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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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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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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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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글자수 :
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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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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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DUMMY

"제라드가 벌써 지쳤다."


체도르트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옆에 서서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헤르킬의 미간이 구겨졌다. 제라드가 4서클에 넘어선 것은 고작 두어 달 남짓, 아직 숙달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많은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반면 아리시아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평온 한 얼굴을 유지한 채로 제라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한손에 무수한 마법진이 그려진 철봉을 부여잡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전쟁의 여신을 조각해 놓은 석상이 일어나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라드의 상세를 다시 한 번 살펴 본 아벨라크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제라드마법사께서 공격하실 차례이오."


제라드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서 다시 눈을 감은 채로 마법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런 제라드를 바라보던 므로도스가의 마법사 카리첼이 이리시아에게로 시선을 가져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시아님은 정말 조금도 지치지 않고 계시군."


"저것만으로도 정령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아요. 거기다 지금 아리시아님은 정령의 힘을 숨기기 위해 마법을 쓰는 척하고 계시구요."


마리엔도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아리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분이야.”


카리첼이 얼굴 가득, 어이없는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마리엔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저런 건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내가, 아리시아님의 겉모습만 보고서 저분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카리첼의 말에 마리엔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저도 의외였어요. 저런 모습은, 하지만, 우린 정령력이라는 것을 처음 보니까요.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말을 하다 잠시 미간을 구긴 마리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리시아님은 대체 어떤 정령과 계약을 맺은 걸까요?"


"글쎄, 속성으로 봐서는 물의 정령 중에 하나겠지만, 정령사를 처음 보니 알 수가 있나."


"예전에 리아센 제국에서 정령을 품은 검의 힘만으로 수백 명의 기사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카리첼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그게 리아센 황가의 보물 이야기야. 불의 정령 중에 하나를 소환할 수 있는 보검이라고 전해지지. 전하기로는 그 검이 다음 황가의 핏줄을 선택한다던가? 뭐, 그 밖에도 정령을 소환 할 수 있는 마법물품이 제국에는 몇 개나 전해지니까. 하지만 그 전까지는 정령이라는 개념 자체도 희귀했었어.”


약 300년 전, 제국 리아센의 초대 왕이었던 프초왕과 일곱 명의 가신이 마도왕국 세리야니얀을 나오며 가지고 왔다는 다섯 개의 마법물품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있었다.

불의 마법에 특화 되어 있는 므로도스가는, 특히 제국 황제의 화염의 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실체가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드러난 적이 없어서, 제국민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리아센 제국에서 흘린, 일종의 왕권강화를 위한 수단의 한 가지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령에 대한 인식은 지금 대륙 내에서 흔하지 않은 개념이었다.

카리첼과 마리엔이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아벨라크의 목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그럼 아리시아 마법사 방어하시오."


그 사이 마법주문을 마친 제라드의 어깨 위에는 두 개의 얼음의 창이 생성되었다.





"서두르고 계십니다."


헤르킬이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탄성을 질렀다. 체도르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이미 지쳤으니 이번 공격을 성공하지 못하면 제라드의 패배야."


말을 마친 체도르트의 시선이 아리시아에게로 향했다.

아리시아의 입에서 작은소리의 마법 주문이 흘러나왔다. 곧 그녀가 들고 선 철봉에 조금 전과 같은 얼음의 방패가 만들어졌다. 제라드의 얼음의 창이 포물선을 그리며 아리시아의 양쪽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아리시아가 들고 있던 두 개의 방패가 조금 더 크기를 키우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휘어지더니 아리시아의 양쪽 옆을 감쌌다. 아리시아의 뒤쪽으로, 사람하나가 들어설 만큼의 공간을 제외하고 아리시아를 완전히 감싼 얼음의 방패에 얼음의 창이 날아와 부딪치고는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제라드가 어지럼증에 휘청거리며 몸을 비틀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서서는 불을 쏘아댈 것처럼 아리시아를 노려보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 제라드를 잠시 바라보고 서 있던 아벨라크가 제라드와 아리시아를 천천히 둘러보며 물었다.


"아리시아마법사의 방어가 성공했소. 두 분, 대결을 계속 하시겠소?"


제라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시아는 제라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바라보며 아벨라크에게 한 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아벨라크가 다시 소리 쳤다.


"좋습니다. 이어서 아리시아 마법사 공격하시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체도르트가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흘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헤르킬이 그런 체도르트를 잠시 바라보다 두 주먹을 움켜쥐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잠깐! 대결을 멈춰주시오.”


앞으로 뛰어 나온 헤르칼이 아벨라크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나는, 포이리안 가의 마법사 헤르킬이라고 하오. 이 마법대전 방식에 대해 할 말이 있어 나왔소."


