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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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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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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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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3화

DUMMY

가고일 모양의 석상들은 사실 이 비밀 문과 연관이 있었다.

가고일이 아닌 석상을 부수게 되면 벽이 조금씩 무너지는데, 그렇게 석상이 총 5개가 부서지면 벽이 완전히 허물어져 비밀 공간에 진입하지 못하게 된다.

다만 눈으로 봤을 때는 이것이 석상인지 가고일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운이 없으면 보스 방까지 와서도 보상을 얻지 못하고 허탕 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무튼 원래 그들의 계획은 석상을 둘러싼 후 배쉬를 써서 가고일이 맞는지 아닌지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가고일을 찾아내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배쉬를 사용해 가고일의 발을 묶어두며 공략했을 것인데, 이 마음씨 넓은 내가 어떻게 그런 것을 지켜보고 있겠는가.

금안으로 어떤 것이 진짜 가고일인지 훤히 꿰뚫고 있는데, 죽 쒀서 개 줄 생각은 없었다.


비밀 문이 열린 곳에 들어가니 좁은 갱도가 앞으로 뻗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니, 머지않아 마주친 것은 이 동굴의 끝.

굴 벽면에는 이 던전의 최종 보상이라 할 수 있는 광석이 박혀있었다.


“...근데 이거 어떻게 캐지.”


사실 늑대 동굴에 들어올 계획이 없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된 상황이라, 곡괭이 같은 것은 준비하지도 못했다.


“부수면 되는 것 아닌가.”


“뭐로?”


갑자기 전투 망치를 드는 로니.

곧장 광석 앞으로 다가가더니.


쾅! 쾅! 쾅!


냅다 광석을 부수기 시작했다.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광석들을 모두 때려 부순 후, 우리는 주섬주섬 이것들을 모두 인벤에 챙겨 넣었다.

당장 이곳에서 제련할 순 없으니, 대장간에 가서 제련을 의뢰할 셈.


보상도 다 챙겼으니, 우리는 포탈을 타고 다시 필드로 나왔다.

그리 던전 안에 오래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바깥 하늘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이제 뭘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으니.


“디오. 이어서 사냥할 것인가?”


역시나 사냥 중독인 로니가 사냥 여부를 물어왔다.


“아니, 그러지 말고.”


나는 맵을 켜 현재 위치를 한번 확인했다.


“여기로 가자.”


내가 가리킨 곳은 미소바가 찍어주었던 낚시 명당.

바위산 옆 숲속에 있는 연못이었는데,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거긴 연못이 아닌가.”


“맞아.”


“별로 재미없을 것 같군.”


“재미없는 거 하러 가는 거야.”


그렇게 우리는 산을 돌아 숲으로 들어가,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연못에 도착했다.

수영장 절반 정도 크기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연못.

하지만 그런 아담함이 오히려 이런 숲속의 정취와 잘 어울렸다.

마침 주변에 앉기 좋은 크기의 돌덩이가 두 개 있었다.

돌덩이를 의자 삼아 앉은 후, 나는 인벤에서 낚싯대를 꺼냈다.


“자. 받아.”


“낚시라. 생각지도 못했군.”


고분고분 낚싯대를 받아든 로니.

내가 먼저 낚싯대를 드리우자 로니도 따라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리고 잠시 이어진 침묵.


“......”


“......”


하지만 이 침묵이 답답했을까.


“디오. 차라리 이 시간에 사냥을 하는 게 어떤가?”


“아니. 사냥 안 하려고 여기 온 거야.”


“이해할 수 없군.”


다시 낚싯대를 바라보는 로니.


“로니. 너 경마라고 알아?”


“처음 듣는다.”


“내가 사는 세계에는 경마라는 게 있어. 쉽게 말해 말타기 경주 같은 거지.”


“마상시합 같은 것인가?”


“아니. 그거 말고. 그냥 달리기 시합 같은 거야. 대신 말을 타고 하는 거지. 출발선에 다 같이 서 있다가 동시에 달려나가는 거야. 그리고 결승선까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가 이기는 거지.”


