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13
모든 것이 연결될 때
이미 목적지를 정하고 온 것을 알고 있는 민준이기에 다른 곳을 가보자는 성찬의 의견을 순순히 따랐다.
이전과 달라지는 것도 두렵기도 하고, 각종 컴퓨터 부품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성찬은 다른 매장에 들러 가격을 세심하게 물어봐다.
부품 하나하나 가격대와 성능을 물어보는 터라 가게 점원이 질린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변한 것이 없어 다행이다.’
짜증 섞인 표정의 점원을 보면서 민준은 마음이 놓였다.
‘이제 시작이다.’
컴퓨터를 사려고 하는 곳이 다음 가게였고, 각성하는 순간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민준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제가 될 것은 없겠구나.’
주변을 살펴보니 변수가 될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민준아. 여긴 어느 정도 봤으니 저기로 가볼까?”
“예. 아빠.”
“아빠! 저기서 살 거예요?”
“얼마 전에 알게 된 곳인데 저기가 제일 나을 것 같다.”
“얼른 가요.”
두 사람은 목적지인 매장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가게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세운상가 안에서도 제법 큰 컴퓨터 조립 판매점!
자신이 전생에 불완전한 각성을 했던 바로 곳이었다.
‘침착하자.’
“아이고! 검사님!”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그렇네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아들 녀석이 쓸 컴퓨터를 좀 사려고 왔습니다.”
“하하! 그러셨군요.”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민준은 부품들을 살폈다.
‘저기 있구나.’
다른 매장에 있는 것들과는 다른 부품이 보였다.
이전 삶에서 민준을 각성으로 이끌었던 메인보드였다.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 갔다.
“아빠! 이거 최신 메인보드 같은데요.”
“하하하! 맞습니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메인보드입니다. 이틀 전에 들어온 건데 바로 알아보는 걸 보면 아드님께서 컴퓨터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검사님.”
“하하하! 관심 정도가 아니죠. 여섯 살 때부터 라디오하고 텔레비전을 뜯어서 보드 판을 가지고 놀았으니까요.”
“우와! 대단하네요.”
“그리고······.”
“아빠!”
“하하하! 녀석도.”
아들의 질책 어린 부름에 성찬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민준의 머리를 흩었다.
제5장. 전과는 다른 각성.
민준이 다른 또래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놀이를 빙자해 중고 라디오며 텔레비전을 뜯어 보며 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전 삶과는 달리 이번에는 완전한 각성을 위해 전자 공학 분야 전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긴 최신 부품들이 많네요? 저는 구경 좀 할게요”
“그래. 컴퓨터는 아빠가 맞추고 있을 테니 구경하고 있어라. 파는 것들이니까 함부로 만지지는 말고.”
“알았어요.”
조립할 사양을 말하며 흥정을 시작하는 성찬을 보며 민준은 메인보드에 시선을 돌렸다.
‘잘 될 거다.’
각성이 언제 시작될지 이미 알고 있는 민준이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각성 자체가 불가해의 영역이라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민준은 이전 삶에서 자신을 불완전한 각성으로 이끌었던 메인보드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지금까지는 이상이 없으니 다행이다. 각성하기 전까지 제발 변수가 없어야 하는데······.’
예정대로 되고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민준의 바람과는 달리 각성에 지장을 줄 만한 일이 세운상가 근처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민준의 운명을 뒤트는 변수였다.
* * *
한 해가 막바지로 가는 겨울!
올해는 역사에 남을 만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밀실 속의 야합이기는 해도 오랜 세월 정권을 장악했던 군부를 종식하는 민간 정부의 출범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자 사람들 사이에는 서서히 기대감이 퍼지고 있었다.
여당과 야합하기는 했어도 민주주의를 위해 오랜 세월 투쟁해 온 이가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군부독재가 종식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를 살아가기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경제가 아무리 호황이라고는 해도 먹고 살려면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라 그런지 오늘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그렇게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조금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 불안한 시선으로 세운상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의 이름은 유준우.
A급 사찰 대상이었던 그는 민주항쟁을 배후에서 지휘한 대학생 연합의 간부 중 한 사람이었다.
유준우는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데다가 중앙정보부에서도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될 수 있으면 서울로 들어오지 않으려 했었던 그였기에 지금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목적지가 근처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서울로 들어온 후 동지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본다고 연락을 돌렸는데 경찰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배신자가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세운상가 주변에 사복 경찰들이 보이는 것을 보면 간부진 중에서 자신의 행적을 누설한 것이 틀림없기에 입맛이 썼다.
민주화에 모든 것을 건 터라 쉽게 배신할 이들이 아닌데 누설된 것을 보면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테지.’
씁쓸한 여운을 지워버린 유준우는 세운상가에 집중했다.
도착하자마자 몇 가지 일을 처리했지만, 그가 서울로 올라온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자신이 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데도 그가 세운상가를 찾아온 것은 몇 달 전부터 꾸기 시작한 꿈 때문이었다.
‘현실이라 믿을 정도로 무척이나 생생한 꿈이었지. 난 확인할 수밖에 없었고.’
그저 꿈이기만 했다면 세운상가에 오지 않았을 터였다.