마법주문을 외우려는 아리시아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려 보인 아벨라크가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와 헤르킬을 향해 물었다.


"무엇이요. 말씀해 보시오.“


발언권을 얻은 헤르킬이 한 손으로 아리시아를 가리켰다.


"아리시아마법사는 마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오.”


헤르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아리시아의 뒤에서 마리엔이 차가운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헤르켈이 마리엔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지금 아리시아마법사는 얼음의 창을 그저 손으로 던지고 있소. 마법의 방패도 저 철봉에 의지한 채로 막아내고 있고, 저 움직임이 마법사의 그것이라고 생각하시오? 분명, 저 철봉이나 아니면 다른 마법물품의 힘을 빌린 사기꾼이 분명하오.”


마리엔이 입가에 조소를 그리며 헤르킬에게 맞섰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리시아님께서 어떠한 마법물품도 지니고 계시지 않는다는 건, 이미 대결 전에 세 심판관께서 보증하신 것, 세분의 심판관님을 믿지 못하시겠다는 겁니까? 아리시아님의 마법은 우리 므로도스가에서 새로 만들어낸 비기예요. 그 원리를 알려 드릴 수는 없지만, 그것은 므로도스가의 명예와 관련 된 일, 함부로 말씀하지마세요.”


헤르킬이 마리엔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무슨 소리요. 아리시아마법사를 만났을 때, 마리엔마법사 당신도 그녀를 처음 보지 않았소."


"맞아요. 그때, 저도 아리시아님을 처음 뵈었죠. 하지만, 아리시아님은 우리 므로도스가의 전대 가주이신 센틀러 던 므로도스 후작 각하의 제자분이세요. 센틀러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마법을 연구하시기 위해 가문에서 준비한 모처에서 7서클의 벽을 넘으시고, 그 모든 비전을 바로, 우리 아리시아마법사님께 전수하신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주위에서 마법대전을 지켜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놀란 눈으로 아리시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세일루니아왕국에서 므로도스가의 센틀러 후작의 이름은 아직도 살아있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후 약 25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왕국에는 아직 7서클에 들어선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현재 왕국에 최고의 마법사는 궁정대마법사로 추대 된 포이리안가의 포라드백작이었는데 그의 경지도 이제 6서클에 불과했다. 그런데, 센틀러가 7서클에 들어섰다는 것은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할 말을 잃고 마리엔을 노려보던 헤르킬이 아벨라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여튼 그녀의 마법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마법대전은 계속 될 수 없습니다.”


아벨라크가 다시 두 명의 심판관을 차례로 불러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의 임기응변에 놀랐네, 이로써 내 계획은 이제 폐기해야겠군.”


자리로 돌아온 마리엔을 향해 카리첼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카리첼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정령사에 대한 존재는 조금 후에 밝혀져도 무관했다. 아니 일단 아리시아를 완전히 므로도스가에 묶어둔 후에 밝혀지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카리첼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마리엔의 시선이 다시 아리시아에게로 향했다. 아리시아는 그런 중에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곧, 심판관들을 뒤로 물리고 아벨라크가 앞으로 걸어 나와 아리시아와 마리엔을 향해 말했다.


“아리시아마법사, 그리고 마리엔 마법사, 마법대결을 펼치는데 있어서 아리시아마법사께서 펼치고 있는 마법은 조금 괴이하고, 위험하오. 지금부터는 적어도 우리 세 심판관이 납득할 수 있는, 검증된 마법을 사용해 주시기 바라오.”


마리엔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무슨 말씀인가요? 심판관님. 마법대전의 규칙에도 결투에 임하는 마법사는 자신의 모든 마법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므로도스가의 새로운 비기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아벨라크가 조금은 격분해 있는 마리엔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마리엔마법사. 아시겠지만, 마법대전의 모든 규칙의 위에는 마법사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자리하오. 만약 7서클의 마법사가 결투에서 이기고자 <눈보라>마법이나 <돌개바람>같은 마법을 사용한다면 상대방은 물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들까지도 피해를 입겠지요. 하물며 무슨 마법인지 검증도 되지 않는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다가 자칫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모두 므로도스가에게 향할 겁니다.”


마리엔은 잠시 매서운 눈으로 아벨라크와 헤르킬을 바라보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친 후에 아리시아에게로 다가갔다.


“아리시아님······.”


다가와 말을 건네는 마리엔에게 아리시아가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 상태 그대로 굳어진 듯이 멈추어 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생각에 빠져 들었다. 잠시 아리시아를 바라보고 있던 마리엔이 고개를 카리첼에게 돌렸다. 그런 마리엔을 바라보며 카리첼이 손을 흔들어 그녀를 불러들였다. 마리엔은 아리시아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아무 말 없이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그러는 중에도 아리시아는, 마리엔이 내려가고 있는 것도 알아 차리지 못한 채로, 깊은 사색에 빠져 있었다.




