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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37,626
추천수 :
775
글자수 :
553,977

작성
15.04.26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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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추천
10
글자
21쪽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DUMMY

"다시 옵니다."


이백여 명의 기사가 일만오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서 진군을 시작했다. 그 즉시 므로도스가의 진영에서도 곧, 궁수와 마법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봐야 숫자만 많아진 것 뿐,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오."


조금 전, 대승의 광경을 목격했던 리첼로대사제는, 마레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일만오천 명의 대군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자꾸만 피어올랐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서 성 아래로 몸을 돌려 내려가는 리첼로대사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마레드가 힘껏 소리쳤다.


"다들 자리를 지킨다. 조금 전과 다를 것이 없다."


궁수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기고서, 적의 군대가 벌판 중간,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정말로 적에게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보였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일반병사들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과 그 앞에 말을 탄 기사, 이백 여명이 보병들과 속도를 맞춰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보병들의 뒤로 오백이 넘는 말을 탄 기병들이 빗발이 나부끼는 창을 들고서 마찬가지로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곧, 포이리안의 군대가 조금 전, 교전으로, 자신들의 동료가 타죽었던 지점에 다다르고, 그 즉시 포이리안군의 머리위로 수백 발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병사들에게로 날아가 터져야 할, 기름주머니가 달린 화살은, 중간에서 무언가에 부딪쳐 튕겨져 나왔다. 적에게 가 닿은 화살은 고작해야 이백 여발.

꼭, 보이지 않은 쿠션에 튕겨지듯, 하늘 위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화살들을 바라보며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적의 보병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옆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의 방패입니다."


마법사 하나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포이리안가의 마법사들이 보병들 사이에 숨어있었던 모양입니다."


카리첼이 다급하게 달려와 마웅 후작에게 말했다.


"상관없다. 불의 구를, 화살이 쏟아진 곳에 집중해서 발사 해."


그전까지 어떠한 말도 없이 적병만을 바라보며 서있던 마웅 후작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마법사들의 한쪽 어깨 위로 둥실, 불의 구가 떠올랐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적의 진지 중간에, 마치 실수로 치워지지 않은 듯,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던 막사의 휘장이 걷히며, 푸른 로브의 마법사가, 서너 명의 기사들을 이끌고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즉시 검은 색 마법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무언가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포라드 백작입니다. 아버님."


포라드 덴 포이리안 백작. 현 왕궁마법사단의 차기 수장으로 거론되며 현, 세일루니아의 유일한 6서클 마법사인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수도의 왕궁에서, 분명 왕을 보필하고 있어야 할 그가 이곳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겔리아뮤르트 켐마푸리사 텡가르딕……."


그 주문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길게 이어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공격을 시작해, 그리고 4서클 이상 마법사들은 내 주위로 모이도록!"


마웅후작에게서 그답지 않은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적병을 향해 불의 구와 화살들이 쏟아져나갔다. 그러나 포이리안가의 마법사들과 기사들로 인해 여전히 별다른 타격은 주지 못했다. 그사이 마웅후작의 곁으로 5서클 마법사 마로쉘자작이 달려오고, 마레드와 카리첼, 그리고 마리엔을 비롯한 4서클 마법사 여섯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마웅후작의 뒤에 도열 한 채, 적군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포라드백작의 앞에 마치, 땅 위에 파란색 물감을 쏟아놓은 듯, 파란 빛을 반짝이며 원이 그려지더니, 그 원의 안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5서클, 얼음의 뱀이야."


누군가의 입에서 독백처럼 터져 나온 목소리가 전장을 울리고, 그와 함께 적의 보병들이 열어준 길을 따라, 기병들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성문을 부수고 진격해 올 생각인가 봅니다.”


카리첼이 소리치며 마웅후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와 마로쉘은 불의 장벽을, 4서클 마법사들은 불의 화살로 얼음의 뱀을 공격하라."


동요하는 마법사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린 마웅후작의 입에서 다급한 마법주문이 이어졌다. 그와 함께 마로쉘의 입에서도 같은 마법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정신을 수습한 여섯, 마법사의 입에서도 주문소리가 이어졌다.

