따위가 없었다.


뭐지?

이 생생한 목소리들. 꿈은 아니다. 지금까지 아리시아는 꿈을 꾸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슈타의 기억.

아슈타의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가 이제 와서 들추어진 것이리라. 아리시아는 급히 아슈타에 저장 되어 있는 모든 데이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처음 깨어나 피센 박사에게 사이보그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기억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는 분명, 그 전의 기억.

하지만 아무리 되짚어 찾아보아도 그 목소리들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나 때문 인건가……, 리차드가 나 때문에……."


"아리시아님?"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리시아에게 미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든 아리시아가 곧 고개를 몇 번 흔들고서 일어섰다.


"미안해요."


그리고는 다시 주위를 살펴보니, 주위는 온통 노란 풀잎들로 뒤덮인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 아리시아가 다시 미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리오님은요?"


미리는 침울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곳에는 리오의 검은 로브와 옷자락 몇 개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리시아는 잠시 그 곳을 바라보다 이번에는 일행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딱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보였다. 다만…….

아리시아의 눈에 비친 일행의 몰골은 정말 가관이었다. 남장을 하고 있던 리아나의 옷은 여기저기가 찢어져 배꼽은 물론 허벅지며, 종아리가 모두 드러나 있고, 언제 벗겨졌는지 모를 가죽구두 한 짝은 사라져 한쪽 발만 맨발인 채로 서 있었다.

미리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서, 그녀가 입고 있던 원피스 역시 곳곳이 찢어져서는 속옷이 훤히 드려다 보일 지경으로, 옷을 입고 있다기보다는 한쪽 어깨에 겨우 걸쳐져 있는 꼴로, 어깨에 동여 맨 리본이 풀리면 그대로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그나마 마리엔의 옷이 제일 멀쩡했지만 그녀도 군데군데 하얀 속살이 드러나 보여, 연신 이리저리 팔을 움직여 찢어진 옷의 틈새를 가리기에 바빴다.

아리시아는 일단 어떻게 해도 수습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미리에게 자신의 붉은 망토를 건넸다. 아리시아 역시 입고 있던 옷이 모두 찢어져 버렸지만, 지구에서부터 입고 있던 은빛슈트가 건제하게 몸을 가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이곳 바르아의 관념으로는 몸의 곡선이 심하다 싶게 드러나 보이는 옷이어서 어딘가 어색하고, 민망한 복장이었지만, 아리시아는 아직 그것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붉은 망토를 건네는 아리시아를 잠시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던 미리가 아리시아를 향해 고개를 가로 저어보이고는 갑자기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묶어 둔, 리본을 풀어내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벗었다. 그리고는 너덜너덜 한 걸레마냥 찢겨진 옷을 탈탈 털어 먼지를 털어내고는, 속옷만 입은 채로 자리에 앉아, 벗어 놓은 옷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손에 파란색의 작은 지갑이 들려나왔는데 그 속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 옷을 꿰매기 시작했다.




"에잇 짜증나?"


한동안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바느질에 열중하던 미리가 바늘이 꽂혀 있는 옷을 집어던지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가만히 서서 그런 미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리아나와 마리엔, 그리고 아리시아는 누구랄 것도 없이 깜짝 놀라 한 발씩 뒤로 물러섰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피부가 하얗게 변해 있는 것만 같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머리 위에서도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또 다시 혼잣말을 내뱉은 미리가 다시 찢어진 옷을 집어 들어 그 속, 어딘가를 더듬더니 붉은색 팔찌를 찾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아리시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리시아님? 혹시 어디 다치시거나 아프신데 있으세요?"


아리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아슈타로 의식을 집중해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 말고, 긴 한숨을 내쉬며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인 미리가 자신의 오른손 팔목에 붉은 팔찌를 찼다. 그러자 붉은 색 팔찌가 그녀의 팔목에서 잠시 붉은 빛을 내뿜더니 이내 그녀의 팔에 단단히 감겨들었다. 붉은 빛이 사라지고, 황동색으로 변한 팔찌에는, 드래곤 한 마리를 수많은 뱀들이 둘러싸고서 뜯어먹고 있는 모양이 새겨졌다. 손목을 들어 여기저기 휘둘러보던 미리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디자인 센스가 참……. 뭐, 할 수 없지."


