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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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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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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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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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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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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DUMMY

3일 동안, 센틀러의 장례식은 말 그대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장례식 첫날, 마탑 근처에 자리한, 끈적거리는 이끼로 가득 덮인 모처에서 마웅 후작이, 붉은 로브에 싸인 샌틀러의 시신이 안치 된 장작더미를 향해 화염의 구를 날리며 시작 된 장례식은 그 후로 3일 동안, 마치 마법사들의 마법대결의 장처럼 화려한 마법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순식간에 지나갔다. 므로도스가의 전통에 의해 센틀러의 시신이 누워있는 장작더미는 그렇게 3일 동안 마법사들이 돌아가며 쏘아대는 화염 마법에 꺼지지 않고 불타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3일 째가 되는 날 밤에, 므로도스가의 모든 마법사들이 불타고 있는 센틀러의 시신을 둥글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오랜 전통의 마법가문답게, 므로도스가에는 두 명의 5서클 마법사와 다섯 명의 4서클 마법사, 그리고 30명의 3서클 마법사와 이백여 명에 달하는 1, 2서클 마법사가 존재했다. 그들은 그날, 자신의 마나가 고갈 될 만큼의 힘을 쏟아, 각종의 화염마법을 센틀러의 시신을 향해 쉼 없이 쏘아댔다. 장례식에서 쓸 만한 표현은 아니지만, 불타오르는 센틀러의 시신을 향해 이백 명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쏘아대는 각양각색의 화염마법이 만들어내 내는 불꽃의 장관들은 모든 이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마탑내에 흐르고 있는 평소의 어두침침한 기운이 오히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만큼은 마치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들떠있었다고나 할까? 지구에서의 장례식과는 다른,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끝을 맺는 센틀러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아리시아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리시아님!”


돌아서는 아리시아의 발걸음을 잡은 것은, 고단한 얼굴로 다가온 마리엔이었다. 지금 막 마웅 후작이 만들어 낸 화염의 화살에 의해 사방으로 불꽃을 휘날리며 부서져 내리는 장작더미를 바라보며 마리엔이 덧붙였다.


“우리 므로도스가문의 전통 장례식이예요. 므로도스가의 3대째 후작이신 아바레크 덴 므로도스님께서 남기신 유언으로부터 시작 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 후부터 므로도스가문의 어른이 돌아가시면 계속 이런 방식으로 장례를 진행해 왔어요.”


므로도스가문이 처음부터 이렇듯 화염마법에 특별히 치우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3대째 아바레크후작이 마법대륙을 탐험하다 두 개의 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 하나가 8클레스의 마법서이고, 또 하나가 화염의 망토였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8서클의 마법사는 탄생되지 못했지만, 그 마법서가 화염마법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화염마법의 계발에 치우친 탓에 이렇듯 변모하게 된 것이었다.

화염마법 속에서 육신을 모두 불태운 센틀러는 단 한 조각의 뼈조차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므르도스가의 마법사들이 꺼져가는 불씨를 둘러싸고서 무언가 알아듣기 힘든 축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처음 얼음 속의 센틀러를 보았을 때만해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증조부의 죽음이 가슴에 전혀 와 닿지 않았던 마리엔이었지만, 3일간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리시아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받게 된 것인지를 몸소 느끼게 되었다.


“아리시아님께선 따로 계획하고 계신 것이 있나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멀리 마법사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시아에게 또 다시 마리엔의 질문이 들려왔다. 아리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얼음의 정령을 찾아야만 했다. 대륙 어딘가에서 마족을 소환했다는 마법사를 찾는 것이 순서이리라.


“아리시아님은 므로도스가의 마법사님이세요. 어딘가 머무실 곳이 필요 하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저희를 찾아주세요.”


생각에 잠겨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선 아리시아에게 마리엔이 말했다. 아리시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탑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소환마법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필요했다. 아리시아의 질문에 마리엔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리비안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던 마리엔에게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

“장례를 마친 후에 할아버지께 말씀 드릴께요.”






서너 개의 촛불이 겨우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밝히고 있는 지하의 감옥 안에서 말러는 벽에 기대어 앉아,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새 벨로프남작이 왕궁에 자신의 처벌을 부탁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까지 도망쳐 온 자신을 왕궁에서 감금할 이유가 있었을까?

무엇일까?