하늘을 향해 끝을 알 수 없게 뻗어 올라가던 물줄기는, 그 끝이 마치 뱀의 머리처럼 삼각형의 뱀의 머리모양으로 얼어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공중에서 몸을 꺾어 회전을 거듭하더니, 성문을 향해 빠르게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리비안의 성벽 위에서는 불의 구와 화살이 쏟아졌고, 적의 기병들은, 거의 기사들의 바로 뒤까지 달려간 상태였다.

곧이어, 병사들의 머리 위를 지나는 얼음뱀의 얼굴로, 여섯 명의 4서클 마법사가 쏘아 보낸, 수십 개의 불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달려드는 얼음덩이로 쏟아진 불의 화살은, 마치 뱀의 입속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그대로 흡수되어 버렸다.

그 사이, 병사들의 머리 위를 지나, 거침없이 날아온 거대한 물줄기는 기병들과 기사들을 지나쳐 성벽 앞에 다다랐다. 그때, 성벽 바로 앞에 기다란 붉은 줄이 그어지더니 그 줄에서 순식간에 불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것은 그저 활활 타오르는 불이 아니었다. 하나하나의 불로 달궈진 벽돌모양의 불덩이들이 층층이 쌓인, 말 그대로 타오르는 벽이었다. 순간, 벽과 충돌한 얼음뱀은 잠시 주춤하고 멈춰 서는가 싶더니, 곧,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벽을 뚫기 시작했다. 뒤이어, 정말 뱀의 몸처럼 길게 뒤따르던 물줄기가 계속해서 얼음으로 된 앞머리로 모아지며, 점점 그 굵기를 더해갔다. 사방으로 불꽃이 튀어져나가고, 순식간에 사위는 하얀 수증기로 뒤덮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제는 벽을 모두 덮을 만큼 크게 모아진 물줄기에 마웅후작이 만들어낸 불의 벽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원래 같은 5서클의 마법사가 행한 마법이라고 해도, 물의 속성을 지닌 마법에는 손색을 보이는 불의 마법이었다. 하물며 6서클 마법사가 펼친 5서클의 공격마법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그 차이가 컸다. 마웅 후작의 불의 장벽을 단번에 부수고서 다시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물의 뱀은, 그러나 다시 그 움직임을 멈추어야 했는데, 바로 조금 전과 똑같은 크기의 화염의 장벽이 다시 그 물줄기의 앞을 가로막은 까닭이었다. 이번 것은, 므로도스가의 또 다른, 5서클 마법사 마로쉘의 마법에 의해 탄생 된 것. 다시 수증기를 피우며 벽을 뚫기 위해 회전을 거듭하던 얼음의 뱀은, 곧, 사방으로 물벼락을 쏟아내며 사라져버렸다.


"막아냈어요."


마리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의 화살을, 갑작스럽게 네 개나 만들어 내느라, 지쳐있기는 했지만, 물의 뱀을 막아냈다는 안도감에 그녀의 목소리는 활기차기 그지 없었다.


"마법부대를 정비하고 2차 공격을 시작한다."


마웅 후작의 명령에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성벽 아래로 화살과 불의 구를 쏘아댔고, 말을 타고 달려오던 기병도 앞선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우왕좌왕하며 공격에 대응을 하지 못했다. 더욱 기세가 오른 므로도스가의 마법사들은 마나를 아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법의 구를 날렸다.

그 순간, 저 멀리 포라드 백작이 다시 마법 지팡이를 높이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미 6서클을 넘어선 자, 보통, 한 단계의 서클차이는 그 배의 차이를 상회한다.


“마로쉘자작, 다시 준비하게. 4서클 마법사들도 다시 준비하도록.”


마웅 후작의 말에 마레드가 마리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리엔 넌, 성벽은 신경 쓰지 말고, 대신 화염의 마법사단을 지원하거라.”


4서클에 올라선지 얼마 되지 않는 그녀는, 4서클의 마법을 난사하는 것보다 3서클 마법으로 마법사단을 지원하는 편이 나았다. 잠시 망설이던 마리엔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마레드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때, 마법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다시 주문을 외우려는 마법사들에게, 성벽 아래에서 화살하나가 날아들었다.


"적의 군대가 성벽 앞에 다다랐어요."


단상을 내려가 성벽으로 달려가던 마리엔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마웅 후작과 수뇌들을 향해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몸을 숨긴 마법사들이 날리는 얼음의 구도 날아들었다. 성벽 위에 있던 궁수와 마법사가 화살에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웅후작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며 화염의 기사단장 타베르가 소리쳤다.