그런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며 서 있는 세 사람에게 다시 한 번 방긋, 미소를 지어보인 미리가 자리에 앉아 실이 꿰인 바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능숙한 솜씨로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빙그르르,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서서는, 자신의 입으로 짠! 하고 효과음까지 섞어가며 옷을 뽐내고 서 있는 미리의 모습을 세 사람은, 역시나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어께에서부터 내려가 가슴을 겨우 가리고 있는 상의는 그렇다고 해도 허벅지를 거의 드러낸 짧은 스커트는 세일루니아에서는 홍등가의 여인들이나 입을 법한 그런 옷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미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이번에는 아리시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가 아리시아의 은빛슈트를 매만져보던 미리가, 이번에도 혼잣말이나 진배없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못 보던 감이네.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비싼 거죠?"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잠시 할 말을 잃은 아리시아가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여기선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끝은 찡긋하며 인상을 써 보인 미리가 거칠게 고개를 돌려 리아나와 마리엔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리고는 곧, 팔찌를 차기 전의 반마족의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그려졌다.


"두 분, 옷 벗어주세요."


잠시 서로를 마주 본 리아나와 마리엔의 시선이, 다시 미리에게로 돌아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흘끔거리다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지는 미리의 표정에 두 사람은 급히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미리, 내거는 될 수 있는 한 고유의 디자인을 해치치 말아줘. 나 남장해야 하는 거 알지?"


미리를 향해, 그녀가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당부의 말을 전하는 리아나를 바라보던 마리엔도 그녀로써는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여운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있잖아. 미리……."


온 정신을 바느질에 쏟아 부으며 집중하고 있는 미리의 곁에, 리아나가 다가가 주저앉았다.


"네 아가씨?"


리아나는 미리의 얼굴을 잠시 흘끔 바라보다 급히 고개를 숙였다.


"미리, 미리는 몇 살이야?"


"네?"


"저기……, 생각을 해봤는데, 미리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또 이제 난 귀족도 아니니까, 내가 미리에게 함부로 대하는 건……."


그때, 미리의 두 손이 리아나의 어깨 위로 턱, 놓여졌다. 도중에 말을 끊고서 리아나가 미리를 바라보니 언젠가 보았던 무심한 두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아나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아가씨도 이제 어느 정도 제가 특별한 인간이라는 걸 아시겠지요? 부인하진 않겠어요. 그래요. 전, 아가씨를 곁에서 돌보아주라는 어떤 분의 명령을 받고 카니치트가의 여종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아가씨……."


힘을 주어 자신을 부르는 말에, 리아나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미리의 눈과 다시 마주쳤다. 미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아가씨. 아가씨의 곁을 지키라는 명령은 아직 철회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만약 그 명령이 사라지게 된다고 해도, 전 아가씨의 친구가 될 거예요. 그러니 지금처럼 절 대해주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아가씨는 대 세일루니아왕국의 귀족임을……."


말을 끝내고도 미리는 계속 리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아나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 채로 앉아 있다가 미리와 눈을 마주치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리아나에게 같이 미소를 지어준 미리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아가씨……. 사실 제가 일반인들에게 정체를 들키면 안 되거든요. 아시죠?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티내지 마시고 제발 비밀로 지켜주세요. 자꾸 이렇게 들키면 인사고과에 반영이 되어서……. 자꾸 점수만 깎아먹고……. 에휴, 말이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만, 저랑 비슷한 나이에 있는 애들 다 이제 귀족신분 얻어서 잘 먹고 잘사는데 전 여직 여종이나 하고 있고, 정말 미쳐버리겠다구요."


긴 한숨을 푹, 푹 내쉬고 앉아 내뱉는 신세한탄을 듣는 리아나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그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인……거냐?'






종아리를 덮을 만큼 길게 자란 노란색 풀들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네 명의 여인이 남긴, 발자취가 끝없이 늘어서 있다. 이미 달은 해의 중간에서 검은 눈동자처럼 여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들이 공간을 이동해 온 새벽녘으로부터 이미 반나절이 흐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아직도 똑같은 공간을,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한 채 걷고, 또 걷고 있었다.


"난 이제 더 이상 못가겠어요."


미리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말 안 들리세요? 다리 아프단 말이예요."


다시 한 번, 외치는 소리에 그제야 일행들이 걸음을 멈추고서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벌써 다섯 번째, 그녀는 그렇게 주저앉아있지만, 그녀가 거뜬히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미리는 어리광이 잔뜩 묻어난 얼굴로 금발머리인지 은회색 머리인지 이제는 구별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리아나에게로 달려가, 그녀의 팔에 팔짱을 꼈다.


"아가씨, 우리 좀 쉬었다가 가요, 네?"


