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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37,627
추천수 :
775
글자수 :
553,977

작성
15.04.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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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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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23쪽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6)

DUMMY

"응? 얜 또 왜 이래?"


마리엔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며 넨시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마력을 거두어 드렸는데도 마리엔은 마치 자신에게 조종을 받고 있는 것처럼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니가 그 천재마법사라는 마리엔이 맞아?"


까치발로 선 넨시가 마리엔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통통, 두드렸다.


"뭐하는 짓이야?"


리아나가 그런 넨시를 나무라며 다가섰다.


"그러면 못써. 이분은, 비록 지금 마음을 다치셔서 이렇듯 말을 하실 수 없게 되었지만, 훌륭한 마법사이셔, 그리고 너보다 어른이기도 하잖아."


"싫은데?"


놀리듯, 자신을 가로막고 선 리아나를 밀쳐내고는, 통통, 하고 다시 마리엔의 머리를 두드리는 넨시를 바라보며 리아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어디서 누구에게 이따위로 교육을 받은 걸까? 화려하게 수가 놓아진 드레스는 물론이고, 귀걸이며, 목걸이, 하다못해 머리 위에 장식된 리본하나까지도, 자작가의 영애였던 자신조차도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할, 고급스러운 물건들로 치장을 한, 여자아이.

적어도 백작가 이상의 귀족가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란 아이로 보이니, 철없이 콧대만 높아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리엔은 대므로도스가의 혈족이며, 4서클의 마법사였던 여인이다. 제국의 황녀가 온다 해도 굽힐 것 없는 혈통과 스스로 이루어낸 명성을 동시에 지닌 그녀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리아나로선 그냥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붉어진 얼굴로 다시 무어라고 쏘아붙이려는데 그녀의 팔을 누군가가 붙잡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미리가 곁에 다가와 있었다. 미리는 리아나에게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넨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가씨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무례하게 굴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오!"


넨시가 반짝이는 눈으로 미리와 리아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의 시종인가? 근데 너무 건방지잖아?”


넨시의 말에 이번에는 리아나가 나서서 미리를 말렸다.


“미리 넌 마리엔님을 모시고 물러나있어.”


만약 이 아이가 귀족가의 여식이라면 평민인 미리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상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킥킥, 하고 헛웃음을 내뱉은 넨시가 표정을 굳히고서 말했다.


“정말, 놀구들 있네.”


“뭐?”


“니들 둘이 하는 짓이 꼴사나워서 못봐주겠다.”


비아냥거리며 리아나를 훑어보던 넨시가 그녀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검을 바라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너 검사니?”


붉어진 얼굴로 넨시를 향해 달려들려던 리아나가 멈칫, 금세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리아나를 바라보는 넨시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아! 좋은 수가 생각났어. 나도 검을 좀 휘두를 줄 알거든? 너와 내가 검술대련을 하는 거야. 만약 내가 이기면 너의 저 무례한 시종을 벌할 거고, 네가 이기면 난 그냥 돌아갈게. 어때?”


순간, 리아나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손으로 살짝 검을 잡아보지만 이미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뭐야! 그 검, 그냥 멋으로 들고 다니는 거야?”


넨시가 다시 비아냥거리자 리아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만하시죠.”


보다 못한 미리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런 미리에게 넨시가 타이르듯 말했다.


“나서지마, 너의 주인을 강하게 만들어 주려고 그러는 거니까. 만약 네 주인이 이기면 난 정말 그 길로 돌아가겠어.”


넨시가 다시 고개를 리아나에게로 돌렸다.


“어때?”


말을 마친 넨시는 자신의 치마를 훌렁 뒤집어 허벅지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작은 단검 하나를 들고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넨시를 바라보며 리아나가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스르륵,

반쯤, 검집에서 뽑혀나온 검은 그러나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 섰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 리아나의 이마에는 이미 대련을 시작 한 것 마냥, 땀방울들이 솟아나 있었다. 그런 리아나의 손을 미리가 붙잡아 주었다.


“그만, 됐어요. 이제 좀 쉬세요.”


리아나의 눈을 바라보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보인 미리가 어린 딸을 잠재우듯, 작은 소리로 주문을 속삭였다. 그때 다시 넨시가 리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사람 죽여본 적 없지?"


큭큭, 하고 다시 음흉한 웃음을 지어보인 넨시에게 리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도와줄까?"


