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63
모든 것이 연결될 때
‘서울 근교군.’
왼쪽에는 산이 있고 오른쪽에는 밭이 있는 도로에 홀로선 유준우는 곧바로 복면을 벗으며 주변을 살폈다.
‘저기로군.’
설명서에 나와 있던 안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고속도로가 있고, 지형을 보면 성남인 것 같은데······.’
차 안에서는 밖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감각적으로 확인한 방향과 이동시간을 고려해 볼 때 성남시가 틀림없었다.
북에 침투했을 때 평범한 복장을 했던 터라 좀 옛날 것으로 보이는 것 빼고는 문제가 없기에 도로를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점들과 등산객들이 보였고, 그걸 통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위치를 보니 청계산이로군. 잘 됐다.’
청계산이라면 민준의 집이 멀지 않은 곳이라 다행이었다.
‘들어가 볼까?’
자신을 위해 마련된 안가는 2층으로 된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은 없고 길가에 출입문이 있었는데 전자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말끔하게 정리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주방 쪽으로 간 유준우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음식 재료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비치되어 있었다.
“당분간은 내가 해 먹으라는 말이군.”
음식 재료의 양을 보고 적어도 일주일 내에는 임무가 없다는 걸 깨달은 유준우는 문을 닫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내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온 서재로 향했다.
원목으로 된 커다란 책상과 컴퓨터가 보였고, 서가에는 전문 서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꽂혀있었다.
‘서가 뒤쪽에 비밀 공간이 있다고 했었나?’
유준우는 설명서에서 본 대로 서가 쪽으로 다가가 꽂혀있는 책 중 하나를 반쯤 꺼냈다.
딸깍!
경쾌한 소리가 들리자 서가를 안쪽으로 밀었다.
서가가 스르르 안쪽으로 30cm 정도 밀려 들어가더니 멈춰선 후 아래로 내려갔다.
“괜찮군.”
서가가 내려가며 천천히 드러나는 전경에 유준우의 눈가에 흥미로운 빛이 돌았다.
구분된 책장처럼 만들어진 벽에 걸려 있는 각종 무기와 여러 가지 제복들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가슴까지 오는 정사각형의 물체가 놓여 있었는데 정확히 5개의 서랍이 달려 있었다.
유준우는 그중 제일 위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설명서에 나온 대로 신분증들과 여권들이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반은 여러 종류의 화폐들과 통장들이 있었다.
차례차례 서랍을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확인했다.
각 서랍 안에는 앞으로 수행할 임무에 필요한 장비들과 함께 사용설명서가 들어있었다.
‘당분간 이곳에서 사용법이나 익혀야겠군.’
그동안 사용했던 장비는 하나도 없고, 전부 처음 보는 것들이라 철저하게 사용법을 숙지할 필요가 있었다.
어떤 임무에 투입이 될지 모르지만, 아는 만큼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감시 장치들부터 확인하자.’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후 쉴 틈이 없었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 감시 장치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집안 곳곳을 살펴본 후 그리 정교한 감시 장치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무력화시키는 데 얼마 걸리지 않겠군.’
비록 비밀 조직에 몸을 담았어도 자신을 감시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우선 몸 좀 닳게 해볼까? 감시 장치들은 전부 제거하고, 보안 장치들도 허술한 것 같으니 그것도 손을 보자.’
유준우는 집안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CCTV나 도청 장치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갔다.
그렇게 감시의 눈길을 벗어난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이 생각한 대로 장치들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전자식 보안장치도 손을 보고, 그것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부비트랩 같은 아날로그 장치를 추가했다.
창문과 문은 물론 여러 곳에 무기고에서 꺼낸 것들로 안전장치를 만들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과 동시에 쉴 사이 없이 움직였던 터라 피곤이 몰려왔다.
“후우우, 피곤하군. 이제 됐으니 좀 쉬자.”
유준우는 먼저 화장실로 가서 샤워부터 했다.
물기를 닦은 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침실이 아니라 비밀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제단처럼 위치한 탁자 바로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후 곧바로 운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유준우의 코에 흰 연기 같은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의 전신을 덮었다.
유준우는 그렇게 4시간이 넘도록 운기를 했다.
소주천이 아니라 이번에 얻은 심득을 정리하느라고 대주천을 해야 했기에 시간이 길어진 것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저녁이 어스름해질 무렵까지 운기를 하던 중에 변화가 생겼다.
전신을 감싸고 있던 흰 연기 같은 기운이 유준우의 정수리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번쩍!
흰색의 기운이 정수리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고 난 뒤 유준우가 눈을 뜨자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눈을 뜬 유준우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후우우, 이제 겨우 칠 단계로군.”
놀랄 만한 성취였지만 약간은 실망감이 서린 목소리였다.
가문에서 비롯된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한 지 벌써 20여 년이 넘어가고 있는 유준우였다.
