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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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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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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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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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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DUMMY

대륙은 여전히 평화롭다. 근 백여 년의 세월동안, 큰 전쟁이 발발한 적도 없었고,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만한 자연재해나, 전염병의 피해 역시도 기록되어진 적이 없었다. 세상은 마치, 신이 은총이라도 받은 것처럼, 고요하고, 안정적이며,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저 소규모의 영지전이 몇 번 발생했고, 몇 명의 귀족이 몰락하고 또 새로 탄생했으며, 작은 왕국에 몇 번, 왕위 쟁탈을 둘러싼 내전이 발생했던 것 정도가, 그나마 큰 일 이라면 큰 일.

그러나 그 조용한 대륙에 단 한 곳, 옛 영광을 뒤로한 채, 세간에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 되고 있는 작은 왕국의 북쪽 끝에서는 지금 어딘가 어수선하고 무거운 기운들이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물론 평화로운 세상은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그 시작은 시레스의 영주성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어두운 밤에, 단 한 곳, 시레스의 영주가 머물고 있는 집무실에서는 아직도 환한 불빛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 누군가가 애잔한 눈으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 자리에, 지금은 단정한 자줏빛 턱시도를 차려입은 갈색 턱수염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갈색 파이프담배를 한쪽 입술 끝으로 물고서 잠시 창밖으로 보이는 둥근 달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몸을 돌렸다.


“이제 북부도 다시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집무실의 문 앞에서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서 있던 콧수염의 남자 벨로프가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니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창가에 서 있던 리아뎅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와 집무실 안에 새로이 마련된 검은 색 가죽 소파 위에 몸을 기대앉았다. 그리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서 빼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들, 배신자 카니들을 그대로 놓아 두 실 생각이십니까?”


무슨 말인가? 그들을 놓치고 돌아온 것은 백작의 기사들이거늘.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벨로프가 괜히 더욱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 영지전에 투입 된 용병들 중에 아홉 개 팀이 조금 전에 시레스의 동문을 나섰습니다.”


리아뎅은 그저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하루가 지나갔다. 일게 용병들이 따라잡을 수는 없을 터이니, 그저 형식적인 명분 쌓기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거기다 자신들의 기사들도 처참한 꼴을 당하고 온 것을, 그러나 귀족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리아뎅은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아버님께 큰 힘이 되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일단 아버님께 연락을 드려놨습니다. 백작성에서 마땅한 조치를 취하시겠지요. 그건 그렇고 레이드 그자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리아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벨로프의 대답이 이어졌다.


“조금 전 떠난 용병들 중에, 북부자경대가 끼어 있습니다.”


순간, 리아뎅의 눈이 조금 커졌다. 레이드가 누구인가? 그 어떤 이의 명령도 듣지 않던 자였다. 셀리오스가의 기사단의 부단장을 시켜주겠다는 말에도 꿈적하지 않던 사람이 레이드였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아버지 셀리오스의 명도 따르지 않을 것만 같던 레이드를 움직였다?

어떻게?

리아뎅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벨로프 남작, 확실히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었다.

리아뎅의 놀란 표정을 즐기며 벨로프는 조금 전에 있었던 레이드와의 일을 떠올렸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급히 적어 내려가던 벨로프 남작이 고개를 들어 레이드를 바라보았다. 상기된 얼굴로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레이드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척이나 무례한 행동이어서 어느 때의 벨로프라면 그것만으로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서 소리라도 내 지를 법한데, 지금 그의 표정은 웬일인지 담담했다. 아니 무언가 즐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 오덴의 일 때문에 그러는군.”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벨로프남작의 몸짓에, 잠시 이성을 잃었던 레이드가 정신을 차리고서 벨로프를 바라보았다.

바로 오늘 낮에, 이곳에서 함께 영주를 맞이했던 오덴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영주성으로 끌려 왔다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영주성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무언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고 여겼던 레이드였지만 지금 눈앞에서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앉아 있는 벨로프 남작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적어도 자신에게 전해진 보고가 잘 못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꿍꿍이인 걸까?


“일단 자리에 앉게.”


책상 앞에서 나와 검은색 가죽 소파에 자리를 권했지만, 레이드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런 레이드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서 자리에 앉은 벨로프남작이 자신의 앞에 놓인 주전자를 들어, 아직 식지 않은 붉은 빛의 차를 찻잔에 따랐다.


“십 년 동안 말이네. 나는 나의 영지 시레스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네. 앞으로 우리 푸올스가문이 영원히 지배하게 될 이곳에 대해서 말이네. 뭐, 뒤늦게 공부 좀 했다는 이야기네.”


자신의 휘어진 콧수염을 한손으로 쓱, 쓰다듬으며 능청스러운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그가 말을 이었다.


“그 와중에 정말이지, 너무나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말았네. 레이드.”