넨시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리아나의 손에 들린 검이 빠르게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푹, 방향을 바꾼 검이 주문을 외우고 있던 미리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너무나 놀라, 동그랗게 뜬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드니 무심한 얼굴의 미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의 입에서 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리!”


저절로 뽑아져 나온 검이 제멋대로 미리의 가슴을 뚫었다.


“내가 아니야…… 내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벌벌 떨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리아나에게 넨시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이죽거렸다.


"소중한 사람부터 죽여 봐, 그러고 나면 다음부터는 아주 쉬워져."


그러나 그녀의 이죽거림도 리아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미리를 살려야한다는 생각 뿐, 그러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멍한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미리를 향해 헛소리처럼 중얼거리고 있는 리아나를 바라보며 넨시가 또다시 깔깔거리며 말했다.


"아직도 그게 뭐야 멍청하게. 역시 이걸론 부족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리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 낸 리아나의 몸이 저절로 뒤돌아서더니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끌리는 검을 힘겹게 들고서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는 그녀가 향하는 곳은 그 와중에도 여전히 코를 골며 꿈속을 헤매고 있는 용병들이 있는 곳. 그 중에서도 공교롭게 그녀가 제일 먼저 다가가는 곳에는 말러가 잠을 자고 있었다.


"안 돼!"


아무리 걸음을 멈추려고 해도 몸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처음보다 더 똑바로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워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일어나요. 아빠!"


"아빠?"


넨시가 반색하며 리아나의 곁으로 달려왔다.


"아빠라고? 저게 너의 아빠야?"


대체 뭐가 재미있는 일이라고, 넨시는 박수까지 쳐대고 있었다.


"더 재밌다. 더 재밌어."


"제발! 일어나요. 아빠!"


곧, 리아나의 발이 말러의 얼굴 아래 멈춰 섰다. 자신의 발아래 아무것도 모른 채, 잠에 빠져 있는 말러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빙그르르, 반바퀴를 회전한 검이 말러의 이마를 향해 검날을 겨누었다. 자신의 손에서 저절로 움직이는 검을 바라보며 리아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 넌 훌륭한 검사가 될 거야.”


해맑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넨시에게 리아나가 고개를 내저으며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하지마…… 제발…….“


히히, 하고 다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돌아선 넨시가 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음에 만나면 훌륭한 검사가 되어 있어야 해? 안녕."


그와 함께 리아나의 검이 자신의 머리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안 돼!”


리아나의 외침이 평원을 퍼져나갈 때, 그보다 다 거친 외침이 등뒤에서 터져나왔다.


"젠장, 결국 이놈의 봉인을 풀고 말았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넨시가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바닥에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던 미리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미리가 누워있던 바닥에는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온 푸른 색 목걸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너 반마족이었냐?"


"어디서 못 보던 것들이 자꾸만 튀어나오는 거냐? 이거 진짜, 문제다, 문제……."


자리를 털고 일어선 미리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온 몸이 우윳빛으로 변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얀 도자기로 만들어 진 것처럼 매끈했다. 유리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을 들어 저 멀리 검을 들고 서 있는 리아나를 바라보던 미리의 신영이 순식간에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검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리아나의 몸이 미리에게로 허물어졌다.

리아나를 말러의 곁에 뉘인 후, 담요를 덮어 준 미리가 다시 넨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넨시와 눈이 마주 친 순간, 다시 사라진 미리의 신영이 넨시의 앞에 나타났다.

득달같이 날아든 미리의 손이 그녀의 배를 뚫고 나왔다. 넨시의 배를 뚫고 나온 미리의 손에는 손가락 마다 우유빛, 검날 같은 하얀 손톱이 튀어나와 있었다.

검은 피를 쏟아내며 성대가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대는 넨시의 작은 체구를 번쩍 들어 올린 미리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오른손에도 여지없이 다섯 개의 하얀 검날이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위급함을 느낀 넨시가 양쪽 볼에 홍조를 띄운 채,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보지만, 미리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손을 내리 꽂았다.


"멈춰!"


넨시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진 순간, 넨시의 목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들던 미리의 손이 넨시의 목, 바로 앞에서 거짓말처럼 멈추어 섰다.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미리의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넨시가 속삭이듯 말했다.


"내 능력 멋있지?"


그와 함께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넨시.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저절로 들려진 미리의 양 손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칫!"


