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코드라 불리는 코인.
모든 것이 연결될 때

담당 검사가 이번 투자에 가담한 자들을 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선을 넘지 않은 상황이다.
가담자들을 조사하다 회의 실체를 엿보기라도 한다면 제거해야 할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검찰은 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더군다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비밀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 이상 섣불리 처리할 수는 없었다.
검사를 처리할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고, 언제든지 결행하기만 하면 되니 결정을 뒤로 미뤄도 문제는 없었다.
그렇지만 기존에 만들어졌던 조직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이 신경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상황실장은 자신 숨겨 놓았던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검찰만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데도 내가 놓치고 있었다니······.”
일주일 동안 수하들을 시켜 조사한 자료에서 밝혀진 내용을 보면서 상황실장은 어이가 없었다.
정권의 핵심인 BH의 수상스러운 움직임과 정부의 고위급 인사 단행에 숨어있는 의도를 놓쳤던 것이었다.
자책감이 든 것은 잠깐 이었고, 상황실장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정부에서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회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것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시기에 차장 검사가 총장도 모르는 비밀 조직은 만들었다면, 이번에 발생한 환란을 전 정권의 실책으로 몰아가기 위한 칼로 쓰기 위한 것일 확률이 높다.”
검찰총장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자였다.
국가 부도 사태라는 초유의 환란을 불러온 책임을 묻기 위해 정부 고위층이 움직이고 있다면 적합한 인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비밀 조직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상황실장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검찰 비밀 조직만으로는 이번 환란을 불러온 책임을 묻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어느 정도 수사를 한 후 가닥을 잡은 뒤 검찰 조직을 확대하게 될 테니 자신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상부에서도 아직 검찰 내 비밀 조직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면······.”
상황실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외적인 신분이라면 검찰 내부에 비선을 심기에 무척이나 적합했다.
집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검찰을 비롯해 정부 요직에 장학생이라는 이들을 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과 연을 끊어야겠지만 이건 기회다.”
비밀 조직의 실체를 확인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검찰 내부에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줄 뻐꾸기를 심어야 했다.
검찰 내부에 심는 사람이 회의 인물이어서는 곤란하기에 집안에서 키우고 있는 자들이 필요했다.
몇을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려면 유성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비롯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자신의 처지로서는 결코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인 이상 회에 온전히 몸을 담는 것도 괜찮은 거래였다.
“일단, 당주님을 찾아가 보자.”
검찰에 비선을 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까닭에 지금의 자신이라면 권한이 확대되어야 가능하다.
명분이 생긴 이상 파벌을 떠나 회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절호의 기회였기에 상황실장은 회에 들어올 때 이후로는 보지 못했던 당주를 찾아보기로 했다.
파벌을 이끄는 수뇌 중에 하나로 실권은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생가에서였다.
“후후후! 빌어먹을 집안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재벌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서자라는 굴레로 지금까지 온갖 핍박과 견제를 받으며 억눌린 삶을 살아왔던 터였다.
평생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여기던 자신의 집안이 이런 식으로 도약의 발판이 될지 몰랐던 터라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숨죽이며 회의 중심부로 편입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당주가 자신에게 약속한 대로 그곳에 들어가 코드만 승인받을 수 있게 된다면 날개를 달 수 있다.
코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회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비선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드를 승인받으면 분명히 회에서도 권한 확대를 승인해 줄 것이기에 상황실장은 곧장 자신의 거처를 나섰다.
자신의 차를 몰고 거처를 떠난 상황실장은 강남으로 갔는데 그곳에 당주가 사는 저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택 앞에 도착한 상황실장은 차에서 내렸다.
고풍스러운 돌담이 길게 늘어선 저택은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했는데 대문으로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십니까?
“ 상황실장입니다. 당주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자 상황실장은 안으로 들어갔다.
기괴한 모양의 자연석이 늘어선 잔디밭을 지나 저택으로 가자 문이 열리며 당주를 시중드는 집사가 나왔다.
상황실장은 집사의 안내로 2층에 있는 서재로 갔다.
당주를 만난 것은 회에 가입할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상황실장으로서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어서 오게.”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별일 없지. 그래, 무슨 일인 가?”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힘없는 늙은이라 전화만 해도 될 것을 이렇게 직접 온 것을 보니 중요한 일 같은데 자리에 앉게.”
“예, 당주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소파에 앉았다.
“전해는 들었네만, 검찰 문제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일단 들어보세.”
“그동안 제가 조사한 바로는······.”
상황실장은 정부에서 IMF 사태를 불러일으킨 이들에 대한 처벌을 위해 검찰 조직을 확대하리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단순하게 그런 상황을 전해주기 위해 여기 온 건 아닐 테고. 자네가 하려는 것이 정확하게 뭔가?”
“이번 기회에 검찰 내에 장학생을 키우고 싶습니다.”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자네 집안에서 해 온 것처럼 협조할 자들을 검찰 내부에 심자는 것 같은데, 내 말이 맞나?”
“그렇습니다.”
“으음, 자네 의견은 동감하나 그건 쉽지가 않은 일이네.”
