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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얼음의 아리시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을령
작품등록일 :
2015.03.16 00:00
최근연재일 :
2019.04.0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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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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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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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DUMMY

코넬의 중심가를 가르는 대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면, 카델백작의 영주성을 끝으로 건물들이 거의 사라지고,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코넬의 서쪽 끝에 자리한 이 지역에는 보통, 코넬에 거주하고 있는 부호들이 자신들의 저택을 지어놓거나 영주와 그의 친척들이 머무는 작은 별장들과 낚시터들을 모아 지어놓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깊숙이 자리한 숲의 끝에는, 코넬의 주민들이 빛의 신, 올레아니스에게 예배를 올리기 위해 지어진 신전이 존재했다. 영주성보다도 더 높은 곳, 마치 작은 산을 옮겨 놓은 것만 같은 그곳에는 오솔길이 길게 위로 이어져 있고, 그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면 곧,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서,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구를 들고 있는 여인의 흉상이 하나 나오는데 그 흉상의 주인공이 바로 빛의 주신 <올레아니스 여신>이다.

그리고 그 여신상을 지나 몇 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면 비로소 동산의 정상에 서게 되는데 그 정상에는, 둥근모양의 분수대가 있고, 그 분수대의 중앙에, 이번에는 두 손을 앞으로 내 뻗고서 무릎을 굽힌 채로 앉아 있는 반라의 여인상이 놓여있었다. 그 여인상의 두 손에서 계속해서 물줄기가 흘러 분수대의 물을 채우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물의 여신 오스테아의 신전임을 알리는 표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물을 쏟아내고 있는 여신상을 바라보던 르마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분수대 위에 자리한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둥근 돔형식의 지붕을 얹은, 팔각형의 건물은, 보통 건물의 3층 정도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고, 각 면마다 하나씩, 모두 여덟 개의 문이 아무런 막힘없이 뚫려 어느 때라도 아무나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르마스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 중 한 개의 입구로 들어갔다. 아리시아는 잠시 신전 주의의 풍경을 한 번 휘둘러 바라보고는 르마스의 뒤를 따랐다.

짧은 복도를 지나자 수많은 의자들이 동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예배당에 들어섰다. 그 커다란 예배당 안에는 서너 개의 촛불만이 밝혀져 있었다.

르마스와 아리시아가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있던 서너 명의, 빛의 사제들이 어둠의 사제복을 입고 들어서는 르마스를 발견하고는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르마스는 그런 그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거침없는 걸음으로 계단을 지나 예배당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단상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던 하얀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렁이고 있는 사제들을 향해 손짓을 보냈다. 그녀의 손짓에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던 빛의 사제들이 밀물처럼 밖으로 사라졌다.

사제들이 모두 모습을 감추자 여인이 르마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금빛 태양의 문양이 그려진 빛의 신관의 관을 머리에 눌러 쓴 여사제는, 얼굴만을 내놓은 채 모두 가려지도록 만들어진 하얀 색의 신관복을 단정하게 한 번 매만지고는 르마스와 아리시아에게로 다가왔다. 눈가에 주름이 꼭, 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난 중년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르마스가 들고 있는 푸른색 지팡이를 잠시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먼저 입을 열었다.


“물의 여신 오스테아님을 모시는 빛의 사제 헤르나라고 합니다.”


그녀가 입고 있는 흰색 사제복에는 다섯 개의, 황금빛 태양 모양의 엠블렘이 달려 있었다.


“미안하게 됐어. 이쪽에는 어둠의 신전이 없어서…….”


르마스는 별 소개 없이,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말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 르마스의 태도를 대하는 헤르나 역시 익숙한 듯이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그를 대했다. 그리고는 아리시아에게 잠시 고개를 돌려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한 뒤에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인사를 건넬 순간을 놓쳐버린 아리시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뒤를 따르는 르마스의 뒤를 따랐다.


“나를 알고 있나?”


그녀의 뒤를 따르며 르마스가 물었다.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래?”


“<베브의 서> 사건 때였습니다.”


“그렇군.”


르마스에게서는 짧은 대답만 이어졌다.


“기억하지 못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그 때, 전, 제2사제에 불과했으니까요.”


