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음모의 시작. (2)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Ⅱ
대낮의 소나기가 멈추었다. 찌푸린 표정을 거둔 하늘은 다시 구름 사이로 맑은 얼굴을 보여준다.
그 아래 펼쳐진 아스팔트 도로에 한 대의 차량이 달린다. 자동조종으로 편안한 차내. 운전석의 노인은 팔짱을 끼고 앉아 유행하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뒷좌석의 젊은 여자는 옆자리 카시트에 앉힌, 잠투정을 시작한 딸의 아우성을 들어주느라 여념이 없다.
“좀 안아서 얼러주지 그러니.”
노인의 말에 젊은 여자가 옅은 미소로 답했다.
“안 돼요. 할아버지. 안아주면 모처럼 든 잠도 다 깨버릴 거고...”
세 살 난 딸은 장난꾸러기. 풀어주는 순간 뒷좌석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 뻔하다. 지금도 적지 않은 과자 부스러기를 카시트에 흘려놓고 있다.
“그래도 얼러주려무나. 창은 미리 열어놓으마.”
“알았어요.”
칭얼거리는 딸을 안아 어른 그녀는, 바람이 너무 세지 않도록 오사카에서 산 대나무 부채로 가려주었다..
스치는 자연풍경에 노인이 감회의 눈길을 주었다.
“지상은 넓구나... 죽기 전에 얼마나 다녀볼지...”
“백 살까지는 멀쩡하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웃어야 하나요?”
“아, 요즘은 이래저래 아프다고...”
과장된 기침이 뱉어졌다.
“불효 손녀는 재혼할 생각도 안 하고... 죽기 전에 둘째 증손은 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생각 없어요. 남자도 귀하고...”
내전으로 인한 성비 차이는 상당하다.
노인은 조심스레 말했다.
“...필리아.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지상인이라도 할아비는 상관 안한다. 라므에도 많이 들어와 있고...”
“...괜찮아요. 그런 게 아니라...”
그녀는 약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조금 더... 그이를 추억할 시간이 필요해요.”
“...알았다.”
무척 쾌활했던 손녀는 지난 내전에서 부모와 남편을 모두 잃었다. 걱정되어 이렇게 자주 데리고 나와 주지만, 역시 예전의 웃음을 찾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릴까.
차는 어느덧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든다. 일부러 돌아가는 셈이지만 시간은 많고, 지상의 시골 풍경도 나름 즐길 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뭔가 구릿하다. 거름 냄새에 무언가의 정취를 느낄 정도로 그들은 자연 환경에서 살지 않았다. 노인은 급히 창문을 닫았다.
산비탈에 오르는 동안 숲을 지나가는 한적한 국도는 여름날임에도 시원하다. 그는 다시 창문을 열어 공중도시에서는 맞기 힘든 자연의 바람을 만끽했지만...
“할아버지, 저기...!”
손녀딸의 외침에 놀란 노인은 급히 차에 정지명령을 내렸다.
인적없는 산비탈에 맞닿은 저 멀리, 옷이 구겨지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젊은 아가씨가 수풀에서 구르듯이 뛰쳐나온다.
급정거라도 관성 제어가 되어 있어 차는 거의 요동치지 않지만, 대신 조손(祖孫)의 놀란 가슴이 요동쳤다.
“도와주세요...!”
산발의 그녀는 양손을 거칠게 휘두르며 이쪽으로 뛰어온다. 창백하고 당황한 얼굴은 온통 흙투성이다.
노인은 급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쩐 일이오? 아가씨?”
“저기, 저기...!”
여자가 뛰쳐나온 수풀에서부터, 허겁지겁 달려오는 등산복의 두 남자가 보였다.
몹시 다급한지, 여자는 급히 뒷좌석의 문을 당기며 비명처럼 외쳤다.
“열어주세요, 빨리...! ...제발...!”
노인이 엉겁결에 열어준 문을 연 그녀는 재빨리 올라탔다. 손녀는 깜짝 놀라 딸아이를 부둥켜안았다.
“도망쳐요...!”
잘은 몰라도 무언가의 범죄에 연관된다. 노인은 급히 출발 명령을 내렸다. 사내 둘은 당황한 표정으로 쫒아오지만 차의 속도를 따를 수는 없다.