자신의 팔에 감긴 미리의 손을 매몰차게 빼내고서 뒷걸음으로 물러서며 리아나가 자신의 손을 들어 자신의 몸, 그러니까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민소매 셔츠에 거의 배 밑까지 풀어 헤쳐진 단추, 그리고 얼핏보면 갈색 팬티라고 착각할 길이의 바지까지. 그녀의 모습 또한 어디선가 보았던 유흥가 댄서의 옷처럼 변해 있었다. 그런 리아나를 바라보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미리의 등 뒤에서, 작은, 너무나 작은 누군가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로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는 마리엔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몸은 꼭꼭 채워진 단추로 앞을 가린, 아리시아의 붉은 로브로 싸매듯 가려져 있었다. 왜 아리시아의 망토를 그녀가 입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차마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있는 미리의 모습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잠시의 정적과 함께 노란 풀들이 바람에 쓸려 파도처럼 흔들리고, 그 속에서 이번에는 미리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무해! 다들 너무들 해요. 그 옷 같지도 않은 옷을, 내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꿰맸는데…… 너무해요"


주저앉아 무릎 속에 머리를 파묻는 미리에게로 아리시아가 다가갔다.


“미리님, 혹시 그 팔찌에 따라 성격이 변하는 건가요?”


심각하게 질문을 던지는 아리시아를 향해 고개를 든 미리가, 잠시 아리시아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쓱쓱 눈물을 닦고는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아리시아님도 참! 배울만큼 배우신 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려다 말고 아리시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런 아리시아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미리가 다시 방긋,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그런 건 없구요. 다만 리오님을 뵙고 나서 조금 생각이 변했다고 할까요?”


우울한 표정으로 서 있던 리아나와 마리엔도 미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치마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내고 있는 미리의 눈동자가 깊은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 제 모습을 몰라요. 인간에 편에선 자들은 모두 그랬던 거 같아요. 인간에 편에서는 순간, 인간을 위해 우리를 숨겨야 했으니까요. 어떤 이들은 귀족이 되고, 어떤 이들은 평민이되고 어떤 이들은 노예도 되었지만, 그들은 모두 진짜가 아니었어요.”


잠시 긴 숨을 들이 쉬며 고개를 든 미리가 아리시아와 리아나, 그리고 마리엔에게 차례차례 눈을 마주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저의 모습을 찾아보려고요. 그 분에게 바라지 않고, 제가 스스로 찾아 리오님께 알려드리고 싶어요. 리오님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요.”


어려운 이야기인 것 같았지만, 리오와의 만남으로 그녀들도 모두, 세상에 평범한 인간이 아닌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도 모두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아리시아도 리아나도, 마리엔도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미리의 등 뒤쪽, 먼 들판 위로 모래 먼지가 일어나며 무언가가 그녀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용한 것들, 팔찌를 끼자마자 어떻게 알고 달려오네."


미리가 자신의 팔목에 채워 진 황동색 팔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모래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물의 모습은, 흡사 거대한 원숭이의 모습.

바로 시레스의 버려진 땅에도 곧잘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던 뮬르켄들이었다. 다만 아프산 아래의 뮬르켄들이 길고 붉은 털로 뒤덮여 있다면, 이곳의 뮬르켄들은 노란색의 짧은 털을 지닌, 정말 원숭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그 크기가 더 컸고, 긴팔을 휘저으며 달려드는 속도 또한 무시무시하게 빨랐다.

잠시 뮬르켄들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시아가 철봉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마물들에게로 수십 개의 검은 구체가 날아들었다. 뮬르켄들이 자리에서 멈춰 서서 마기를 품은 검은 구체를 하나 둘, 쳐내며 괴상한 소리를 내질렸다. 이번에는 검은 구체가 날아든 곳으로 아리시아 일행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들의 반대 편, 역시나 노란 풀잎들로 뒤덮인 언덕 위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세 명의 인영이 말을 달려 아리시아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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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5.05.06 02:22
    No. 1

    아마, 아슈타가 잠시 기동하고 나서 잠깐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기절하고
    그 후에 다시 깨어났는데 저 부분을 기억 못했던 부분인가 보군요.

    아슈타는 재부팅 이랄까? 그걸 하고 있어서 기록으로 못 남기고,
    주은의 기억에만 남아있던거 였는데,
    평소처럼 아슈타를 쓰는 바람에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던 기억인가 보군요.

    아니, 저 상태가 되고 나서 처음 기동이구나.
    저 기억은 주은에게만 남아있고, 아슈타에는 남아있는게 아닌 것이군요.
    그럼 더한것도 기억이 날 가능성도 있겠네요.
    물론 그럴려면 엄청난 충격을 받아야 할테지만 가능성은 전혀 없겠네.
    물론 평소라면 그럴테지만, 마왕 정도 라면야 이야기가 틀려지겠군요.
    뭐, 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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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2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0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7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3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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