"당황하지마라! 성문만 지키면 무서울 것이 없다. 화염의 기사단은 마법사님들을 보호하고, 궁수들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어라."


마웅 후작의 곁에 모여 있는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 화염의 기사들이 급히 단상 위로 뛰어 올라왔다.


응?

두 개의 화살을 더 쳐내고서 모여드는 기사들을 바라보던 화염의 기사단장 타베르가 마웅 후작의 뒤로 다가서는 화염의 기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를 엄호하는 친위대는 자신이 직접 고른 기사들. 그 중에서도 수뇌부 열두 명의 기사는 자신의 가족과도 같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투구 밑으로, 마치 오후의 태양처럼 반짝이는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다가오는 기사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누구지?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기사들을 훑는 그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지금, 성문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성벽 위에는 모두 여덟 명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제외하고는 일곱 명의 기사가 있어야하는 자리. 그러나 단상 위로 올라온 기사는, 얼핏 보아도 열 명이 넘는 수였다. 너무 많았다.

그때, 마로쉘 자작의 옆으로 다가와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쳐낸 기사가 또 다른 화염의 기사에게 떠밀려 쓰러졌다. 아니 떠밀렸다고 생각한 기사의 몸이 이상한 모양으로 구겨지듯 쓰러졌다. 그와 함께 마웅 후작의 뒤로 다가선 금발머리 기사의 눈과 기사단장 타베르의 눈이 마주쳤다.

은빛 투구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기사의 눈빛은 한없이 여유로워보였다. 아니 여유로운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웃어? 이 상황에서?


"넌……."


그와 함께 다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그보다 먼저, 마웅후작의 뒤로 바싹 다가선 기사가 자신의 검을 앞으로 쑥 내뻗었다.


푹…….

마치 누군가가 시간을 정시시켜 놓기라도 한 것처럼, 화염의 기사의 검이, 온 신경을 집중한 채로 주문을 외우고 있는 마웅후작의 가슴을 천천히 뚫고 튀어나왔다. 또, 옆에 서 있던 마로쉘의 입에서도 핏물이 뿜어져 나오고, 마찬가지로 또 다른 4서클의 마법사가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성벽 위로 일곱 명의 또 다른 화염의 기사들이 뛰어올라왔다. 그 일곱 명의 화염의 기사들은, 지체 없이 양쪽으로 갈라져 달리기 시작하더니, 놀랍게도 그의 앞을 막아서는 기사의 목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그들, 일곱 명의 기사들은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빼곡하게 서 있는 성벽 위로 내달리며 보이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검에는 하얀 오러가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 검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여지없이 기사와 마법사와 궁수의 몸둥아리가 갈갈이 찟기며 시체가 되어 널부러졌다.


"막아!"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화염의 기사단장 타베르가 마웅후작의 등에서 검을 뽑아내고 있는 금발의 기사에게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혼전이 벌어진 성벽 위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적이다. 마법사님들을 보호해."


그러나 적도, 아군도 알 수없는 상황에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두 명의 기사가 다시 목이 날아가 쓰러졌다. 타베르는 급히, 머리 위에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 던지며 소리쳤다.


"기사들은 투구를 벗어."


가슴과 허리를 향해 날아드는 타베르의 검을 막아내고서, 뒤로 물러선 화염의 기사, 아니 화염의 기사로 변한 리글리오스가 소리쳤다.


"너무 늦은 거 같지 않아?“


“이……, 넌 기사가 아닌가? 너에게 기사의 명예는 없는가?”


“미친 놈.”


능글맞게 웃음을 흘리는 리글리오스의 검에서 하얀 오러의 빛이 피어났다. 그와 함께 타베르의 검에도 오러가 피어올랐다. 두 사람의 검이 다시 공중에서 한차례 부딪쳤다.


“오! 꽤 하는데?”


한 발 뒤로 물러선 리글리오스에게서 다시 능글맞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앞에 선 타베르는 걱정도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 멀리 자신의 진영으로 돌렸다.


"늙은이, 뭐가 이렇게 늦는 거냐? 검의 힘을 빌리긴 싫다고."


