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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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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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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글자수 :
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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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1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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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DUMMY

"아리시아님! 할아버지께서……."


세차게 문을 열고 들어서다 말을 멈춘 마리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두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아리시아님은 어디 가셨나요?"


태양빛이 가장 강렬하게 내리 쬐는, 바르아의 정오 한 낮이었다. 아리시아라면 분명히 창가에 앉아 마법서를 읽고 있거나, 혹은 거리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선 마리엔은 아리시아가 보이지 않자 괜히 멋쩍은 표정으로 리아나와 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다말고 그런 마리엔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리아나가 미리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진짜? 스승님, 어디 가셨어?"


마리엔과 리아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미리는 괜히 천장을 향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미리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 라이나는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마리엔은 잠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멈칫, 다시 한 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마리엔이 나가거나 말거나, 여전히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휘파람까지 불어대는 미리의 뒷짐을 진 두 손에서는 찢겨진 종이조각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누굽니까?"


오랜 시간, 홀로 생각에 잠겨있던 말러에게 라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말러가 있는 감옥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우리 같은 천한 자들이 알면 안 되는 분입니까?"


라크에게서 그답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득 라크는 여타 흔한 용병들과는 어딘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돈을 쫓는 용병이라면 어쩔 수 없이 계산적으로 변한다. 정의나 신의 따위에 목숨을 거는 일은 없다. 그런 것들을 쫓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조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데 많은 생각을 기울인다. 그 조율을 어느 쪽으로 가져가느냐가 용병대장의 능력이리라. 그러나 그로인해 용병들의 목숨 값은 오히려 하찮게 낮아진다. 말러자신도 그러지 않았는가? 이틀 동안의 여정에서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수도에 도착했을 때, 천골드의 거금은 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막상 자신으로 인해 위험에 천한 그들의 하나하나의 목숨 값은 천골드로는 턱없이 부족해져 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말러에게서 역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왕이 쓰러지셨다는군."


"왕이요?"


생각지 못한 말이었는지 라크의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그대로 묻어났다.


"더 듣겠나?"


말러의 말에 잠시 마음을 정리한 라크가 대답했다.


"들려 주십시오."


말러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괜한 것을 고민하고 있었나, 싶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제 비로소 같은 편이 되었다.


"우선, 자네들에게 미안한 말을 전해야겠네. 나도 잘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내가 가지고 있던 검…… 때문인 모양이네."


"그 녹색의 마법검 말씀이십니까? 자작님네 집사가 가지고 날라버린."


"그렇네. 그리고, 그렇다고 르마스를 그리 생각하지 말게. 그는 내게 있어서는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가신이며 둘도 없는 친구네."


"그렇습니까? 하지만 너무 공교롭지 않습니까? 딱, 우리가 잡히는 그 순간. 그가 자작님의 검을 들고 토껴 버렸으니."


"글쎄. 그 일은 나도 어찌 설명할 방법이 없네만, 적어도 조금 전……, 아! 조금 전 그분, 세 번째 왕자시네."


라크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튼, 왕자님의 말을 빌리자면 적어도 우리를 가둔 자들과 르마스가 한통속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네, 왕자도, 셀리오스백작이나 벨로프남작도 검은 빼앗지 못한 모양이네. 그리고 그 때문에 어쩌면 살 길이 열릴 수도 있네."


말러는 조금 전, 왕자로 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모두 라크들에게 상세하게 전했다. 때문에 오히려 놀란 것은 라크였다. 그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발을 뺄 수도 없게 되었지만, 왕자가 마법의 결계마저 펼쳐 비밀을 유지하려던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모두 털어놓은 말러의 모습이 라크에게는 왠지 감동스러운 기분까지 들게 만들었다.


"자,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네. 우린 어찌해야겠나?"


이제 말러의 입에서 '우리'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제국으로 넘어가, 그 플리어쩌고저쩌고 하는 마물의 알을 가지고 오면 된다는 말씀이잖습니까? 그럼 가시면 되지 뭐가 문제입니까?"


말러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난 이곳에서 죽은 것으로 처리가 될 모양이네."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라크에게 옆에서 듣고만 있던 붉은 머리의 청년이 대신 답을 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일에 우리가 필요했군요."


그의 말을 끝으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내가 자네들의 신변을 부탁했을 때, 왕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네. 그리고 결정을 내릴 시간이 그리 많은 것 같진 않네."






"아직 찾지 못했나?"


희미한 촛불이 겨우 어둠을 밝히며 힘겹게 타오르고 있는 어느 지하방, 헝클어진 갈색 머리의 남자가 짜증스러움이 묻어있는 시선으로 주위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내들을 차례차례 바라보고 있었다. 갈색머리의 사내의 질문에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사내들 중, 오른 편에 서 있던, 한쪽 눈을 검은색 안대로 가리고 있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종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말을 시작으로 가운데 선, 중년의 남자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레이드님. 돌아가시죠."


