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괴물의 낙원 (6)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Ⅵ
요위는 숨을 삼켰다.
여유는 이미 사라졌다.
자신의 머리 위, 어느덧 부유하는 저 자.
인간의 왕이 왜 여기 있는가...?
“...저 사람은...?!”
순간 조용해진 전장. 하지만 이내 탄성이 통신회선을 울렸다. 특히 소리 높은 이는 아샤르 출신들이었다.
황제는 화답하듯, 진정시키듯 팔을 들며 외쳤다.
“아직이다...!”
케나르에게 붙들린 형제에게 그 시선이 향했다.
“거기. 너희 둘.”
“...네, 넵!”
등골의 냉기를 참으며 마크가 경례했다.
“마크 가이버 중령. 아샤르 황제 페하를...”
“인사받자고 부른 줄 아느냐?”
살짝 혀가 차인다.
“이 자리의 도살부대를 즉시 물려라. 변이체의 소탕, 민간인의 보호. ...맡기겠다.”
“...알겠습니다!”
무서워서만은 아니다. 추태를 조금이나마 만회할 기회다. 그들은 즉시 움직였다.
이어 황제는 아들을 보며,
“케나르. 어머니를 도와드려라.”
“...네. 아바마마.”
기묘한 아쉬움을 드러낸, 갓 성인이 된 아들이 물러가자 황제도 서서히 땅으로 내려갔다.
굳은 듯 경계하는 요위는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특이체... 냐?”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천천히 접근하면서 황제는 거듭 물었다.
“대답해라...!”
“그렇다면...?”
아이의 목소리가 노인처럼 신중히 답하고, 묻는다.
“그보다도, 당신이 어찌 여기에...?”
“네놈들의 정체가 제법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움직일 때지. 또한...”
황제는 동굴 쪽을 눈짓했다.
“깊이 연관되어 있을 저 동굴. 인간이 이리 들락거림에도 조용했다. ...노림수가 있을지 모른다. 도살부대의 전력도 알고 있을 터. 함정을 판다면 전력을 다할 테니, 그 드러난 뿌리를 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지.”
“하하...”
요위는 문득 이마를 쳤다.
“역(逆) 함정이라. 당신 정말... 코샤프가 그리 경계하고, 또 즐거워 할만 해. ”
짧은 한숨, 황제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혔다.
“...묻겠다. 너희가 깃드는 것은 짐승만이 아니었더냐.”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겠지.”
“...사실은 알지. 나도 수없이 해봤으니. 영자변환, 아니면 그 응용이겠지.”
수천 년에 걸쳐 수십 인의 인생. 죽은 이의 몸에 깃들어 살아온 역사의 산 증인.
그게 바로 자신이다.
“허나 이건 너무 손해가 큰 방법일 것이다. 왜냐...”
“인간의 몸을 쓴 이상 내가 온전히 옮겨와야지. 대신 죽어도 다시는 부활할 수 없게 되겠지.”
의외로 요위가 먼저 답했다.
황제는 살짝 놀라면서도,
“알고 있었구나.”
“맞아. 쉽게 자아를 지우고 내 힘과 의지를 부여할 수 있는 짐승과, 아무리 약해도 엄청난 혼의 무게... 그 덕에 그 어떠한 능력자라도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인간. ...이건 너무 명백한 차이지.”
“잠입을 위한 것이었느냐.”
스텔라가 안고 다닌 요위는 그동안 많은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병력의 배치, 움직임, 심지어는 작전까지도.
하지만 요위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건 어디까지나 곁다리.”
“그렇다면...?”
“한계를 벗어날 방법이니까. 인간의 몸이라면, 짐승을 쓸 때를 확실하게 초월하니까. 그리고... 진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유일한 방법이니까.”
요위는 자신의, 아이의 손바닥에 시선을 주었다.
“너희들이 특이체라 부르는 것. 몇 번이고 살아날 수 있지만 결국은 인형에 불과해. ...삶이라 할 수도 없고, 밀도도 없어. 그러니 비록 유한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히 여길 생명, 그를 영위할 나 자신... 갖고 싶었지.”
요위는 펼쳤던 손을 슬쩍 움켜쥐며 웃었다.
“딱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손에 넣은 육체인데, 그 삶을 즐기는 건 역시 너무 짧았네.”
