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22
모든 것이 연결될 때
국민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교통사고가 나서 가족이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던 것과는 다른 전개였다.
여기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시게 되는 전개였다.
“이렇게 생생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기억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생생하다 못해 영화처럼 곧바로 상황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라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정말 그런 일들이 세 분에게 벌어질까? 내게 전해진 이 기억과 정보가 어쩌면 거짓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이전의 삶에서는 없었던 일이기도 하고, 사건들이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을 신뢰하는 것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회의가 든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의 의도로 자신에게 디멘션 코인이 전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을 때 느껴지던 처절한 자책감의 근원이 세 분의 죽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서였다.
“후우우! 앞으로 하나하나 차분하게 확인해 보면 내게 전해진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보자. 졸업식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보면 내 기억이 맞는지 전해진 기억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인식된 기억과 정보의 진위는 졸업식 이후에 전개되는 것을 보고 난 후에 판단해도 되는 일이었다.
며칠 뒤면 민준의 국민학교 졸업식이다.
졸업식이 끝나고 학교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다가 자신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다.
갑자기 달려드는 트럭과 부딪쳐 부모님과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혼자만 살아남았던 끔찍한 교통사고!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려 오지만 기억대로라면 다르게 벌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민준은 지켜볼 생각이었다.
* * *
터미널을 나온 준우는 우선 숙소부터 정했다.
하룻밤 자려면 숙박계를 써야 했기에 터미널 근처에서 제일 허름한 여인숙을 찾아 대충 신원을 적고 방을 얻었다.
유준우는 자신이 머물 방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보자.’
혼천의 다음 단계가 언제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빨라진 상황이었다.
꿈꾸었던 것을 실행하기 전에 목적지 주변을 살피려고 하루 먼저 온 터라 혼천이 열리는 문제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여인숙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공중전화에 들어간 그는 삐삐로 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세진 물산입니다.
“나다.”
-가주님.
“혼천이 열릴 징조가 나타난 시간이 정확히 언제냐?”
-정확히 열 시 이십오 분 경이었습니다.
“다른 징조는?”
-두 번째 징조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뭔가?”
-십오 시 삼십이 분경에 처음 나타난 것보다 더 많은 파장이 검출되었습니다.
“첫 번째 징조와 같은 파장인가?”
-그렇습니다.
“그렇군. 지시를 내리겠다. 지금부터 본가의 인원은 전원 활동을 중지한다. 그리고 숨어 있는 오열을 색출해라.
-오열 말씀입니까?
”그래. 내 행적이 노출됐다. 지시가 있을 때까지 본가의 인원은 전원 잠수한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유준우는 전화를 끊었다.
유준우가 숨어 있는 오열을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예지자에게 추적당했을 확률이 높지만 구축하고 있는 조직에 오열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열은 됐고, 다음은 무가들인데······.’
무가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이번 혼천의 쟁투를 위해 이를 갈고 있는 무가라면 반드시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인근이라면 축성산 근처에 홍천검가가 있겠군.’
마침 확인할 필요가 있늠 무가가 근처에 있었기에 유준우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은둔법을 사용해 그의 행적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축성산 인근!
산자락이 보이는 곳에 모습을 숨긴 준우는 도로를 살폈다.
‘혼천의 쟁투 때문에 모이는 것이 분명하다.’
외진 지역임이 분명한데 산골짜기로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를 따라 검은색 차들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놀랍게도 차들이 움직이는 골짜기 끝에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저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을 펼친 것인지 저택을 감도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홍천검가가 세를 많이 회복한 것이 분명하다.’
스르르르······.
달려온 차들이 하옥 앞에 있는 공터에 서는 것을 보며 준의 모습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급한 걸음으로 한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엄중한 기세를 흘리는 자들이었다.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선 이들은 옷차림을 단정히 한 후 조용한 걸음으로 사랑채로 들어갔다.
회랑처럼 길게 이어진 사랑채 안쪽.
자신들보다 먼저 와서 양쪽으로 줄지어 앉은 이들을 본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다 도착했군.’
제일 안쪽 중앙에 있는 보료에 기대앉은 이가 자리를 찾아 앉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홍천검가의 주인인 윤태호였다.
“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이렇게 전부 모인 것은 오랜만이로군.”
“가주를 뵙습니다!!!”
윤태호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다들 무탈한 것 같으니 하니 반갑군. 오늘 이리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군사가 설명할 것이니 잘 듣도록!”
갑작스럽게 소집된 가문 총회라 앉아 있는 이들의 시선이 가주 옆에 앉은 윤태상에게 쏠렸다.
이인자이자 가주의 동생인 윤태상은 검 대신 학문을 택한 자로 홍천검가의 군사로서 입지가 단단한 인물이었다.