여덟 번의 식사가 전해졌으니, 삼 일쯤의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끼니때마다 빵조각을 들고 나타난 낡은 가죽갑옷을 입은 남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감옥에 들어 온 후로, 얼마 쯤 신세 한탄에 가까운 수다를 늘어놓던 라크마저도 지쳤는지, 사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여성인 마르넨을 제외하고 용병대원들 모두 이곳에, 3평 남짓 되는 여섯 개의 작은 방에 나누어져 감금이 되었다. 유일하게 자신만이 홀로 독방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말러는 그 동안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아…… 배고파, 이제 얼마나 지난 거냐.”


라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일쯤 됐을 걸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자작님. 살아계십니까?”


다시 라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러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타계할 방법이 없었다.


“미안하네.”


근 3일 만에 들려온 말러의 목소리였다. 온몸에 가득 차 흐르던 원망의 기운도 이제 모두 사라진 터였다. 라크에게서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는 계셨군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들이 나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된 것 같네.”


“뭐, 살다보면 이래저래 별 희한한 일도 다 당하죠. 일 년 벌이 돈이 이틀 만에 들어오기도 하고,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알 수가 없는 일이네. 요새는 영지전에 패한 귀족이 감금도 되는가?”


“글세 올시다. 뭐 귀족도 귀족 나름이어야지 사실 자작님이야. 누가 귀족으로 대우나 해 줍니까?”


정말 그 이유가 아니라면, 그가 이렇게 갇혀있을 이유는 없었다. 거기다 말러자작이, 비록 평판은 좋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엄연히 오러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기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제국도 아닌 작은 소국, 세일루니아에서는 한 명이 아쉬운 귀한 인재인 것이다.


"하여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사실인 듯 싶습니다."


천한 용병이었지만, 그래도 용병 계에서는 꽤나 이름값이 높은 자신들이었는데, 눈이 가려진 채로 마차에 올라 이곳으로 끌려오는 동안, 말러는 물론이거니와 자신까지도 별 되도 않는 허세까지 다 떨어가며 말을 붙여 보아도 단 한마디의 대꾸도 듣지 못하고 이런 신세에 처하고 말았다.


“어찌 됐든 내가 귀족 회의에라도 가게 된다면 제일 먼저 자네들의 신변부터 풀어달라고 청해보겠네.”


그러나 귀족 회의를 소집할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런 고초를 겪을 필요도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라크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라크에게서 힘없는 대답이 흘러나왔을 때, 어둠으로 덮인 지하 감옥의 통로에 희미한 불빛이 어리며 작은 발굽소리가 전해져 왔다. 순간, 라크 용병대원들이 일제히 철창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발굽소리가 지금까지 들려왔던 간수의 그것과는 달리 두 사람의 것이었던 탓이었다.

낡은 가죽 로브로 온 몸을 휘감은 두 명의 인원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와 말러가 들어가 있는 감방 앞에 멈춰 섰다.

앞에선, 두 사람 중에서 조금 키가 큰 사람이 천천히 얼굴을 덮고 있던 후드를 걷었다. 곧, 뒤에 선, 로브의 인물이 들고 있는 횃불에 어리어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자줏빛의 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젊은 남자가 말러를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며 서 있다가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당신이 카니치트인가?"


청년의 푸른색 눈동자가 말러의 청록색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말소리에 라크와 그의 용병대 대원들이 감옥 문살에 얼굴을 더욱 밀착시키며 주위를 살폈다. 생각 같아서는 눈알을 빼내서라도 문살 밖을 내다보고 싶었다.


"누구십니까?"


자신보다 어린 청년이었지만, 자신이 귀족임을 알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던지는 하대에 말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흘러나왔다.


"검은…… 어디에 있지?"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은 채로 검의 행방을 묻는 청년의 말에 말러의 얼굴이 저절로 구겨졌다. 수도의 정문에서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을 때, 비로소 말러는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잠시 생각에 빠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자신을 향해 청년이 입가에 조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걸 숨긴 건 아주 잘한 일이야."


청년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큭큭, 하고 과장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셀리오스가 자네의 검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더군. 무슨 검일까 무척 궁금했었는데 아쉽군."


말러의 얼굴에 한 가득, 의문의 빛이 차올랐다.


"얼마 전에 왕께서 쓰러지셨네."


점점 복잡해지는 머리를 굴리고 있는 말러의 귀에 생각지도 못한 말이 다시 들려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왕이 쓰러졌다니. 죽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병을 얻었단 말인가? 어찌됐든 세일루니아의 22대 왕인 루즈덴드 폴 퓰리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만은 사실인 듯했다. 그러고보니 자줏빛의 머리카락에 푸른 색 눈동자. 언젠가 보았던 왕의 초상화가 떠올랐다.


"혹시……."


뒤끝을 흐리는 말러를 향해 청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말러가 자세를 고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쉿!"


