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20
모든 것이 연결될 때
유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데도 놀란 기색이 하나도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눈빛이 지금도 뇌리에 선명했다.
‘결코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꿈이 선택한 아이라는 건가?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던데 꿈에도 나올 정도면 그들처럼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을 확률이 높다.’
준우는 비금도에서 가져온 걸 가지고 있을 민준이 자신을 쫓고 있는 자들과 같은 특별한 능력자라고 확신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알아본 결과 자신을 쫓는 자들이 유물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얻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잘 가져갔겠지? 후우, 피곤하군. 좀 쉬자.’
한동안 신경이 곤두섰던 탓에 피곤함을 느낀 준우는 시외버스 안을 한 번 둘러보곤 좌석에 기대어 선잠을 청했다.
바로 깰 수 있도록 얕게 잠을 자던 준우는 고속버스가 군산에 도착하자 눈을 떴다.
드르르!
허리를 울리는 진동에 삐삐가 온 것을 느낀 준우는 액정에 나타난 숫자를 확인했다.
8282로 호출이 와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버스에서 내린 준우는 터미널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수화기를 들고 삐삔 번호와 비밀번호를 누르자 녹음된 음성이 수화기로 흘러나왔다.
[오전 열 시 경에 혼천이 열릴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지금 무가들이 총회나 회합을 열고 있습니다. 쟁투를 준비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분명합니다. 식솔들에게는 가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두 번째 징조가 나타나면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예상은 했지만 이상하군. 앞으로 몇 년은 더 지나야 징조가 나타날 텐데. 어째서······.”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지만 뜻밖의 소식이었다.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너무 빠른 시기에 혼천이 열릴 징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설마······.”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준우는 지금까지 자신이 줄기차게 꾸었던 꿈이 문득 떠올랐다.
“혼천의 징조가 나타난 걸 보면 생각해 볼 문제다.”
유준우는 혼천이 시작될 징조가 나타난 것이 자신의 꾸기 시작한 꿈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이 비금도에서 얻은 것을 민준에게 전한 시간이 녹음된 내용의 시간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징조가 나타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단 꿈에서 본 이들을 찾아보자.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처음부터 예사로운 꿈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금도에서 찾은 물건을 전한 후 꿈을 꾸고 혼천의 징조가 나타난 것을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준우는 이번에 만날 사람들에게 단서가 있기를 바랐다.
* * *
현실에서는 의식을 잃은 상태지만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의 민준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디멘션 코인이 부리는 조화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이 무의식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었다.
‘이건 또 뭐지?’
눈을 뜨고 있고 정신도 온전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민준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무의식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민준은 알 수 없는 주변 상황에 긴장했다.
긴장한 것도 잠시, 민준은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부모님과 여행을 갔던 계곡에서 가만히 잠수했을 때처럼 부유하듯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물속인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조금 전까지 방 안에 있었는데 물속은 말이 되지 않았다.
기계어를 보다가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고 난 뒤에 갑자기 있게 된 곳이라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도 의심이 갔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눈을 뜬 것 같은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밤에 계곡에서 잠수해도 이렇게 어둡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민준은 의아했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라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알 수 없는 이질감!
의문을 품기 무섭게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여기가 무의식인 건가? 여기가 무의식이라면 뭔가 느낌이 있어야 정상이다. 아무 느낌이 없는 걸 보면 내 무의식은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의 무의식 안이라면 조금이라도 동질감이라도 들어야 할 텐데 이질적인 것 말고는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이상한 것은 이질감이었다.
이질적인데 이상하게도 낯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여기는 절대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일부러 이런 곳에 들어 올 이유도 전혀 없으니 디멘션 코인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거라는 건데?’
이렇게 비정상적인 곳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있을 만한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디멘션 코인!
자신을 과거로 회귀하게 만든 디멘션 코인이 부린 조화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를 않았다.
‘으음, 어쩌면 여기는 디멘션 코인을 나에게 건넨 자가 만든 공간일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디멘션 코인을 건넨 걸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정신 계열의 권능을 얻은 이들 중에는 자신의 의식 세계로 다른 이의 의식을 끌어올 수도 있다고······. 어?’
아이템을 통해 정신 계열의 능력을 얻은 자들에 대해 생각하던 민준의 뇌리로 새로운 정보가 떠 올랐다.
관념의 세계라는 것이 인식되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이전 삶에서도 몰랐던 정보였다.
‘으음, 어쩌면 여기는 나에게 그걸 전해준 자가 만들어낸 관념의 세계일지도 모르겠군.’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정보에 민준은 경계심을 높였다.
정신 계열의 능력에 당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보이지는 않아도 느낄 수는 있으니 일단 여기가 어떤 곳 인지부터 살펴보자.’
정신을 집중해 자신이 있는 세계를 살피던 민준은 문득 이 공간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언제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인가? 그렇지만 그런 기억이 전혀 없는데······.’
민준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며 정신을 집중했다.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집중해서 그런지 조금 전과는 달리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민준은 안도감이 들었다.