재빨리 달려 거리를 벌린 노인은 뒷좌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쩐 일이오? 쫓기고 있나요?”
잔뜩 겁에 질린, 20대가 간신히 된 듯 보이는 그녀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듬었다.
“...네...! 납...치...를 당해서...”
“...저런...!”
노인 역시 소름이 돋았다.
통치 반년이 넘는 동안 전반적인 범죄율은 감소 일로에 있었지만, 아직 이런 시골구석까지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는다. 도시집중계획은 시작일 뿐이다.
“겨우, 겨우 도망쳐 나왔어요.”
탄식과 한숨을 섞은 안도감이 얼굴에 물든 그녀. 머리는 산발이고 온몸이 흙투성이다. 겁간이라도 당하기 직전에 빠져나온 것일까.
손녀도 어느덧 동정심이 든 듯, 재빨리 가방을 뒤져 아기의 손수건을 꺼내어 건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얼굴을 대충 닦자 노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다행이군요. 일단 신고부터 해야겠어요. 그런 다음 경찰과 합류하고... 가까운 마을이 어디 있더라...”
노인은 팔찌를 열었다.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신고는... 괜찮아요.”
“아니, 아무래도 흉악한 이들인데... 잡아야지요.”
“정말 괜찮아요.”
밝힐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나. 혹시 상처 같은 것을 들쑤시는 걸까.
그렇지 않아도 두려울 텐데 계속 쳐다보면 무례다. 그리 생각한 노인이 앞을 보는 사이...
“악...!”
짧은 비명에 다시 돌아본 노인은 기절초풍했다. 그 늙은 눈에 비치는 광경, 그것은 믿을 수 없었다.
손녀딸의 왼쪽 목덜미에 박힌 단검이 막 빠져나오려는 참이다. 기겁한 노인이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밟아 수동 급정지를 하는 순간, 좌석을 넘어온 여자의 손이 노인의 머리칼을 움켜잡더니 자신 쪽으로 당겼다.
이내 단도는 노인의 울대로 파고들어 옆으로 그어졌고, 그는 짧은 신음으로 절명했다.
순식간에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른 이 가련한 여자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넘어가 동력을 정지하고 주변을 살폈다.. 한적한 국도에 사람의 흔적은 전혀 없다.
꺽인 목에서 흐른 피가 가슴에 이르도록, 마치 폭포처럼 피를 쏟아내는 엄마의 품에 안겨 시끄럽게 울어대는 아이. 하지만 간단히 무시한 그녀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었다.
52분 후, 산 너머에서 상당한 연기가 난다는 행락객의 신고. 그리고 출동한 산불감시용 탐사기의 선행 보고를 받고, 다시금 경찰용 알로프 3기와 함께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교통과 경관 두 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심한데...”
가드레일을 뚫고 아래로 구른 차는 전소. 타고 있던 사람대신 부스러진 검댕 덩어리만 그 안에 남았다.
이어 도착한 상사를 향해 경관들이 경례를 붙였다.
“수고한다. 뭐 좀 나왔나? 신원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타버린 흔적을 봐서는 저기... 그들 것 같습니다.”
“...그래? 가족을 찾고 연락해 봐. 수습반도 부르고...”
상사(형사)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저들 일이네. 그렇다면 뭐...”
다음 날, 오사카 현 경찰 주재로 기초 조사가 이루어졌다.
톨게이트의 카메라 기록으로는 당시 근방에 있었던 아샤르제 차량은 한 대. 차종은 5인승, 광자동력을 사용하는 평범한 것이지만 주행기록은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거의 70도 가까운 경사면 아래로 40여 미터나 굴러 떨어진 차량은 그 자체로 생존자를 의심케 한다. 게다가 하필 광자동력은 차량 전소에 한 몫을 단단히 해, 고온에 노출된 차체에서는 어른 두 사람의 아주 적은 DNA만 추출할 수 있었다. 하물며 아이는 아예 증거 채취 자체가 실패했다.
유사 태양을 만들어낸다, 라고 일컬어지는 에너지 순환형 외연기관인 광자동력기관은, 그 특성상 규격 외의 충격에는 상당히 취약하다. 특히 심한 충격에는 에너지가 순식간에 풀려 상당한 반경에 걸쳐 굉장한 고온을 발생시킨다.