“그래서...”
황제는 엄히 말했다.
“부러 인간을 용납하고 그들의 아이들을 받아왔더냐.”
“맞아. 그 자체로 순수한 영자력이고, 또 가장 최적의 육체도 시간을 들이면 찾을 수 있을 거잖아.”
요위는 주변을 바라보며,
“마침 너희들이 키워놓은 능력자가 많았으니, 이번에 다른 녀석들 몸도 구할 셈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다들 괜히 살려뒀네.”
찌를 듯 매서운 시선에 요위는 어깨를 떨었다.
“그렇게 무섭게 보진 말아줘. 따지자면, 너희 인간들이 닭을 키우던 것과 그리 다른 것도 없으니까.”
“...이봐.”
“사실이잖아? 오히려 난 그보다 나았어. 딱히 동굴 속 녀석들을 가둬둔 건 아냐. 스스로 새끼를 칠 수도 있었고, 고기가 될 필요도 없었어. 나는, 우리는 너희보다 훨씬 더 관대했다고...”
요위는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혹시, 인간이니까 특별히 대접받아야 된다. 그 따위 소리나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냐. 하지만 난 용납할 수 없다.”
“맞아. 당신은 인간이니 그리 생각하지. 그리고 나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뿐이야. 그래서 되갚아줬고... 그게 잘못이라면 세상엔 복수가 없어졌겠지. 원수를 증오할 필요도, ...누군가의 눈물을 신경 쓸 필요도 없겠지.”
그 고개가 살짝 꼬였다.
“생각해봤어? 우리가 어떤 심정인지? 꼬리를 흔든다고, 먹이를 받아먹는다고, 단지 말을 못한다고 우리가 감정도, 영혼도 없는 줄 알았어? 그리 아끼고 사랑한다면서도,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생각은 없었어? 하기야 들을 생각이 없었겠지. 왜냐.”
다시금 요위는 웃었다.
“같은 동족의 슬픔도, 눈물도 그리 외면하는 당신들이 알 리가 없겠지. 동정과 슬픔은 한 때뿐, 곧 자신이 먼저인... 그런 당신들이 생각할 필욘 없었겠지. 그러니 비난하진 않겠어. 다만, 당신도 우릴 비난하지 말아줘.”
요위는 가슴을 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죽여.”
“싸움에 있어서 내 원칙은 단순하다. 내가 약하면 피하고, 대등하면 싸우고, 강하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선, 아직은 내가 강자다.”
황제는 진짜로 손을 내밀었다.
“너를 살려주고 그 삶을 인정하는 대신, 너의 왕을 만나게 해 다오. 그것으로 이 전쟁도, 더 이상의 유혈도 끝낼 수 있잖느냐.”
“...그분을 만나서 뭘 하게?”
“너희들의 낙원으로, 화성을 주겠다.”
말문이 막혀버린 요위. 황제는 나지막이 웃었다.
“평화로운 터전이 필요하다면, 지성체의 삶을 원한다면, 이 싸움이 멈춘다면 그 정도는 내어주지.”
“...진심이냐.”
“그래. 지난 수십 년 공을 들인 땅이지만, 그래도 고향을 따지자면 여기거든. 공중도시 인생인 우린 좀 덜하지만, 지구인들은 그래도 지구 쪽이 애착이 크겠지. 서로 필요한 것을 바꾸는, 꽤 괜찮은 거래잖아.”
“그러네. 그거 참... 달콤한 유혹이군.”
고개를 끄덕인 요위가 이내 잘라 말했다.
“하지만 불가능해. 우리 중 누구도, 설령 그분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왜, 아직도 복수가 필요하냐. 지난 전쟁, 그만큼 인간을 죽였는데도 말이냐.”
“아냐. 역시 인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거든. 아무 것도 모를 때는 그저 던져주는 먹이에 꼬리를 흔들었지만, 이제는 아니거든.”
요위는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아무리 평화를 약속해도 언젠가는 깨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당신이래도 영원히 살 수도, 모든 인간사를 통제할 수도 없어. 서로 다른 것. 그것은 존재만으로 평화를 위협하지. 그러니 인간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우리만 피한다는 보장은 없어.”
“...좋은 통찰이다. 허나 아쉽구나.”
귀를 자극하는 금속음과 함께 검이 뽑혔다.