이 정도 성취를 이룬 이는 가문에서도 손에 꼽히건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최소한 구 단계는 도달해야 하는데 아직은 여기가 한계구나. 하지만 머지않았다.”
북한을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지만, 목표했던 성취를 이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문에 남아있는 인원 가운데 자신보다 높은 성취를 이룬 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대부분 비급으로 전해지는 것들이고, 자신을 이끌어 줄 만한 이가 없는 탓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어려웠다.
대북 임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복귀하기 전에 다시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기 전에 금강산에 있는 비트에서 잠시 쪽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이전에는 꿈에 나온 상황들을 다 처리해야 다시 꿈을 꾸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새롭게 꿈은 이전과는 달랐다.
믿을 수 없게도 자신이 8단계와 9단계를 수련하는 장면들을 꿈으로 꾸었다.
꿈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단서를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세 단계의 수련 장면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 단계로 나갈 방법을 찾았으니 노력하면 되겠지.”
가문의 무공인 천환무를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12단계까지 알아야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10단계부터 12단계는 수련해서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영역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수련으로 다다를 수 있는 최종 단계가 9단계이고, 그것조차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음, 나가기도 그렇고. 여기 정도면 수련하기에 적당한 것 같으니 한번 해보자.”
유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무공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민준에게 보여줬을 때와는 무척이나 다른 동작이었다.
움직임이 제자리에서 한 보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발과 다리를 이용해 가상의 적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준우는 북한을 비롯해 위험한 작전 지역에 투입되었을 때 실전에서 갈고 닦은 것들을 동작에 녹여냈다.
제한된 움직임이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하게 수련을 이어나가던 유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동안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그려온 동작을 취하고는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어서였다.
‘거리에 제한이 있는 수련이라 기를 싣는 것이 만만치가 않구나. 기를 자유자재로 수발하는 것은 아직 어려우니 일단 그동안 가다듬어 온 것을 완벽히 익히는 것부터 하자.’
기의 수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유준우는 그동안 완성한 것을 정확하게 익히는 데 집중했다.
완벽한 동작을 완성해야 응용하기 쉽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도로 집중하며 동작을 이어나가자 점점 생각한 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수련해 이어나가던 유준우가 동작을 멈추며 깊은 호흡으로 기운을 가다듬었다.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살펴보니 본래 상태로 있던 상태로 그대로 인 것을 보면서 유준우의 입매가 저절로 올라갔다.
제대로 된 수련을 하지 못하고 대부분 머릿속에 그려온 것들을 자신이 정확하게 수련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힘들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빠르게 익힐 수 있겠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간혹 마주치는 적을 대할 때 사용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꼬르르륵!
귀환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배에서 항의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런! 한 끼도 안 먹은 건가?”
긴장된 상황이 연이어진 터라 밥을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시장기가 몰려왔다.
“어디 보자. 뭘 해서 먹을까?”
자리에서 일어난 유준우는 1층에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고 살펴보니 채워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싱싱해 보이는 식자재가 가득했다.
“후후후! 성의가 괘씸하군. 어디 보자.”
싱크대를 열어보니 조리도구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필요한 양념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면은 없어도 해산물과 돼지고기가 있으니 이 정도면 짬뽕밥은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
먼저 쌀을 씻어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필요한 재료와 양념들을 꺼낸 후 다듬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요리를 시작했다.
채소와 해산물을 볶다 고춧가루를 넣은 후 불 맛을 입히고 양념을 추가로 넣자 익숙한 향이 올라왔다.
밥이 될 무렵 얼큰해 보이는 짬뽕 탕을 만들어졌다.
“꿀꺽! 이거지!”
군에 있을 때 무엇보다 생각이 나던 복화루의 짬뽕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붉은빛이 역력한 국물을 대접에 담고 밥을 푼 유준우는 허겁지겁 얼큰한 짬뽕을 먹기 시작했다.
일주일가량 전투식량과 산과 들에서 채취한 것들로 생식을 하며 임무를 수행했던 터라 정말 꿀맛 같았다.
“아아! 시원하다. 정말 잘 먹었다. 설거지부터 하자.”
진짜 오랜 만에 기분 좋게 식사를 끝낸 유준우는 포만감을 만끽하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깨끗하게 씻은 그릇들을 정돈한 그는 귀환하기 전에 금강산에서 채취한 산삼을 차로 끓여 마셨다.
수령이 20년 정도 된 산삼이었는데 이제는 먹어도 내기로 전환되는 양이 미미해 차로 끓여 먹고 있었다.
수령이 긴 것은 아니지만 내기는 쌓을 수 없더라도 육체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데는 산삼 차가 그만이었다.
더군다나 마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어 좋았다.
“후우우! 그럼 나가볼까.”
잔에 있는 걸 다 마신 후 남은 산삼 차를 물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은 후 2층에 있는 침실로 갔다.
장롱을 열어 들어있는 옷가지를 확인한 유준우는 기능성 체육복을 찾아서 입고는 집을 나섰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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