르마스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자 대화는 거기에서 잠시 끊어졌다. 그 사이, 긴 복도 끝을 한참 걸어 온 헤르나는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방은 음식을 쌓아놓는 창고인듯, 각종 야채며, 밀가루부대같은 것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누군가가 치워 놓았는지 한 쪽 벽만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져 있었는데 헤르나는 그 곳에 서서 몇 개의 벽돌을 빼내고는 다시 그 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당겼다. 그러자 창고 벽이 열리며, 보통 사람의 키 반 정도 높이의 비밀의 문이 열렸다. 헤르나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그곳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자 이번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연의 동굴이 나타났다. 잠시 뒤를 돌아보던 헤르나가 옆에 놓여있던 횃불에 불을 붙여 들고는 앞장서서 다시 아무말 없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동굴 안에는 세 사람의 발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울리던 세 사람의 구둣발소리가 멈추고, 다시 그 앞에 작은 석문이 나타났다.

석문에는 고양이의 눈을 가진 박쥐처럼 생긴 동물이, 양손에 둥근 모양의 구를 들고서, 자신의 몸의 수십 배는 될 것 같은 커다랗고 긴 날개를 펴고서 날아오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것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유독 그 동물이 들고 있는 두 개의 구만은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먼지로 거의 덮여 있어 그 문양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음산한 기운을 품고 있어서, 어디를 봐도 빛의 신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각상이었다.

헤르나가 석문의 가운데에 자신의 두 손을 얹었다. 그때 그런 그녀의 몸을 밀치며 르마스가 다가갔다.


“내가 하지.”


옆으로 밀려난 헤르나는 그러나 아무런 말없이 르마스를 지켜보기만 했다. 곧, 르마스가 박쥐모양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자, 그 미지의 동물이 들고 있던 두 개의 구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작은 기계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문의 틈사이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문에서 손을 뗀 르마스가 헤르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오래 비워 뒀었나보네.”


“이곳은 빛의 신전이니까요.”


아리시아가 곁눈질로 바라보니 웃음을 머금은 헤르나가 석문을 손으로 밀쳐내고서 문을 열었다.


"드시지요."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을 옆에 놓여 있는 모래가 담긴 접시에 박아 넣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사방에서 몇 개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동공 안은, 그러나 여전히 음침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중앙에 둥근 모양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그 마법진의 중앙에는 일미터 남짓, 원형의 뿔이 솟아 올라 있었는데 그 뿔에는 아리시아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룬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르마스가 잠시 그 룬어가 적혀 있는 중앙의 뿔을 바라보고 있자, 헤르나가 그 중앙의 뿔 앞으로 다가가 몸을 돌렸다.


“그럼 신탁을 거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헤르나가 다시 몸을 돌려 중앙의 원통형 뿔 위에 두 손을 얹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같은 소리를 작게 읊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곧, 그녀의 몸이 무너지듯이 마법진 위로 쓰러졌다. 깜짝 놀란 아리시아가 르마스를 바라보니, 르마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방긋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고개를 다시 돌렸다. 아리시아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로 잠시 기다리자 곧, 쓰러졌던 헤르나가 깨어나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가 느리게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워, 꼭, 의지가 없는 인형을 줄로 잡아 올려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돌아 선 그녀는 눈동자가 없는, 온통 흰자위 뿐인 눈을 한 채로 잠시 주위를 살피다가, 르마스를 바라보고는 다시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전혀 다른 남성의 음성이 방안을 울리며 들려왔다.


- 잘 계셨습니까? 세리안님.


“오랜만이야. 어그니스.”


헤르나가, 눈동자 없는 얼굴을 다시 들어올렸다.


- 변함없으신 모습을 뵈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그녀의 고개가 아리시아에게로 옮겨졌다.


“아리시아.”


아무런 설명없이 르마스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아무표정 없는 헤르나, 아니 어그니스의 고개가 다시 르마스에게로 향했다.


- 다른 분을 모시고 오신 것이 정말, 오랜만이로군요.


말을 마친 어그니스가 다시 고개를 아리시아에게로 돌렸다.


- 마계의 동쪽, 하르테론의 땅에서 마왕 하르테론님을 모시고 있는 마족, 어그니스라고 한다.


그의 소개를 들었지만, 아리시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족.