“설령 언젠가는 깨질 평화라도 좀 더 오래, 좀 더 강건하게... 그리고 어쩌면 모두가 다툼 그 자체를 혐오로 대할 그 날. ...나는 아직도,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살기를 품은 검 끝이 망설임 없이 요위를 향한다.
“그런데 도전하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그저 이럴 거야 저럴 거야... 그리 단정이나 짓다니. 지성체를 자부하면서도 그 타성과 어리석음까지 닮을 셈이냐.”
“당신이야말로 왜 이리 일찍 온 거야. 그 수명을 갖고 있으면, 인간에게도 똑같을 그 타성과 어리석음이나 열심히 갈고 닦을 것이지, 왜 굳이 쳐들어와서...”
요위도 자세를 잡았다.
“포로로 잡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줘. 우린 속박을 끊고 이 자리에 섰다. 다시 무력한 짐승으로 사느니 자유로이 죽겠다. 내 삶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마지막 자존심을 짓밟진 말아줘.”
“...알았다.”
서로는 망설임 없이 짓쳐 들어갔다.
카프랑은 돌격했다.
아무리 사암이라지만 바위를 진흙처럼 뭉개버리며, 그야말로 몸으로 뚫어가며 길을 만든다.
마리아를 안은 스텔라도 따라 날았다.
“어랏차!”
카프랑의 호령으로 산중턱에 굉음이 일고 드디어 하늘이 보인다.
밖으로 나왔지만 이미 상황은 알고 있다. 새삼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이내 날아온 이가 알은 체를 했다.
“형님.”
“여어, 케나르.”
비산하는 먼지를 손짓으로 털며 카프랑이 화답했다.
나이 차이가 큰 아우가 정중히 손을 모으며, 더불어 어이없이 웃었다.
“잘 지내셨는지... 라고 하고 싶지만, 어렵겠네요.”
“그래. 꼴이 말이 아니군. 나도 내가 부끄럽다.”
다가온 동생의 배를 툭 치며 카프랑이 웃었다.
“참, 조만간 현왕이 되실 텐데, 너무 가벼이 대하나?”
“그만두세요. 대단한 의미도 없는 이름입니다.”
아무리 어른이래도 고작 15세. 자리가 주어지는 것이 이상하다.
황족이란 이름까지 붙으면 더더욱 그렇다.
“그쪽 분도... 무사하십니까?”
일개 도살자에게 황자가 직접 말을 걸어준다.
사령관과 같은 부류인가, 그리 생각하면서도 스텔라가 끄덕였다.
“네. 제 꼴이 이래서 경례는 못합니다. 부디 양해를...”
가벼운 도리질이 돌아왔다.
“상관없어요. 애버튼 대위... 아니, 소령.”
“...저를 아십니까?”
황자가 답하기 전, 카프랑이 재빨리 헛기침을 했다.
“그보다도, 해야 할 인사는 아직 남았어.”
빠르게 지상을 향한 카프랑의 뒤를 스텔라가 따랐고 케나르도 이어 날았다.
“백모님을 뵙습니다.”
아들의 조력도 있어, 단 1분 만에 세 마리 특이체를 전부 처치한 황후는 낮은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카프랑. 참 고생이 많구나.”
화사한 웃음에 스텔라가 남모르게 목젖을 울렸다.
그녀 스스로도 미모에는 나름 자신이 있고, 어쩌다 연이 닿아 아샤르 황족이라면 두루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저 격이 다르다.
때문에 경탄하며, 또한 어쩐지 분하기도 했다.
카프랑이 손그늘을 만들었다.
“백부님은 전투중이신가요. ...결계까지?”
“주변에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도망치게 할 수도 없고 말이야.”
멀지 않은 곳에 빛의 반구가 보인다. 스스로도 큰 기술은 자제할 테지만 그래도 노파심에 쳐놓은 것이다.
영자방어막을 응용한 것이니 강도는 확실할 터. 실제로 이 쪽에선 거의 여파를 느낄 수 없다.
황후가 말했다.
“폐하의 싸움이 끝나면 만나러 가자. 아직 해야 할 일도 남았고...”
“...지미...!”
감히 그 말을 끊은 것은 스텔라의 외침이었다.
비로소 발견한, 황후가 앉은 바위 옆에 주저앉았었던 지미.
