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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37,633
추천수 :
775
글자수 :
553,977

작성
15.05.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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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추천
11
글자
22쪽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0)

DUMMY

거센 도풍을 일으키며 거대한 도가 날아들었다.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도를 아리시아는 얼음의 대검을 들어 막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얼음의 검의 크기는 그녀의 몸보다도 컸지만 펠츠르토의 검에 비하면 바스타드 소드를 막아선 단검보다도 작아보였다. 펠츠르토의 검과 아리시아의 검이 맞닿는 순간, 주위로 퍼져나간 기파에 동굴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 안으로 떠밀리듯 날아가고, 주위에 서 있던 석상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한 동안, 아리시아와 펠츠르토 사이의 힘겨루기가 시작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아리시아의 대검에 쩍, 하고 금이 가면서 기세는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점점 아래로 꺾이는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인 펠츠로토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순간 더욱 강력한 기운이 아리시아의 몸 전체를 휘감았다. 그와 함께 아리시아의 대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아리시아의 몸이 다시 끝없이 굴러가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급박한 순간에, 아리시아는 급히 얼음의 검을 창으로 바꾸어 깎아지른 절벽 밑, 바위 위에 세차게 내리 꽂았다.

절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아리시아에게 펠츠르토의 몸이 훌쩍 날아와 멈춰 섰다.


“정말 흥미로운 아이로구나.”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정도의 도기는 마족들 사이에서도 나름, 정평이 나 있는 그의 절기였다. 그런 공격을 그녀는 버텨내고 이렇듯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광소를 내뱉는 펠츠르토의 눈에 아리시아의 머리 위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떠오른 열 개의 얼음의 창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펠츠르토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얼음의 창을 바라보기만 할 뿐, 피하지 않았다. 고작 정령이 만들어내는 얼음의 창이었다. 인간 마법사들이 만들어 내는 5서클 마법정도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으로는 상처를 입기는커녕, 안마를 받는 것만큼의 느낌도 받지 못할 터였다.

역시나 허무하게 튕겨져 나온 얼음의 창들이 절벽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다가 사라졌다. 그 것들을 내려다보며 펠츠르토가 말했다.


“이런 조잡한 공격으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다시 여섯 개의 창이 다시 날아왔다.


“안된다니까.”


다시 몸을 튕겨나가고, 이번에는 그 튕겨져 나가는 창들을 바라보고 있을 사이도 없이 다시 네 개의 창이 날아와 몸을 스치고는 사라졌다. 그런 아리시아의 공격을,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듯이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데 다시 두 개의 얼음의 창이 날아들었다.


“이제 좀 귀찮군.”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몸에 와 꽂힌 두 개의 얼음의 창. 그러나 이번 것은 어딘가 조금 전 것들과는 달랐다. 튕겨져 나가는 대신, 잠시나마 빠르게 회전하면서, 그의 배 위에서 머물렀다가 그 자리에서 부서져버렸다. 펠츠르토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와 함께 다시 두 개의 창이 날아들었다. 그 얼음의 창은,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비교도 될수 없을 만큼의 속도를 지녔으며 크기도 더 커져 있었다. 그 순간, 펠츠르토의 몸이 뒤로 물러서다 급히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런 그의 신영을 얼음의 창이 방향을 바꾸어 뒤 따랐다. 페츠르토의 세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리고는 얼음의 창을 향해 그의 도가 세 번, 순식간에 그어졌다. 하나 둘 씩, 얼음의 창들이 공중에서 부서지며 사라져갔지만 조금의 지친 기색도 없는 그녀의 어깨 위에서는 계속해서 얼음의 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 개의 얼음의 창들을 부숴내던 페츠르토의 검이 결국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그의 검격을 피해 파고든 얼음의 창이 페츠르토의 배에 적중했다. 반 이상이 파고 들어간 얼음의 창이 회전을 멈추며 사라져버리고 그 얼음의 창이 만들어 낸, 작은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펠츠르토가 얼굴을 잔득 구기며 소리쳤다.


“제법 재미있는 재주를 지녔다만, 이제 죽어라.”


그리고는 그의 몸이 아리시아를 향해 쇄도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철봉에 매달려있던 아리시아의 몸이 빙그르르 철봉을 돌아 그 위에 착지해 서더니, 순식간에 철봉의 끝으로 달려가서는 벽에 꽂힌 철봉을 뽑아 들었다. 그와 함께 훌쩍 몸을 날려 다시 평지 위로 뛰어 올라와 그 힘을 이용해 공중으로 비상하는 아리시아. 그리고 그녀와 함께 펠츠르토를 향해 쏘아진 네 개의 얼음의 창이 그녀의 옆을 따르다가 한 발 먼저 펠츠르토의 어깨와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 무슨…….”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얼음의 창에 의해 그의 몸 곳곳에 숭숭,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이, 이런…….”


