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11
모든 것이 연결될 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민준이 백일이 되었고, 수진이 출산휴가를 마친 탓에 민준을 돌보는 일은 유정의 몫이 되었다.
가게 옆에 붙은 작은 방을 개조해 육아방을 만들고 수진이 출근하면서 민준을 맡기면 돌봐주었다.
덕분에 가게에 사람을 하나 더 채용해야 하느라 이익이 줄어드는 일이었지만 유정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이 초벌로 해장국을 끓여 놓으면 사람 하나를 두는 것으로 민준을 돌볼 여유 시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며느리인 수진이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유정이 나름 고민해서 만든 해결책이었다.
바쁜 검사 생활에도 불구하고 수진은 될 수 있으면 일찍 집으로 들어오려고 노력했다.
새벽부터 가게를 여는 터라 시어머니인 유정이 힘들 거라는 생각에서였는데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건이 집중될 때는 일찍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런 빈틈을 성찬이 메워주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를 배려하며 민준을 길렀다.
화목한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커가는 민준은 회귀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 * *
모처럼 만의 휴일.
성찬은 문갑 위에 둔 사진기를 얼른 집어 들었다.
엉금엉금 기던 아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였다.
“어! 어!”
“여, 여보!”
“민준아!”
성찬을 따라온 민준이 문갑을 잡고 일어서자 다들 놀랐다.
균형을 잡는가 싶더니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에 가족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이고! 장하다.”
“민준아! 그래. 어차! 어차!”
생후 200일밖에 안 된 민준은 일곱 발자국이나 걸었고, 옆을 따라오던 수진이 넘어지려는 찰나 얼른 잡았다.
“우와! 우리 아들!”
“까르르르!”
수진의 환한 얼굴 보며 민준도 환하게 웃었다.
“이야! 우리 아들 대단하다. 육상 선수를 시킬까? 아니면 축구선수를 시킬까? 하기만 하면 국가대표인데 말이야.”
찰싹!
“호들갑 좀 그만 떨어라.”
“아이고, 아파라!”
“아빠란 작자가 왜 이렇게 촐싹거리는 게냐?”
“어머니! 이게 말이 돼요? 겨우 여섯 달이 조금 넘었어요. 국가대표 운동선수들도 저 나이 때 기어 다녔을 거라고요. 운동선수 시켜야 한다고요. 하기만 하면······.”
찰싹!
“그만 좀 해라. 팔불출도 정도가 있지. 민준이가 남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뭘 할지는 민준이가 결정해야지.”
“하하하! 알아요. 하지만 이런 운동신경이면 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아직 어린 나이니 조금 더 자란 뒤에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내가 따로 알아보마.”
“고마워요. 뭘 하든, 틀림없이 국가대표가 될 거예요.”
“아이고. 못 말리겠다. 어멈이 좀 말려봐라.”
“어머님. 이이는 저도 못 말려요.”
유정은 며느리의 말에 아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힘들었지만 다들 기뻐하시는 걸 보니 잘한 것 같다.’
자신의 예상대로 첫걸음마를 떼는 모습에 기뻐하는 가족을 보니 민준도 기뻤다.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준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더 일찍 보여 줄 수도 있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집에 있는 시간에 맞추고자 한 민준의 배려였다.
소소하지만 기쁜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벤트와 같았던 첫걸음마를 끝내고 저녁이 되자 민준은 성찬 부부가 식사하는 동안 이유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이유식은 유정이 잣과 쌀을 곱게 갈아 만든 것이었는데 간이 심심해도 입맛에 맞았다.
식사를 끝내고 난 뒤 국화차를 마신 후 민준의 재롱을 보다가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지친 것인지 민준이 자꾸 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진은 잠에 빠진 아들을 안고 방으로 갔다.
민준이 따로 자는 방이었다.
집에는 방이 세 개였는데 하나는 유정이, 다른 하나는 부부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민준이 사용하는 방이었다.
수진이 침대에 자신을 눕히는 순간 잠이 달아났지만, 민준은 그냥 잠이 든 척했다.
불이 꺼지고 방문이 닫히자 민준은 눈을 떴다.
이유식을 먹고 잠깐 졸았던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기에 아기 침대에 누워 오늘 일을 상기했다.
‘휴우, 오늘 하루도 잘 보낸 것 같구나.’
아직은 어린 나이라 그런지 조금은 힘든 하루였다.
그렇지만 팔불출 같은 아버지, 환하게 웃던 어머니, 그리고 미소를 짓던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자 마음이 흡족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부모님과 할머니의 사람을 알 수 있어서 그런지 회귀한 이후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먼 훗날의 일이지만 민준은 얼마 전부터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교통사고를 막는 것에 골몰하고 있었다.
오늘은 결론을 낼 생각이라 고심에 빠져들었다.
여러 가지 가정하에 생각에 골똘하던 민준은 갑자기 들려오는 인기척에 눈을 감았다.
딸칵!
문이 열고 들어온 것은 유정이었다.
수면 등을 켠 유정은 누워있는 민준에게로 다가왔다.