과거 요나구니에서 아레아가, 기밀 유지를 위해 자신의 조르프를 완전 파괴할 때에 사용했던 자폭장치도 이와 연관된 기술이다.
상당히 위험한 기관임에도, 광자엔진은 민간인 차량에는 폭넓게 사용되는 것이다. 민간 차량은 안전한 공중도시에서의 자동조종을 전제로 하는 것. 이렇게 큰 사고를 낼 일이 전무하다 할 수 있다. 또한 무공해와 무소음은 물론, 한번 장착하면 폐차까지 정비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손이 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지상 겸용으로 새롭게 나오는 민수용이나 완전 군사용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터. 하지만 퇴역 대휘, 일반인이 갖고 있는 오래된 공중도시용 차량은 신뢰성은 있다 해도 빤하다.
오르트는 딱히 주변에 원한을 산 적도 없고 더 이상은 단서도 없었다. 결국 사건은 단순 사고로 종결되었다.
황제의 밀명으로 주변 토양과 도로까지 샅샅이 뜯어본 재조사에도, 역시 별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범죄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통치. 공중도시 안이라면 몰라도 지상, 그것도 시골에까지 두루 치안력이 미치지는 못하며 한적한 산길에서는 용의자도 전무하다. 더는 방법이 없었다.
“...알았다. 수고했네.”
재조사의 보고를 들은 황제가 무겁게 끄덕였다. 하지만 더는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는다.
...무엇이었을까.
경찰총감 도로프, 그의 약간의 의문을 남기고, 8월 18일의 사건은 그렇게 묻혀버렸다
“로드리고 퀸티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답니다.”
9월 6일. 조사실장 조태성이 가져온 뜻밖의 보고. 유키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었다고? ...특별한 점은?”
“그다지 없답니다. 수사권은 콜롬비아 경찰에 있으니 더는 손을 못 대지만, 아무래도 살인멸구(殺人滅口)의 냄새가 진하게 풍깁니다.”
죽었다면 그리 거물이 아니거나 단순 하수인, 아니면 그저 이용당한 것일 수도 있다. 추가조사는 해야 하겠지만, 아마 이 건은 기대 이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 아쉽네. 그쪽 경찰은 역시 못 믿겠지?”
“네. 워낙 험한 동네가 되어 놔서요. 아무래도 쓸 만한 정보를 얻으려면, 경찰이 아닌 갱에게 뇌물이라도 찔러줘야 할 판이지만...”
“됐네. 그런 정보 따위는... 홍콩 쪽은?”
“증언 몇 개를 확보했습니다. 일단 전하께서 보신 그 압둘이란 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자가 드나들었다는 증언이 하나. 그리고 그들이 있던 시절을 전후해 홍콩에서 실종사건이 빈번했는데, 그들이 떠난 다음부터는 아니었답니다. ...사람이라도 납치한 걸까요?”
“홍콩 경찰에게 했던 압수 수색 요청은?”
“역시 별다른 건 못 캐낸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지문 하나 남기지 않고 비워버렸다는군요. ...보통은 이렇게 철저하게 이사하지 않는, 그런 점에서 수상함은 가중되지 않겠습니까?”
“빌린 인물이 로베르트 슈타틴... 이 자는?”
“독일의 영세한 운송 사업가로, 자기는 명의만 빌려준 것뿐이랍니다. 그 대가로 매년 현금으로 10만 유로를 받기로 했다는군요. 매번 현금이 든 가방으로 은밀하게 받아서 자기도 정체를 모른답니다. 협조를 부탁한 독일 경찰에서는 그렇게 말하더군요.”
이렇게 되면 홍콩의 대저택 이외에는 접점이 끊긴 셈이다. 하지만 남은 것이 가장 유력하다.
“그럼 홍콩의 그 저택은 가디언즈의 지부, 아니면 본부였을 가능성도 있겠다?”
“네. 이 보좌관의 말에 따르면...”
조태성은 유키나의 옆, 이영을 눈짓했다.