당황하고 있는 펠츠르토의 가슴으로 아리시아의 신영이 파고들었다. 펠츠르토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 크기의 아리시아가 한순간에 휘두른 대검에 그의 왼쪽 날개가 잘려나갔다. 그리고도 그를 지나친 아리시아가 그의 등을 밟고 뛰어올랐다. 이제는 펠츠르토의 몸이 기우뚱 돌며 아래로 떨어지고, 그를 향해 다시 쇄도해 날아드는 아리시아의 양 어깨에서 얼음의 창이 아래로 쏘아졌다. 펠츠르토의 거대한 몸이 동굴 앞마당에 처박혔다. 그것만으로 사방으로 부서진 돌의 파편들이 휘날리고, 그의 몸이 추락한 곳에는 깊은 웅덩이가 생겨났다. 그런 펠츠르토의 몸에 수십 개의 얼음의 창이 또다시 날아와 박혔다. 마치 폭격을 가하듯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아리시아의 몸에서는 그녀의 몸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무수히 많은 얼음의 창이 펠츠르토를 향해 날아들었다.

곧, 먼지구름으로 뒤덮인 공터에 회오리바람이 지나쳐가고 아리시아의 신영이 펠츠르토가 쓰러져 있는 머리 위에 내려섰다.

펠츠르토의 모습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처참하게 찢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의 세 머리 중, 가운데 머리가 살짝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선 아리시아를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도 얼음의 창이 만들어낸 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군.”


고통에 겨운 목소리였지만, 펠츠르토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여유로움이 남아있었다.


“마족의 몸은 혼으로 만든 혼의 껍데기이다. 이런 상처는 혼이 건제한 이상 수백 번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어.”


말을 끝맺는 것과 동시에 튕겨지듯 튀어 오른 그의 몸이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고, 그와 함께 그의 양쪽 옆구리에서 각각 두 개의 팔이 더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아리사아에게로 달려들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어느새 복구된 그의 날개가 몇 번, 펄럭이더니 그의 몸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다시 떠오른 펠츠르토의 여섯 개의 팔에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아리시아의 몸을 더욱 세게 움켜 안았다. 그러자 아리시아의 몸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얼음의 갑옷이 쩍쩍,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네 개의 손으로 움켜 쥔 아리시아의 몸을 들고 펠츠르토가 빠른 속도로 절벽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그대로 절벽에 박아 넣었다. 벽이 부서지며 아리시아의 몸이 벽에 박혀 들어갔다. 그 모습을 아래서 올려다보고 있던 일행들의 머리 위로 돌무더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런, 어서 피해!”


말러의 외침에 모두 허겁지겁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미리만이 홀로 남아 떨어지는 돌무더기들을 부수며 아리시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벽에 깊숙하게 처박힌 아리시아의 몸에서 조각조각 깨진 얼음의 갑옷이 떨어져 나갔다. 펠츠르토는 그런 아리시아를 향해 가차 없이 자신의 도를 내리 박았다.

검은 마기를 일렁이며 아리시아의 가슴을 파고드는 도. 그 순간, 검은 물체 하나가 날아와 아리시아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펠츠르토의 검이 그것의 중앙을 뚫었다.

푹, 하고 깊숙하게 박히는 도.


“무슨 짓이냐 리오르토!”


“이만하면…… 저에겐 합격입니다. 펠츠르토님.”


그의 입에서 검은 물이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리오가 아리시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족의 혼을 마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단 일곱 자루의 검 뿐이오.”


그리고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검날부터 검의 손잡이까지 온통 은은한 자줏빛을 내뿜고 있는 검. 리오가 지키고 있던, 열쇠의 검이었다. 그가 건네는 검을, 아리시아가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그런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 리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름은 카에디아의 검이라고 하오."


말을 마친 리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온 펠츠르토의 대도를 움켜잡았다. 그런 리오를 바라보던 페츠르토가 대도를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대도에 딸려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하늘 위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리오를 향해 왼쪽의 얼굴이 다가가 물었다.


“무슨 짓이냐?”