두 눈을 찡그리며 혀를 찬 미리의 고개가 뒤로 한껏 꺾어지며 한 바퀴 멋들어진 공중제비와 함께 바닥으로 처박혔다. 자신의 주먹에 맞고 나가떨어진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중에도 다행히 손톱을 숨겨,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다.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능력.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몸을 일으킨 미리가 목을 몇 번 까딱, 하며 몸을 풀고는, 넨시를 향해 하얀 눈을 들었다. 그러자 눈처럼 하얗던 그녀의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변하더니 결국에는 거의 반투명한 유리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길게 자라 뒤로 묶었던 갈색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했으며, 그 한 가닥, 한 가닥이 마치 바늘처럼 단단해 보였다.

조금 더, 그녀가 방출해 낼 수 있는 마력을 끌어낸 것이었다. 마성은 짙어지면 자칫, 폭주 할 수도 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넨시의 입에서 칫, 하고 혀 차는 소리 흘러나왔다. 더 이상 그녀의 마력이 미리의 정신을 지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넨시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얼굴에서부터 작은 실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곧 얼굴색이 검붉어지면서 온 몸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귀엽기만 하던 얼굴이, 중년의 여인으로 순간에 변했다.

그와 함께 넨시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미리의 걸음이 느려졌다. 미리의 투명한 눈이 찌그러졌다. 완전히 조종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순간 마음이 흐트러지면 몸은 자신의 의지를 배반했다.

자신의 마기를 버티는 미리를 바라보며 오히려 넨시가 더 놀라워하고 있었다.


“강한 혼을 지녔구나.”


자신의 말을 들을 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어보인 넨시가 허벅지에서 여섯 개의 단검을 꺼내 집어 던졌다. 날아온 단검을 미리는 양 손을 휘둘러 막아냈다.


“별 것도 없군.”


“그럴까?”


말을 마친 넨시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손짓에 따라 멀리 흩어져 있던 단 검들이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쉽지 않을 걸?”


다시 이어진 넨시의 경고와 함께 단검들이 순식간에 미리를 행해 날아들었다. 방향을 바꿔 날아드는 여섯 개의 검을 다시 쳐냈지만, 그 검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시 방향을 바꿔 날아들었다. 미리는 날렵한 동작으로 그 검들을 피하거나 쳐내며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부딪쳐 결국, 두 개의 검이 등과 허벅지에 꽂혔다. 그러고서도 몸에서 뽑혀져 나온 단검은 다시 다른 검들과 어울려 날아들었다. 느려진 몸. 쉴 틈 없이 날아드는 단검들.


“할 수 없지.”


낮게, 체념어린 한 마디를 내뱉고는 자신의 양 팔의 소매를 뜯어냈다. 곧 드러난 붉은 색의 팔찌. 미리는 손목에 차고 있던 그 팔찌를 뜯어냈다. 그녀의 마력을 억누르고 있던 마지막 봉인이 풀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미리의 신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흔적도 없이.

방향을 잃은 단검들이 하늘을 떠돌았다. 다급한 몸짓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려보아도 미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능력이지?’


넨시는 당혹스러웠다. 지금까지 자신의 마력을 이겨 낸 반마족도 많지 않았지만, 이렇듯 순식간에 몸을 숨기는 반마족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오히려 반마족들 사이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일단 마력을 방출하게 되면 반마족끼리는 그 마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사라진 반마족은 정말 감쪽같이 스스로의 마력까지도 숨긴 채 사라진 것이었다.

깜짝 놀라 조금씩 뒤로 물러서는 넨시의 입에서 갑작스러운 비명이 터저나왔다. 순시식간에 찾아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온 몸으로 전해져왔다. 뒤를 돌아보니 미리의 두 손에서 나온 열 개의 창들이 넨시의 온 몸에 박혀 있었다.


“역시.”


양팔과 등과 허리를 비롯해서, 가장 중요한 목도 꿰뚫고 있었다. 검은 피를 쏟아내는 목으로 침을 한 번 삼킨 넨시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 강한 혼을 지녔구나.”


“내 아버진, 훌륭한 마족이거든.”


미리의 말을 듣고 있던 넨시의 입가에, 그와중에도 실소가 번졌다.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다. 혼을 나눠주었다고 그를 아버지라 부르다니.


“정말 어리석은 인간들처럼 변해가고 있구나. 너희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믿을 순 없지만 내 마력을 이겨냈다는 건, 너를 만든 마족이 나를 만든 마족보다 더 상위의 마족이라는 증거.”