혼란스러움에 그녀의 머릿속 아슈타가 무언가를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었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분석 된 것이 없었다. 그런 그녀는 상관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어그니스가 르마스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 여긴 빛의 신전이군요.


들려오는 목소리도, 주위를 둘러보는 헤르나의 표정도 그다지 변함이 없었지만 희한하게도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부감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응, 세일루니아의 북쪽, 거의 끝이야. 이곳에 어둠의 신전은 없어.”


-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조금 적응이 안 되서 그런 겁니다.


“적응을 하기 싫은 거겠지.”


어그니스는 별 부인 없이 말을 돌렸다.


- 요즘도 케뮤랑크의 검을 지키고 계십니까?


르마스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17년째군요. 여전히 힘들게 사십니다.


표정은 없었지만, 그다지 공손한 느낌은 들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가, 아리시아는 점점 의심스러워 지기만 했다.


“인간들은 다들 그 정도로 힘들게 살아.”


그런 어그니스를 대하는 르마스의 태도도 아리시아가 알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어쩌면 이곳, 신전에 들어선 이후, 줄곧 어딘가 변모된 르마스였다.


- 그러시군요. 뵙고자 청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르마스가 어딘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 눈치 채고 계시겠지만, 케뮤랑크의 검 사건 때 소환 된 마족의 혼이 부활 했습니다.


역시 르마스는 고개만을 살짝 끄덕였다.


- 검을 지킬 아이를 보내 드릴까요?


“아니.”


짧게 대답한 르마스가 아리시아에게 고개를 돌리고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아리시아와 내가 둘이서 지킬 거야.”


아리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르마스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환한 빛이 감돌아서 순간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어그니스의 시선이 아리시아에게로 향했다.


- 너도 같은 생각인가?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아리시아는 어그니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서 조금 멍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런 그녀를, 무표정 속에 분명, 한심스럽다는 기운을 담은 채로 바라보다 어그니스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바람에 아리시아는 적지 않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그니스는 르마스와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 더 물을 실 것은 없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르마스가 지체 없이 말했다.


“바르아의 얼음의 정령, 누구 짓인지 알려 줘.”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어그니스가 입을 열었다.


- 정령왕들도 찾지 못한 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잠시 말을 끊은 어그니스의 고개가 아리시아에게서 잠시 머물렀다가 되돌아왔다.


-마계 남쪽 앙가르데아님의 땅에 있던, 상위 서열의 마족 하나가 얼마 전에 대륙 어딘가로 소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이 순수한 드래곤의 심장이었다고 합니다.


“드래곤의 심장?”


르마스의 질문에 어그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아시겠지만, 근 천 년에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라진 드래곤은 얼마 전 모습을 감춘, 실버드래곤 밖에는 없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습니까?”


아리시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그니스의 고개가 아리시아에게로 향했다.


- 마계의 틈으로 넘어 간 것이 아니다. 정당한 제물을 받고, 신의 법칙에 따라 소환된 이상 우리가 개입하기는 곤란해. 더 이상 말해 줄 수 없다.


그때, 르마스가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드래곤들도 나설지 모르겠군.”


그때, 어그니스, 아니 헤르나의 몸이 잠시 비틀거렸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어그니스가 르마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세리안님, 페르가피아가 소멸되었습니다.


잠시 골똘히 딴 생각에 빠져있던 르마스가 조금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반마족이 이 땅에 태어 난지 7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중에 자신을 제외하고 그 첫 번째 반마족이었던 자가 페르가피아였다. 마족의 혼이 깃들었다고 해도, 인간. 보통의 인간보다는 오래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할 수는 없었다.


“그럴 때도 됐군. 알겠어."


르마스의 얼굴이 다시 냉정하게 돌아왔다.


- 그런데…… 세리안님,


어그니스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르마스를 바라보았다.


- 페르가피아가 소멸 될 때, 폭주를 일으켰습니다.


“폭……주?”


어그니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말했다. 르마스의 얼굴에 다시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그니스가 말을 이었다.


- 마왕께서 뵙고자 하십니다.


“나중에 한 번 찾아뵙도록 하지.”


르마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헤르나의 몸이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곧, 온몸을 고통스럽게 비틀며 헤르나가 눈을 떴다.

