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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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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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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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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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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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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화

DUMMY

오후 6시 55분.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편의점 알바생인 나는 매점 구석의 작은 관리실 안에서 CCTV 화면을 보며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따릉.


때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대시간에 맞춰 도착한 사장님.

나는 관리실 문을 열고 나가 사장님을 맞이했다.


“오셨어요?”


“응. 아유... 오늘 날이 많이 춥네. 새해부터 왜 이렇게 추운가 몰라.”


“올겨울 들어 오늘이 제일 춥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구먼. 그래, 뭐 딱히 별다른 일 없었지?”


“네. 늘 똑같죠. 뭐.”


“그려. 오늘도 고생 많았다.”


“뭘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퇴근준비를 서두르며, 나는 방금 유통기한이 지난 비빔밥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잠깐! 그게 오늘 저녁이야?”


폐기로 나오는 도시락은 편의점 알바생에겐 유용한 양식이다.

하지만 일흔 살 노인의 눈엔 그저 빈약하기 그지없는 군것질거리로 보이는 듯했다.


“그것만 먹지 말고 이것도 가져가서 먹어. 그리고...”


사장님은 바나나가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건넸다.

그러면서 주머니를 뒤져 반으로 접힌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강제로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그래도 새핸데 너무 부실하게 먹지 말고. 가다가 차라리 뜨끈한 국밥이라도 먹고 가.”


“뭘 또 이런 걸 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날은 춥지만, 인정은 따뜻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을 전한 후, 나는 곧장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뿜듯, 허연 입김을 뿜어대며 걸은 지 10분.

빌라촌이라 건물이 다들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그중에는 나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있었다.


2층에 위치한 12평짜리 투룸.

넓진 않아도 혼자 살기엔 불편함이 없었다.

아직 대출금이 남아있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곧바로 불을 켜며 내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파다보나. 별일 없었지?”


“네. 다녀오셨습니까? 현재 온도는 24도. 습도 30%. 실내가 건조하여 습도를 올리는 게 좋겠습니다.”


바퀴가 달린 작은 드럼통 형태의 단순한 로봇.

청소 기능도 있는 나의 말벗이자 도우미인 ‘파다보나’였다.


출출해진 나는 곧장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넣고 돌렸다.

그리고 자취생의 필수템인 김도 한 봉지 미리 까 놓았다.


띠링!


금세 2분이 지났다.

도시락을 꺼낸 후 나는 곧바로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이를 비빈 후 크게 한 입 떠 넣었다.


식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식으로 바나나까지 마무리한 나는 곧장 옷을 벗어 세탁기에 넣은 후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솨아아아.


샤워호스에서 쏟아져 내리는 따뜻한 물.

피곤함을 씻어내리며 샤워를 마친 나는 대충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헤어드라이어를 쓰지 않는다.

그것은 남자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임에도 거실에는 제법 큰 선풍기가 나와 있었다.


곧장 강풍으로 튼 후 나는 내 몸 구석구석 전부 말려주었다.

덕분에 집안의 습도는 조금 더 올라갔으리라.

뽀송뽀송하게 다시 태어난 나는 제2의 피부와도 같은 늘 입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파다보나의 머리를 쳐다보니.


PM 07:57


곧 시작이군.

경건하게 냉수를 한잔 들이킨 후 나는 작은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


방안을 채운 거대한 캡슐기기.

천만 원을 들여 구입한 이 웅장한 기기는 흡사 거대한 새의 알과 같은 모습이었다.


2030년 1월 1일.

오후 8시에 오픈하는 이 게임을 하기 위해 나는 얌전히 캡슐 안에 들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시작.”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은은한 불빛이 켜지며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플레이어의 체형을 측정 중입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불빛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계정을 형성 중입니다. 눈을 감지 마십시오.]


또 다른 초록색 불빛이 나의 홍채를 훑기 시작했다.

로그인을 위한 일종의 보안 절차.


[계정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캐릭터의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진작에 생각해둔 내 ID.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이를 내뱉었다.


“디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다시 눈을 뜨니, 어느덧 나는 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와 있었다.

어느 평온한 작은 마을.

딱 봐도 모양새가 전형적인 초보자 마을이었다.


나는 내 손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오...”


흡사 현실에서의 나의 손을 보는 듯한 느낌.

얼마나 해상도가 높은지, 현실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감탄하며 내 몸을 살펴보는 동안, 방금 계정을 생성한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름한 초보자용 옷을 입은 똑같은 모습들.

하지만 얼굴들은 제각기 달랐다.


어?

잠깐만...

그러고 보니 캐릭터 생성할 때 커스터마이징도 안 했잖아?

그럼 저 얼굴들이 설마 실제 플레이어들의 얼굴이란 말인가?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낯을 가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미쳤네...

익명성도 보장되지 않는 게임이라고?

뭐 이딴 게임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순간.


[Heaven & Hell에 오신 플레이어 여러분 환영합니다.]


플레이어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각각 떠올랐다.