미리의 입가에도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래, 넌 죽는 순간까지도 정말, 마족 답구나. 잘 가라.”


미리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다섯 개의 투명한 창날이 넨시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시, 그녀의 시도를 무산되고 말았다.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거구의 사내가 거대한 두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움켜잡고 있었다.


“페듀, 너무 늦었다.”


페듀, 그러나 그의 모습은 일전의 보았던 그저 조금 큰 거구가 아니었다. 그 전보다 키는 오십센티미터 이상 더 커져 있었고, 그저 뚱뚱하다 싶던 체형의 몸은 마치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근육의 몸으로 변해 있었다.


"미안해, 길을 잘못 들었다. 대신 이 반마는 내가 맡을 께."


검은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목을 움켜쥐고서 기어가 벽에 기대고 앉은 넨시가 검은 물을 튓, 하고 뱉어내고는 팔뚝으로 입을 닦았다.


"당연하지. 지킬만한 검도 없는 곳에 이렇게 강한 반마족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대한 두 손으로 미리의 허리를 움켜 쥔 페듀가 미리의 몸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패대기쳤다. 지축을 울리며 미리의 상반신이 반쯤 땅속으로 파묻혔다.


"그렇지, 너희들은 늘, 2인1조로 움직이지, 방심하면 이런다니까. 그래도 너무 하잖아. 난 혼자인데."


페듀에 의해 다시 공중으로 떠올라,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은 미리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팔꿈치를 페듀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팔꿈치에서 뻗어 나간 긴 창이 페듀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음…….”


그러나 페듀의 입에서는 작은 신음 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미리의 팔꿈치에서 튀어나온 창날은 페듀의 머리에 작은 구멍만을 냈을 뿐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페듀가 자신의 얼굴을 간지럽힌 꼬챙이를 바라보다가 한쪽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거대한 두 손으로 각각, 머리와 허리를 잡고서 페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를 뽑아줄게.”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거대한 손에 잡힌 머리와 목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악.”


저절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미리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마구 요동쳤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마력이 쏟아져 나오면 그녀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이들처럼 마성에 사로잡힌 마족과 다름없는 악마가 되는 것이었다.

어찌해야할까.

이제 목으로 전해지는 고통은 극에 달했다.

‘더 이상은…….’

그 순간, 미리의 손이 스르르, 바닥으로 흘러내려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조금 떠올랐다.


“컥!”


그 순간,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페듀의 거구의 몸이 위태롭게 서 있던 유적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리의 몸을, 공중에서 낚아 챈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리시아님…….”


너무나 변해버린, 흉측스럽게도 보일 법한 자신의 모습에 놀란 만도 하건만 아리시아에게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녀왔어요.”


피식, 미소를 지어보이는 미리를 내려놓고, 일어선 아리시아는 허물어진 유적의 돌무더기 속에서, 목을 어루만지며 일어서는 페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얼음의 대검은 정확하게 거인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거구의 남자는 목이 베이는 대신 그 힘에 밀려 저 만큼 날아가 뒹굴 뿐이었다. 충격이야 입었겠지만, 그의 목에는 상처하나 나있지 않았다. 해서 놀란 쪽은 오히려 아리시아가 더 했다. 지금까지 그녀의 검에 저렇듯 멀쩡하게 걸어 나온 반마족은 없었다.

잠시 거구의 남자를 바라보다 순식간에 달려든 아리시아의 대검이 페듀의 목으로 다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런 아리시아의 대검을, 놀랍게도 페듀는 팔뚝으로 막아냈다. 그녀의 힘에 주르륵, 옆으로 오 미터쯤, 밀려나기는 했지만 조금 전처럼 꼴사납게 넘어지지는 않았다.


“강하군.”


“설원의 마검사가 너냐?”


페듀의 담담한 말에 이어, 여전히 힘없이 벽에 기대고 앉아 싸움을 구경하던 넨시가 소리치듯 물었다. 그녀의 말에 페듀가 그답지 않게 씨익, 하고 웃었다.


“반갑다. 강한 인간.”


그와 함께 그의 주먹이 아리시아의 배를 강타했다. 얼음의 보호막이 그의 주먹을 가로 막았지만, 그것을 부수고서 날아든 통에 아리시아의 몸이 휘청, 뒤로 밀려났다. 그런 아리시아에게 페듀가 다시 빠르게 달려들었다. 겨우 중심을 잡고 대검을 휘둘렀지만, 거대한 주먹은 얼음의 대검마저 밀쳐내며 아리시아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얼굴 옆에, 다시 얼음의 벽이 생겨났지만 그 얼음도 순식간에 가루로 변하고 그의 주먹이 아리시아의 얼굴에 정통으로 내리 꽂혔다.