그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자신의 진영에서, 하늘 위로 물줄기가 뻗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투구 속에서 씨익, 하고 미소를 지은 리글리오스가 다시 타베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끝난 거 같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날아든 리글리오스의 검을 두 번, 겨우 막아내며 뒷걸음질을 치는 타베르의 귓가에 하늘이라도 무너지는 듯, 땅마저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왔다.

성벽을 뚫고, 날아든 물줄기는 그러고서도 멈추지 않고, 성문 뒤에서, 백병전을 준비하고 있던 병사들마저 쓸어버리며 앞으로 날아갔다. 일만 명의 병사들 중, 그 한 번의 공격에 쓰러진 병사가 족히 천여 명은 되어 보였다.

완전히 뚫려버린 성문 안으로 200여 명의 포이리안가의 기사들이 들이 닥쳤고, 그 뒤를 중무장한 수백의 기병들이, 병사들을 이끌고서 쳐들어왔다.

성문 뒤에서 멋도 모르고 서 있다가 쏟아져 들어온 물줄기에 휩쓸려버린 동료들을 바라보며 채 정신을 수습하지도 못한 병사들은, 무장한 기사들과 기병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기사들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베어지고, 기병들이 창을 뻗을 때마다 가슴이 꿰뚫렸다.





마리엔의 앞으로 달려들며 검을 내지르는 화염의 기사를, 화염의 기사단 1조장 우드가 달려들어 막았다. 급히 몸을 돌린 화염의 기사는 우드의 검을 쳐내고는 한발 뒤로 물러서며 쩝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투구를 벗어 던진 우드의 얼굴에는 어디서 튄 것인지 모를 핏물이 잔뜩 묻어있었다. 화염의 기사단 중, 기사단장 타베르를 제외하고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는 열 개의 조장, 열 명. 그 중에서도 상위에 실력을 지닌 기사 중 한 명인 그는, 특별히 마리엔과 그녀의 휘하에 있는 화염의 마법사단 9조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앞에 서있는 기사에게 벌써 네 명의 마법사와 세 명의 기사를 잃었다. 자신도 오러를 다루는 기사였지만, 이곳에 난입한 열 명 남짓의 기사들은 정말 세일루니아의 정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들이었다. 므로도스가에서 지급해 준, 상품의 검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만큼도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뒤를 찔러오는 두 병사의 검을 여유 있게 피하고서 단 칼에 목을 날려버린 적의 기사가 우드에게로 돌아섰다. 서너 명의 병사들과의 합공도 그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돌아선 기사의 오러가 맺힌 검이 순식간에 가슴을 파고들었다. 겨우 막아내고서 한 발 물러서는데, 이번에는 다시 목을 향해 날아왔다. 그것도 막아냈지만, 그의 다음 이어진 검은 어떻게 날아왔는지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긋고서 지나갔다. 갑옷이 갈라지며, 보이지는 않았지만 배에서도 진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뒤로 물러서는 우드를 따라 조금씩 뒷걸음질 치던 마리엔의 등에 성벽 난간의 벽이 닿았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마리엔과 부딪친 우드역시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허리쯤 오는, 난간, 그 아래로는 난입한 포이리안가의 병사들과 말을 탄 기사들이 므로도스가의 병사들과 혼전을 벌이고 있었다. 10여 미터의 높이로, 떨어지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수많은 적병의 검이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을 터였다.

그녀가 잠깐 뒤를 돌아보고 온 사이 그녀의 앞에서 겨우 검을 막아내던, 우드에게서 무언가가 날아와 그녀의 얼굴에 뿌려졌다.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가 뜬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목을 잃고 서 있는 기사의 몸. 그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앞으로 쓰러지는 우드의 몸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마리엔의 전신이, 오한이라도 든 사람처럼 마구 떨려왔다. 화염의 기사로 변장을 하고 있는 적의 기사는, 다시 달려드는, 투구를 쓰지 않은 화염의 기사의 검을 쳐내고서 그의 가슴에 검을 박았다가 빼내고는 한 발,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불과 일 미터 남짓한 거리, 그대로 검을 뻗는다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때.

그 급박한 순간에 빠르게 날아든 화염의 화살 하나가 기사의 어깨를 뚫고서 화르르, 타올랐다.


"으악!"