“지부 자체도 많지는 않은 데다 비교적 소규모. 본부 소속 인원이 절반 이상이죠. 8개국에 퍼져있던 지부 중 미국, 그리고 일본의 40명이 최대급 지부였다죠.”
미국과 러시아, 일본, 그리고 영국과 한국, 중국에 이어 브라질과 터키의 8개국에 존재했던 지부.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영도 홋카이도 유학을 선택한 것은 일본 지부에서의 가디언즈 연수를 겸한 것이지만, 반대로 연수가 필요할 정도의 평대원에게 본부 정보는 주어지지 않았다.
간부인 장헌창은 좀 더 알고 있었겠지만, 지난 번 출국한 그는 이미 잠적했다.
“정보가 더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계속된 조태성의 곁눈질에 이영은 겸연쩍게 웃었다.
장담한 것 치고는 도움이 안 되나. 조금 부끄러웠다.
“워낙 비밀결사라, 조직원에게 정보가 주어지는 것은 능력 이전에 신뢰, 즉 오랜 기간의 연공서열이 커요.”
난감한 듯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던 여왕이 말했다.
“그건 됐고... 또 다른 문제는 말이야... 우리가 적대한다는 것을 알고도 그들에게 호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지. 이들도 잠재적인 적인데...”
외계인에 맞서 지구를 수호하는, 그런 세력이 있다는 것은 외계인 경계파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황제가 가디언즈의 존재를 밝히기 꺼려했던 이유는 자국민의 불만도 있지만, 아직 호의보다는 적의가 훨씬 많은 지구 여론이 가디언즈에게 쏠릴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편을 드는 여론도 생기고 있지요. 다소 엉뚱하긴 해도 말이죠.”
이영이 쓰게 웃었다.
사람이란,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는 쉽게 신성(神性)이나 마성(魔性)을 부여하기도 한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덕분에 천국의 길을 갖고 있다 여겨 아샤르를 지지하는 단체가 결성됨은 물론, 이성인 황족들을 무언가의 신, 그 하위 개념으로 받드는 사이비 종교도 발생하고 있었다.
“아, 그거... 하지만 달가운 것도 아닌데...”
신종교의 여신(女神), 그 제 2호가 투덜대자 이영이 물었다.
“왜요? 편을 들어주는 건데...”
“그들이 우리를 반길까, 아니면 우리가 가진 것을 반길까. 나만 하더라도, 녀석들이 내 머리와 마음속을 궁금해 할까, 아니면 내 치마 속을 궁금해 할까...? ...왜 내가 그런 머저리들과 놀아줘야 하지?”
“...정답이군요.”
이영은 살짝 움츠렸다.
같이 있을 때는 다소 잊곤 하지만, 왕좌에 있을 때의 그녀의 날카로움은 무디지 않다.
여전한 불만으로 여왕이 말했다.
“또 정보를 기다리는 시간인가...”
세계는 비로소 평화의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아무리 테러단체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되도록 조용한 것이 좋다. 다소 아쉽지만 신중해야 한다.
감히 바랄 수는 없지만 제대로 된 사고 한 번만 치던가, 빼지도 못할 꼬리를 드러내기만 해 봐라...
그것이 안전보장원의 지금 입장이었다.
“과연 가디언즈는 자금 출처가 어딜까. 외부 사업은 있다고 했지?”
유키나의 의문에 이영이 대답했다.
“네. 하지만 종목은 모릅니다.”
“그 정도를 유지하려면 보통의 사업은 아닐 거야. 이윤이 많이 남고 은밀한 사업이 뭘까...”
유키나가 공부를 했다고 해도 지구 사정은 그리 잘 아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이영이 유리했다.
“드러나지 않는다... 라고 하면 범죄 관련이겠죠? 이를테면, 무기 암거래나 마약... 같은 것은 아닐까요?”
“그럼 전 세계의 조직을 들쑤시면 뭔가 나오겠나? 하지만 결국 타국. 이 역시 함부로 쑤실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어렵네...”
조태성이 말했다.
“일단 추가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타국 정보기관과의 기존 연계는 끊겨버린 상태라, 정보 수집에도 한계는 있어요.”
“...역시 홍콩 쪽을 뒤져봐야 하나...”
유키나는 꽤나 고민했다. 조태성이 반문했다.