“그렇군.”


“그런데 그 말들도 종류가 있어. 선행마는 가장 선두로 치고 나가는 말이야. 끝까지 1위로 달리려고 하는 말이지. 그리고 선입마라는 것도 있어. 가장 선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선두에서 달리는 말이지. 근데 또 재밌는 게 있어. 추입마라는 게 있거든.”


“그건 어떤 말인가.”


“처음엔 좀 뒤처져서 달리는 거야. 중간이나 후방에. 그렇게 앞서 나가는 녀석들을 보며 적당히 달리는 거지.”


“힘이 약해서 그런 것 아닌가?”


“아니.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어. 대신에 체력을 비축하는 거야.”


“그렇군.”


“그러다가 슬슬 결승선이 다가오면 모아놨던 체력을 쏟아내는 거야. 후방에 있었던 말이 중간으로 치고 오고. 중간에서 선두로. 선두에서도 가장 앞으로 치고 나오지.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우승하는 거고.”


“후후. 재밌군.”


“너는 그런 거랑 비슷한 적이 없었나? 처음엔 약했는데 점점 강해졌다든지 하는 거 말이야.”


“물론 내게도 적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모두 물리쳤지. 그렇게 오르고 오르고 또 올랐다. 마침내 정점에 올라섰지.”


“정점이라...”


나는 그 말에 문득 미소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로니. 외롭진 않아?”


그러자 로니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한때는. 하지만 그것 역시 내가 짊어져야 할 몫. 고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자는 정점에 설 자격이 없다.”


“그렇구나.”


잠시 로니의 눈을 보니, 왠지 그의 마음속 한켠에는 아주 오래된 고독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이상하게 추입마가 그렇게 멋있더라고. 음... 살다 보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항상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있어. 돈이 많든, 잘생겼든, 똑똑하든 뭐든 간에. 여기도 마찬가지야. 이미 그런 사람들이 있지.”


Heaven & Hell이 오픈한 지도 어느덧 두 달.

그사이에 벌써 한참을 치고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억 단위로 현금을 때려 부은 이들.

혹은 대형 길드를 창설한 이들.


사실 오늘 그 길드 인간들과 부딪히며 느낀 점이 있었다.

선이든 악이든, 결국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비록 이번엔 기지를 발휘해 녀석들을 쫓아냈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후방에 있는 추입마 신세인데, 과연 앞으로도 쭉쭉 치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사냥을 좀 쉬라고 로니를 데려왔지만, 사실은 복잡한 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일이 마음에 걸렸나 보군.”


“......”


“후후후. 디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네가 그 추입마처럼 뒤처져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고.”


“...맞아.”


“그런 생각이 든 이유가 뭔지 아나?”


“뭔데?”


“네가 약하기 때문이다.”


“......”


“힘이라는 것은 그렇다. 강자는 그 무엇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약자는 늘 불안해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산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 묻지. 네가 약자라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강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지.”


“잘 아는군. 당장 힘이 없다 해도 어떻게든 노력해서 그것을 길러내야 하는 법. 발은 땅에 딛고 있되 눈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강자가 되는 주요한 덕목이다.”


하나같이 반박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무리를 짓는 것 또한 마찬가지. 나약한 자는 무리에 속하려 하지만 강인한 자는 무리를 다스리려 한다. 하지만 딱히 무리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 본인이 압도적으로 강하면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너는 들쥐 무리를 두려워하는 사자를 본 적이 있나?”


“아니.”


“그 수가 수천이건 수만이건 상관없다. 사자에겐 그래 봤자 쥐새끼들일 뿐.”


“......”


“그러니 강해져라. 말하지 않았는가. 네가 강해져야 나 역시 본래 힘을 되찾을 수 있다고. 이렇게 위축되어있는 모습을 보니 너답지 않군.”


“아니 위축까진 아니고, 그냥 잠시 그런 생각이 든거지.”


“후후후.”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로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디오. 네가 말한 것에 비유하면 나는 선행마. 이미 정점에 섰던 자다. 하지만 다시 내려왔지. 너와 계약을 한 이후로 말이다.”