외마디 비명을 쏟아내며 기사가 몸을 돌렸다. 거세게 날아들던 화살도, 가사의 검도 모두 튕겨내던 갑옷이, 불의 화살에는 뚫리고 만 것이었다. 깜짝 놀란 마리엔도 불의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레드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며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정신 차려라, 마리엔! 마법을 써!"


그 순간,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날아든 누군가의 검이 마레드의 목을 지나쳐 갔다. 분리 된 목이 하늘로 떠오르고, 마리엔을 향해 달려오던 그의 몸이 두 발쯤 더 앞으로 달려오다가 무너져 내렸다.

어깨에 포션을 부으며 검을 들어 올린 기사가 자신의 옆으로 달려드는 두 명의 병사를 다시 베어 넘겼다. 그러는 중에도 마리엔은 병사들의 발에 차여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는 마레드의 머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머리를 바라보며 마리엔은 덜덜 떨리는 입을 겨우 열었다.


"바르…… 네…… 드르도……."


그러나 자꾸만 눈물이 눈앞을 가리고, 입에서는 소리가 자꾸만 안으로 잠겼다. 주문은 도통 떠오르지 않았고, 자신이 읊고 있는 주문이 화염의 구인지, 화살인지, 파도인지, 방패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사이 다시 한 명의 병사의 목을 베어낸 기사가 그녀에게로 다시 다가섰다.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 마리엔에게 그의 검이 내려쳐졌다.

그때, 무언가가 다시 마리엔에게로 날아들었다.

누군가에게 감싸진 그녀의 몸이 난간을 넘어 성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 마리엔이 중얼거림을 멈추고서, 자신을 안고 뛰어내린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쇠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자신의 마법스승 중, 한 명이며 그의 아버지 마레드의 친구이고, 므로도스가의 충신인 마법사, 카리첼이었다.

그리고 곧, 쿵, 하고 그녀와 카리첼의 몸이 어딘가에 부딪쳐 튕겨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두 사람은 마침, 병사의 가슴에 박힌 창을 뽑아내던 적, 기병의 위로 떨어졌다. 기병은 그 충격에 말에서 떨어졌고, 말 역시도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며 비틀거리다가 날뛰기 시작했다. 마리엔은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를 안고 있던 카리첼은 그녀를 놓지 않고 바닥을 구르며 당한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해 주었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꼼짝도 할 수 없이 누운 그녀의 귓가로 카리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에……, 이제…… 너, 너…… 뿐이다.…… 살…… 아……."


끝내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마리엔을 감싸고 있던 카리첼의 팔이 풀리며 그의 몸이 옆으로 툭, 떨어졌다. 그의 몸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 망토보다도 더 붉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 그녀의 곁으로 또 몇 명의 병사의 목이 날아와 떨어졌고, 무언가가 그녀의 몸을 짓밟고 지나갔으며, 누군가가 그녀의 몸 위로 쓰러졌다가 일어나 달아났고, 또 무언가가 날아와 몸을 치고서 날아갔다.

성벽 위에서,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비안의 주인이 죽었다. 항복하라!"


투구를 벗은 기사, 리글리오스가 마웅 후작과 타베르의 머리가 꽂힌 검을 들어 올리고서 성벽 위에 서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 사이, 바닥에서 뒹굴던 자신의 몸을, 누군가가 일으켜 말에 태우고 있었지만,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마리엔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작가의말

 오늘은 조금 읽찍 글 올립니다.

 글 올리는 시간이 들쭉날쭉하네요. 갑자기 이사날이 잡혀서 요즘 정신이 없네요. 써놓은 글이지만 퇴고를 한 번만 더해도 좋아질 것같은데... 

 부족한 글 찾아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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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5) +1 15.05.15 401 7 17쪽
60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15.05.13 476 10 20쪽
59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3) 15.05.12 352 8 24쪽
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7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3 6 18쪽
56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0) +2 15.05.03 463 11 22쪽
55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9) +1 15.05.02 386 5 19쪽
54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8) 15.05.01 449 9 15쪽
53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7) +2 15.04.30 380 6 19쪽
52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6) +1 15.04.29 334 7 23쪽
51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5) +2 15.04.28 461 10 17쪽
50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4) +2 15.04.27 436 9 22쪽
»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15.04.26 416 10 21쪽
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5 9 19쪽
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6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5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8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5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2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0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7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49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2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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