“하지만 홍콩 경찰이 우리에게 수사권을 줄까요?”
“힘들겠지? 그래도 어떤 구조였는지 보고 싶다. 정식으로 힘들다면 나라도 남몰래 갔다 오면...”
이영이 고개를 저었다.
“저기, 현왕이 타국에 밀입국을 하다 들키기라도 하면... 외교 분쟁감이에요.”.
“내가 외무성에 요청해서, 중국 정부에 압력을 좀 넣으라고 하면?”
“월권은 곤란해요. 또, 요즘 한창 강세인 외무성인데, 하필 현왕이 주축인 신생조직이 나서면 모양이 좀...”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중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는 것도, 우리 외교력의 현 수준을 생각하면 아직 무리겠죠.”
“답답해.”
초초한 손가락이 똑똑, 책상을 두들겼다.
“...아무튼 수고했어. 조사실장. 탐색은 계속하고, 정보실장 스즈키에게도 하던 일을 계속하라 전해.”
조태성이 나가자 이영이 피식 웃었다.
“서두르지 말라는 쪽은 어디의 누구였죠?”
그녀는 검지를 살짝 깨물었다.
“...초조해 보여?”
“상당히...”
“...그런가...? ...하지만 이해하지?”
“물론이죠. 하지만 약속했잖아요. 저도 몸조심하겠다고. 그러니 차근차근...”
“알았어.”
검지를 뗀 입술에서 문득 혀끝이 삐죽 내밀렸다.
“...홍콩 건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유일한 단서인 만큼 조금 보고 싶네. ...몰래 갔다 올까?”
“몰래요? 르샤르를 쓴다고 해도 중국 방공망을 우습게보면 곤란해요. 은폐는 시간제한도 있는데...”
“그거 말고... 신분 위장 입국 등의 방법은 있어. 허락이 떨어지면 해 볼까 해.”
“그럼 따라가도 되나요?”
“...왜?”
그녀의 고개가 갸웃거리자 이영이 씨익 웃었다.
“당신 혼자는 불안하니까요. 팔찌가 없어도 기본영어는 합니다. 저, 나름 공부 잘했어요.”
다소 과장되게 가슴을 펴는 그. 어디서 잘난 척이냐고 묻듯 그녀는 어이없이 웃었지만...
“그럼... 허락을 얻어 볼까?”
그렇게 찾아간 황제에게 유키나가 안부를 물었다.
“요즘 며칠 편찮으셨다는데... 괜찮으세요?”
세계를 돌아다닌 피로 탓이었을까. 그는 사흘이나 정무를 쉬었었다.
미간에 아직 검은 기가 남은 황제는 낮게 웃었다.
“...괜찮아. 할 말이 뭐니?”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잠시 고민했다.
“들키면 문제가 되니 증거를 남겨서는 안 돼. 게다가 가본 적도 없는 곳에 몰래 간다고?”
이영이 말했다.
“저는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관광 차원에서 몇 번...”
“이런 부잣집 도련님 같으니...”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아무튼 지리도 어느 정도 알고, 반면 우현왕 전하는 지구 사정에 어두우시니 아무래도 불안하죠. 가이드 역할은 제가 하고 싶은데요.”
“공무를 핑계로 은근슬쩍 놀러가는 느낌이다...?”
“그런 것 아닙니다. 물론 당일로...”
“뭐, 놀러갈 겸 며칠 정도는 있어도 된다. 표시나지 않게 다녀올 자신이 있으면 다녀와. ...출장비는 넉넉히 주마. 짜게 주면 그걸 핑계로 벌써 한 방 쓸라.”
유키나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정강이 한번 차도 돼요?”
놀릴 건수를 주면 한도 끝도 없다. ...못살아!
“안 돼. 그리고, 이젠 남자도 생겼으니 좀 조신해져라. 이 망아지야.”
황제는 평소처럼 개구쟁이 웃음을 지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사정은 이러하나 작중 인물은 모르는 이 사건.
그리고 성질 같아서는 세계를 뒤집어서라도 찾고 싶지만 이런 저런 제한에 걸려 있는 이들과, 작은 거라도 없을까 싶어 가게 될 홍콩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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