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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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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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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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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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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DUMMY

아리시아 일행을 지나쳐 달려가며, 검은 로브의 인영들 중 맨 앞에서 말을 달리던 이가 그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머리까지 깊게 눌러쓴 후드 탓에 다른 이들은 그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지만, 그 짧은 순간, 아리시아만은 그의 얼굴을 꽤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서른 살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은회색 머리카락을 지닌 갸름한 얼굴형의 어둠의 사제가 초록색 눈동자로 아리시아 일행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의 로브 오른쪽 가슴에는 은빛의 달 위에 검은색의 대검이 사선으로 놓여 있는 모양을 한 엠블럼 네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로브 사이로 회색의 판금 갑옷이 살짝 드러났고, 말의 안장 옆에 검은색의 대검이 검집도 없이 놓여 있었다. 분명, 신을 섬기는 사제의 모습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특이한 용모를 지닌 자였다.


"어둠의 기사...... 오랜만이네."


그녀들을 지나쳐 멀어져가는 어둠의 사제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리가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말했다. 아리시아의 고개가 그녀에게로 향했다.


"<하르테론의 대재앙> 이 후, 마법의 시대가 열렸죠. 마법의 힘에 신관들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가게 되고, 균형은 마법사들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게 됐어요. 그나마 빛의 사제들은 회복력에 특화된 신력으로 근근이 버틸 수 있었지만, 어둠의 사제들은 마법력에 대항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한 채로 그 세가 점점 위축어가기 시작했죠.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둠의 기사예요."


긴 설명을 끝맺으며 미리가 앞을 향해 턱짓을 해보였다. 아리시아가 돌아보니 그들이 마물 뮬르켄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정면 대결은 위험합니다. 크레이트님"


어둠의 기사보다 조금 뒤떨어져, 말을 달리던 어둠의 사제가 지팡이를 빼들며 말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유인작전을 펼쳐 하나씩 처리하거나, 아니면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이 정석이었으나, 어둠의 기사, 크레이트의 생각은 달랐다.


"연약한 여인들이 뒤에 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녀들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해. <어둠의 불꽃> 대형으로 마물들을 상대한다. 다만 자네들은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양쪽 두 마리에게만 집중해 줘. 그 사이 내가 가운데 녀석을 먼저 잡겠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말에서 몸을 날려 땅 위에 내려선 그가 앞장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에서 말을 멈춘 두 명의 사제들이 동시에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사제들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의 주문이 흘러나오고, 곧 지팡이에서, 조금 전 날아든 것과 같은 검은 구체가 양쪽에 선 뮬르켄들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기사 크레이트의 입에서도 들릴 듯 말 듯,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고, 그러자 그의 묵빛의 검에 마치 불꽃이 타오르 듯, 회색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하여 제자리에서 울부짖기만 하는 뮬르켄의 머리 위로 크레이트의 검이 거센 바람 소리를 내지르며 떨어졌다.

다급한 순간에도 뮬르켄은 급히 오른 팔을 들어 검을 낚아채려 했다. 일반 검사의 검이었다면 그 손에 잡혀 힘을 쓰지 못했을 테지만, 마기의 기운이 담긴 크레이트의 검은 그대로 그 손을 베어내고는 그도 모자른 듯, 팔꿈치까지 반으로 갈라내고서야 멈춰 섰다. 잘려나간 팔뚝에서 자줏빛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땅 위에 내려선 크레이트는 거기서 공격을 멈추지 않고, 다시 몸을 낮추어 쏟아져 내리는 자줏빛 핏물을 뚫고 들어가 뮬르켄의 한쪽 다리를 향해 검을 베어갔다. 능숙하게 파고들어 뮬르켄의 종아리를 베어들어 가는 검.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잘라내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서고 말았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핏물이 크레이트의 몸을 온통 자줏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그런 것에는 아랑곳 없이, 크레이트의 입에서 다시 기합과도 같은 주문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더욱 거대한 불길이 그의 묵 빛의 검에 어리며 결국, 종아리를 베어내고 지나쳐갔다. 곧 기우뚱, 흔들린 뮬르켄의 거대한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다 흙먼지를 날리며 쓰러졌다.


“됐다.”