레이드.

이틀 전, 그들은 타지아에서 밤새 말을 달려 겨우 수도 퓨리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말러가 수도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성문에서 병사들에게 어디론가 연행이 된 이후의 행적이 묘연했다. 그들이 찾는 것은 말러가 가지고 있는 검. 그러나 말러의 행적을 놓쳐버린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수도 퓨리스 안에서는 더욱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는 없었다. 행여 말러의 행적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평민인 그들이 귀족에게 손을 쓰기는 쉽지가 않았다.

레이드가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걷어내자 중년의, 붉은 수염이 턱을 모두 덮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찌 됐나?"


"그게……."


레이드의 물음에 잠시 말을 멈추고 인상을 찡그리던 중년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사내들을 곁눈질로 흘끔 거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셀리오스 백작에게서는…… 역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말러가 왕궁에 들어갔다면 이제 영지전에 관한 사항도 왕궁에 의해 중재가 들어갈 것이고 그렇다면 추격을 멈춰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셀리오스백작과 연락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소문은?"


턱수염의 사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인 듯 싶습니다. 왕궁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고, 금방이라도 무언가 일이 터질 것처럼 어수선합니다."


말러의 행적을 탐색하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소문. 소문은 이제 이곳, 수도의 유흥가 뒷골목에서는 공공연히 들리는 소문 아닌 소문이 되어 있었다. 왕이 병이 났다거나, 습격을 당했다거나, 심하게는 왕이 암살을 당했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었다. 그로 인해 아직 왕위가 정해지지 않은 왕가의 핏줄들이 속속, 자신의 가신들을 수도로 불러 모르고 있고, 그로인해 곧, 변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수도는 지금 확인 되지 않은 온갖 소문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휩싸여가고 있었다.


"그녀는?"


"타지아의 마탑에 들어간 이후로 그녀 역시 행적이 묘연합니다. 이동마법을 행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번에는 계속 서 있던 세 명의 남자 중, 검은 안대의 사내가 대답했다.


"리비안으로 갔을까?"


"아무래도 므로도스가문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니 그리 가지 않았을까요?"


"설원의 마검사에게 날개가 달렸군."


대므로도스가문에 귀속된 것이다. 비록, 지금은 예전만큼의 성세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왕국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타 군소 가문들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권력을 지닌 므로도스가문이었다. 특히나 세일루니아의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그 위세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만한 곳. 그런 곳을 그녀는, 이제 등 뒤에 둔 것이다. 물론 므로도스가문에 더 큰 힘이 되겠지만.


"그녀가 움직이면 힘들어진다. 그 전에 말러를 찾아야 해."





그 시각, 아리시아는 수도, 퓨리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관도를 피해, 거친 돌무더기 언덕들을 박차며 달려가는 중에도 아리시아의 얼굴에 피어난 의문의 흔적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말러자작 감금. 수도의 북쪽 퓰리츠 왕가의 별장 지하 감옥.


단 한 줄.

세리안에게서 날아든 종이에는 생각할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알송달송 한 암호문같은 한 줄의 문장만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죠?"


아리시아가 프리아의 다리에서 풀어낸 종이를 미리에게 내밀었을 때, 종이를 받아든 미리는 왠지, 무언가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모른 척 ‘글쎄……요?’하고 말을 돌리며, 창가에서 날아올라 하늘 멀리 사라져가는 프리아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42.65퍼센트. 애매한 확률로 어디가 의문스러운 표정과 말투를 보이는 미리를, 아시리아는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리아나에게로 시선을 가져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리아나는 온 정신을 쏟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역시……."


아리시아의 입에서 알 듯 말듯, 한탄이 섞인 한마디가 흘러나오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있던 미리는 괜히 두 손을 내저으며 급히 입을 열었다.


"에이, 설마요. 세리안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라니까요.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으시겠죠."


미리가 등 뒤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모르는 척하며 아리시아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딘가 수상쩍은 미리를 바라보며 아리시아는 반마족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깊게 되새겨 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했다. 마족의 피. 인간의 편에서 선 자라고 하더라도, 과연 그들이 정말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일까?

그들의 방식이 정의롭고, 정당할까?

목적을 위해 작은 희생쯤은 간단히 모른 척, 넘길 수 있는 자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이 사실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지 않은가? 마족의 피가 섞인 자들이라면, 그게 더 쉽겠지.


"그나저나 어쩌죠?"


조심스럽게 말을 돌리는 미리에게 창가에 기대고 선 아리시아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대답했다.


