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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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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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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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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DUMMY

늘 황무지만 보다가 이렇게 푸른 호수를 보니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나는 낚시하기 좋은 자리로 이동해 인벤에서 의자를 꺼냈다.

뿐만 아니라 작은 탁자도 꺼내 그 위에 찻잔도 함께 올려놓았다.


“낚시하는데 찻잔은 왜 필요한 것인가?”


“왜긴, 차 마시려고 하는 거지. 경치도 보고 차도 마시면서 천천히 즐기는 거야. 너도 한잔할래?”


“필요 없다.”


“어휴...”


하여튼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녀석이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찻잔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차를 따르면서 말했다.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이런 거 돈 써가면서 한다고. 하고 싶어도 바빠서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이세계인들은 참으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됐다... 너랑 뭔 얘길 하겠냐...”


원래 저런 성격인 것을 어찌하겠나.

그러든 말든 나는 낚싯대를 드리운 후 잠시 상념에 잠겼다.


지난 한 달간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다.

우선 현실에서 처리해야 할 자잘한 일들이 있어 한동안은 접속에 소홀하기도 했다.


게임 내에서는 내실을 다지는 데 신경 썼다.

그간은 진도를 빼느라 앞으로 치고 나가기에 바빴지만, 최근 한 달은 제임스의 생산을 돕기도 하고 템을 강화하기 위해 던전 뺑뺑이를 돌기도 했다.


하피 퀸도 한 번 더 사냥했다.

오랜만에 젠이 된 녀석을 다른 길드가 손대기 전에 처리해 지난번처럼 눈물꽃을 독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필드 몹들의 도감도 거의 다 완성했다.

소수의 몇을 제외하고는 도감을 모두 완성했기에 이제는 날갯짓 고원을 졸업할 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불만을 표하던 로니도 막상 자리에 앉으니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렇게 고요한 평온을 즐기던 중, 나는 차를 홀짝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여기서도 할 일이 얼마 안 남았네. 남은 건 여왕개미랑 탑 그리고 협곡 정도인가...”


“그러니 빨리 정리하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라. 언제까지 이런 시시한 곳에 머물고 있을 것인가.”


“시시하긴. 남은 애들이 얼마나 센데? 시시하면 너 혼자 처리하던가.”


이에 로니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사실 오래 있긴 했지. 나도 빨리 협곡 너머로 가고 싶다.”


Heaven & Hell이 오픈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중 세 달가량은 태초의 땅과 부화의 평원에서 보냈으니, 이곳 날갯짓 고원에서만 거의 여덟 달을 보낸 셈이었다.


“조만간 협곡에도 도전할 거야. 명색이 흑마법사인 이 몸이 길을 뚫어야지.”


물론 다른 대형 길드가 협곡을 뚫는 것을 시도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늘 그렇듯 가장 큰 세력인 블러드 나이트와 살모사는 여전히 치열하게 대치 중이었다.

패권 다툼에 신경 쓰기도 바쁜 지금, 둘 다 협곡을 뚫을 여력은 없어 보였다.


“근데 로니, 날갯짓 고원 다음으로 넘어가면 여기보다도 더 큰 호수도 있어?”


협곡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다음 지역이 궁금해졌다.

이곳 호수의 크기도 작지는 않았는데, 대충 외대도 빠트린다는 건대 호수만 한 크기였다.


“있다. 이것보다 수십 배는 크겠군.”


“오, 그래? 그럼 혹시 바다도 있어?”


그러자 로니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무엇인가?”


“바다 말이야, 바다. 몰라? 혹시 여기에는 바다가 없나?”


이에 로니는 잠시 침묵한 후 입을 열었다.


“이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인가 보군. 혹시 강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야. 강이랑은 다르지. 강은 흐르는 거잖아. 강들이 흘러서 모이는 곳이 바다야. 그니까 비유하자면 엄청나게 큰 호수 같은 거지.”


“...강이 흘러서 바다라는 곳으로 모인단 말인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로니는 내 말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응. 전부 다 그런 건 아닌데 보통 강은 다 흘러서 바다로 가. 호수도 좋은데 나는 바다를 더 좋아하거든.”


“강이 흘러서 모이는 곳이면... 그 바다라는 것은 대체 얼마나 크단 말인가?”


“엄~청 크지. 끝이 안 보여. 뭐, 이런 호수랑은 아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족히 수백 배는 된다는 말인가?”


“수백 배? 에이... 그 정도가 아냐. 아예 비교가 안 된다니까? 예를 들어 이 호수가 모래알 하나 정도 크기라고 하잖아? 그러면 바다는 저기 보이는 저 바윗덩어리 정도야. 아닌가? 더 큰가?”


“......”


내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로니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그렇다면... 그 많은 물이 도대체 어떻게 담겨있다는 말인가?”


“담겨있다고? 그렇게 표현하니까 좀 참신하네. 담겨있는 게 아니라, 아... 이거 어디부터 설명해야 되나...”


나에겐 상식이지만 로니에겐 충격적인 이야기인 듯했다.


“그니까, 음...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따지자면 카이사 대륙이잖아? 내가 사는 곳도 일종의 대륙 같은 곳이야. 근데 그 대륙이 무한한 건 아니거든. 대륙의 끝 바깥쪽으로는 전부 다 물로 돼 있어. 그걸 바다라고 불러.”


“...대륙 바깥이 모두 물로 되어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 없군.”


“그러고 보니 여기 카이사 대륙 끝에는 뭐가 있어? 물은 아닐 거 아냐.”


내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로니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절벽. 무한의 절벽이 있다.”


“절벽? 떨어지면 죽는 그 절벽?”


“그렇다.”


“오... 만약에 거기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데?”


