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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연재수 :
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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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글자수 :
572,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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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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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9화

DUMMY

“...아무튼 감사합니다. 의뢰비는 충분히 드릴게요.”


“아니, 괜찮소! 덕분에 나도 숙련도를 올릴 수 있지 않았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러시면 제가 불편하다니깐요.”


“허허... 그런...”


그가 방어구를 올린 것처럼 나 역시 교환창에 넉넉한 양의 골드를 올렸다.

그렇게 거래가 완료된 후, 나는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진짜... 블랙스미스에 진심이시네요.”


“그렇소. 마음이 가는 것에는 진심을 쏟는 편이라오.”

공방이라고는 하지만 무구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업대 위에는 장식용으로 만든 듯한 금속 조형물들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내 눈길이 끌렸다.


“이것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맞소. 하하. 꽤 귀엽지 않소?”


다름 아닌 고양이 모양의 조형물이었다.


“...고양이 보러 오라고 했던 게 진짜였네요.”


“물론이오. 농담인 줄 아셨소?”


난 무슨 라면 먹고 가라는 거랑 똑같은 말인 줄 알았지.


“블랙스미스에 온 힘을 쏟지만 그렇다고 늘 장비만 만드는 건 아니라오. 때로는 저런 것도 만들기도 하지. 쓸모는 없어도 나름의 재미가 있소. 귀엽기도 하고 말이오.”


그가 만든 조형물들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들이 많았다.

드워프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랄까.


“도형 같은 것도 없을 텐데 그냥 만드시는 건가요?”


“그렇소. 도형이 뭐가 필요하겠소? 그냥 눈대중으로 만드는 것이지. 이참에 한 번 보여주겠소.”


그러면서 그는 작업 공간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선 집게로 철 괴를 집어 화덕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빨갛게 달구어진 괴를 다시 꺼내 모루 위에 올려놓더니 곧바로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캉! 카앙! 캉!


경쾌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고작 몇 번밖에 두들기지 않았지만 철 괴는 길고 뾰족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틀이 잡히자 불카누스는 좀 더 섬세하게 이를 두들겼다.

그리고 모양이 다 갖춰지자 그는 나무 자루에다가 이것을 박아 넣었다.

다름 아닌 곡괭이였다.


“대충 이런 것이라오. 곡괭이쯤은 눈감고도 만들 수 있지. 자, 받으시오.”


곡괭이를 건네받은 나는 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 꼼꼼히 볼 건 아니오. 대충 만든 곡괭이가 뭐 그리 좋겠소?”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이는 절대 대충 만든 것이 아니었다.


흠잡을 데 없는 곡괭이였다.

이 정도면 상점표 곡괭이보다 훨씬 뛰어난 물건이었다.


“...혹시 곡괭이 말고 무기 만드는 것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안 될 게 뭐 있소? 내 당장 보여주리다!”


불카누스는 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곤 곧바로 작업대 위에 있던 콘 괴를 화덕 안에 집어넣었다.


괴가 빨갛게 달궈지자 그는 집게로 다시 이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또 한 번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두들길 때마다 괴가 납작해지며 점차 길게 늘어났다.


식을 때쯤이면 다시 이를 화덕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쇳덩이가 달아오르면 능숙한 솜씨로 이를 꺼내 경쾌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괴였던 것은 어느덧 롱소드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불카누스가 작업에 몰두해 있는 동안 나는 금안으로 그를 한번 살펴보았다.


[블랙스미스] [중급]

숙련도 9,256/10,000


숙련도가 벌써 9천을 넘어있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속도였다.


현재 고급 블랙스미스에 도달한 자는 전 서버에 단 세 명뿐이었다.

모두 대형 길드에 속한 자들이었는데, 그들 역시 고급에 도달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정도 속도면 네 번째로 고급에 도달하는 자는 불카누스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무소속인 상태로 말이다.

그리고.


“......!”


그의 인벤을 살펴보니 인벤 대부분이 아콘 괴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소지하고 있는 골드는 무려 450만 골드.

어찌 된 게 지난번에 봤을 때 보다 훨씬 늘어나 있었다.


...뭘까?

도대체 현실에서 뭐 하는 양반이길래 이렇게 돈이 많은 걸까?


내가 놀라건 말건 그는 블랙스미스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망치질을 할 때마다 불꽃이 튀었는데, 그의 맑은 눈에서도 열정의 불꽃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롱소드가 완성되었다.

그는 가볍게 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충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오. 볼 만은 했소?”


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게임상이긴 해도 이 정도 실력이면 가히 명장이라 불릴 수준이었다.


“...솜씨가 장난이 아니시네요.”


“하하! 솜씨는 무슨. 그저 습관처럼 해온 쇠 질일 뿐이오. 어디 계속 보시겠소?”


“네.”


“좋소. 그럼 이번엔 헬름을 만들어 보겠소.”


불카누스는 또 한 번 콘 괴를 달군 후 역시나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괴는 순식간에 철판처럼 넓게 퍼졌다.

그러더니 점차 투구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헬름은 롱소드보다 더 빨리 완성되었다.

흐름을 탄 그는 이어 건틀릿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가 돈빨로 숙련도를 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아주 큰 착각이었다.


물론 골드가 많아야 블랙스미스를 원활히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골드로 모든 걸 때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놀라운 솜씨였다.