오른편에 서 있던 어둠의 사제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오고, 어느 틈에 뮬르켄의 가슴 위로 뛰어 오른 크레이트가 마지막 일격을 위해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옆에 선 두 마리의 뮬르켄의 신영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어둠의 사제들이 급히 두 마리의 마물에게로 검은 구를 쏘아댔다. 오른편에 선 뮬르켄은 짧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지만, 왼 편의 선 뮬르켄은 마기의 구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위축되지 않고 끝까지 달려들어 크레이트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뮬르켄의 거대한 주먹이 크레이트의 등을 후려쳤고 크레이트의 몸이 멀리 날아가 노란 들판 위를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당황한 어둠의 사제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몸을 돌린 두 마리의 뮬르켄이 사제들을 향해 몸을 날려 왔다. 놀란 말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날뛰고, 그 바람에 두 사제는 결국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바닥을 뒹구는 사제들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뮬르켄들. 위기의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투명한 얼음의 창 두 개가 빠르게 날아와 어둠의 사제들에게로 달려들던 두 뮬르켄의 목을 뚫고 지나갔다. 사제들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던 뮬르켄들의 몸이 동시에 뒤로 꺾이며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 사이 자리에서 일어 선 크레이트가 어느 틈에 달려와 아직도 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뮬르켄의 목을 잘라내며 사투는 끝을 맺었다. 그 모든 과정이 고작 일분도 되지 않은 찰나에 일어났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나뒹굴고 있는 뮬르켄의 사체를 내려다보던 크레이트와 어둠의 사제들이 멀리 달아나 있던 말들을 수습하고선 아리시아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도움을 드리려다가 오히려 도움을 받게 되었군요. 조금 전 얼음의 창을 발현해 도움을 주신 마법사님은 누구시죠?”


후드를 내리고 다가온 크레이트의 시선이 마리엔에게로가 멈췄다. 마리엔이 로브를 입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복색이 천박하다는 말로도 모자란, 난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짝거리는 크레이트의 눈동자에 마리엔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아리시아에게로 돌렸다. 조금은 의외의 일이어서, 잠시 멈칫, 미간을 구기던 크레이트가 곧, 큰 실례였음을 깨닫고서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유능하신 마법사님을 몰라 뵈었군요.”


그러나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의아한 빛이 가시지 않았다. 그럴 것이 조금 전, 뮬르켄들의 목숨을 단숨에 끊어놓은 마법은 얼음의 창이라 이름 붙여진 4클레스의 마법. 그러나 마법을 구현했다는 검은 머리의 여인은 불과 스무 살 초반의 나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어린 여인이었다. 거기다 민망함에 시선을 멈출곳이 없는, 몸에 달라붙은 은백색의 옷에다 거무튀튀한 요상한 마법진이 새겨 진 철봉을 들고서 서 있는 모습은 흡사 튀어 보이기 위해 발악을 하는 사이비 마법사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필경, 저 기다란 철봉이 마법물품의 한 종류이리라. 그의 눈에 비치던 의아한 기운이 점차 냉담한 기운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때, 그런 두 사람의 사이로 또 다른 여인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둠의 사제분들이신가요?”


세 명의 여인 모두 범상치 않은 복색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더욱 낯이 뜨거워지는 옷차림의 여인이 코앞까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크레이트는 그녀의 눈길을 피해 헛기침을 몇 번 내뱉고서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늦었군요. 어둠의 깊은 곳, 욕망의 끝에 선 어둠의 왕, 몽트라므님을 섬기는 어둠의 기사 크레이트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에 맞춰 말 없이 옆에 서있던 두 명의 사제도 허리를 반쯤 굽혀 차례로 자신을 소개했다.


“몽트라므님을 섬기는 어둠의 제2사제 제콥입니다.”


“몽트라므님을 섬기는 어둠의 제2사제 소리아노입니다.”


그들을 향해 마주 고개를 숙이며 미리가, 왜인지 짖굿은 미소를 입가에 그린 채 아리시아를 비롯한 일행들을 차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분은 아리시아 대마법사님, 그리고 이분은 마리엔 마법사님, 그리고 이분은 검사이신 르마스님. 그리고 전 르마스님을 모시고 있는 미리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말없이 고개만 숙여 보이는 여인들에게 마주 인사를 건네면서도 크레이트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정말 특이한 조합이지 않은가?

아리시아라는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사기꾼 마법사와 그녀의 제자로 보이는 붉은 머리카락의 과묵한 여인, 거기다 남성용 여행자복을 요상망측하게 고쳐 입고서는 살살, 눈치를 보고 서있는 금발의 소녀. 하나같이 평범함이라고는 찾아 볼수 없는 조합에, 사제들의 마음은 더욱 닫혀만 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리가 더욱 친밀하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정말 다행이예요. 이런 곳에서 친절하신 어둠의 사제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서요.”


“그건 우리가...... ”


크레이트가 막, 변명에 가까운 말을 꺼내놓으려고 했지만,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고개를 아래로 뚝, 떨어뜨린 미리가 그의 말을 잘라내며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는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도 몰라요. 일행들과 헤어져 이 드넓은 벌판을 헤매고 다닌 게 반나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이렇듯 떠돌고 있었는데, 크레이트님과 같은 훌륭한 어둠의 기사님을 만났네요."