깜짝 놀란 소년도 마시던 물통을 내던졌다.
“누나...?!”
안고 있던 마리아를 내던지다시피 한 스텔라. 엉겁결에 받아 안은 케나르가 잠시 멍한 사이, 서로 달려간 남매가 껴안았다.
스텔라가 몇 번이고 읊조렸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남이야 보든 말든, 몇 번이고 힘주어 안으며 중얼거리는 그들.
황후가 카프랑을 눈짓했다.
“동생이야?”
“네. 그리 알고 있어요.”
“구한 보람이 더 있구나.”
겨우 떨어진 남매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이내 동생을 세워둔 채 스텔라가 다시 다가왔다.
“동생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황후가 긴 눈썹을 깜빡인 순간, 카프랑이 외쳤다.
“저런...!”
전투현장의 결계가 순간 깨진다. 그리고, 그 틈으로 뛰쳐나온 무언가가 이 쪽으로 날아오는가 싶더니, 멀지 않은 곳에 결국 뒹군다.
흙먼지에 가렸지만 분명 특이체다. 스텔라가 급히 지미를 감싸고, 카프랑과 케나르도 황후의 앞을 막았다.
바로 뒤따라온 황제가 가볍게 착지하며 혀를 찼다.
“저항 한 번 거세구나. 덕분에 힘 조절을 못했다.”
“...살아남기 위한... 저항이다. 약할 수 없잖아...”
요위는 힘겹게 일어났다.
상처와 피로 범벅이 된, 하지만 엄연히 아이의 얼굴은 모두를 경악시켰다.
“...너?!”
지미조차 놓아버리고 자신도 모르게 모두의 앞으로 나아간 스텔라.
깜짝 놀란 카프랑이 그 팔을 붙들었지만, 그녀는 거푸 고개를 흔들었다.
“어째서? ...설마...?”
그리 따르고 귀여웠고, 때문에 받아들인 아이.
떼놓을까 머리로는 생각해도, 어느덧 손을 잡았던 녀석...!
황후가 문득 탄식했다.
“이 모습은... 그럼 그동안 아이를 모았던 건...”
“맞아. 자신이 차지할 육체를 찾았다고 하더군.”
황제는 곧바로 검을 겨누었다.
“...슬슬 끝을 보자. 결계는 벗어났지만 도망칠 길 따윈 없을 거다.”
엄연히 적 앞.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선을 비꼈다.
아무리 괴물이지만 아이의 형체. ...제정신일수가...
대부분이 아닌 둘. 그것은 황제와, 스텔라였다.
“거짓말...”
순간 몸을 틀어 카프랑을 뿌리친 스텔라. 카프랑은 재차 손을 뻗었지만 잡지 못했다.
힘이 달려서가 아니라, 어째선지 분위기에 졌다.
“아아, 누나구나. 살아 있었네...?”
요위는 고통 속에서도 웃었다.
스텔라는 연달아 고개를 휘저었다.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가 물었다.
“너, 정말로... 괴물이었어?”
“보고도 모르겠어? 아니면... 이리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혹시 그동안 정이라도 든 거야?”
죽음을 앞두고도 웃음에는 장난기가 배었다.
“하기야 누나는 내게 잘해줬지. 밥도 먹이고 옷도 입히고 자장가로 재워도 주고... 사랑받았었지...”
어느덧 웃음이 사라진 요위가 씁쓸히 말했다.
“허나 착각하지 마. 내가 누나에게 다가간 건 밖으로 나가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일 뿐. ...기억하겠지? 우리들이 처음 만난 날... 누나의 손은 정말 아프더라고.”
증오를 폭발시켜 사정없이 두들긴 첫 조우. 그런데 그 이후로 만나지 못한 녀석이 이런 형태로 돌아오다니...!
스텔라가 다소 힘없이 물었다.
“...원한이라는 거야? 내게 접근해서... 이리 뒤통수를 치고 싶었던... 그런 거야...?”
“아니면? 설마 내가 조금의 호의라도 품었을까? ...인간은 참 신기해. 아이이기만 하면 다들 한없이 약해지더라? 그럼 당연히 이용해야지.”
낄낄 웃는 요위와는 반대로, 스텔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표정이 망가졌다. 놀라움. 의혹. 어쩌면 미련이나 슬픔일 수도 있으리라.