리오가 가까이 다가온 거대한 얼굴과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어쩌면 그녀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펠츠르토가 잔뜩, 얼굴을 구겼다.


“또 그 망상인가?”


“죽기 전에 흔들렸던 것이, 조금은 미안해질 정도였습니다.”


펠츠르토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하여간 하르테론님, 그는 마족의 재앙이자 골치덩어리다. 그가 저지른 장난에 마족도 반마족들도 인간들도 모두 미쳐버린 게 틀림이 없다."


그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지만, 그러나 그 속에 허탈함이 느껴지는 웃음기가 들어있었다.


“난 저 여인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마족들을 불러들일 거야. 그럼 너의 망상도 끝나겠지?”


기운이 다했는지 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하지 못해 아쉽군요. 아버……지.”


“멍청한…….”


세차게 대도를 내리긋자 대도에서 빠져나온 그의 몸이 빠르게 날아가 동굴 앞 터에 처박혔다. 바닥을 몇 번 튀어, 굴러가 널부러진 리오를 향해 미리가 절뚝거리며 달려와 그를 안아들었다.


“리오님.”


마족에게 당한 상처는, 신비한 신체치유력을 지닌 반마족인 그의 능력도 소용이 없는지, 조금도 치유 되지 못했다. 어깨에서부터 배까지 거의 반으로 갈라지다시피 한 그의 상처에서는 검은 물이 쉴 새 없이 넘쳐 나왔다. 반마족이 아니었다면 이미 혼이 분리되고도 남았을 상처, 아무리 손으로 틀어막으려고 해도, 미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점점 반으로 갈라지는 그의 몸을, 미친 듯, 감싸 안으며 애를 쓰고 있는 미리의 손목을 리오의 손이 붙잡았다.


“사밀리아, 넌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잠시 멍한 얼굴로 미리는 리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374년을 살았네. 그 동안 나는 인간으로 살았던 걸까?”


“리오르토님…….”


“인간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분이 말씀하셨지. 하지만 난, 확신이 서질 않았어. 자네는 확신할 수 있나? 지금까지 인간으로 살았다고?”


미리의 입에서는 자신에 찬 확답이 흘러나오지 못했다. 물기가 고인 그의 눈 속에 애환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평생……, 봉인의 팔찌를 차고 살아가는 삶이 정말 인간의 삶이 맞을까? 그 팔찌가 정말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을까?”


“리오님…….”


미리의 입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정말 바보 같군.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그 분의 말을 여전히 믿고 있지는 않으니까.”


리오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절벽을 딛고 날아올라 마족, 펠츠르토에게 달려드는 아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미리의 품에 안겨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리오를 잠시 바라보다, 페츠르토의 세 개의 머리가 다시 아리시아에게 향했다.

절벽 위, 조금 전에 자신이 만들어낸 움푹 파인 홈에 웅크리고 앉아, 아리시아는 리오가 건네준 자줏빛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마치 옛, 한국의 도처럼 한쪽만 날이 선, 약 1.5미터 길이의 직도였다. 아리시아는 그 자줏빛 검을 한 손에 움켜쥐고서 또 다른 한손에는 철봉을 움켜쥐고서 펠츠르토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하늘을 갈랐다.

밤하늘에 자주빛 환영이 그려지며 펠츠르토의 왼쪽 머리가 목과 분리되어 날아갔다. 잘려나간 머리는 한순간에 자주빛 불꽃에 휩싸이더니 가루로 바스러지며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그 사이 펠츠르토의 검이 아리시아의 허리를 베어갔지만 아리시아는 철봉으로 만들어낸 얼음의 방패로 그것을 막아내고는 얼음의 창을 수십 개 쏘아 보내고서 바닥으로 내려섰다. 아리시아의 얼음의 창이 펠츠르토의 날개에 여섯 개의 구멍을 뚫었다. 바닥으로 내려선 아리시아를 따라 펠츠르토도 따라 내려섰다.

동굴 앞, 터에 펠츠르토와 아리시아가 마주 바라보며 섰다. 그리고 말러와 용병들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고, 절벽 끝, 무너진 석상들이 있던 자리에서 미리가 리오를 감싸 안은 채로 앉아 있었다.