입으로 세어 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참으며 그녀는 고통을 참고 있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상기되고 땀이 온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간 르마스가 푸른색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고서 낮게 주문을 외웠다. 곧, 그의 푸른색 지팡이에 하얀빛이 맺히더니 헤르나에게로 쏟아지듯이 날아갔다.


“매도르 라브라 제 샤므오브………….”


조금 긴 주문이었는데, 마법과 달리 주문을 외운 중에도 계속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새하얀 빛이 그녀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평온한 기운이 찾아왔다. 자리에서 일어서 주름진 옷을 몇 번 다듬어 털고서 그녀는 르마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르마스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헤르나의 배웅을 받으며 신전을 나온 아리시아가 물의 여신이 물을 쏟아내고 있는 분수대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하늘을 올려다 본 르마스가 다시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곧, 말러와 그 딸이 깨어 날 시간이야. 어서 가자.”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아?”


르마스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말해줄게. 뭐가 궁금하지?”


“르마스는, 아니 세리안이지? 세리안은 누구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르마스가 고개를 돌렸다.


“700년 전에 내 아버지인 마계의 왕 하르테론이, 인간 여인을 아내로 맞아 나를 낳았어.”


간단하게 말을 마친 르마스가 아리시아를 바라보았다. 아리시아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무수하게 많은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아리시아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르마스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리시아를 바라보며 르마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서 가자, 아리시아, 너무 늦었어.”


말을 마친 르마스는, 비탈진 언덕길을 말 그대로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르마스의 손을 잡고 나란히 달려 가던 아리시아가, 얼마 후 점점 높아지는 속도에 못이겨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곧 점점 거리가 벌어지자 아리시아의 손이 르마스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그리고 아리시아의 손이 거의 빠져나왔을 때 르마스가 그런 그녀의 손을 다시 꼭 부여 잡았다.


“너도 나만큼 빨리 달릴 수 있어 아리시아. 바람을 느껴.”


고개를 돌려 아리시아를 바라보는 르마스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백금발로 변해 있었다. 그의 청록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리시아. 얼음의 정령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알아?”


알고 있었다. 얼음의 정령은 물의 정령왕 아미스와 바람의 정령왕 라이아의 작품이다. 아리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리시아에게는 세 개의 혼이 있어. 바람의 정령의 혼과 물의 정령의 혼, 그리고 인간의 혼.”


세 개의 혼?

하지만, 난…….


“ 그러니까 아리시아, 바람을 느끼…….”


그러나 르마스는 거기서 말을 더 이어가지 못했다. 그의 손을 뿌리친 아리시아가 그 자리에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르마스가 빠른 속도로 아리시아의 앞으로 되돌아왔다.


“아리시아?”


고개를 숙인 아리시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르마스. 인간의 혼은 가볍다고 했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르마스는 아리시아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작게 고개만 끄덕여 답했다.


“르마스, 난…….”


아리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생기를 잃은 검은 색의 눈동자가 르마스의 청록색 눈동자 안으로 들어왔다.


“난, 이미 한 번, 죽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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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제10장 - 당신이 사라 시헤리드로군요(1) 15.05.26 484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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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5) +1 15.05.15 401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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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3) 15.05.12 352 8 24쪽
58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2) +1 15.05.05 428 4 20쪽
57 제9장 - 어둠의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1) +1 15.05.04 484 6 18쪽
56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0) +2 15.05.03 464 1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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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8장 - 모두 제국으로 가는 건가요?(1) +2 15.04.24 477 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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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5) +2 15.04.11 501 8 16쪽
33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4) 15.04.10 463 13 16쪽
32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3) +1 15.04.09 591 11 15쪽
31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2) +3 15.04.08 408 11 11쪽
30 제6장 - 므로도스가의 마법사이십니까?(1) +1 15.04.07 626 12 17쪽
29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8) +1 15.04.06 562 9 18쪽
»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7) 15.04.05 504 13 18쪽
27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6) +1 15.04.04 449 11 14쪽
26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5) +1 15.04.03 421 12 17쪽
25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4) +2 15.04.02 550 14 17쪽
24 제5장 - 제게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없나요?(3) +1 15.04.01 463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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