멀리 날아가 바닥으로 뒹군 아리시아의 신영이 마침 이제 막, 피를 멈추고서 한 숨을 내돌리고 있던 넨시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씨익, 사악한 미소를 지은 넨시가 아리사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어느새 어린아이의 얼굴로 돌아온 넨시를 잠시 바라보던 아리시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돌려 다시 페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아리시아를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던 넨시의 눈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어떻게 인간이 내 마력을 견딜 수가 있지?”


그와 함께 주위에 널려있던 검들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넨시, 자신의 여섯 개의 단검은 물론이고, 저 멀리, 아무 생각 없이 잠들어있는 리아나의 검과 라크의 도끼, 용병들의 창과 검들마저도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바람을 가르며 아리시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등뒤로 날아드는 검들을, 아리시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도검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페듀만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는 아리시아의 몸이 순간, 생겨 난 하얀 눈보라 속으로 파묻혔다. 잠시 신영마저 눈보라 속에 감춰졌던 아리시아의 몸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칼과 도끼가 날아와 그녀의 몸을 강타했다. 그러나 아무 상처도 주지 못하고 힘 없이 튕겨져 나오는 검들.

검들을 튕겨 낸 아리시아의 몸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투명한 무언가로 덮여 있었다. 달빛에 반사되어 나오는 빛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투명한 얼음의 갑옷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또한, 날아든 검들을 모두 튕겨내 버리고 페듀를 향해 몸을 날리는 아리시아의 손에는 리비안의 성벽을 갈랐던 거대한 대검이 들려 있었다. 페듀를 향해 검이 날아들고 그 순간 페듀의 거대한 주먹이, 또한 아리시아의 대검을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신영이 서로를 엇갈려 지나쳐 갔다.

그리고 달빛에 반사되어 부서지는 얼음들과 그와 함께 튀어 나온 거대한 주먹이 공중으로 비산했다. 돌아선 아리시아의 손에 들린 대검의 중간 어름은 움푹 파여 있고, 페듀의 잘려나간 팔뚝에서는 검은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페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 마치 바위를 녹이며 흘러나오는 용암처럼 기포가 터져 나왔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붉은 색으로 부풀어 오른 몸에서는 자욱한 연기와 함께 강한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마성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달려 온 넨시가 소리쳤다.


“페듀 멈춰.”


그녀를 향해 페듀의 일그러진 얼굴이 돌아갔다.


“저, 여자 죽인다.”


“알아, 하지만 나중에.”


넨시가 페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들끓던 그의 몸에서 기포가 가라앉으며 강렬하게 내뿜던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잘 참았어. 페듀,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페듀를 진정시키고 나서 고개를 돌린 넨시가 이번에는 아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다음엔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


아리사아는 그런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만든 조잡한 물건의 도움을 받게 되다니.”


칫, 하고 다시 한 번, 혀를 찬 그녀가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찢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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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10) 19.04.08 57 1 13쪽
71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9) 19.04.06 52 1 13쪽
70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8) 19.04.03 55 1 13쪽
69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7) 19.04.02 62 1 17쪽
68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6) 19.03.29 58 1 12쪽
67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5) 19.03.27 56 1 15쪽
66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4) 19.03.25 106 1 13쪽
65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3) +1 15.06.09 410 4 18쪽
64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2) +1 15.06.02 372 7 12쪽
63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1) 15.05.26 483 9 15쪽
62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6) +1 15.05.18 402 7 16쪽
61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5) +1 15.05.15 401 7 17쪽
60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15.05.13 476 10 20쪽
59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3) 15.05.12 352 8 24쪽
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7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3 6 18쪽
56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0) +2 15.05.03 463 11 22쪽
55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9) +1 15.05.02 386 5 19쪽
54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8) 15.05.01 449 9 15쪽
53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7) +2 15.04.30 380 6 19쪽
»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6) +1 15.04.29 334 7 23쪽
51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5) +2 15.04.28 461 10 17쪽
50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4) +2 15.04.27 436 9 22쪽
49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15.04.26 416 10 21쪽
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5 9 19쪽
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6 7 20쪽
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8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8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5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4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8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5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2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0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7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3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49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2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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