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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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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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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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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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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DUMMY

“잡화상으로 있다 보면 자연스레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세계인들이 종종 이야기하더군요. 제주도로 여행을 갈 것이라고 말이지요.”


“아...”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섬. 그 중앙엔 웅장한 한라산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누군가는 바다를 보러 가고, 누군가는 산을 오르러 가고. 목적은 다르지만 그곳을 말하는 이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디오님도 그러시겠지요.”


“...그렇죠. 저도 좋아서 가는 거니까요.”


“제겐 전설 속의 장소 같은 느낌입니다. 그저 들은 것을 바탕으로 상상만 할 뿐...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디오님은 산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바다를 좋아하십니까?”


종종 들었던 질문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바다요. 바다를 더 좋아해요. 그래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이사 가려고 해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예전부터 나는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했으니까.


“그렇군요...”


미소바는 아련한 눈빛을 보이며 차로 입을 축였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바다라는 것... 저도 한번 보고 싶군요.”


“......”


똑같은 말을 로니도 했었다.

바다를 보고 싶다고...


게임 속 세상의 사람들에게 바다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여 나는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차를 마실 뿐이었다.


“아무튼 그간의 여정은 잘 들었습니다. 역시 디오님의 이야기는 기다리는 보람이 있군요.”


“뭐, 보람까지야... 미소바가 즐거우면 됐어요.”


때로는 이곳 잡화점에서의 삶이 무료해 보이기도 했다.

채 몇 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뭐 그리 재밌는 일이 있겠는가.


“그나저나... 하데스의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들었어요. 모를 수가 없죠.”


화제는 자연스레 하데스 이야기로 옮겨갔다.


이틀 전, 하데스는 마침내 아이언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다.

그 강력한 드워프들을 몰아내고 진정한 성의 주인으로 등극한 것이었다.

물론 다른 길드와 연합하여 이뤄낸 성과지만 말이다.


지난 한 달간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바로 나와 하데스였다.

소환수 군단을 이끌었던 당시 나의 전투 영상과 하데스의 아이언 게이트 공성전 영상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조회수 1, 2위를 다투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기세입니다. 언젠가 공략에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속도가 제 예상보다 빠르더군요. 과연 정점에 선 자 다운 행보겠지요.”


이제 플레이어들은 대놓고 나와 하데스 간의 각을 세웠다.

디오가 세냐, 하데스가 세냐 하면서 말이다.

의미 없는 비교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로만 본다면 확실히 하데스가 더 앞서 있었다.


“그만큼 잘난 사람이니까요. 이제 성도 먹었겠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네요. 아니지. 설마 다른 성도 먹으려고 하려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당분간은 아이언 게이트를 다스리느라 잠잠하겠지만, 내실이 다져지면 다른 지역의 성까지 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봤자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죠, 뭐. 딱히 그 양반이랑 만날 일도 없을 거고요.”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소바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럴지도요. 하지만, 디오님. 사람 일은 섣불리 단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두 분이 머지않은 시일에 만날 것만 같군요.”


“그래요?”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이나 결국 정상에서 모두 만나게 되는 법입니다. 물 또한 그렇지요. 개천이 흘러 강을 이루고, 그 강 또한 모두 바다로 모이지 않습니까. 비슷한 말로 만류귀종이라 하던가요?”


만류귀종이라...


적절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소바가 이런 표현을 알고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정상은 높습니다. 하데스가 아이언 게이트의 주인이 되었다고 하나 그 또한 새 발판을 하나 마련한 것일 뿐...”


“......”


“고원 너머의 세상은 디오님이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차원이 다른 괴물들이 존재하는 곳이지요.”


“...그런 말을 들으니 왠지 무섭네요.”


“하하. 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만나고 싶다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플레이어들이 가장 먼저 진입한 철의 산맥조차 아직 맵의 1/5도 밝히지 못했으니 말이다.


“태초의 땅에서부터 날갯짓 고원까지는 따지자면 훈련장에 불과합니다. 카이사 대륙의 근간을 이루는 아홉 땅이야말로 진정한 무대라고 할 수 있지요.”


나 역시 짐작은 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아홉 땅이야말로 Heaven & Hell의 메인 스테이지일 것이니까.


“진정한 모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긴 방랑의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군요.”


“음...”


“하지만 디오님, 방랑자들도 아무런 거처 없이 방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방랑을 마치고 돌아갈 곳도 필요한 법이지요. 성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성이라...”


내게는 아직 먼 이야기였다.

드래곤 나이트 역시 여러 길드와 연합을 이루어 공략한 것을 내가 손쉽게 공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홉 개의 땅은 저마다 하나의 성을 품고 있습니다. 가장 중심지에 말이지요. 이 성이라는 것은 대개 밖으로부터 안을 보호하지만 때론 그 반대의 역할도 합니다.”


“반대 역할이요?”


“안으로부터 밖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 거대한 성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 그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지요.”