절벽을 타고 불어온 바람에 아리시아의 붉은 망토가 휘날렸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아시리아의 신영이 뛰어오르고 그녀의 손에 든 검이 다시 자주빛의 환영을 남기며 펠츠르토의 가운데 머리를 베어갔다. 그 순간, 펠츠르토의 온 몸에서 검은색 연기가 휘몰아치더니 그의 도가 아리시아의 검을 세차게 걷어냈다. 그 힘에 아리시아의 손을 벗어난 검이 멀리 날아가 바닥 중간에 꽂혔다. 기파에 아리시아와 펠츠르토가 몇 번,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그때, 밀려드는 기파를 뚫고 누군가가 동굴을 빠져나왔다.


“마리엔님!”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 나온 마리엔이 자주빛 검을 빼들었다. 그런 그녀의 뒤를 리아나가 따라 달려갔다.


“리아나!”


말러가 다시 그런 리아나의 뒤를 쫒으려고 할 때, 다시 강한 기파가 밀려와 그들의 몸을 한꺼번에 휘날려버렸다. 아리시아의 얼음의 대검과 펠츠르토의 도가 다시 공중에서 맞닿은 탓이었다. 두 검이 충돌하며 일으킨 기파에 마리엔과 리아나가 공중에 떠서 날아갔다. 급박한 순간, 한없이 날아갈 것만 같던 그녀들의 몸을 막아선 것은 미리였다. 한 팔로 리아나를 끌어안으며 다른 한 손으로 마리엔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러고서도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갔다. 바닥에 긴 자국을 남기며 밀려가던 그녀의 신영이 겨우 멈춰서고, 긴 한 숨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그녀의 발끝이 절벽, 낭떠러지 끝자락에서 겨우 멈춰 서 있었다. 다시 한 번, 긴 한 숨을 내 쉬고서 두 사람을 양 옆구리에 끼운 미리가 급히 리오의 곁으로 달려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사이 아리시아와 펠츠르토는 각각 검은 색 도와 얼음의 대검을 맞대고서 기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자 검이 없다 어쩌나?"


펠츠르토의 비아냥거림이 이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시아는 다시 여섯 개의 얼음의 창을 양 어깨 위에 만들었다.


“어림없다.”


비웃음 소리와 함께, 펠츠르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마기가 한 순간에 그의 몸을 감싸더니 곧 그 위로 검은 갑옷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끝을 내주마.”


검은 색 갑옷으로 뒤덮인 그의 몸은 더욱 커져있었고, 여섯 개의 손에는, 긴 손잡이가 달린 도가 각각 하나씩 들려있었다. 온통 검은 빛의, 여전히 검은 마기가 온몸을 불태우는 것처럼 일렁거리며 피어오르는 펠츠르토의 몸이 아리시아에게로 다가왔다. 아리시아는 그런 펠츠르토를 잠시 올려다보다가 수십 발의 얼음의 창을 날리며, 오히려 그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얼음의 대검을 찔러 넣었다. 아리시아의 얼음의 창은 펠츠르토의 여섯 개의 도에 모두 날아가 버리고 아리시아의 대검은 그의 가슴 앞에서 멈추어 서고 말았다. 마치 간지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익살맞은 목소리가 아리시아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말했을 텐데, 마족을 상대 할 수 있는 검은 단, 일곱 개 뿐이라고.”


그러나 아리사아는 상관없다는 듯이 두 손으로 검을 움켜쥐고서 계속해서 그 검을 그의 가슴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잠시 내려다보던 펠츠르토가 여섯 개의 도를 한꺼번에 들어올렸다. 검은 마기가 일렁이는 여섯 개의 도가 일제히 아리시아의 온 몸을 향해 겨누어졌다. 그러나 그 순간, 펠츠르토의 두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리시아의 몸 주위를 휘몰아치며 돌고 있던 하얀 눈보라가 섞인 바람이 그녀의 몸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찢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다시 얼음의 막으로 덮어버렸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은색의 슈트를 입은 아리시아의 모습이 드러났다. 은색의 슈트는 그녀가 지구에서 적을 상대할 때 입던 제복이었다.

아리시아의 검은 눈동자가 펠츠르토의 눈을 올려다본다.


“당신은 강하군요. 하지만 저도 당신만큼 강한 자들을 여럿 상대해 보았던 군인이랍니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주위를 휘돌던 얼음의 회오리가 그녀의 몸을 벗어나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을 감싸며 휘몰아치고, 그 바람이 다시 검을 지나 이번에는 펠츠르토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펠츠르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윽고 그 바람이 순식간에 그의 몸을 휘감아버리자 그의 몸이 차가운 얼음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검을 치켜든, 거대한 마족, 펠츠르토가, 마치 얼음 석상처럼 굳어진 채로 움직임을 멈추고 선 것이었다. 그 순간, 그런 그의 가슴 앞에 멈춰 서 있던 얼음의 대검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어째서…….”