[엔딩이 존재하는 MMORPG Heaven & Hell! 이 게임의 엔딩을 보는 플레이어에겐 한가지 소원을 이루어줍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모험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메시지창은 잠시 후 사라졌다.


“......”


뭐야 이거?

이게 끝?

엔딩이 있다고?

소원은 또 뭐야?


나만 황당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2030년에 출시된 게임이 어떻게 튜토리얼 하나 없을 수 있지?

수많은 게임을 접했지만 이런 건 옛날 고전 게임에서나 겪었던 상황이다.


어느덧 광장에는 30명 가까운 이들이 서 있었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않던 순간.


“허수아비! 어딘가에 허수아비가 있을 거야!”


누군가가 허수아비를 외치자 많은 이들이 그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타당한 말이다.

보통은 허수아비부터 후려 패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재미가 없지.


모두가 허수아비가 있을 훈련장을 찾아 떠났지만, 나는 곧장 실전에 돌입하기 위해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마을 입구.

이를 지나 밖으로 나서니 눈앞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화창한 날씨에 소나 말이 한가롭게 풀이나 뜯을 듯한 광경.

역시나 전형적인 초보자 사냥터의 모습이랄까.


나는 우선 달려보기로 했다.


오호...

이런 느낌인가?


현실에서 전력 질주하는 만큼의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천진난만하게 달리던 무렵.


“음?”


저 앞 풀숲에서 꼬물거리는 녹색의 액체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슬라임이었다.


최약체의 대명사답게 가장 먼저 마주친 몬스터.

하지만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남자는 슬라임 따윈 잡지 않는다.

그런 건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

그렇게 다른 몹을 찾아 계속해서 달려나가던 무렵.


“나왔네.”


작은 체구에 연두색 피부를 가진 또 다른 최약체 몬스터.

고블린 한 마리가 저 앞에서 홀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곧장 달려들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장에 손에 쥐어진 무기가 없었다.

이에 나는 곧장 인벤토리라고 외쳤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눈앞에 인벤토리 창이 열렸다.

하지만 곧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다고?

아니, 보통 초보자용 목검 같은 거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인벤은 총 5칸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이사 나간 빈집마냥 휑하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맨 밑의 골드 칸에 0이라는 숫자만이 야속하게 찍혀있을 뿐.


“잠깐만... 그러면... 장비창!”


장비창을 보니 장착되어있는 것이라곤 갑옷 슬롯에 있는 허름한 옷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손으로 그것을 한번 터치했다.


[초보자용 옷] [E급]

방어력 / 저항력 : 0 / 0


“......”


뭐지, 이 미친 게임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어이없는 상황에 한참 침묵하던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에 마을이 보인다.

다시 돌아갈까?


아니, 안 된다.

남자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 법.

여기까지 온 김에 뭐라도 하고 가야겠다.


주변을 살피던 나는 마침 바닥에 떨어진 돌덩이를 하나 발견했다.

그래, 이거면 충분하다.

우리의 선조들도 주먹도끼로 짐승들을 때려잡았으니까.


돌덩이를 꽉 쥔 채 나는 고블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침 시간도 인간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인해질 수 있는 저녁 8시.

그래 봤자 고블린이다.

선빵 필승.

나는 어리바리하고 있는 녀석에게 달려들어 곧바로 머리통을 내려찍었다.


“케헥!”


전투가 시작됐다.

이에 녀석도 나를 몽둥이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고블린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은 HP 7.]

[고블린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은 HP 4.]

[고블린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은 HP 1.]

[고블린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3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뭐?


갑자기 흑백으로 전환되는 나의 시야.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무릎을 꿇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미친...”


시작하자마자 고블린에게 죽었다.

뭐 이딴 개쓰레기 게임이...

하지만 패자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10초 후에 가까운 마을로 부활합니다.]


눈앞에 사망 메시지가 떠올랐다.

9초, 8초, 7초, 6초...

마침내 0초가 되면서 나는 빛에 둘러싸였다.


슈웅!


“하... 하하...”


강제로 마을 광장으로 소환됐다.

어이가 없어 절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맥이 빠진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게임 인생 20년이 넘는 내가 고블린 따위에게 죽다니...


“......”


그들이 옳았던 걸까?

나도 차라리 허수아비 훈련장을 찾아 나서야 했나?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는 동안 광장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접속하고 있었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됐다.

황당해하는 표정들.

그리고 곧 허수아비를 찾아 떠나는 발걸음.

나보다 현명할지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그냥 아예 뒤로 드러누워 버렸다.


“모르겠다...”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될 대로 되라지...

그렇게 멍하니 창공을 바라보고 있던 무렵.


띠링.


또 다른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업적 달성 : 최초로 죽은 자] [유일]

가장 먼저 사망한 플레이어만이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업적!

앞으로 죽을 일이 많은 당신에게 격려의 선물을 보냅니다.

*보상 : 스탯 +10


“......”


뭔데 이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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