아리시아는 줄곧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슈타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령으로써의 자각.

세리안은 헤어지기 전날 밤에,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세 개의 영혼.

그동안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그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에도 원인이 존재했고, 그에 따른 나름의 법칙도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물의 정령의 혼과 바람의 정령의 혼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리안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다. 비록, 인간의 혼은 이미 죽어 사라졌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이 얼음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한은 두 정령의 혼은 자신의 몸 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리안은 말했다. 그 두 정령의 혼이 지닌 힘, 즉 바람의 정령의 능력과 물의 정령의 능력을 자신이 모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초능력자들이 모인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그녀가 처음 한 훈련은 물 컵 속에 담긴 물을 얼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훈련을 거듭해 힘이 커질수록 점점 그 힘을 제어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어느새 야구공 정도의 얼음을 물이 없이도 생성해 낼 수 있는 경지에 까지 도달했다. 도대체 그 얼음을 만들어 내는 물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그녀는 그것이 단순히 공기 중에 흐르고 있는 수분을 끌어 모아 얼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이보그가 된 후로 그 힘을 제어하는 능력이 더욱 향상되어 이제는 얼음의 대검을 만들 정도의 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만큼의 수분을 모은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니 애초에 처음 자신의 능력을 발견 했을 당시로 돌아가서 기억을 떠올려보며, 물론 그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그녀가 처음 얼음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 시초는 아버지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친부를 죽일 때, 그 증오의 힘이 폭발했을 때, 흐려지는 기억 속에서 보았던 마지막 광경은, 정말이지 너무나 믿겨지지 않는 것이어서, 그녀 스스로도 한동안, 그것이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 할 정도였다. 비록 그리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던 부엌은 물론 작은 거실과 천장, 벽, 싱크대, 소파 할 것 없이 온통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여, 마치 집이 아닌, 영하의 얼음 창고 속에 살림살이들을 넣어 둔 후, 며 칠 동안 문을 잠궈 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능력은 지구에서 카자르인과 맞서 싸울 때, 종종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현 되고는 했었다. 그 일로 상관과 대원들은 계륵 같기만 한, 자신을 끝내 소속부대에서 쳐내지 못하고 끝까지 데려갔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얼음의 정령의 능력이 최소한 그 정도의 힘이라는 말이 되었다.

물, 그리고 그 물을 얼리는 바람.

물과 바람의 힘. 그렇다면 그것을 마법처럼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곧 그녀의 입에서 역시 되도 않는 마법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아리시아는 자신의 손 안에 생성되고 있는 바람을 느껴 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의지대로 손바닥 안에서 작은 바람이 일어나 휘돌기 시작했다. 아리시아는 얼음의 창이 생성되기 전에, 그 바람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의식을 집중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바람은 그 상태 그대로 손바닥 안을 휘돌고 있었다.

느껴졌다. 그 바람의 실체가 마치 영상처럼 아리시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리시아는 그 바람에 의식을 더욱 집중했다. 그러자 자신의 손 위에서 휘돌던 바람의 기운이 꿈틀, 아주 조금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다시 의식을 집중했다. 손바닥이 아니라 바람 그 자체를 느껴야만 했다.

조금만.

그리고 드디어 손 안에서 휘돌기만 하던 바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의지대로 마치 공이 구르듯이 그녀의 팔을 타고 거꾸로 굴러 올라 온 바람이 그녀의 어깨 위에서 멈추었다.

아!

아리시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다시 의식을 집중했다.

이제 손바닥 위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얼음의 창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시 조금만.

어깨 위에서 바람이 세차게 휘돌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 이제는 그녀의 어깨 위에서 휘돌고 있는 바람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순간, 감고 있던 아리시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세 개의 얼음의 벽을 만들어 놓고 멀리 떨어져 쪼그려앉아 있는 제라드의 모습이 보였다. 제라드는 아리시아의 어깨 위에서 맹렬한 기세로 휘돌고 있는 바람을 바라보며 아벨라크의 말이 떨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얼음의 벽을 만들어 내고는 그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리시아의 입가에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가 아주 조금 번졌다. 그리고 그 순간 아리시아의 어깨 위에서 거세게 휘몰아치던 바람 속에 드디어 얼음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보아도 조금 전 제라드가 만들어 낸 얼음 창과 같은 모양이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저 둥실 떠있는 것이 아닌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며, 사방으로 바람을 날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얼음의 창은 마치 금방이라도 튀어 날아갈 갈 것처럼,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리시아의 검은 머리카락이 하늘 위로 휘날리고, 그녀의 붉은 망토가 마치 폭풍에라도 맞서고 있는 것처럼 펄럭였다.