“쉽지가 않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상황실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동안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잠자코 있었던 것은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네.”
“검찰에도 뭔가 있군요?”
“그렇네. 회에는 미치지 못하나 가지고 있는 힘이 만만치가 않네. 섣불리 처리하면 회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네.”
“혹시?”
“맞네. 회가 거느린 자들 못지않은 이들이 포진해 있네.”
“으음. 그럴 수가.”
“오랫동안 이 땅을 지켜온 자들이 검찰 뒤에 있네. 바로 그들의 힘을 이어받은 자들이 그곳에 있기에 가만히 있는 거네. 섣불리 움직여 그들이 나서게 되면 그야말로 처절하기 그지없는 전쟁이 벌어지게 될 테니 말이야.”
지금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문제가 컸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내가 심으려는 자들이 발각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유성그룹을 향해 있을 테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심고자 하는 이들은 현직 검찰들이니 말입니다.”
“으음, 써먹을 자들을 벌써 섭외해 둔 건가?”
“제 집안에서 오랫동안 길들인 이들 중에서 몇 명 정도 검찰 내부에 심는다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회가 아니라 자네 집안사람으로 위장해 심자는 것이라면, 유성그룹에서는 수족을 내주는 것일 텐데······. 으음.”
생각을 이어가던 당주는 상황실장이 검찰에 사람을 심는다는 말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신의 집안에서 갈아 놓은 칼을 빼 오겠다는 것은 연을 끊고 온전히 회에 투신하겠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유성그룹과는 연을 끊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전에 제게 하신 약속을 지켜주십사 하고 찾아뵌 겁니다.”
“정말 온전하게 회에 귀의할 생각인 건가?”
“그렇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그룹 정도는 혼자만의 힘으로 충분히 집어삼킬 수 있음에도 포기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처음 권유할 때 단호하게 거절하더니. 자네가 가진 모든 걸 버리고 회에 몸을 담겠다고 하는 걸 보니 알겠네. 다시 묻겠네. 회에 귀의해서 코드를 받길 원하나?”
“그렇습니다. 이제는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확실히 진심이로군. 자네가 그리 결심했다니 약속한 대로 내 권한으로 허락하도록 하지. 따라오게.”
당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섰다.
상황실장은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간 곳은 저택의 지하였다.
지하실로 내려가자 기괴한 문양이 양각된 커다란 대문이 두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문에 있는 기하학적인 문양은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무척이나 신비로운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여기로구나.’
상황실장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문 뒤가 선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대로 안에 들어가면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되는 순간 특별한 힘을 얻게 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당주라 불리는 백발의 신사는 자신의 손바닥을 올려 문의 중앙에다가 댔다.
대문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 춤을 추듯 움직였고, 뒤를 따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의 푸른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르르르릉!
문이 열리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대문 너머는 다른 저택의 지하실과는 다르게 사방이 순백의 대리석으로 된 특별한 공간이었다.
기둥조차 하나 없는 공간의 바닥에는 원형으로 된 문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푸른빛이 흐르고 있었다.
“저 문양 가운데 서게.”
“예.”
상황실장은 곧바로 원형의 문양 가운데로 가서 섰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서 있으면 선택을 받을 걸세.”
우우우우웅!
상황실장이 자리에 서고 당주가 손으로 수인을 맺기 무섭게 공간이 울리며 푸른빛이 바닥으로부터 치솟아 올랐다.
잠시 뒤 푸른빛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상황실장의 머리 위로는 은색의 코인이 회전하고 있었다.
“자네 머리 위에 있는 코인을 손으로 잡게.”
번쩍!
코인을 부여잡은 상황실장의 손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일렁이기 시작했는데 청동으로 만들어진 대문에 있던 것과 비슷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문양은 상황실장의 주변을 맴돌다가 천천히 그의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하하하!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나와 같은 실버 등급의 코드를 받다니, 정말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당주님.”
“내게 감사할 필요는 없네. 모두 그분의 뜻이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나가세.”
두 사람은 지하 공간을 나와 다시 서재로 올라갔다.
“코드에 완벽하게 적응하려면 적어도 십 년의 시간이 필요할 걸세. 능력은 점차 상승할 테니 실망하지 말고 정진하게. 회에 속한 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실장은 고개 숙여 당주에게 인사를 한 후 저택을 나섰다.
그는 이번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상황실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직속 상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상관이 1년 내내 머무는 중인 호텔로 간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보고했다.
유성그룹의 장학생을 신설되는 검찰 조직에 잠입시키는 작전에 흥미를 느낀 직속 상관은 그의 의견을 수락했다.
전보다 높은 권한을 승인받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능력자를 부릴 수 있는 코드 번호를 부여받았다.
보고를 마치고 상황실로 돌아가는 그의 표정은 회에 일원이 된 이후 그 어느 때 보다 밝았다.
회에서도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능력자에 대한 권한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계단이 되어줄 터였다.
“이제 시작이다. 일단 수족이 될 자들부터 확인하자.”
정회원이 된 지는 옛날이었지만 자신이 속한 파벌이 부리는 능력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확인이 우선이었다.
그들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 때였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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