고개를 들고, 처량한 빛을 담은 눈으로 가녀린 웃음을 지어보이는 미리를, 크레이트는 정작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리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악한 무리들에 쫓기다 그들을 피해 마법으로 이동을 해 왔는데 좌표를 잘못 잡았는지 이렇듯 외딴 곳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혹시 이곳이 제국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까요?"


분명 처량한 빛을 가득담은 눈으로 크레이트를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크레이크의 표정은 과히 좋지가 않았다. 분위기는 차가웠고, 눈빛에는 경멸에 가까운 기운마저 감지됐다.

크레이트는 무엇하나 믿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는 이 사기꾼 여인들의 조합과 오래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자연히 그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곳은 리아센 제국 남동쪽에 위치한 바헨의 변경, 오래전부터 유혹의 황금들판, 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아, 남동쪽......"


미리의 시선이 아리시아에게로 향했다. 험난한 아델 산맥을 단숨에 넘어오기는 넘어온 모양인데, 예정 했던 장소보다도 한참을 아래로 내려온 것이었다. 리오가 가지고 있던 이동마법스크롤은 적어도 7서클의 마법이 부여된 굉장히 희귀한 장거리이동마법스크롤이었던지, 무사히 제국으로 들어올 수는 있었지만, 그 거리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멀리 떨어져 버렸다.


"그렇소. 서쪽으로 두 시간쯤을 더 가다보면 관도가 나올테니, 관도를 따라 북진하십시오. 저녁쯤에는 테몰로백작의 영지인, 헤르난의 도성이 보일 것입니다."


크레이트는 더 이상 이 여인들과의 만남을 오래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급히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잠시나마 아름답고 훌륭하신 마법사님들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다음에 뵙게 되면 오늘의 은혜는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몽트라므의 의지로, 여러분의 욕망의 끝에 성공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대로 자리를 뜨려던 그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말의 고삐를 움켜잡는 그의 팔에 누군가가 매달리듯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양쪽 눈썹의 꼬리를 한껏 늘어뜨리고서 울 듯 말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팔에 매달린 미리가, 흐느낌이 담긴 소리로 그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여인들을 이대로 놓아두고, 떠나실 작정이신가요?”


크레이트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 깨로 떨어졌다가 급히 돌아왔다. 붉어진 얼굴로 급히 돌아선 그가 허겁지겁, 자신의 말안장 위에 놓인 가방을 뒤져 여분의 로브를 꺼내 미리의 몸을 가려주었다. 그와 함께 두 사제에게 눈짓을 보내자 두 사제도 자신들의 옷짐에서 로브를 하나씩 꺼내 아리시아와 리아나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리가 다시 크레이트의 두 손을 붙잡았다.


“도와 주실 거죠?”


그녀의 팔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 크레이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미리의 입에서 교태마저 느껴지는 콧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제부터 전, 몽트라므님의 곁에 뼈를 묻을 테여요.”


크레이트의 팔에 매달려 그의 팔뚝에 볼을 비벼대는 미리를 바라보며 리아나는 검을 반쯤 빼들었고, 마리엔은 "이......." 하며 말문을 텄으며 덤덤한 얼굴로 서있는 아리시아의 주위로는 차디 찬 서리바람이 한 차례 휘몰아치다가 사라졌다.






"죄송해요......"


갈색 갈기가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말 위에 앉아, 그 아래에서 고삐를 끌며 걷고 있는 크레이트에게 리아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잠시 그런 리아나를 돌아보던 크레이트가 다시 고개를 앞쪽으로 돌리며 역시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괘념치 마십시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어둠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으니 일단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허리 한쪽에 은빛으로 빛나는 고급의 검을 차고 있는 소녀. 얼핏, 그저 겉멋에 들어, 철 없이 검이나 휘두르고 다니는 어린아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손에 잡힌 굳은살을 본다면 그 것이 잘못 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두 마리의 말에 올라타 있는 미리와 마리엔이 안장에 옆으로 앉아 사제들의 이끌림에 따라 말을 타고 있는 반면, 리아나는 꽤 숙련된 기사처럼 제대로 말을 몰며 앞으로 가고 있었다. 다만 자신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말을 몰고 있을 따름이었다. 물론 복장은 여타의 다른 여인들과 다를 것 없이 요상하기 그지없었지만, 미리라는 여인의 주책없는 행동에 그녀를 대신해 연신 미안함을 표하는 그녀로 인해, 그동안 좋지 않은 모습으로만 자리잡혀가던 어둠의 기사 크레이트의 마음도 점점 풀려가고 있었다. 거기다 다른 사제들 역시, 마법사차림의 마리엔과 아리시아, 또 조금만 틈을 주면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미리보다는 리아나에게 더 호감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모두 지쳐있던 터라. 그리고.......”