청년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고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깜짝 놀란 말러의 시선이 잠시 라크등이 들어가 있는 감방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가 돌아왔다. 그러나 말러는 그들이 보이지 않았고, 청년의 등 뒤에선 마법사가 펼쳐놓은 결계로 의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역시 라크일행에게 들리지 않았다. 창살에 얼굴을 밀착시키고 필사적으로 곁눈질을 해대고 있는 라크와 그의 용병대원에게는 청년을 막고 선 마법사의 등만이 조금 보일 뿐이었다.

누구일까?

말러가 아는 것은, 지금의 왕에게 네 명의 왕자와 한 명의 공주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중, 첫째 왕자는 마흔 살이 넘은 나이였고, 둘째 왕자는 오 년 전쯤 행방불명이 된 상태였다. 막내 왕자는 아직 성년을 치르지 않은 나이였으니, 지금 눈앞의 청년은 세 번째 왕자가 분명했다. 그러나 그 셋째 왕자의 이름…… 따위를 말러가 기억하고 있을 리 없었다.

왕자의 미소가 담긴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프킬루스의 서식처가 발견되었네."


이번에도 역시 말러의 눈가에 의혹이 차올랐다. 정말 멋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쏟아내는 자였다.

700년 전, 초대 황제 퓰리츠 대제에 의해 대륙의 반 이상을 점령하며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해 가던 세일루니아가 급격하게 기울어지게 된 것은 그 프킬루스라는 이름을 가진 마물의 멸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당시, 작은 용병대의 대장이었던 퓰리츠가 나라를 일으켜 대륙을 집어 삼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끄는 용병대가 하늘을 나는 마물인 프킬루스를 길들일 수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이끄는 용병대는 일종의 공군부대였던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세일루니아가 일어서고 한참 그 기세를 올리고 있던 때에 마침, 하르테론의 대재앙이 발생했다. 그 엄청난 지진은 대륙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고, 마법의 대륙을 드러나게 했으며, 또한 마계로부터 수많은 마물과 마족들이 자연계로 침범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에 마계에서 날아든 하늘을 나는 거대 마물 하나가, 그 당시 공중을 지배하던 프킬루스를 멸종에 이르게 만들어 버렸다. 당시 프킬루스를 길들이는 능력으로 세력을 넓혀가던 퓰리츠대제에게는 그 마계의 마물은 천재지변보다도 더 뼈아픈 재앙이었다. 그 후,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는 <마족을 멸하는 자들>에 의해 하늘을 지배하던 마물 역시 대륙에서 사라졌지만, 그 후 프킬루스 또한 함께 사라져 버렸다.


“클록 후작을 필두로, 셀리오스 백작등은 이미 첫째 형님을 따르고 있네. 그들이 왜 자네의 검을 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썬 형님이 꽤나 앞서가고 계시지. 지금, 자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네. 하나는, 형님께서 장악하고 있는 궁으로 들어가던지, 나와 손을 잡던지. 이 도박, 해 볼 만하지 않나?”


점점 복잡해지는 머리를 흔드는 말러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 작은 읊조림이 세어 나왔다.


“대체 르마스 넌, 어디로 사라진 거냐.”






센틀러의 장례식이 끝난 후, 다시 하루 밤이 지나갔다. 미리가 방으로 가져 온 마른 빵과 차 한 잔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친 아리시아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몇 시간 째 우두커니 서 있었다. 침대 옆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있는 리아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그런 리아나가 휘두르는 검이 아래로 한 번 내려 쳐 질 때마다 반대편 침대에 걸터앉은 미리가, 숫자를 읊어가며 독려하고 있었다.

아리시아가 묶고 있는 곳은 므로도스가의 마탑이 아닌, 리비안의 시내에 위치한 고급여관<불꽃의 쉼터>였다. 센틀러의 제자인 아리시아와는 달리 리아나와 미리는 마탑에 머물 수는 없어 므로도스가에서 따로 여관을 마련해 주었는데, 아리시아는 마탑이 아닌 두 여인이 머물고 있는 여관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스승님, 내려치기 천 번, 모두 끝냈어요."


땀에 젖은 이마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리아나가 아리시아에게로 다가왔다.


"좋아요."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서 짧게 대답을 마친 아리시아가 리아나의 검을 잠시 건네받아 들고는, 이번에는 검을 좌우로 연속해서 휘둘러보였다. 아슈타가 보여주는 검도의 동작들 중에 좌우 베기의 연속동작을 따라해 리아나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할 수 있겠어요?"