‘으음, 감각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구나. 에너지 스펙트럼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할 수 없지. 다른 방법을 써보자. 그 방법이라면 이곳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
아버지와 함께 TV에서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이 났다.
히말라야에 있는 동굴에서 오랫동안 수련을 했다던 수도자의 인터뷰가 나왔던 다큐멘터리였다.
워낙 인상 깊게 보았고 절대적인 기억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민준은 수도자가 설명했던 호흡을 따라 할 수 있었다.
집에서 할 때는 어렵기만 했는데 느낌이 왔다.
‘되, 된다.’
차츰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호흡에 집중할수록 주변 상황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정신을 극대화한다더니 사실이구나.’
있는 그대로 인지하여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 걸 믿지 않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호흡이 안정된 상태에서 마음을 열면 앉아서 천 리를 둘러볼 수 있다고 했으니······.’
추레한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되는 것을 확인한 후라 민준은 수도자의 수련법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집중하며 마음을 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감각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며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열고 정신을 극대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자신감이 생겼기에 같은 방법으로 주변을 살펴 나갔다.
‘으음,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건가?’
누군가가 만들어낸 관념의 세계 안이라고 해도 뭔가 느껴져야 정상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혼자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존재만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가두려고 만든 공간을 아닐 거다. 분명히 목적이 있어 만들어진 곳이 분명해 보이니 더 살펴보자.’
보이지 않는 공간이지만 적대적인 느낌은 없었다.
생각의 범위가 계속 확장이 되었고, 역시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끝까지 가보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확장이 끝났다.
전체를 인식하자 공간 내부가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정말 모호한 공간이었다.
존재의 의미를 가진 것은 없었지만 흐름이 있었다.
일정한 흐름이 어둠을 따라 존재하고 있고, 엄청난 거리를 두고 같은 느낌을 주는 흐름도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섞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구나.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흐름도 익숙한 것이 언젠가 한 번 마주한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익숙함에 민준의 의문이 짙어가는 가운데 어둠으로 물든 미지의 공간 안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보이지는 않아도 어둠이 뭉클거리며 하나로 모이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건 뭐지?’
형태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 같은 모습이 갖춰지자 의지가 느껴졌다.
‘역시, 여긴 저 존재의 의지로 만들어진 곳이구나.’
당연한 것처럼 이곳이 눈앞의 의지가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것과 그가 이곳으로 초대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저러지?’
알 수 없는 존재가 손가락을 들어 머리를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정신을 잃기 전에 사라져 버렸던 디멘션 코인이 민준의 눈앞에 스르르 나타났다.
어둠이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정신을 집중한 탓에 선명하게 디멘션 코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으음, 빛을 빨아들이고 있구나. 그래서 암흑뿐인 공간이 된 건가? 이런! 또 변한다.’
외형은 그대로지만 황금색에서 다른 색으로 변하고 있다.
그저 느껴지는 것이지만 은색 같으면서도 금색 같은 도저히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색을 발하고 있었다.
빛을 흡수해 주변을 암흑으로 만드는 코인이 마치 홀리는 것 같은 신비한 빛을 뿌리며 묘하게 사람을 빨아들였다.
기이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느낌에 시선을 돌렸다.
암흑이 사라지고 뭔가 나타났다.
정신을 고도로 집중해 감각을 확장하니 명백하게 사람으로 인지되는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저런 감정이 느껴지는 거지?’
슬픔과 분노가 느껴졌다.
그것만이 아니라 자책감도 느껴졌다.
자신을 처절할 정도로 탓하는 느낌에 민준은 어째서 인지 마음이 시리도록 아팠다.
‘이런 감정은 또 뭐지?
감정에 공조하는 것도 모자라 친밀감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자신을 보는 것 같은 황당할 정도였다.
‘사라지는 건가?’
낯선 감정에 왜 생기는 것인지 생각해 보를 겨를도 없이 존재의 형태가 흐릿해졌다.
그런데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로 변하고 있었다.
에너지가 회전하고 있는 디멘션 코인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체불명의 에너지를 모두 흡수하는 찰나 디멘션 코인에서 눈이 부실 것 같은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다.
번쩍!
‘뭐, 뭐지?’
섬광과 같은 광채가 퍼져 나오더니 민준의 몸을 덮었다.
디멘션 코인에서 나온 빛과 민준이 하나가 되었다.
빛으로 변한 민준은 부유하듯 어디론가 흘러갔다.
‘어디로 가는 거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관념의 세계를 만든 이가 자신을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어!’
어느 순간 밝은 점 하나가 나타나더니 공간이 일그러졌다.
빛으로 이루어진 점이 길게 늘어지며 마치 지평선처럼 긴 선으로 변하더니 공간을 가로질렀다.
쩌-억!!
공간을 가로지른 끝을 알 수 없는 선이 마치 눈을 뜬 눈동자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어? 어?’
벌어진 틈이 엄청난 흡인력으로 민준을 끌어당겼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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