“죽음을 맞이하겠지. 영원한 죽음을. 누구도 그 절벽에 다가가진 않는다.”


“......”


듣자 하니 이 절벽이라는 것은 월드 맵의 끝자락을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은 맵 끝으로의 접근을 막는 일종의 게임 시스템인 듯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어쩐지 오늘은 낚싯대에 입질 한번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던 찰나.


“그 바다라는 것은 무한한 것인가? 그렇다면 네가 사는 세계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인가?”


평소엔 말도 없던 녀석이 이렇게 질문을 쏟아내는 걸 보니, 확실히 내가 말한 내용이 충격적이긴 한듯했다.


“그렇지는 않아. 세상에 무한한 게 어딨어? 얼핏 보기엔 너무 커서 끝없이 보이는 것 같은데 사실 끝은 있어. 음... 정확히 말하면 한 바퀴를 도는 거지.”


“한 바퀴를 돈다고? 그게 무슨 뜻인가?”


“그러니까...”


이거 뭐 간단히 설명하려 했더니만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행성... 그러니까 내가 사는 곳은 지구라는 곳인데, 음... 쉽게 설명하면 엄청나게 큰 공과 같은 곳이거든? 그 공 위에 대륙도 있고 바다도 있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둥그니까 계속 앞으로 나가면 결국 한 바퀴를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거지.”


“...공 위에 살고 있다는 말인가?”


“비유하자면 그런 거지.”


최대한 쉽게 설명을 했지만 그래도 로니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군. 그 지구라는 공이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인가?”


“말도 못 하게 커. 너무 커서 눈으로 볼 때는 이게 평면처럼 보인다니까? 실제로는 둥글게 되어있는데도 말이야.”


물론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이 이를 밝혀냈어도 여전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바보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 크기가 얼마만 한 것인가? 카이사 대륙보다 큰 것인가?”

“음... 그렇지? 아직 카이사 대륙이 정확히 얼마나 큰지는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더 큰 거는 맞아. 정확히 몇 배나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상의 공간이기에 당연히 실제 지구만큼 클 리는 없었다.

왕위를 계승한 패륜아도 알고 보니 도봉구의 왕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들이 쏟아져서인지 로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다시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 허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공 위에 바다라는 게 있다면 어째서 흘러내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리 크다 한들 그래도 공이 아닌가?”


“아, 그거?”


충분히 궁금해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게 어... 만유인력이라는 게 있는데, 그니까... 이 질량을 가진 것들은... 아휴, 됐다. 말해봤자 뭐하겠냐. 알아듣지도 못 할거고. 그냥 쉽게 설명해 줄게. 잘 들어봐.”


물리학적인 이야기를 해 봤자 로니의 머릿속만 더 복잡해질 것이 뻔했다.

이에 나는 옆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손을 펴 돌멩이를 바닥에 떨어지게 했다.


“이거 잘 보면 이상하지 않아? 왜 돌멩이가 바닥으로 떨어질까?”


“......?”


“잘 생각해 봐. 왜 항상 바닥으로만 떨어질까? 옆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위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왜 맨날 바닥으로만 갈까?”


정규교육을 배운 나한테는 놀라울 게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신선한 질문이었는지, 로니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이 땅이 돌멩이를 끌어당겨서 그래. 그걸 뭐 만유인력이니 중력이니 이렇게 부르는 데 그건 알 필요 없고, 아무튼 이 대륙이 돌멩이를 당겨서 그런 거야. 돌멩이뿐만 아니라 땅 위에 있는 모든 걸 다 당기고 있어. 그래서 땅으로 떨어지는 거지. 새도 날갯짓 안 하면 땅으로 떨어지잖아?”


“흠...”


“내가 사는 세계에 유명한 아저씨가 있어. 그 아저씨가 사과나무 밑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떠올린 거래. 그 얘기가 뭐 진짠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낚시를 하다가 난데없이 만유인력을 설명하고 있는 내 모습이 다소 우습게 느껴졌다.

그치만 평소 위풍당당하던 로니가 이런 이야기에 골몰히 빠져있는 모습이 더 우습긴 했다.


“아무튼 대충 그런 거야. 그러니까 지구라는 공이 물이건 바다건 사람이건 뭐든 다 끌어당겨서 흘러내리지 않는 거라고. 대충 그렇게만 알아둬.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나 조만간에 이사 간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이에 로니가 생각 속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네가 사는 세계에서 말인가?”


“응, 그렇지. 나 지금은 도시에 살고 있어. 내가 사는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에.”


현재 나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덕분에 종종 한강을 보러 가지만 그래도 늘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바다가 될 순 없으니까.


“그럼 어디로 가는 것인가?”


“섬으로 가. 제주도라는 아주 큰 섬으로. 바다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거든.”


서울도 좋지만 나는 조만간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도로 갈 계획이었다.

바다가 펼쳐진 곳에서 살겠다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렇군...”


로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낚싯대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방금의 대화들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인지, 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그 바다라는 것... 나도 한번 보고 싶군.”


“그러게. 보여줄 수 있으면 보여주고 싶다. 진짜 장난 아니거든.”


보여주고는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게임 속 세상에 사는 로니에게 현실의 바다를 어찌 보여준단 말인가.


“......”


“......”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말하고 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혹여 괜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따라 민망하게 낚싯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디오, 한 가지 더 물어볼 것이 있다.”


“...뭔데?”


로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헌데 왠지 예사롭지 않은 질문을 할 것 같았다.


긴장이 된 나는 차로 입을 축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게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푸우웁!!”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찻물을 그대로 뿜어버리고 말았다.


“쿨럭, 쿨럭쿨럭. 게... 게... 뭐라고?”


...게임?

갑자기 그 단어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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