"내가 다녀오겠어요."


갑자기 침울해진 표정의 미리에게서 허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심하세요. 아리시아님. 리아나님은 제가 잘 보살피고 있겠습니다."


침울한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돌린 미리의 어깨가, 들썩들썩하는 것이 왠지 즐거워 보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끝마칠 때쯤, 아리시아의 신영이 앞을 막고 선 절벽을 타고 올랐다. 절벽 위, 멀리 리비안과 수도 퓨리스의 중간 지점인 델리오라는 이름의 작은 도성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도시가 그렇듯이 마물의 습격을 막기 위해 사람이 살만한 곳은 저렇듯 높은 성벽에 싸여있다. 하지만 델리오는 수도 근처의 도시 치고는 그 규모가 아주 작았다.

그 성을 지나 300여 킬로미터 북쪽으로 달려가면 수도가 나올 터였다. 그때, 지금 막,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아리시아의 발길을 붙잡는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리시아가 내려다보고 있던 성의 반대편 멀리, 세일루니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녹색의 나무들이 제법 울창하게 자라난 낮은 산에서 흙먼지구름이 피어오르며 수십 개의 나무가 쓰러지고 있었다. 아리시아가 서 있는 절벽으로부터 약 십 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아리시아는 절벽에서 훌쩍 몸을 날려 땅 위에 내려서고는 전속력으로, 조금 전 폭발음이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렸다.




커다란 대검을 한 손으로 치켜든 남자가, 청색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고, 그의 앞을검은색 빛이 감도는 롱소드 두 개를 양손에 감아 쥔, 금발의 중년 사내가 버티고 서 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자신의 주위에 쓰러져 있는 로브를 입은 사람들을 곁눈질로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도망을 쳐 온 것이 아니었군."


청색머리의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든 대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의 등에는 방금 땅에 내려 박은 대검과 같은 모양의 대검이 하나 더 매달려 있었다.


"여기까지 쫓아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거기다 그렇게 끈질기게 쫓아온 자들이 겨우 이 정도의 실력일 줄은 더군다나 몰랐군."


중년의 사내가 다시 한 번 주위에 쓰러져 있는 로브의 인영들을 둘러보았다. 네 개의 엠블렘을 지닌 빛의 사제 두 명과 어둠의 사제 한 명. 그리고 세 개의 엠블렘을 달고 있는 어둠의 사제가 네 명이었다. 그들이 남자의 단 한 번의 칼질에 모두 목숨을 잃었다.

누구일까?

제국, 리아센의 변방에서 검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즉시 검을 취한 자를 쫓아 이곳, 세일루니아까지 달려왔다.

그의 이름은 모겐.

주로 제국 리아센에서 검을 지키는, 인간의 편에 선 반마족이었다. 260살의 나이가 말해주듯이 그는 반마족 중에서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마족킬러 중에 한 명이다.

그가 세일루니아로 넘어와서 만난 지원병력은 모두 열 명의 빛과 어둠의 사제들. 제국과는 달리 어둠의 신전이 많지 않은 세일루니아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수도로 향하는 어둠의 사제들을 만나 이렇듯 넉넉한 수의 지원병력을 이끌고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거기다 이번에 검을 취한 자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존재. 즉 이제 알에서 깨어나 각성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반마족이 분명했다. 그런 반마족 청년을 쫓는 일을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해를 할 수 없군. 새로운 반마족이 나타나다니."


청색머리의 남자가 팔짱을 끼고서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렇지. 신은 우리를 원하지 않는 것 같지만, 참 우리도 징글맞게 신을 배반한단 말이지."


"누구지?"


"누구? 나? 아니면 우리 아버지?"


청색머리의 남자가 다시 비웃음을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나도 몰라. 인간인 줄 알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냥 반마족이 되어 있었지. 그리고 검을 찾아 왔고. 그러니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 이름이라도 지어주겠나?"


"역시, 어린 반마족이구나. 네게는 그 검이 필요 없다. 아직 누구의 곁에도 서지 않았다면 내가 인도해 주마. 나와 함께 가자."


계속 웃음기가 감돌던 청년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을 취하는 것은 반마족의 특권이다. 왜 그것을 부정하지? 그대도 들었을 것이 아닌가?"


모겐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듣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러나 반마족아이야. 그 소리는 너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청년이 고개를 내 저었다.


"이해 할 수가 없군. 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어. 내가 이 검으로 직접 마계로 가서 아버지를 찾겠다."


"허튼소리, 마계의 문이 열리면 바르아는 무너진다. 어서 검을 내놔."