레이드의 표정에 잠시 당혹스러운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능청을 떨며 벨로프가 느긋한 몸짓으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세일루니아가 세워진 지 칠백여 년, 참 오래도 되었군. 그렇지 않은가?”


레이드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말이네. 세일루니아가 이 대륙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곳을 수백 년간 다스리던 왕가가 있었다더군. 야크의 별이라고 불린다던가? 들어 봤는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더듬어 대는 표정으로 벨로프가 물었다. 하지만 레이드는 여전히 침묵했다. 역시 그런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벨로프가 계속 말을 이었다.


“시레스의 주민들은 아직도 ‘테하의 달’에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제를 지내지? 나도 예전에 매 번 참석하지 않았나? 그저 오랜 전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정말 괴씸하단 말이지.”


거기서 다시 말을 끊고서 잠시 레이드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한, 애매한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드의 얼굴에는 더 없이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의 영지민들 말이네. 이상한 구석들이 있네. 영주 알기를 지나가는 개만큼도 생각하질 않아.”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 시레스를 남작님께 바친 것이 그들입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겨우 레이드에게서 한 마디, 대꾸의 말이 터져 나왔다.


“아니, 아니. 겉으로 보여 지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네. 레이드. 생각해보게. 카니치트야 원체 천한 자들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말이야. 난, 난 말이네. 세일루니아의 전통 귀족이네. 내 증조부가 300여 년 전에 벌어졌던 3차 대륙전쟁에서, 망하기 직전까지 갔던 세일루니아를 제국의 손에서 지켜낸 공신 중에 한 분이시네. 이름은 들어봤겠지? 비블르트 라는 이름말이네. 그분이 내 증조부시네. 그리고 내가 그 분의 후예이지. 정통 귀족. 그런데 나도 그 천한 카니들과 다를 게 없어. 이곳의 평민들에게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 걸음을 옮긴 그가 벽장에 매달린 검을 빼어들며 말을 이었다. 손잡이에는 오색의 보석들이 수놓아져 있고, 검집에는 날렵한 모습의 하얀색 독수리가, 역시 하얀색 보석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 간사한 인간들이 말이네, 단 한 사람에게는 그토록 충성스럽더란 말이지.”


벨로프가 검집에서 검을 빼어들었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검집을 나온 검의 날은 오랜 세월 동안 어딘가에서 파묻힌 채로 있다가 방금 꺼내 온 것처럼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


“왜 자네에게만 충성을 할까?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의 아들인지, 누구하나 아는 사람이 없는, 그저 청과상을 하고 있는 레이드라는 자에게는, 왜 이곳 주민들은 그토록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걸까? 나는 그게 정말 이상하더군, 자넨 이상하지 않은가?”


레이드의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목 앞에 검날이 다가와 멈추었다.


“왜? 당연히 받아야 할 충성이라,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가?”


검을 든 벨로프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자 검이 레이드의 목젖에 와 닿았다.


“무엇을 원하시오.”


벨로프가 서서히 검을 거두어 검집에 꽂아 넣으며 입을 열었다.


“카니의 목,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의 손에 있는 검 <녹색독사카니>를 원하네.”





“정말 대단하시오 대장.”


비에 흠뻑 젖어 무겁게 내려앉은 로브를 뒤집어 쓴 붉은 머리의 청년이 옆에서 빗방울이 굴러 떨어지고 있는 대머리를 습관처럼 문지르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바라보며 소리치듯이 말했다. 그러나 커다란 덩치의 남자는 앞만 보고 묵묵히 전진 할 뿐 아무런 대꾸의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하얀색 로브로 온 몸을 휘감은 또 다른 청년이, 붉은 머리의 청년 옆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만 참아. 곧, 코넬로 들어선다. 거기서 몸도 말리고, 아니면 하루 더 묵고 비가 그치면 출발하도록 하지. 그래야…….”


거기서 말을 멈춘 청년이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들도 어떻게 따돌려 보고 말이야.”


그의 말에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용병대의 대장 라크도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100여 미터 남짓. 거리를 벌리고서 마치 자신들을 미행하는 사람들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따라오고 있는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비에 홀딱 젖었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계속해서 떠들어 대는 그들에게서는 간혹 믿을 수 없는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고는 했다.

겉모습은 딱, 패망한 귀족인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라크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세 시간 전, 길을 나서던 때의 일을 떠올렸다.






이른 아침, 새벽부터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소리에 눈을 뜬 <은빛도끼 용병대>의 대장, 라크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물에 젖은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한 번 문지른 후에 방문을 열고 나왔다.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끌며 복도를 걷던 그는, 1층 식당에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늦은 밤까지 자신의 용병대원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던 그 자리에 네 명의 남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앞에 놓인 음식들을 아무런 말도 없이 허겁지겁 퍼먹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각각 적게는 두 개에서 많게는 대여섯 개까지 접시들이 쌓여진 채로 놓여 있었다.