민준은 여느 때처럼 자는 척을 했다.
“우리 손주 잘 자는구나.”
‘무슨 일이시지?’
부모님이 출근은 하면 가게에 붙은 방에서 지내는 민준은 수시로 유정의 보살핌을 받아왔다.
하지만 부모님이 잠든 이런 깊은 밤에 할머니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의아했다.
“예쁘게도 우리 민준이가 오늘 걸음마를 뗐구나. 건강해서 이 할미는 정말 기쁘구나.”
나직한 어조로 말하며 대견한 듯 자신을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에 민준은 기분이 좋아졌다.
유정의 손길은 쓰다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사지하듯 손자의 전신을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자는 척하는 것이 무안했던 민준은 조용히 눈을 감고 할머니가 해주는 마사지를 받았다.
온몸 구석구석 퍼지는 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민준아.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손자를 주무르던 유정은 애정이 듬뿍 담긴 말과 함께 품에서 지금이 5cm 크기의 납작한 하얀색 조약돌들을 꺼냈다.
모두 7개였는데 그중에 하나를 큰 대(大)자로 아기 침대에 누워있는 민준의 정수리 쪽에 가져다 댔다.
유정이 손을 떼자 놀랍게도 하얀색 돌은 마치 철판에 자석이 붙듯 민준의 정수리에 달라붙었다.
유정의 행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왼손에 들고 있는 하얀 조약돌 중에 2개를 집어서는 민준의 가슴 한복판과 배에 올려놓자 달라붙었다.
그리고 차례대로 하나씩 양손 손바닥과 발바닥에도 가져다 대자 자석처럼 붙었다.
품에서 꺼낸 7개의 조약돌이 모두 자리를 잡자 유정은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손자를 바라보았다.
‘성찬이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아무 일 없으면 좋겠구나.’
유정이 이런 알 수 없는 기행을 벌인 것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했었던 일이라 그때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약돌에서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아들인 성찬과 마찬가지라고 믿었던 유정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탓에 눈이 커졌다.
유정이 놀라는 사이 민준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정수리를 비롯해 가슴과 아랫배, 그리고 사지에 뭔가 달라붙더니 이내 그곳에서 청량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뭘 하셨기에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이건?’
청량함 사이로 에너지 스펙트럼을 느꼈을 때와는 다른 특이한 에너지가 느껴졌기에 민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질적이지만 그렇다고 나쁜 느낌은 아니다. 할머니가 뭘 하셨기에 이런 거지?’
할머니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민준은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어? 어······.’
민준은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이질감에 의식이 빨려 들어가듯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민준이 의식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약돌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던 광채가 서서히 사라졌다.
“끝났구나.”
안도하는 한숨과 함께 유정은 자석처럼 붙어있는 기이한 조약돌들을 다시 회수하더니 품에 넣어 깊숙이 간직했다.
“휴우우!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거늘, 결국 시아버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되었구나.”
유정이 한 일은 가문 대대로 이어진 일이었다.
아들인 성찬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해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손자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아들에게 나타나지 않아 안심했는데 격세로 전해질 것이라는 시아버지의 말이 맞았기에 유정의 시름이 깊어졌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민준이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이 닿는 데까지 준비하는 수밖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아는 유정이었다.
미련을 둘 바에야 손자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유정은 민준을 바라보다가 방을 나섰다.
유정이 나가자 민준의 눈이 떠졌다.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린 민준은 유정의 독백을 들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고민하시는 건지 모르겠구나. 증조할아버지가 하셨다는 말씀이 뭐기에······.’
유정의 한숨에서 느껴지는 시름에 민준은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하셨다는 말씀이 궁금했다.
“아아함!”
‘왜 이렇게 졸리지?’
민준의 의문은 금방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몰려드는 수마를 감당할 수 없었던 터라 민준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부터 민준은 유심히 유정을 관찰했다.
밤에 있었던 일과 고민하던 유정의 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유정은 평소처럼 가게를 열고 장사를 했고, 밤이 되었을 때도 어제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켜봐도 다른 일이 없자 관심이 사라졌다.
민준은 평소처럼 열심히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가게에 달린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아기 침대를 이용해 운동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후 민준은 무럭무럭 자랐다.
돌이 지나고 두 살이 될 무렵에는 네다섯 살 되는 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발육이 무척이나 빨랐다.
주변에서는 장군감이 태어났다고 다들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발육상태만이 아니었다.
“할머니. 나 잘래요.”
유정은 옆에서 서서 또렷한 발음으로 자신을 보며 말하는 손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졸리면 자야지. 할미가 토닥토닥해주마.”
“헤헤! 네!”
유정은 민준을 안아 들고 등을 토닥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빠르구나. 시아버님이 주신 것을 전한 것이 여섯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돌이 지나자마자 말을 시작한 손자였다.
시아버지로부터 유산에 대해 듣기는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유정의 고심이 깊어졌다.
‘너무 튀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정말 특별한 손자였기에 유정은 걱정이 되었다.
민준의 특별함이 알려지면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손자가 가문의 힘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는 손자의 특별함을 감춰야 했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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