무소속으로 어떻게 숙련도를 이리 빨리 올렸나 싶었는데 눈으로 직접 보니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이걸 얼마나 하신 거예요?”


“블랙스미스 말이오?”


“네.”


“그냥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거요. 굳이 따진다면 흠... 못해도 몇 년은 된 것 같구려.”


“몇 년이요? 이 게임 오픈한 지 아직 1년이 안 됐는데요?”


“하하! 이거 내가 오해하게 말을 했구려. 사실 이전에 다른 게임을 했었소. 그때도 주로 망치를 두들겼었지. 사실 나는 사냥에는 별 관심이 없었소. 소질도 없고 말이오. 그보다는 쇠를 두들기는 것이 즐거웠소. 물론 지금도 그렇고 말이오.”


“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런 게임 저런 게임 많이 해 왔으니까.


“지겹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그랬소. 기계처럼 반복되는 작업을 하니 말이오. 그래도 할 만은 했소. 이 쇠를 두들길 때만큼은 스트레스가 풀리니 말이오.”


그는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남들에게는 처음 하는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는 일을 하고 있소.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더욱 블랙스미스에 몰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소. 망치질을 하는 동안은 잡념이 생기지 않으니 말이오.”


“...그렇군요.”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해도 되겠소?”


“그럼요. 하세요.”


이에 불카누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어릴 적부터 말이오, 나는 아주 치열한 인생을 살아왔소. 근심 걱정 없이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 때부터 말이오.”


“......”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소.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꿈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오. 아, 물론 지금은 꿈을 이뤘소. 하하하!”


호탕한 척했지만 그윽한 그의 눈빛에서 굴곡진 지난 삶의 자취가 엿보이는 듯했다.


“힘드셨겠네요.”


“괜찮소. 이미 다 지난 일이니...”


씁쓸한 미소와 함께 그는 미화된 추억을 곱씹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반복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참으로 지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라오. 지나고 보면 그걸 어떻게 했나 싶소.”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Heaven & Hell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려면 수없이 반복되는 노가다를 해야 하니 말이다.


“아무튼 내가 선택한 길이니 꾹꾹 참아가며 버텨냈소. 물론 그 덕에 꿈을 이룰 수 있었지... 이 반복되는 망치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다 그때 길러진 습관 덕분이라오.”


평소 남에게 관심이 없는 나지만 새삼 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현실 세계에서 불카누스는 어떤 사람일까?


“하하, 이것 참. 하다 보니 주책맞게 너무 말을 많이 했구려. 바쁘신 몸일 텐데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 아니오?”


“아니에요, 그런 건.”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근데 로니가 기다리고 있어서 가보긴 해야겠네요.”


“그렇구려.”


슬슬 떠날 준비를 하며 나는 작업대 위에 곡괭이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불카누스가 말했다.


“곡괭이는 가져가시오. 내 공방의 첫 손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오.”


“그래요? 그럼... 사양하진 않을게요. 고마워요.”


“하하. 고맙기는 무슨. 잘 써주기만 한다면 오히려 내가 더 고맙소.”


잘 만들어진 곡괭이를 인벤에 집어넣으며 나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공방 구경 잘했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봬요.”


“알겠소. 조심히 잘 살펴 가시오.”


“광석 모으면 또 연락드릴게요. 아, 그리고.”


내가 뜸을 들이자 그는 눈을 깜빡이며 내가 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에 제 아지트도 구경 한번 시켜 드릴게요. 정확히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저, 정말이오? 정말 나를 초대해 준다 이 말이오?!”


“네.”


“하하하! 이것 참 크나큰 영광이오!”


뭔 또 영광까지야...


초대하겠다는 나의 말에 불카누스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뭐가 저리 좋은 걸까?


아무튼 그렇게 작별인사를 나눈 후 나는 공방을 나와 다시 내 아지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로니와 함께 오늘의 목적지인 어둠의 전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전당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지도를 열어 1층의 상황을 먼저 살폈다.


“...뭐야 또 이것들은?”


보스 공략이 목표였기에 곧장 3층으로 내려가려 했지만, 1층부터 카오 녀석들이 또다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도 지난번과 같이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에서 말이다.


“설마 또 살모사 자식들인가...”


연옥에서 그렇게 호되게 당해놓고 또 이 짓을 한다고?

허나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고스트 좀 모으자, 로니.”


시간이 좀 걸릴 뿐, 지난번처럼 한다면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녀석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집행자만 골라잡으며 레드 고스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1층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니 수십이 넘는 고스트를 손쉽게 모을 수 있었다.


숫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니 우리는 카오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저 멀리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과 함께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살모사가 아니네?”


카오들이긴 했지만 살모사 녀석들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길드 문양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으로 보아 유명하지 않은 중소규모의 카오 길드인 듯했다.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살모사 녀석들의 공백을 또 다른 녀석들이 채우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카오 새끼들...


“야, 이제 저리로 가라. 저기 뜯어 먹을 거 많네.”


내가 손으로 카오 녀석들이 있는 곳을 가리키자 고스트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곧장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어? 형님? 저게 뭐죠?”


“뭐가?”


뒤늦게 이를 발견한 녀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것이 고스트 수십이 뭉친 것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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