며칠 간격으로 같은 꿈을 계속해서 꾸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기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꿈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비금도로 내려갔었다.
놀랍게도 꿈에서 봤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꿈에서 나왔던 물건도 그곳에서 찾았다.
그래서 세운상가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꿈이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자신이 찾은 것을 누군가에게 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꿈에서 나온 대로 움직여 보자.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다.’
유준우는 숨을 깊게 들이쉰 후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세운상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로를 건넌 후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세운상가로 들어가려는 그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잠깐!”
‘확실히 꿈을 꾼 대로다.’
“잠시 검문 좀 하겠습니다.”
신분증을 눈앞에 내미는 사나이의 눈이 날카로웠다.
꿈에서 봤던 것과는 다른 얼굴이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엇던 유준우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왜요?”
“후후후! 몰라서 묻나?”
“무슨 말이죠?”
“후후후, 마스크 좀 벗지!”
“참! 나! 재수가 없으려니까.”
유준우는 신경질을 내며 마스크를 벗는 척 손을 올리다가 번개처럼 공안 형사의 인중을 가격했다.
퍽!
“큭!”
의외의 기습을 당해 동료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옆에 있던 다른 형사가 손을 내뻗었다.
퍽!
“컥!”
유준우는 손을 내뻗는 형사의 명치에도 빠르게 한 방 날리고는 그대로 상가 안으로 달려갔다.
“크으, 거기 서!”
“저 새끼가!”
기습적인 공격에 비틀거리던 형사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유준우를 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앞서 달려가는 유준우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날랬지만 뒤를 쫓아가는 형사들도 그에 못지않게 빨랐다.
“정권의 개들한테는 안 잡힌다!!!”
유준우는 모두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를 질렀고, 놀란 사람들이 분주히 옆으로 피하고 있었다.
“제기랄!”
“저 새끼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했다.
형사들은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유준우의 뒤를 쫓았다.
고함과 함께 벌어진 갑작스러운 추격전에 상인들이 급하게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뭔데?”
“운동권 학생이 경찰한테 쫓기고 있나 봐.”
“빌어먹을 놈들!”
“그러게. 학생이 뭔 죄가 있다고.”
“쯔! 쯧! 정권이 바뀌어도 아직 저러고 있으니. 한심하네. 제발 잡히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새로운 정권이 자리 잡히면 저런 청년들도 발 뻗고 살 수 있겠지. 문민정부를 내세우고 있으니 말이야.”
“아직 모르지. 당선되려고 여당과 붙어먹었으니 말이야.”
궁지에 몰려 여당과의 합당으로 당 대표가 된 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문민정부를 내세우는 정권을 창출했어도 군사정권과의 야합 때문에 국민이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은 싸늘했다.
아직은 뭔가 보여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당선으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종막을 고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 양반이 오랫동안 야당 생활을 했는데 조금이라도 바뀌겠지.”
“그랬으면 좋겠네.”
대통령 취임 이후에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었고,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 동안 야당 생활을 하며 민주화에 앞장서 왔던 이가 야합으로 여당에 합류한 뒤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기간 동안 개혁을 하겠다고 주아장천 외치기는 했지만 아직은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엄청나게 잘 뛰네. 벌써 보이지 않네.”
“그러게. 형사 놈들도 잘 뛰는데.”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학생 몸놀림이 심상치 않아 보였으니 잡히지는 않겠지.”
“그랬으면 좋겠네. 자 이제 보이지도 않는데 어서 들어가서 장사나 하자고.”
“그러자고.”
금방 지나친 것 같은데 이제 모습을 가물거리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던 두 사람은 도망치는 학생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 자신의 가게로 돌아갔다.
타타타탁!
준우는 아주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뛰었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이미 꿈속에서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었던 터라 그런지 달리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거기 서!”
“잡아!”
상가 안에 큰 소리가 들렸다.
‘뭐지?’
메인보드를 살펴보고 있던 민준이 고개를 돌렸다.
밖에서는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검은색 마스크를 낀 남자가 달려오고 있고, 그 뒤를 맹렬히 쫓고는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이건 전에 없었던 일인데······.’
이전 삶에서는 보지 못한 추격전에 민준은 당혹스러웠다.
‘각성하기 직전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나비효과가 일어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민준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서도 유준우에 대한 형사들의 추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성찬도 대화를 멈추고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주의 깊게 살폈다.
“이 새끼! 너 거기서!”
“김 형사! 놓치지 마! 어떻게 되던 잡아!”
“안 되겠군. 민준아. 여기 가만히 있어라.”
형사들이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성찬은 민준에게 당부를 한 후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나섰으니 잡히겠구나.’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사람이 성찬이었다.
작정하고 나섰으니 금방 잡힐 것이 분명하기에 민준은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다.
‘저런다고 도망치지 못할 텐데······.’
막아서는 성찬을 본 범인이 급히 피하려고 했고, 성찬은 옆으로 빠져나가려는 범인을 향해 빠르게 다리를 뻗었다.
턱!
‘어?’
성찬의 발에 다리가 걸리자 태클을 당한 축구선수처럼 범인의 몸이 급격하게 가게를 향해 기울었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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