“일단 오느라 고생했소. 이렇게 가문 총회를 소집한 것은 창천이 혼천으로 변하는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요.”
좌중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충격을 받은 듯 몇몇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8장. 능력 확장과 가능성.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랐던 이들 중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이 있었다.
홍천검가의 분가 중 수도권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윤길상이었다.
“군사, 그게 사실이오.”
“조선이 창업할 때, 그리고 문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처럼 조짐이 나타났소. 그리고 본가와 마찬가지로 다른 가문들도 이 때문에 총회를 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으음.”
다른 가문들도 총회를 열고 있다면 윤태상의 말이 사실이기에 윤길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좌중에 있는 홍천검가의 일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무가들이 회합하는 중이라면 자신들도 이곳에서 가문의 향방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분가들을 대표해 윤길상이 물었다.
“혼천이 재림하는 일이오. 다시 피비린내가 진동할 텐데 군사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오.”
“조짐이 나타났지만 그리 염려하실 것 없다.”
윤태호의 말에 분가에 속한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한량이라고 생각했건만······.’
군사인 윤태상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유유자적하던 가주의 태연한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는 윤길상이었다.
오래전부터 모르게 독립을 준비해 왔던 윤길상이었다.
분가의 일원들조차 모르도록 혼천의 쟁투를 준비한 치밀함이라면 자신이 독립하려는 생각도 이미 알아차리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윤길상은 불안했다.
“혼천이 열린 것도 아니고 그저 조짐만 나타났으니 분가주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주! 이미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입니까?”
윤길상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군사인 윤태상이었다.
“그렇소. 분가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본가에서는 그동안 호천의 재림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소.”
“이리 총회를 소집한 것을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윤길상은 납작 엎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본가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길상 분가주도 알다시피 육백 년 전에 있었던 혼천의 경우 본가는 분가들이 각개로 움직인 탓에 다른 가문들과는 달리 얻은 것 하나 없이 피만 흘려야 했소. 그리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오.”
“으음, 군사! 본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소. 분가주도 알다시피 혼천이 재림하는 것은 위기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소. 이번 혼천의 쟁투에서는 본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주길 바라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혼천이 재림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럼 분가가 얻는 건 무엇입니까?”
윤길상은 가주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가주께서는 혼천의 쟁투에서 얻는 성과에 따라 공이 배분될 것이라는 가주령을 내릴 것이오.”
“어떻게 공을 측정한다는 것입니까?”
공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 윤길상이 물었다.
“이번에 혼천의 쟁투는 가주 쟁위와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이 가주님의 방침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군사의 말은 사실이다. 이번 쟁투의 성과로 제일 공이 많은 분가주에게 가주 위를 넘길 것이다.”
놀라는 윤길상의 물음에 가주인 윤태호가 천명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중에 앉아 있는 이들의 눈에 야망이 불타올랐다.
‘이건 기회다.’
다음 대 가주를 선발하는 쟁위와 연계한다면 호법원에서 공정성을 보장해 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설사 홍천검가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혼천의 쟁투에 참여해 기연을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가문을 창업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윤태호는 엄중한 시선으로 좌중을 둘러봤다.
홍천검가의 일원은 가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군사가 말한 것을 가주령으로 선포한다. 홍천검가가 다른 가문보다 앞서 나갈 기회를 얻는 일이니 다들 차질 없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의가 없다면 군사의 지시를 따르도록!”
“가주의 명을 받습니다!!!”
가주령이 선포된 이상 혼천의 쟁투에서 각자도생하던 일은 없을 것이기에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흥분이 섞여 있었다.
윤태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마친 듯 보료에서 일어나 그대로 사랑채를 나섰다.
“가주령이 선포되었으니 군사로서 지시를 내리겠소. 각 분가에서는 최정예를 한 달 후에 본가로 모이도록 하시오. 인원을 책정했으니 곧 통보가 갈 것이오. 그리고······.”
윤태상은 분가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가문이 분열된 채 참여한 지난 혼천의 쟁투에서 힘을 집중하지 못한 홍천검가는 다른 가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가문의 쇠락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가문회합에서도 말석으로 밀려난 처지였다.
머지않아 벌어질 혼천의 쟁투에서 약진하기 위해서 가주가 결단을 내린 터라 윤태상의 어조는 무척이나 냉철했다.
‘가주와 군사에 올랐을 때 홍천검가의 부흥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하더니······.’
설명을 들을수록 윤길상을 비롯한 분가의 일원들은 본가에서 그간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냥 계획뿐만이 하나하나가 빈틈이 없는 계획이었다.
‘가문을 위해 욕심을 버리고 매진한 것이 분명하구나. 가주 위까지 걸려 있는 판이다. 승산은 충분하다. 이렇게까지 준비한 가문은 없을 테니까.’
윤태상의 말처럼 혼천이 열릴 조짐이 나타났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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