움직일 수 없는 몸, 그리고 얼음의 검이 박힌 가슴에서 계속 세어 나오는 검붉은 마기.


"검이 또 하나 나타난 건가?"


아리시아의 손에 들린 새하얀 검. 그러나 그 검은 그녀의 정령력이 만들어 낸 검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기둥이 되는 저 철봉. 마법진이 새카맣게 새겨져 있지만, 마법력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철봉.


‘뭐지?’


그 순간, 그의 몸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금들에서 검은 마기가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이 가며 마기가 흘러나왔다.


“말도 안 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펠츠르토의 몸이 터지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리시아의 신영이 힘없이 날아가고 폭발이 일으킨 폭풍에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던 동굴 앞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리아나!”


저 멀리, 미리가 몸을 숨겼던 장소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말러가 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이미 동굴 입구마저 무너져 내릴 듯, 돌무더기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자작님!”


라크가 말러의 허리를 붙잡고 동굴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리아나와 마리엔, 미리와 리오 그리고 아리시아의 신영은 부서지는 돌무더기들과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리아나!”


절벽이 무너져 내리며 일으킨 굉음에 말러의 외침이 무참하게 파묻혔다. 마지막 디딤돌이 무너지는 순간, 미리는 리아나와 마리엔을 붙잡고서 뛰어 올랐다. 그러나 그녀가 착지하려던 발판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두 명의 여인을 양 옆구리에 낀 미리의 신영도 아래로 떨어졌다. 추락하는 미리의 등 뒤에서 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생겼군.”


뒤를 돌아보니, 리오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핏기 하나 없이 어두웠지만 그런 중에도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의식을 잃은 아리시아가 들려 있었다.


“무겁군.”


팔에 걸려있는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낮게 읊조린 리오가 망토 깊숙한 곳에서 마법진 하나를 꺼내 그대로 찢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푸른색 불빛에 휩싸인 다섯 명의 신영이 불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흔들리던 진동이 멈췄다. 온통 먼지를 뒤집어쓴 말러가 벌떡, 몸을 일으켜 동굴 입구로 달려갔다. 동굴 앞에, 넓게 자리 잡고 있던 터가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리…… 리아나.”


멍한 얼굴로, 끝도 보이지 않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말러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워프해 갔습니다.”


돌아보니, 원래는 붉은 색이였을 머리카락에, 온통 회색 먼지를 뒤집어 쓴 페페가 자신을 돌아본다.


“마법스크롤을 가지고 계셨던 모양이예요. 분명히 워프했습니다.”


"분명해?"


말러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페페의 고갯짓과 함께 또 다른 대답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네."


용병대의 마법사 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리시아님과 함께라면 모두 무사하실 겁니다."


"……."


그래도 걱정스러움이 가득 찬 말러의 눈은 절벽 아래, 어둠으로 싸인 저 먼 곳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사이 사위가 밝아져오기 시작했다. 펠츠르토가 내 뿜는 마기에 숨을 죽이고 있던 마물들이 잠에서 깨어난 듯, 다시 소리쳐 울부짖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강한 빛을 뿜어내며 달을 잡아당기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라크가 작게 읊조렸다.


"그나저나,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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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아리시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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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9) 19.04.06 52 1 13쪽
70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8) 19.04.03 55 1 13쪽
69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7) 19.04.02 62 1 17쪽
68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6) 19.03.29 58 1 12쪽
67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5) 19.03.27 56 1 15쪽
66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4) 19.03.25 106 1 13쪽
65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3) +1 15.06.09 410 4 18쪽
64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2) +1 15.06.02 372 7 12쪽
63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1) 15.05.26 483 9 15쪽
62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6) +1 15.05.18 402 7 16쪽
61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5) +1 15.05.15 401 7 17쪽
60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15.05.13 477 10 20쪽
59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3) 15.05.12 352 8 24쪽
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7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3 6 18쪽
»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0) +2 15.05.03 464 11 22쪽
55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9) +1 15.05.02 386 5 19쪽
54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8) 15.05.01 449 9 15쪽
53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7) +2 15.04.30 381 6 19쪽
52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6) +1 15.04.29 335 7 23쪽
51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5) +2 15.04.28 461 10 17쪽
50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4) +2 15.04.27 436 9 22쪽
49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15.04.26 416 10 21쪽
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5 9 19쪽
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6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8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5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2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0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7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2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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