...무슨 뜻일까?

안이 아니라 오히려 바깥을 보호하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아시게 될 겁니다. 다만 지금은 디오님께서도 성을 잘 이용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성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래요. 잘 새겨들을게요. 제가 뭐 성을 먹게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소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게 아닌 듯했다.


“꼭 성을 차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용하라고 말씀드린 것이지요. 성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막대한 짐을 짊어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든든한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으나 도리어 무거운 족쇄가 되기도 하지요.”


“음... 그럴지도요.”


“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성 역시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 쉽게 말해 뗏목이라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뗏목이요?”


“그렇습니다. 강을 건널 때 필요한 뗏목 말입니다.”


“......?”


미소바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손가락으로 탁자를 짚어가며 말했다.


“큰 강이 있습니다.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큰 강 말입니다. 강을 건너 저곳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뗏목이 필요합니다. 헤엄쳐서 가기엔 물살이 너무 거세기 때문이지요.”


“......”


“디오님이 이렇게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곳에 도착했지요. 이제 갈 길을 다시 가면 그만입니다. 그럼 여기서 묻겠습니다. 디오님은 뗏목을 짊어지고 가시겠습니까?”


“...아니요. 놔두고 가야죠.”


드디어 정답을 맞힌 것일까.

미소바는 만족하는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와 같습니다. 강을 건넌 순간 뗏목은 그 용도를 다한 것입니다. 용도가 다한 것은 그저 놓아버리면 그만이지요. 미련을 가지고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마치 차를 마시며 선문답을 나누는 느낌이랄까.


“지키는 자는 많은 것을 얻게 되지만, 떠나는 자는 모든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디오님, 멀리 보고 높이 나십시오. 어디에도 얽매이지 말고 디오님이 가야 할 그 길을 가십시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말입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이야기였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갈피를 잡고 있는 동안, 화두를 던진 미소바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선반으로 향하더니 그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혼자 지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묻어둘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손님이 오면 이렇게 주절주절 풀어내곤 하지요. 오늘은 특히나 제가 말이 많았군요. 이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것에 대한 선물입니다.”


“아...”


그가 건넨 것은 고급 연금술 책과 한 뼘 남짓한 나무 막대였다.


“연금술은 제임스라는 친구를 위한 것입니다. 숙련도를 다 채웠다고 하니 바로 건네주시면 될 겁니다.”


“...고마워요. 제가 항상 받기만 하네요. 근데 이 막대는 뭐죠?”


“그건 불카누스라는 분을 위한 것입니다. 블랙스미스의 장인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요.”


“자루로 쓰면 될 겁니다. 망치 자루 말입니다. 대장장이에겐 재료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작업 도구니까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막대였다.

하지만 손에 한 번 쥐어보니 그 크기가 알맞아 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저씨가 되게 좋아할 것 같네요. 이것도 잘 전달할게요.”


의뢰비를 지불하긴 하지만 그래도 불카누스에겐 매번 신세를 지는 느낌이었다.

조만간 그를 만나러 갈 예정이기에 그때 건네주면 될 듯했다.


“좋아할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디오님이 주는 선물이니까요.”


“선물이면 원래 다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같은 선물이라 해도 어떤 사람이 주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법이지요.”


“음...”


“그 불카누스라는 분, 디오님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뭐, 그렇겠죠? 사실상 친구처럼 지내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


“친구 그 이상으로 디오님을 좋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미소바는 또 한 번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씀하셨던 내용으로 보건대, 그분이 디오님께 베푸는 호의는 그저 단순한 호의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헌신에 가깝지요.”


“......”


“친구 간의 우정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우정 그 이상의 마음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헌데 표정을 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들으니 갑자기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귓속말을 보내자니 부끄러워 그 대신 메시지를 남긴다는 그의 추신...

고양이를 보러오지 않겠냐며 얼굴을 붉히던 모습...


“어우...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갑자기 소름 돋네요.”


내가 남자들과 잘 지내긴 하지만 그렇다고 취향이 그런 쪽은 아니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미소바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이틀 뒤.


“주인님!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뭐, 정말?!”


“예! 한번 보십시오!”


제임스는 들뜬 목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 앉아있는 내게로 다가왔다.


“오... 이것이...”


제임스가 건넨 것은 볼링공 크기의 새까만 구슬이었다.

매끈한 표면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것은 바로.


[원혼의 오브] [D급] [강화 불가]

마법력 : 20

*흑마법 위력 : +50%

*흑마법 사정거리 : +50%

*사용 제한 : 지력 100 이상


“정말 고생했다, 제임스!”


세공술로 만들 수 있는 법사용 무기인 오브였다.


“아직 기뻐하시기엔 이릅니다, 주인님. 하나 더 드릴 게 있습니다.”


“더 있다고?”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제임스는 다시 작업대로 돌아가 곧장 서랍장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혼의 오브와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를 꺼내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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