“그렇군...”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포기했다. 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어찌 보면 가장 앞에 있던 말이 자진해서 가장 뒤로 물러난 꼴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랑 계약한 거야?”


“한계가 있었다. 단지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한계. 해서 뒤로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날개를 달기 위해서 말이다.”


“날개?”


“그렇다.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날개. 어쨌든 나는 날개를 달게 되었다. 비록 작지만, 그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는 날개를... 그 날개가 바로 디오, 너인 셈이지.”


“내가 날개라...”


“물론 그 날개는 앞으로 점점 커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말 또한 원래의 힘을 되찾겠지.”


“추입마가 날개를 단 거네.”


“그렇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페가수스 같기도 하군. 어쨌든 말은 다시 힘차게 달릴 것이다. 모두를 제치고 또 한 번 가장 앞에서 달리겠지. 그리고 그 추진력에 힘입어 날개를 활짝 펴 한계를 뛰어넘고 날아오를 것이다.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꽤나 여운이 남는 표현이었다.

경마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흘러올 줄이야.


“그래. 그렇게 돼야지. 아아! 오늘 이상하게 나답지 않게 조금 그랬네. 아무튼 강해질 거야. 걱정 마. 그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정상에 한번은 올라 봐야지.”


그때 드리웠던 낚싯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입질 온다.”


잠시 입질을 지켜본 후, 나는 빠르게 낚싯대를 끌어당겼다.


“오. 물었네.”


바늘에 걸려 파닥이는 물고기.

내 쪽으로 끌어와 녀석을 손에 쥐자.


펑.


하얀 연기가 되어 흩어지더니, 손에는 대신 마나 허브가 남아 있었다.


“허브도 주는구나.”


Heaven & Hell에서 낚시는 사실 아이템을 건지는 스킬이다.

물고기 형태로 올라오긴 하지만, 손에 잡으면 랜덤하게 아이템으로 바뀌게 된다.

골드부터 잡템까지 온갖 아이템으로 변하기에, 사실상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 차라리 포션이나 만들어야겠다. 한탄하고 있을 시간에 뭐라도 하는 게 좋겠지.”


“후후. 기운을 차렸군,”


“원래 기운 있었어. 잠깐 그랬던 거지.”


낚시에 흥미가 없어 하는 로니를 위해서도 오늘은 일찍 일어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나는 포션 만들러 갈 건데 너는?”


“생각 좀 해봐야겠군.”


“그래. 포션 만들면 창고에 넣어둘 테니까 알아서 꺼내 써.”


“알겠다.”


다시 낚싯대를 거둔 나와 로니.

그렇게 나는 포션을 만들러 여관방으로 향했고, 로니는 또 어디론가 사냥을 하러 떠났다.


.

.

.


“얘는 또 어디에 간 걸까.”


늘 그렇듯, 접속하면 항상 먼저 로니의 위치를 확인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리 맵을 찾아봐도 로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 말은, 던전 안에 있다는 뜻.

때가 되면 오겠지 싶어 나는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일단 창고 먼저 확인하기.


“크... 진짜 성실성 하나는 인정한다.”


매번 그렇지만, 자고 나서 확인하면 오크 장군의 방어구가 하나씩 늘어있었다.

이럴 땐 힘들게 포션을 만든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강화를 하는 날.

이 정도면 충분히 방어구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해서 창고에 있는 오크 장군 템들을 모두 인벤에 넣고 다시 여관방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푸드덕.


“...뭐야?”


어디선가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내 어깨 위로 날아왔다.

제비만 한 크기의 검은 새.

나는 조심스레 녀석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 검지 위로 올라온 녀석.


“귀엽네.”


흡사 까마귀를 축소시킨 것 같은 모습이었다.

부리까지도 시커먼 녀석.

헌데 두 눈만은 금빛으로 반짝였다.

마치 생긴 게 로니를 닮았-


“디오. 왔으면 연락해라.”


“으악!”


깜짝이야!

로니 목소리가 왜 여기서 나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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