검을 돌려주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리시아를 향해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리아나가 "그럼요. 이번 것도 천 번 채워보겠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대답을 마친 후에 자세를 바로잡고서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태극권을 시작으로, 검도의 기본 동작을 알려줄 때까지, 리아나는 이 새로운 수련 방식에 조금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하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이 이외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에게 선택, 아닌 선택을 강요하는 아리시아의 얼굴을 몇 차례 대하고 난 후로는 아무런 불평 없이 그녀의 지도를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며칠 전, 사기꾼 사라에게 속았던 경험도 있었던 데다가, 어차피 지금 믿을 사람은 아리시아뿐이라는, 어딘가 체념에 가까운 결정을 내린 탓이었다.

아무 말 없이 검을 쥐고서 자신이 알려 준 동작을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리아나의 자세를 조금 손봐준 후에 아리시아는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거리에는 붉은 망토를 두른 마법사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틈에 섞여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므르도스가의 마법사들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들의 걸음은 다급하고, 부산스러웠다.

멀리 사라져 가는 마법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순간, 하늘 어딘가에서 낯익은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바라보니 맑게 갠 푸른 하늘에서 은빛의 무언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자신이 서 있는 창가로 날아들었다.

프리아라고 했던가?

자신이 서 있는 창문 앞으로 날아와 한 바퀴 공중을 돌며 재주를 뽐낸 하얀새, 프리아가 아리시아의 얼굴 앞에서 세찬 날갯짓을 하며 눈동자마저 새하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새를 바라보고 있던 아리시아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뻗었다. 새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아리시아의 손등에 내려앉았다. 그리고서 잠시 새하얀 부리로 아리시아의 손등을 콕콕, 찌르더니 몇 걸음, 통통 튀어 팔뚝 위로 올라와 한쪽 발을 긁기 시작했다. 그 발에는 얇게 말린 종이가 검은 색 끈에 묶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새의 발에서 끈을 풀어낸 후에 돌돌 말린 종이를 펼쳤다. 엄지손톱 두 개정도의 크기의 종이 위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된 한 줄의 문장이 쓰여 있었다.

프리아를 알아보고 미리가 다가왔다. 아리시아가 종이를 미리에게 건네주고는 여전히 목검을 휘두르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리아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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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89 티말
    작성일
    15.04.17 23:44
    No. 1

    작가 : 자, 관도 없으니 이제 신경쓸건 하나 줄었군. 그럼 어디 본격적으로..
    아리시아 : 나, 여행갈래.
    리아나 : 아, 같이가요~!
    아리시아 : 가면 고된 체력 훈련이 있는데도? 아, 같이 가는 사람들
    전부 다 체력 훈련이야.
    독자 : 그리 말하고 못 움직이는 사이에 혼자 도망치듯 가는데..
    아리시아 : 맞을래? 내가 왜?
    독자 : 한동안 바쁠겁니다. 귀찮을 정도로. 쉬어두는게 날껄요?
    아, 여기랑 여기에 괜찮은 음식과..


    이런 이야기가 나올리는 없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고철아주큰
    작성일
    15.04.18 00:13
    No. 2

    '센틀러님.. 아니 아버님...'
    하얗게 타들어간 그의 관을 바라보며 아리시아는 다시금 끊어진 인연을 생각한다.
    눈물도 흘리지 못할 만들어진 몸인... 그러나 아리시아의 눈에서 '물'이 흐른다.
    '이건...'
    정령이 대신 흘려주는 인위적인 물. 하지만 그 누구보다 바랬던 물.
    아리시아는 거의 모두 타들어가는 센틀러의...

    ps. 자, 이제 망가뜨립시다.
    "진짜 늦게 얻은 딸인걸까?"
    "혹시... 정력 증가 마법을 만들어서 저 어린 아가씨를..."
    "....9서클 마법일 것이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거라는
    작성일
    15.04.18 18:38
    No. 3

    어차피 샌틀러는 화려한 장례식 같은건 바라지도 않고, 정작 바라던 것은 8서클 마법서와 자신의 마법이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과 아라시아가 므로도스의 도움을 받아 사회에서 잘 적응하길 바랬던건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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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2) +1 15.06.02 373 7 12쪽
63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1) 15.05.26 484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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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5) +1 15.05.15 402 7 17쪽
60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15.05.13 477 10 20쪽
59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3) 15.05.12 353 8 24쪽
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8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4 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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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6 9 19쪽
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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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9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9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9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6 11 17쪽
41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5 15 20쪽
»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2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9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6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8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5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3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2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4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1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8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7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3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4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3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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