그녀가 그녀의 뒤에서 밀려오는 졸음에 꾸벅꾸벅, 고개를 흔들며 겨우 말 위에 앉아있는 미리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리 말인데요.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요즘 충격적인 일들이 하도 많아서 애가 좀 변했어요. 아주 많이요. 원래는 배려심도 많고, 말도 많이 하지 않는 그런.......”


크레이트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것도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신께서 택하신 일, 그녀가 우리의 곁에 있는 것도 그녀가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반증이니까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리아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둠의 신전, 아니 어둠의 신전이 자리한 작은 도시는 유혹의 황금들판의 끝에, 거대한 크기의 호수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둥근 형태의 외성을 에워싸고 있는 호수는 인공적으로 만든 해자가 아닌 자연호수였다. 성의 높이는 대략 7미터쯤, 곧게 뻗어 올라간 외성의 앞에는 그 외성의 높이보다 족히, 수십 배는 더 긴,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었다. 그 문이 아래로 내려오면 비로소 호수를 건너, 외성의 안으로 들어 설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건너 기슭에는 여섯 명의 어둠의 사제들이 일행들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중, 세 개의 엠블렘을 가슴에 단 어둠의 사제가 몇 발 앞으로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다녀오셨습니까? 크레이트님."


"수고가 많군."


"뒤에 분들은 누구십니까?"


크레이트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모시고 온 손님이시네. 설명은 들어가서 하지. 다리부터 내려주게."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난감한 빛을 읽은 탓인지, 그 외에는 별다른 질문 없이 돌아 선 어둠의 사제가 검은 깃발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곧, 호수 건너 성으로부터 땅을 울리는 기계음과 함께 하늘을 향해 있던 성문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오는 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돌린 크레이트가 리아나를 향해 다정스럽게 말했다.


"하르테론의 대재앙 이후로 대부분의 신전들은 도시의 성 내로 들어갔습니다만, 이곳, 제국의 동쪽 끝에 자리한 몽트라므님을 모시는 어둠의 신전은 아직도 이렇듯, 외지에 따로 남아있지요. 제국 내에서도 몇 되지 않는 독립형 신전입니다."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보이는 크레이트에게 리아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리아나의 시선이 몇 번, 그의 옆 얼굴을 향했다가 되돌아왔다.


"정말 대단하군요. 이곳 어둠의 신전의 위용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해요."


말에서 뛰어내린 미리가 크레이트에게 다가가 조금은 흥분 된 목소리로 말했다. 리아나로 인해 조금 기분이 풀린 크레이트가 그녀에게도 억지 미소가 담긴 고갯짓을 해보이고는 성문이 채 땅에 닿기도 전에 급히 말을 끌고 들어갔다.



“크레이트!”


그들이 내려진 다리를 건너 성의 입구에 다다를 때쯤, 성내에서 메아리가 울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고개가 일시에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성문 안쪽에서, 덥수룩한 수염으로 온 얼굴을 뒤덮은, 역시나 검은 로브 사이로, 회색의 갑옷이 드러나 보이는 어둠의 기사복장의 남자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도 검집이 없는 묵빛의 검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오! 이 아름다운 여성분들은 누구신가? 크레이트 자네, 드디어 욕망의 신에게 한 발 더 다가가로 마음이라도 먹은 건가?”


으하하하, 하는 과장 된 웃음을 길게 늘어 뜨려보았지만, 그의 농담에 함께 웃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지, 크레이트는 또한 아무런 불평 없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차터님.”


그를 따라 옆에 서 있던 어둠의 사제들도 급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러나 차터라는 이름의 어둠의 기사는 인사를 건네는 그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크레이트의 등을 두드리며 그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는 속삭이듯, 그러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로 말했다.


“뭐 특별한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니지? 어떤가, 세일루니아에 다녀온 상인이 아프산 인근에서 생산되는 과일주를 가져 왔다네.”


세일루니아라는 이름에 마리엔과 리아나의 얼굴에 우울함이 묻어났다.


“우선 이 분들을 신전에 모시고 가야합니다. 대사제께 보고 드릴 일도 있구요.”


차터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아리시아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제가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


작가의말

  제가 이번 주 이삿날을 잡아놓아서 일주일간 연재를 멈추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다시 연재 시작하겠습니다. 공지도 따로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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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5.05.06 02:30
    No. 1

    여긴 어디? - 제 정신이 아니라 탐색, 검색 중이어서 정신이 없는 아슈타
    아, 정말..얼려버릴 뻔 했네. - 아리시아

    물론..
    중간에 다른 누군가(들)의 투덜거림이 있긴 했지만 스킵했음. - 몰래 그걸
    포착했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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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15.05.13 477 1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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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6) +1 15.04.29 335 7 23쪽
51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5) +2 15.04.28 461 10 17쪽
50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4) +2 15.04.27 436 9 22쪽
49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15.04.26 416 10 21쪽
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6 9 19쪽
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6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9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5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3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1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8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3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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