아리시아의 입에서 파앗,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리시아의 어깨 위에 있던 얼음의 창이 조금 더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창의 크기도, 길이도 더 늘어나 있었다. 그와 함께 그 기세는 더욱 포악해져서 제라드의 앞에 놓인 얼음의 벽이 초라해질 지경이었다.

그 순간, 제라드 앞에서 그를 보호하며 서 있던 얼음의 벽들이 파지직, 유리창이 깨어지는 소리를 내며 차례로 부서져 내렸다. 그 모습에 하얗게 질린 제라드가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멈추시오."


다급한 아벨라크의 목소리가 대련장 안에 울려 퍼졌다.


"아리시아 마법사께서 시간을 넘기셨소. 아리시아 마법사의 패배요."


그와 함께 이제 막, 앞을 향해 쏘아지던 아리시아의 얼음의 창이 팍, 하고 공중에서 부서지며 사방으로 비산해 날아갔다.

순간, 숨죽여 아리시아의 공격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 속에게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리시아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가 얼음의 창을 만들어 내는 그 순간, 아리시아의 주위로 휘몰아치기 시작한 신비한 눈보라가 마치 얼음의 여신처럼 그녀를 휘돌아 감싸며 신비한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마법사들과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제라드의 얼음의 벽이 깨지는 순간, 겨우 정신을 차린 아벨라크가 소리쳐 아리시아의 마법을 멈추어 버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 누구도 제라드를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아리시아의 패배가 선언 된 후에도 제라드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 앉아 벌벌 떨고 있었고, 체도르트는 그런 제라드와 멀리, 도도한 얼굴로 제라드를 바라보고 서 있는 아리시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련장을 빠져 나갔다.

므로도스가에 작은 인연이라도 있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리엔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마법사 블르딜 이라고 합니다. 대체 센틀러 후작각하께서 어떤 대단한 마법을 만들어 내신 것이오?"


"나는 브레온 자작가의 수석 마법사 에르멜이요. 언제 리비안으로 찾아가 그 분께서 새로 만들어 낸 마법의 진수를 보고 싶소."


수많은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인 마리엔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 있다가 표정을 바로하고서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아리시아에게로 달려갔다. 아리시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리시아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아리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수고 하셨어요."


아리시아가 잠시 마리엔을 바라보다 단상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 마법사, 특히 아벨라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벨라크가 그런 아리시아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왠지 멋쩍은 표정으로 하얀 수염을 몇 번 쓰다듬으며 자리를 피했다. 아리시아의 시선이 다시 마리엔에게로 향했다.


"졌습니다."


마리엔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결과는 상관없어요. 마법대전은 승패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이름을 알리는데도 목적이 있어요. 이번 대결로 아리시아님과 우리 므로도스가문이 모두 큰 도움이 됐는걸요."


아리시아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패했지않습니까? 저들이 사과를 요구할 겁니다."


잠시, 헤르킬의 부축을 받으며 대련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제라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선을 되돌려 아리시아에게 다시 눈을 맞춘 마리엔이 대답했다.


"아니요. 이 정도 분위기면 승패에 상관없이 빠져나갈 구멍은 무수히 많아요. 아리시아님의 패배에 대해 마법학회에 제소를 해도 되고, 뭐, 이제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실 거에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적어도 아리시아님께서 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마리엔을 잠시 바라보던 아리시아가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이제 어쩌죠?"


"바로 리비안으로 이동할 거예요. 카리첼님께서 이미 타지아마탑에 이동마법진 사용을 신청해 놓았어요. 아! 점심 식사를 하셔야죠?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셨잖아요. 점심을 먹은 후에 바로 마탑으로 가면 될 거예요."


카리첼은 여전히 마법사들에 싸여 진땀을 흘리며,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리시아에 대해 대답을 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고, 몇 명의 마법사들이 조심스럽게 마리엔과 아리시아에게로 다가왔다가 정색을 하고 쳐다보는 두 사람의 차가운 표정에 겁을 먹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리아나와 미리가 뛰어와 늘어놓는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리시아와 마리엔은 여관 <마법사들의 쉼터> 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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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8) 19.04.03 5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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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8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4 6 18쪽
56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0) +2 15.05.03 464 11 22쪽
55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9) +1 15.05.02 387 5 19쪽
54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8) 15.05.01 450 9 15쪽
53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7) +2 15.04.30 381 6 19쪽
52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6) +1 15.04.29 335 7 23쪽
51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5) +2 15.04.28 461 10 17쪽
50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4) +2 15.04.27 436 9 22쪽
49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15.04.26 416 10 21쪽
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6 9 19쪽
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6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9 10 19쪽
»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6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3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1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8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4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3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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