청색머리의 청년이 땅에 꽂았던 대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푸른색 빛이 감도는 검신에 알 수 없는 마계의 언어들이 수십 줄에 걸쳐 쓰여 있었다. 아직은 알 수 없는 말들. 그러나 그는 알고 싶었다. 아니 자신은 마족과 다름이 없다. 자신의 힘이 마족을 능가할 것이므로. 잠시 검을 지그시 바라보던 반마족 청년이 속삭이듯이 말했다.


"당신도 알겠지? 검은 주인에게 가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순간, 반마족 청년의 검이 모겐의 머리를 쪼갤 듯이 날아왔다. 모겐은 검은색 검을 머리 위로 엇갈려 들어 올려 날아오는 대검을 막았다. 곧 커다란 굉음과 함께 모겐의 몸이 십여 미터 쯤 공중으로 튕겨져 나갔다. 족히 열 아름쯤은 됨직 한 나무들이 그의 몸과 충돌할 때마다 힘없이 부러졌다. 네 그루의 통나무들이 쓰러질 만큼의 충격을 받았지만, 모겐은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왔다.


"혼자서 각성을 한 아이이니 잘 타일러 보려고 했건만, 일단은 그 마성을 좀 잠 재워둬야 겠다."


호기롭게 달려드는 모겐를 바라보며 청색머리의 사내가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정말 어이가 없군. 내가 여기까지 온 게. 너희들이 무서워서 라고 생각하나?"


순간 그의 주위로 강한 기파가 터져 나와 주위의 모든 것들을 날려 버렸다. 그 기파를 뚫고 모겐의 두 검이 그의 어깨와 허리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청년의 왼쪽 어깨를 내려친 검이 어깨를 잘라낼 듯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왼손에 든 검이 청년의 허리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허리로 날아가던 검이 대검에 의해 튕겨져 나가고 청년의 대검이 방향을 바꿔 그의 목을 쳐왔다. 어깨를 반쯤 쪼개던 검을 급히 거두어들인 모겐이 두 개의 검을 다시 엇갈린 채로 들어 올려 목으로 날아오는 검을 막았다. 곧 목 앞에서 부딪친 세 개의 검에서 서로 다른 마기의 기파가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 모겐의 검에서 내 뿜어 나오던 마기의 기파가 반으로 쪼개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의 두 검이 동시에 잘려 나갔다. 깜짝 놀란 모겐이 급히 몸을 뒤로 피했지만 그의 두 검을 반으로 쪼갠 대검은 그의 목을 사정없이 긋고 지나갔다. 뒤로 몇 바퀴 굴러 나자빠진 모겐의 목이 반쯤 떨어져 검은 피를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모겐이 급히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서 마물의 입처럼 벌어진 목을 급히 붙였다. 그러자 검은 피가 그 사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 채 목이 붙기도 전에 청년의 대검이 모겐의 얼굴 앞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누구의 아들이지?

모겐은 이 순간이 자신이 마지막임을 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가…… 대체 누구의 혼이 만들어낸 괴물일까?

그리고 그 의문을 드러낼 새도 없이 그의 미간을 뚫고 대검의 칼날이 박혔다. 사방으로 뿜어지는 검은 피가 시야를 가리며 뿜어져 나갈 그 때,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이마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핏줄기 사이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날아들어 반마족 청년의 검을 쳐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나 다시 몇 바퀴 굴러갔다. 중심을 잃은 그가 겨우 몸을 일으킨 순간, 그는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선 낯선 인영의 뒷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급히 이마와 목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두개골도 목도 아주 잘려나가지 않아 스스로 피를 끓어대며 치료되고 있었다. 적어도 반마족의 회복력은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유리했다.

흐려진 시야에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청색머리의 반마족 청년과 또 다른,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여인의 목소리가 마치 막 꿈속에서 깨어났을 때 들리는 환청처럼 띄엄띄엄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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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4) 15.05.13 477 1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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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8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4 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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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9) +1 15.05.02 387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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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3) 15.04.26 416 10 21쪽
48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2) 15.04.25 496 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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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8) +2 15.04.23 503 15 19쪽
45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7) +2 15.04.22 379 9 21쪽
44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6) +2 15.04.21 548 11 23쪽
43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5) 15.04.20 459 10 17쪽
42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4) +1 15.04.19 526 11 17쪽
»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3) 15.04.18 535 15 20쪽
40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2) +3 15.04.17 511 14 17쪽
39 제7장 - 이렇게 쉽게 끝날리가 없지(1) 15.04.16 399 10 19쪽
38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9) +2 15.04.15 566 11 22쪽
37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8) +2 15.04.14 347 14 20쪽
36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7) 15.04.13 424 14 27쪽
35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6) 15.04.12 533 12 19쪽
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4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1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8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4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3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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