잠시 남녀 무리들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크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살금살금 뒷걸음질을 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다, 툭, 무언가에 부딪쳐 앞으로 꼬꾸라질 뻔 한 라크가 겨우 중심을 잡고서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키만큼 큰 키의 여인이 검은 눈동자를 아래로 내려 깔고서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흠흠, 괜한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고서 허리를 펴고 일어선 라크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됐소. 내가 무언가를 찾느라 잠시 다른데 정신이 팔렸소.”


그러나 상대방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저절로 구겨지는 왼쪽 눈을 치켜뜨고서 생각보다 앞서서 튀어나오는 알 수 없는 말을 입 밖으로 쏟아내려는 찰라, 청아한 소녀의 목소리가 온 여관이 떠나가라 울려 퍼졌다.


“아리시아님! 어서 오셔서 식사하세요. 여기 음식 되게 맛있어요.”


누가 봐도 남장을 한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금발의 리아나가 마치 라크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그가 서있는 방향을 향해 나이프를 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서 음식을 퍼먹고 있던 다른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복도 끝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말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보게. 자네, 잠깐 나 좀 보세나.”


옆에 놓여있던 알 수 없는 용도의 작은 수건으로 급히 입을 닦은 말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와 라크 앞으로 다가섰다.


“자네들, 용병이라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라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곳 주인에게 듣자하니 수도에서 오는 길이라고?"


라크의 시선이, 싱글벙글, 입이 귀에까지 찢어진 얼굴로 연신 접시를 나르고 있는 주인에게로 잠시 향했다가 돌아왔다.


"그렇습니다."


"일거리를 찾고 있다던데?”


“뭐, 좀…….”


갑작스럽게 말러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 그의 입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이 흐지부지 세어 나오다가 사라졌다.


“괜찮다면 의뢰를 하고 싶네.”


“무슨…… 일이십니까?”


제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삐뚫어진 채로 반쯤 돌아간 얼굴로 곁눈질을 보내는 라크였지만, 말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린 수도로 간다네. 근데, 초행길이고, 위험한 길이 될 듯해서 빠른 길을 잡아 이끌어 줄 전문가가 필요한데 마침 자네들 이야기를 들어서 말이네.”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아리사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래봐야 그 표정이 그 표정이라 티도 잘 나지 않았지만.


“용병이라니요?”


말러의 얼굴이 아리시아에게로 옮겨졌다.


“어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 도보로 간다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일려면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길을 이끌어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요.”


아리시아에게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용이 많이 들텐데요.”


말러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아리시아에게 속삭였다.


“마차를 사는 것 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순간 할말을 잃은 아리시아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려는데 복도 안쪽에서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틈새로 끼어들었다.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수도로 가는 것은 맞지만 중간에 꼭 들려야만 할 곳이 있어요.”


말러와 아리시아의 시선이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붉은 머리의 청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 갈색머리의 청년과 검은머리의 여검사를 비롯해 서너 명의 인원이 더 몰려 나왔다.


“대장이 잠깐 잊은 모양인데 우린 리비안에 볼 일이 있잖아요?”


하얀 로브를 입은 청년이 다가오며 말했다.


“리비안이라고 했나?”


말러가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왠지 밝아진 말러의 표정을 보고서는 무언가 실수를 깨달은 하얀로브의 청년이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수도가 아니라면, 리비안 까지 만이라도 함께 했으면 싶네. 그렇지요. 아리시아님?”


방긋 미소를 지어보이는 말러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리시아가 고개를 돌리고는 말러님,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아니. 리비안까지도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자작님.”


아리시아가 말러의 곁을 지나쳐 갈 틈도 없이 라크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말을 마치며 고개를 숙이던 라크 역시도 다음에 이어진 말에 인상이 구겨졌다.


“잠깐, 난 찬성이야.”


반질반질 빛나는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육중한 몸을 돌리려던 라크가, 조용하게 울려온 목소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붉은 머리의 청년의 뒤에서 지금까지 아무런 말없이 서 있던 검은 머리의 여인에게 모두의 시선이 옮겨졌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서 있던 라크가 그녀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려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원들의 시선은 여전히 여인을 향해 모아져 있었다.


“ 메르넨, 아무리 너라도 이번은 따라 줄 수가 없다.”


하얀 로브의 청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연해, 더 이상 끼어드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대장, 아니 내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작님 저희는 이번 의뢰 거절합니다.”


획, 몸을 돌리고서 방안으로 사라지는 붉은 머리의 청년을 바라보던 여검사 메르넨이, 말러의 옆에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시아를 잠시 바라보고는, 자신도 몸을 돌려 조금 전, 붉은 머리의 청년이 사라진 방문을 열고 몸을 감췄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에 다시 고개를 돌린 라크가 말러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린 의뢰를 거절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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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3 9 18쪽
28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4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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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2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3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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