이는 처음 보는 그녀의 약한 태도다. 카프랑은 놀라면서도 당혹스러웠다.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만 황제의 실소가 바람을 탔다.
“지성체가 된 건 그렇다 쳐도, 인간의 거짓말까지 닮는 건 좋지 않은데. ...아냐, 어쩌면 이건 배려인가.”
빠르게 고개 돌린 요위가 쏘아보았다.
“무슨 말...이지?‘
“네 수법은 내가 더 잘 안다. 말했지? 수없이 타인의 몸을 빌려봤다고. 그래서 아주 잘 알지...”
“...무슨 말이냐니까...?!”
발끈하는 요위를 손짓하며 황제가 말했다.
“즉, 이런 거다. 로사의 신체검사와 수많은 능력자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그동안의 너는 대부분의 힘을 봉인했을 터.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은 떼어내어, 그것으로 아이의 혼을 만들어 행동하게 했을 터. 그렇지?”
“...무슨 상관이냐.”
“상관있지. 분리시킨 네 파편은 너조차도 조종할 수 없어. 어디까지나 별개의 인격일 뿐. 하지만 네 감성과 본성 역시 깊이 담고 있어. ...내가 그랬듯이 말이야.”
루이코를 사랑했던 아키라, 그 외에도 그 긴 세월 수 없던 자신의 파편들.
그들 하나하나가 수없는 추억을 갖고 있고, 그 모두가 지금은 소중한 자산이다.
“파편일지언정 네 일부가 따르고 좋아했다면... ...그런데도 왜 이리 말했을까? ...짐작 못할 바는 아닌데?”
“...당신, 정말 밉살스럽네...!”
입술을 씹은 요위의 시선이 망연자실한 스텔라에게 닿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요위는 쓴웃음으로 탄식했다.
“인간의 아이는... 가족이 있고 사랑받는 아이의 삶은 이런 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지. ...이룰 순 없지만 조금은 더 이어지길... 그리 바라기도 했었지.”
“...너...”
스텔라가 괴물을 불렀다.
단단하게 꾸몄지만 여전히 구석구석 무너진 표정. 그녀는 문득 한 발을 떼었지만, 요위의 손사래에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만둬. 이미 늦었어.”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나는 도박에 실패했어. 내 동족에겐 정체를 드러낸 대죄를 지게 될 거야. 그리고 서로에겐, 그동안 흘린 피가 반드시 족쇄가 될 거야. ...이제 끝났어.”
슬며시 들린 손에 모두가 긴장했지만, 뜻밖에도 그 끝은 스스로의 목을 향했다.
“그래도... 잠시나마 내 삶과 의지를 갖고, 기대도 못한 사랑도 받아봤어. ...이만하면 만족해.”
장난꾸러기의 얼굴로 요위는 혀를 내밀었다.
“안녕, 누나. 짧은 시간이지만 제법 즐거웠어. ...그리고 혹시나 싶어 말하는 건데...”
누구나 다음 말을 기다릴 찰나, 요위의 손끝이 그 멱을 꿰뚫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었다.
“...괴물을... 위해... 울진... 말아...줘...”
웃는 채인 머리가 이내 바닥에 떨어졌다.
아주 약간 남은 생명, 사실은 마지막 남은 뇌신호로 버티던 근육이 마침내 힘을 잃자, 그 작은 몸도 천천히 쓰러졌다.
스텔라가 다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다시 내딛는 순간, 걸음 대신 두 무릎이 꺾였다.
놀란 카프랑이 급히 나서는 순간, 작지만 뚜렷한 힘이 그를 제지한다. 돌아본 백부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한껏 웅크린 그녀는 소리 따윈 지르지 않았다. 흐느껴 울지도 않았다.
하지만 풍성한 머리칼과 두 손바닥이 감싼, 그 뺨은 핏기를 잃은 채 조금씩 경련했다.
이윽고 그 입가에 맴돈 말.
너무 작아 보통이라면 들을 수 없겠지만, 카프랑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실수해 버렸어... 그리도, 그렇게나 다짐했는데도...”
깊고 깊은 한탄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정 따윌 줘버렸어...!”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앞으로 2화 남았군요. 다음 편과 에필로 이 권은 종료.
잠수의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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